← 작품으로
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19화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AD
스폰서 광고

019화 [검증의 칼날]

오후의 긴 그림자가 F-Class 강의동 복도를 비스듬히 메우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서쪽 창살을 붉게 물들일 무렵 강의실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아르만 보조교수가 두고 간 회색 서류철이 놓여 있었다.

[임시 의무 점검 명령. 해가 지기 전까지 본관 의무실 출석.]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카이드가 실습대 모서리에 손을 얹은 채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저도 가겠습니다. 아까 붕대가 터진 상처도 있고 의무실에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하면..."

"안 된다."

에신은 낡은 로브를 걸치며 건조하게 잘라 말했다.

"규정에 동행자는 한 명이라고 못 박혀 있었다. 괜히 셋 다 우르르 몰려가서 소란 피울 생각 마라. 병문안 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교수님 혼자 보내드릴 수는 없습니다."

루나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통지서 사본을 펼쳤다.

"의무실 진단석은 피검자의 마력 파동을 강제로 자극하는 유도식 기구예요.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외부 마력이 닿으면 체내 회로에 큰 무리가 갈 수 있어요."

학생들은 여전히 에신의 각혈을 자신들을 무리하게 지도하다 생긴 극심한 피로로 믿고 있었다.

실제로는 마력 역류증 4단계의 불길이 혈관을 태우며 터져 나온 것이었지만 에신은 그 진실을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진단석이라...'

에신은 옷깃을 여미며 속으로 혀를 찼다.

아카데미 표준 진단석은 피검자의 손목에 탐색 마력을 흘려보내 체내 회로의 반발력을 읽는다.

문제는 에신의 혈관 안쪽에서 거꾸로 솟구치는 역류 마력이었다.

그것이 진단석의 파동과 부딪히는 순간 진단석은 붉은 경보를 울리며 위험 반응을 토해낼 터였다.

불치병 판정이 공인되는 순간 명예교수직은 날아가고 아르카나 헤븐의 감시자들이 몰려와 격리 병동으로 끌고 갈 것이 뻔했다.

'쉬려고 여기까지 도망쳐 왔는데 병상에 묶여서 실험체 신세가 될 수는 없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단석은 반발력을 측정한다.

그렇다면 체내 마력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고 침투해 들어오는 탐색 파동을 빈 회로의 결손으로 삼켜 소멸시키면 된다.

마력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진단석은 반응을 감지하지 못한다.

단점이라면 마력 출력이 0에 수렴하여 완전 소진 상태로 측정된다는 점뿐이었다.

"하리."

에신이 턱짓으로 문을 가리켰다.

"네가 따라와라. 서류 들 사람이 필요하니까."

"네 교수님."

하리는 기다렸다는 듯 에신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녀의 눈빛은 결전지로 향하는 호위 기사처럼 결연했다.

에신은 카이드와 루나를 돌아보았다.

"칠판에 적은 거 잊지 마라. 하루 훈련 횟수 지키고 작동식은 하나만 남겨. 내가 돌아왔을 때 강의실 부서져 있으면 바로 결석 처리다."

"명심하겠습니다."

카이드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에신은 삐걱거리는 강의실 문을 열고 노을이 내려앉은 회랑으로 걸음을 옮겼다.


본관 1층 서편에 위치한 중앙 의무실은 차가운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다.

하얀 가림막 뒤편에 놓인 육각기둥 형태의 진단석 주변으로 푸른빛이 감돌았다.

기다리고 있던 아르만 보조교수가 시계를 확인하며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일몰 십오 분 전이군요."

그의 곁에는 수석 의무관 가브리엘이 두꺼운 기록부를 든 채 서 있었다.

"루드윅 명예교수님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가브리엘이 진단석 앞 의자를 권했다.

에신은 말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전에 피를 토한 여파로 전신이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기에 일부러 힘을 뺄 필요조차 없었다.

하리는 에신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바짝 붙어 섰다. 그녀의 시선은 한순간도 진단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검사는 간단합니다. 진단석의 금속판 위에 손바닥을 얹고 탐색 파동이 체내를 돌 때까지 편안하게 호흡을 유지하시면 됩니다."

