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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시한부 명예교수가 되었다16화

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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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화 [궤적의 빈틈]

테오필루스 아카데미 검술부 주 경기장은 정오가 되기 전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찼다.

원형 경기장을 둘러싼 수백 개의 관람석은 물론이고 위층 난간까지 구경꾼들로 빽빽했다. 귀족 학생들의 화려한 비단 옷과 검술부 훈련생들의 붉은 견장이 섞여 거대한 웅성거림을 만들어냈다.

"F-Class의 평민 놈이 진짜로 도망 안 치고 나왔다고?"

"검술부장님이 직접 상대해 주신다는데 일격에 기절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마력검도 못 쓰는 반쪽짜리한테 검술부가 왜 이런 무대를 깔아주는지 모르겠군."

야유와 조소가 뒤섞인 소음이 모래 경기장 위로 쏟아져 내렸다.

관람석 한쪽 그늘진 참관석 구석에는 에신 루드윅이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낡은 로브를 목까지 끌어올린 그는 눈을 감은 채 관자놀이를 가볍게 주물렀다.

'수면 부족에 두통까지 겹쳤는데 이딴 고함 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에신은 속으로 깊은 탄식을 삼켰다.

그의 옆자리에서는 헤르만 보조교수가 깃펜과 양피지 묶음을 든 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루드윅 교수님. 가릭 부장이 진심으로 대검을 휘두르면 목검 하나로는 충격파만 스쳐도 뼈가 부러질 텐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알아서 하겠지."

에신이 건조하게 대꾸했다.

"자기가 선택해서 들어간 판이다. 내가 대신 맞아줄 것도 아니지 않나."

헤르만의 눈동자가 깊게 흔들렸다.

'자신의 제자를 완전히 믿고 있기에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으시는구나. 결과가 어찌 되든 스스로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무인의 그릇을 완성하려는 뜻이다.'

헤르만은 감격 어린 표정으로 양피지에 [스승의 초연한 신뢰]라고 적어 넣었다.

에신은 그 문구를 보지 못한 채 그저 이 지옥 같은 소음이 십 분 안에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관람석 최전열 난간 앞에는 하리 폰 로젠과 루나가 나란히 서 있었다.

하리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경기장 중앙을 응시하고 있었다.

"외부 마법 지원은 일절 금지예요. 제가 바람을 흘려줄 수도 없고 얼음 고리를 깔아둘 수도 없어요."

"알고 있어요."

루나가 공책을 펼치며 담담하게 답했다.

"오늘은 카이드가 혼자 멈춰야 하는 날입니다. 대련 규정은 세 번의 교차. 유효 타격판에 50단위 이상의 마력 충격이 먼저 기록되는 쪽이 승리해요."

"맞부딪히면 끝이에요."

하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때 경기장 양쪽 철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모래판 위로 걸어 나왔다.

한쪽에서는 거대한 체격의 검술부장 가릭이 나타났다. 그의 등 뒤에는 사람 키만 한 강철 대검 '브레이커'가 매여 있었다. 가릭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푸른 마력 스파크가 모래 바닥을 튀겼다.

반대편에서는 카이드가 걸어 나왔다. 수수한 가죽 방어구와 손에 쥔 낡은 훈련용 목검. 어제 손목에 감았던 흰 붕대만이 햇살을 받아 희게 빛나고 있었다.

"양측 대련자 준비!"

경기장 중앙에 선 공인 심판관이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본 대련은 아카데미 정식 규칙에 의거하여 총 3회의 교차로 진행된다! 방어구의 유효 타격판이 점등되거나 한쪽이 전투 불능에 빠질 시 즉시 종료된다!"

가릭이 등 뒤에서 묵직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카이드."

가릭이 흉터 그어진 입꼬리를 비틀며 으르렁거렸다.

"네놈의 그 얄팍한 속임수가 정통 마법검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마."

카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목검을 양손으로 쥐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야유도 가릭의 칼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섬광도 시야에서 서서히 지워졌다.

오직 발밑의 모래와 자신이 그어 놓아야 할 보이지 않는 정지선만이 또렷해졌다.

'쫓아가지 않는다. 상대의 궤적이 내 선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제1합, 개시!"

심판관의 손이 매섭게 허공을 갈랐다.


쿠우웅!

가릭의 발이 모래판을 박차는 순간 지면이 흔들렸다.

거대한 몸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폭발적인 속도였다. 가릭의 대검에 깃든 푸른 마력이 칼날을 세 배 이상 부풀리며 카이드의 머리 위로 수직 낙하했다.

