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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위험생물 사육사8화

아카데미의 위험생물 사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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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벽 너머의 고동

셀레나 교수가 떠난 뒤 관리실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탁자 위에는 방금 인계받은 열쇠 뭉치가 둔탁한 쇳소리를 내며 놓여 있었다. 사육실 번호가 찍힌 황동 열쇠 수십 개 사이로 유독 거칠고 무거운 흑철 열쇠 하나가 섞여 있었다. 그 열쇠에는 어떤 숫자도 표식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한 달이라…….”

리아가 의자에 걸터앉으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당장 쫓겨나는 건 막았지만 조건이 너무 가혹해. 공식 폐기 대상으로 분류된 위험생물 한 종을 골라서 안전 관리 성과 보고서를 완성하라니. 조련학과 수석들도 꺼리는 일을 우리더러 해내라는 소리잖아.”

한결은 탁자 한구석에 쌓여 있던 낡은 시설 장부를 펼쳤다. 장부 첫 장에는 제7사육장의 초기 도면이 거친 먹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뿔토끼들처럼 환경을 바로잡고 신호를 읽어내면 어떤 마수든 통제할 수 있는 선이 보일 겁니다.”

“그 환경을 고치는 데 돈이 든다는 게 문제지.”

리아가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사육장 관리 권한은 넘어왔어도 예산 계좌는 여전히 동결 상태야. 3번 사육실에 들어가는 은버들 껍질과 소화 보조제도 내 개인 약재함에서 꺼내 쓴 건데 남은 분량이 나흘 치밖에 안 돼. 맹수급 마수를 새로 맡는다면 특수 진정제나 마력 안정 사료가 필요한데 그걸 살 돈이 없어.”

한결은 장부의 기록을 손끝으로 짚어 내려갔다.

제7사육장은 과거 북부 원정 당시 고위험 마수를 격리하던 시설이었다. 중앙 통로를 따라 1번부터 10번까지의 사육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1번과 2번 사육실은 이미 비어 있었고 3번 사육실에는 방금 안정을 찾은 뿔토끼 무리가 있었다. 문제는 그 안쪽이었다.

‘4번 바위멧돼지 아종. 난폭성 극대화로 폐기 심의 중.’
‘6번 갈퀴살쾡이. 마력관 이상으로 후각 마비 및 공격성 발현.’
‘10번…….’

한결의 손가락이 10번 사육실 항목에서 멈췄다.

관리 기록과 수용 개체명이 먹물로 지워진 채 붉은 밀랍 인장이 찍혀 있었다.

‘영구 격리 구역. 접근 엄금.’

그 순간 탁자 위의 흑철 열쇠가 바닥의 미세한 진동을 타고 잘각거렸다.

우웅—

발밑의 돌바닥을 타고 배면 마력관보다 훨씬 깊고 묵직한 파동이 울려왔다.

한결의 왼쪽 쇄골이 옷자락 안쪽에서 찌릿하게 달아올랐다.

“리아. 안쪽 사육실들을 둘러봐야겠습니다.”

한결이 열쇠 뭉치를 들고 일어났다.

“한 달 안에 보전 성과를 낼 대상을 정하려면 어떤 녀석들이 남아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벽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리아는 한결의 진지한 눈빛을 보더니 가죽 약재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알았어. 하지만 절대 무리해서 문 열지 마. 냄새 흡착지랑 온도석으로 환경부터 잴 테니까.”

두 사람은 관리실을 나와 중앙 복도의 어둠 속으로 발을 디뎠다.


복도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

3번 사육실 앞을 지날 때 뿔토끼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조용히 은버들 껍질을 갉아먹고 있었다. 검은 귀끝 개체가 발소리에 귀를 세웠으나 위협적인 기색은 없었다. 분리된 공간과 규칙적인 급이가 안정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4번 사육실 구역으로 들어서자 천장의 결계등이 드문드문 꺼져 있었다. 습한 흙냄새 대신 서늘한 냉기가 바닥을 타고 흘렀다.