가브리엘이 진단석 상단의 밸브를 돌렸다.

위이잉—

푸른빛이 일렁이며 차가운 진동이 손바닥을 타고 에신의 손목으로 파고들었다.

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억눌려 있던 뜨거운 역류의 불길이 이질적인 자극에 반응하듯 꿈틀거렸다.

'지금이다.'

에신은 눈을 감았다.

호흡을 들이쉬지 않고 폐 밑바닥의 공기를 가늘게 비워냈다.

체내의 마력 회로를 억지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말단 통로를 비틀어 안쪽으로 닫아걸었다.

진단석에서 흘러들어온 탐색 파동이 갈 곳을 잃고 텅 빈 회로의 결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파동은 에신의 마력과 부딪히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지듯 사그라졌다.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마력 파동은 정확히 0이었다.

진단석 상단의 계측관이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치직 치지직.

푸르게 빛나던 육각기둥의 빛이 순식간에 탁한 잿빛으로 흐려졌다.

수치를 나타내는 유리관 속의 붉은 액포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백... 오십... 십... 삼...

마침내 수은주는 눈금의 최하단에 닿으며 완전히 멎었다.

"어...?"

가브리엘 의무관의 안경이 콧등 아래로 미끄러졌다.

그는 당황하여 진단석의 전원부를 몇 번이나 두드렸다.

"기구 고장인가? 왜 출력이 전혀 잡히지 않지?"

"가브리엘 의무관 수치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아르만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가브리엘은 떨리는 손으로 계측판을 가리켰다.

"잔여 마력 활성도 1단위 미만... 체내 마력 반발 계수 제로입니다. 이건 기구가 고장 난 게 아니라면..."

가브리엘이 에신의 창백한 얼굴을 경악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회로가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마법사로서 마력을 한 번이라도 더 썼다가는 심장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전신의 마력이 고갈되어 있어요."

"고갈이라고요?"

아르만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지금 이분의 상태는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대마법을 난사한 뒤에나 나타나는 극단적 탈진 상태입니다! 체내 회로가 아예 반응을 거부하고 있어요!"

가브리엘의 외침이 의무실 안을 울렸다.

그 순간 에신의 등 뒤에 서 있던 하리의 숨이 멎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오전에 에신이 토해냈던 검붉은 피.

제3보급 창고의 화마 앞에서 던져주었던 결손의 원리.

카이드에게 목검의 정지선을 가르쳐주던 나른한 목소리.

'교수님은...'

하리의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자신의 마력을 남김없이 쏟아붓고 계셨던 거야. 자신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줄도 모르고...'

하리는 에신의 앙상한 어깨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배어 나올 만큼 강하게 깨문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이 새어 나왔다.

에신은 하리의 기척을 느끼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니 그냥 회로를 닫아서 안 나오는 것뿐인데 왜 저러지? 울지 마라 제발. 내가 더 곤란해지잖아.'

에신이 헛기침을 하며 손을 거두려던 찰나였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기적은 전부 허상이었군."

의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서늘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단정한 감청색 정복을 차려입은 셀레네 바이스 교수가 문간에 서 있었다.

그녀의 뒤편에는 마학부 소속 교수 세 명과 학사위원회 완장을 찬 행정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셀레네의 날카로운 은회색 눈동자가 가브리엘 의무관의 진단판을 꿰뚫어 보았다.

"루드윅 명예교수의 마력이 완전히 바닥났다는 진단 잘 들었습니다."

"셀레네 교수님?"

아르만이 놀라 몸을 돌렸다.

셀레네는 차가운 걸음걸이로 진단석 앞까지 걸어왔다. 그녀의 로브 자락에서 풍기는 엄격한 향기가 의무실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자신의 마력 회로조차 추스르지 못해 빈사 상태에 빠진 자가 퇴학 유예자들을 데리고 마법을 지도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군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셀레네 교수님!"

하리가 에신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외쳤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로젠 공작가 특유의 서슬 퍼런 기백이 실려 있었다.

"교수님은 저희를 살리기 위해 가르치셨습니다! 제3보급 창고의 화재를 막아낸 것도 검술부와의 대련에서 카이드가 승리한 것도 모두 교수님의 가르침 덕분이었습니다!"