"죽어라!"

허공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3서클급 마력 충격파가 부채꼴로 쏟아졌다. 정면으로 받았다가는 목검은 물론이고 팔뼈까지 박살 날 위력이었다.

카이드는 칼날을 마주 대지 않았다.

그는 대검이 정수리에 닿기 직전 오른쪽으로 반 걸음 비틀며 상체를 낮췄다.

콰아아앙!

대검이 카이드가 서 있던 모래 바닥을 그대로 찍어 눌렀다.

폭발적인 흙먼지와 충격파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카이드의 어깨 방어구가 거센 바람에 삐걱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카이드는 중심을 잃지 않고 모래판을 세 걸음 미끄러져 물러섰다.

목검을 쥔 손바닥에 묵직한 마비감이 번졌지만 유효 타격판의 불은 켜지지 않았다.

"칫, 쥐새끼처럼 피하기만 하는군!"

가릭이 흙먼지를 털어내며 대검을 고쳐 잡았다.

루나는 공책에 깃펜을 바쁘게 움직였다.

"제1합, 직접 타격 없음. 가릭의 하향 참격 후 방출된 마력이 지면에 체류하다 외곽으로 확산. 카이드의 방어구 손상도 제로."

하리가 주먹을 쥐었다.

"카이드가 상대의 힘을 정면으로 받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음 공격은 더 거칠어질 거예요."

가릭의 눈에 핏발이 섰다. 단 한 합 만에 끝내겠다고 큰소리친 공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으니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두 번째는 피할 수 없다!"

가릭이 대검을 옆으로 눕혔다. 푸른 마력이 칼날을 타고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했다.

제2합의 시작이었다.

가릭이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횡베기를 날렸다. 단순한 검격이 아니라 경기장 반경 5미터를 통째로 휩쓰는 마력 폭풍이었다.

어디로 피해도 범위 안에 갇히는 궤적이었다.

카이드의 본능이 목검을 휘두르라고 외쳤다. 눈앞으로 쇄도하는 푸른 폭풍을 어떻게든 쳐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손목을 굳게 만들었다.

'안 돼.'

카이드는 그 순간 에신의 말을 떠올렸다.

'깨질 때까지 붙들고 있으니까 손목이 나가는 거다.'

카이드는 뻗으려던 목검을 가슴 앞으로 바짝 당겨 멈췄다. 그리고 폭풍이 덮치기 반 박자 먼저 뒤로 몸을 던지듯 낮게 굴렀다.

콰르르릉!

대검의 칼끝이 카이드의 머리칼 몇 올을 스치며 지나갔다.

돌풍이 카이드의 가슴 방어구를 거칠게 긁고 지나갔지만 이번에도 타격판은 반응하지 않았다.

카이드는 모래판을 짚고 일어서며 가릭의 등 뒤를 응시했다.

가릭의 대검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 바로 그 자리.

폭발적인 마력이 바깥으로 뿜어져 나간 직후 그 칼날의 궤적 뒤편으로 지독하게 맑고 고요한 '공백'이 생겨나고 있었다.

주변의 먼지와 공기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0.3초간의 마력 진공.

결손이었다.

'보인다.'

카이드의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상대의 마력이 거대하고 파괴적일수록 그 뒤에 남겨지는 빈 공간은 더 깊고 선명하게 입을 벌렸다.

그 빈틈은 상대의 공격을 쫓아가서는 결코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이 먼저 검을 멈춰 세우고 상대의 궤적이 그 결손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야만 찌를 수 있는 문이었다.


"빌어먹을 놈이!"

가릭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두 번의 교차가 끝났는데도 카이드의 옷자락조차 제대로 베지 못했다.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검술부장이 낙제생 하나를 잡지 못해 헛손질만 두 번을 한 셈이었다.

"마지막이다."

가릭이 대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의 온몸에서 푸른 마력이 들끓어 오르며 대검의 칼날 위로 응축되었다. 검술부 오의, '폭쇄참'의 기동 준비였다.

대검 주위의 공기가 일그러지며 귀를 찢는 고주파음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이번엔 경기장 절반을 통째로 갈아버리겠다!"

참관석의 헤르만이 사색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교수님! 저건 실습용 대련의 범위를 넘었습니다! 심판에게 중지를 요청해야 합니다!"

하지만 에신은 여전히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꺼풀을 반쯤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가만히 있어."

에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했다.

"바람이 크면 먼지도 많이 일어나는 법이다. 눈만 똑바로 뜨고 있으면 피할 필요도 없어."