"가르침이라."

셀레네가 비소를 머금었다.

"로젠 영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규격 외의 마력을 억지로 쥐어짜 만든 유체 고리나 칼날을 멈춰 만든 변칙적인 공백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인화성 종이 쪼가리는 정통 마법이 아닙니다."

셀레네는 품에서 황금빛 봉인이 찍힌 서류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벼랑 끝에 몰린 낙제생들이 부린 위험천만한 요행에 불과합니다. 지도교수의 몸 상태가 이 지경이라면 더더욱 명백하지요. 정상적인 지도가 불가능하니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는 변칙 기술이나 주입한 것입니다."

"요행이 아닙니다!"

하리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희는 원리를 배웠고 훈련을 통해 해냈습니다!"

"그렇다면 증명해 보이십시오."

셀레네가 서류를 탁자 위에 내리꽂았다.

종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황금빛 인장이 드러났다.

[테오필루스 아카데미 학사위원회 긴급 의결서.]

에신의 나른한 시선이 의결서 제목 아래로 향했다.

[안건: F-Class 학업 성취도 재검증을 위한 정기 평가 조기 시행의 건.]

셀레네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한 달 뒤로 예정되어 있던 전 학년 정기 평가를 F-Class에 한하여 열흘 뒤로 앞당겨 조기 시행합니다."

"열흘 뒤라고요?!"

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정기 평가는 아카데미 전교생의 진급과 퇴학을 가르는 가장 가혹한 공식 시험이었다.

통상 한 달 이상의 준비 기간을 두고 치러지는 시험을 불과 열흘 뒤로 앞당긴다는 것은 대놓고 낙제하라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바르모트 총장님과 학사위원회의 인가를 마친 공식 통지서입니다."

셀레네의 시선이 에신에게 꽂혔다.

"평가 방식은 공개 검증입니다. 아카데미 전 교수진과 학생들이 참관하는 대강당 중앙 무대에서 F-Class 세 학생이 각자의 전공 분야를 정규 2학년 기준에 맞춰 단독으로 시연해야 합니다."

셀레네의 붉은 입술이 매끄러운 호를 그렸다.

"마법 유체 제어와 마검술 궤적 그리고 마도구 제작. 세 분야 중 단 한 명이라도 정규 평가관 과반의 합격을 얻지 못한다면..."

"그렇다면요?"

하리가 이를 악물었다.

"F-Class는 즉시 강제 폐쇄되며 세 학생 전원은 그 자리에서 퇴학 처분됩니다. 그리고 자격 미달의 위험 교육을 방조한 루드윅 명예교수 역시 아카데미에서 영구 추방될 것입니다."

의무실 안이 숨 막히는 정적에 휩싸였다.

아르만 보조교수조차 말을 잃은 채 굳어버렸고 가브리엘 의무관은 식은땀을 닦아냈다.

열흘이라는 시한.

그리고 전원 합격이 아니면 즉시 퇴학이라는 가혹한 족쇄.

셀레네 파벌이 파놓은 완벽한 함정이었다.

그들은 에신의 신체 쇠약을 약점 삼아 F-Class를 한 번에 쓸어버릴 무대를 마련한 것이었다.

하리는 분노로 몸을 떨며 셀레네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에신은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열흘 뒤라고?'

에신의 머릿속에 번개가 스쳤다.

'세 놈 중 한 명이라도 떨어지면... F-Class가 해체된다고?'

그렇다면 자신도 명예교수 자리에서 쫓겨난다.

매일 아침 훈련 소음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총장의 쓸데없는 방문도 사라지며 서류 결재에 시달릴 이유도 없어진다.

조용한 시골 마을의 작은 오두막으로 내려가 남은 여생 동안 햇살을 받으며 낮잠만 자면 되는 것이다.

'이거 완전 횡재 아닌가?'

에신의 가슴 한구석에서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낙제생 셋이 열흘 만에 정규 2학년 기준을 통과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알아서 탈락해 줄 터였다.

에신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통지서를 향해 건조하게 손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받지요."

"교수님?!"

하리가 경악하여 에신을 돌아보았다.

셀레네는 에신의 무심한 태도에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격렬한 반발이나 읍소를 예상했으나 남자의 얼굴에는 당혹감조차 없었다.

"열흘 뒤 대강당입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태연할 수 있을지 기대하지요."

셀레네는 차갑게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의무실을 빠져나갔다.


완전히 밤이 깊은 F-Class 강의실.

삐걱거리는 탁자 위에는 셀레네가 던져두고 간 조기 시행 통지서가 등불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헤르만 보조교수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강의실 안을 서성거렸다.

"말도 안 됩니다! 이건 음모입니다! 정기 평가를 열흘 뒤로 앞당기다니 마학부 놈들이 작정하고 F-Class를 죽이려는 겁니다!"

헤르만은 에신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교수님 총장님께 당장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아무리 교수 회의 의결이라 해도 이런 폭거는..."

"시끄럽다 헤르만."

에신은 안락의자에 늘어진 채 눈을 감았다.

"결정 난 걸 떠들어봐야 목만 아프지. 밤도 늦었는데 소리 지르지 마라."

에신은 정말로 이 상황이 평화로웠다.

열흘만 버티면 이 귀찮은 아카데미 생활도 끝이다.

하지만 강의실 한구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카이드가 통지서의 글자를 묵묵히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공개 검증대에서 단독 시연... 전원 합격."

카이드의 낡은 목검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단단하게 굳어졌다.

"스승님이 피를 토해가며 마력을 쏟아부으셨는데 저들은 그것을 요행이라 조롱했다."

"카이드..."

루나가 조용히 공책을 펼쳤다.

그녀의 안경 너머 눈동자에는 전례 없는 차가운 집념이 서려 있었다.

"조기 평가의 채점 기준표를 분석했어요. 심사위원 다섯 명 중 세 명 이상이 70점 이상을 부여해야 해요. 기존의 마법 공식으로는 그들의 편견을 뚫을 수 없어요. 그렇다면..."

루나는 깃펜을 들어 백지 위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오직 교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결손의 최소 작동식만으로 그들의 계측석을 완전히 압도해야 해요."

하리가 에신의 의자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에신을 향해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공작가의 영애가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가문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리 뭐 하냐. 일어나라."

에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하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의 떨리는 두 손이 가지런히 무릎 위에 모였다.

"교수님께서 저희를 위해 모든 마력을 불태우셨다는 것을 의무실에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에신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셀레네 교수와 마학부는 교수님이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이 비열한 함정을 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교수님의 가르침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하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푸른 눈동자 속에서 타오르는 결의는 낮에 보았던 창고의 불길보다 더 뜨겁고 거대했다.

"열흘 뒤 저희 세 사람은 단 한 명의 낙제도 없이 전원 최고점으로 통과하겠습니다. 교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카이드가 목검을 가슴에 대며 고개를 숙였고 루나 역시 공책을 가슴에 품으며 깊게 허리를 숙였다.

세 제자의 시선이 하나로 모여 에신을 향했다.

그것은 단순한 존경을 넘어선 스승을 지키겠다는 광기에 가까운 맹세였다.

에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잠깐만.'

'너희가 최고점으로 붙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데?'

명예교수 해고는커녕 종신교수로 묶여서 평생 부려 먹힐 것이 뻔했다.

심지어 저 눈빛들을 보라.

저건 대충 시험을 치르고 떨어져 줄 눈빛이 아니었다. 열흘 동안 밤을 새워서라도 아카데미 본관을 뒤집어엎을 기세였다.

에신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하..."

에신은 머리를 감싸 쥐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조용히 쉬고 싶었을 뿐인 그의 시한부 인생에 가장 시끄럽고 거대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표지소설
연재중 18%
#아카데미#판타지#음악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평생 남의 이름 뒤에 숨어 곡을 쓰다 과로사한 무명 작곡가 강하진이 음악이 마법이 되는 판타지 아카데미의 마력 제로 낙제생 하진으로 빙의한다. 퇴학 직전 24시간 루프와 [신들의 작곡 시스템]을 이용해 지구의 화성학과 거장들의 선율을 대기 에테르 유도식으로 변환하며 악보 한 장으로 아카데미와 제국을 뒤흔드는 천재 작곡가의 대마법 성장기.

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