에신은 그저 저 시끄러운 마력 덩어리가 경기장 바닥을 부숴 먹어서 수리비 청구서가 자신에게 날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헤르만의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깨달음이 번쩍였다.

'거대한 폭풍일수록 중심은 비어 있다! 상대의 크기에 압도당하지 말고 그 안의 결손을 직시하라는 가르침!'


"제3합!"

심판관의 신호와 함께 가릭이 대검을 내리찍었다.

"폭쇄참!"

푸른 거인이 도끼를 내리찍듯 거대한 마력의 참격이 경기장 전면을 집어삼키며 쇄도했다. 모래가 솟구치고 경기장 석판이 갈라지는 굉음이 울렸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격.

그러나 카이드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카이드의 눈에는 쏟아지는 마력의 해일이 아니라 그 정중앙을 가르는 칼날의 궤적이 보였다.

카이드는 오른팔을 뻗었다.

그는 목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가릭의 대검이 지나갈 바로 그 길목, 어제 그어 두었던 자신만의 정지선 위에 목검의 칼끝을 '딱' 하고 멈춰 세웠다.

딱.

찰나의 순간 가릭의 대검이 카이드의 칼끝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쿠콰콰콰쾅!

가릭의 마력 폭쇄참이 카이드의 등 뒤 허공을 산산조각 내며 터져 나갔다.

그리고 바로 그 0.1초의 순간.

가릭의 대검이 휩쓸고 지나간 궤적 뒤편으로 거대한 마력 진공이 열렸다. 주변의 모든 흐름이 그 빈틈을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카이드가 멈춰 세운 목검 끝에 맺혀 있던 희미한 푸른 결이 그 진공의 흐름을 타고 빨려 들어갔다.

스으으윽!

카이드의 잔류 검로가 가릭의 마력 결손부를 타고 역류했다.

대검을 쥐고 있던 가릭의 마력 회로가 거꾸로 뒤틀리며 그의 손목이 바깥으로 꺾였다.

"크악?!"

가릭의 대검이 제어력을 잃고 모래 바닥 깊숙이 처박혔다.

그와 동시에 진공을 타고 흐른 카이드의 검로가 가릭의 방어구 한가운데로 매끄럽게 파고들었다.

카이드는 목검을 더 밀지 않았다. 그는 이미 멈춰 있었고 결손이 스스로 카이드의 칼끝을 가릭의 가슴으로 끌어당겼을 뿐이었다.

탁.

목검의 끝이 가릭의 가슴 방어구 정중앙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결손부에 갇혀 있던 충격파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삐이이이익—!

가릭의 가슴 한가운데 박힌 유효 타격판이 새빨간 빛을 뿜어내며 요란하게 점멸했다.

[타격력 계측: 120단위]

[판정: 유효 치명타]

"커헉...!"

가릭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대검을 놓치고 모래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모래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경기장 한가운데에는 낡은 목검을 내린 채 서 있는 카이드와 붉은빛을 번쩍이며 주저앉은 검술부장 가릭만이 남아 있었다.

정적을 깬 것은 심판관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유, 유효 타격 확인...!"

심판관이 카이드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승자, F-Class 카이드!"

와아아아아아!

침묵이 깨지며 경기장이 터져 나갈 듯한 함성이 폭발했다.


"이겼어...!"

하리가 난간을 붙잡은 채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루나는 공책의 마지막 줄에 굵은 마침표를 찍었다.

"상대의 궤적 결손을 정확히 찌른 잔류 검로의 유효 타격입니다. 카이드의 승리예요."

검술부 훈련생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은 가릭을 바라보며 사색이 되어 있었다. 베른은 입을 벌린 채 뒷걸음질을 쳤다.

F-Class의 평민 낙제생이 검술부장을 3합 만에 무릎 꿇린 사건. 아카데미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이변이었다.

참관석에서 헤르만은 눈물을 글썽이며 보고서에 글을 써 내려갔다.

[루드윅 교수의 무위지검! 힘으로 힘을 꺾지 않고 상대의 빈틈 스스로가 패배를 부르게 만드는 결손 검결을 증명하다!]

에신은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환호성에 인상을 팍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청 떨어지겠네. 이겼으면 됐지 뭘 저리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

에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참관석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빨리 가서 자야지. 오늘치 소음은 이걸로 끝이다."

에신이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카이드가 땀에 젖은 얼굴로 깊게 허리를 숙였다.

승리에 도취하지 않고 뒤돌아 서는 스승의 뒷모습. 그 무심한 발걸음이야말로 어떤 찬사보다도 묵직하게 카이드의 가슴에 새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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