“온도가 이상해.”

리아가 들고 있던 청색 온도석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열 걸음 들어왔는데 벌써 삼 도나 떨어졌어. 사육장에 냉기 계열 결계가 설치되어 있다는 기록은 없었는데.”

한결은 복도 좌우의 철창을 살폈다.

4번 사육실 안쪽에는 거대한 바위멧돼지 한 마리가 쓰러지듯 누워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한결 일행을 보고도 돌진하지 않았다. 녀석의 머리는 복도 쪽이 아니라 사육실 가장 안쪽의 굳은 벽을 향해 있었다.

마치 벽 너머에서 불어오는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한 기이한 자세였다.

6번 사육실의 갈퀴살쾡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빛 털을 곤두세우는 대신 철창 구석에 웅크린 채 귀를 바짝 눕히고 있었다. 압도적인 상위 포식자의 기척 앞에서 본능적으로 숨을 죽인 야생의 복종 반응이었다.

쿵. 쿵. 쿵.

벽면을 타고 흐르는 고동이 점점 또렷해졌다.

한결은 걸음을 멈추고 복도 벽에 조용히 손을 얹었다. 차가운 화강암 표면 아래로 공명 청진의 감각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손끝을 타고 드는 마력의 파동에 숨이 턱 막혔다.

‘이건 기계 장치의 떨림이 아니야.’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의 마핵이 뛰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어떤 위험생물의 박동과도 달랐다. 뿔토끼의 얕고 빠른 맥박도 바위멧돼지의 거친 마력도 아니었다.

심해에서 거대한 해류가 밀려오듯 느리고 웅장했다.

마력을 들이쉬는 데 수십 초가 걸렸고 숨을 내쉴 때마다 배면 마력관을 타고 순수한 냉기가 번져 나갔다. 주변 마력을 빨아들여 순환시키는 완벽한 생태적 호흡이었다.

쇄골의 흉터가 타는 듯이 달아올랐다. 북부 국경의 숲에서 스쳐 지나갔던 까마득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한결! 멈춰!”

리아가 다급하게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너 안색이 왜 그래? 입술이 파랗게 질렸잖아!”

한결은 벽에서 손을 떼며 비틀거렸다. 숨을 몰아쉬자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괜찮습니다. 벽 뒤의 생명이 마력을 들이마시고 있습니다.”

“생명이라니? 10번 사육실은 폐쇄된 곳이야. 아무것도 살 수 없다고 장부에 적혀 있었잖아!”

리아가 의문을 던진 바로 그 순간 뒤쪽 계단에서 거친 군화 소리와 함께 쇳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거기서 멈춰라!”

어둠 속에서 푸른 결계빛을 뿜으며 나타난 이는 카이 렌하르트였다.

평상복 위에 경량 갑주를 걸친 그는 결계검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카이의 검집 끝에 박힌 감지석이 새파란 빛을 뿜으며 빠르게 점멸하고 있었다.

“카이? 네가 왜 여기 있어?”

리아가 묻자 카이가 굳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훈련 일정 변경 공문을 접수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외벽 감시 초소의 계측기가 한계치를 가리켰다.”

카이의 시선이 복도 벽면을 타고 흐르는 서리 줄기를 꿰뚫었다.

“심층부에서 미등록 고밀도 마력 파동이 감지되었다. 결계검의 감지석이 공명하고 있어.”

카이는 허리에서 붉은 신호탄을 꺼내 들었다.

“인가되지 않은 고위험 마력원은 아카데미 안전 규정 제4조에 따라 비상사태로 간주한다. 지금 당장 기사단 진압대를 호출해야 한다.”

“안 됩니다!”

한결이 카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진압대를 부르면 사육장의 유예는 즉시 취소됩니다. 기사단이 들이닥치면 남은 마수들은 조사도 없이 전원 처분될 겁니다.”

“하지만 저 안쪽에서 폭주라도 일어난다면 학생 전체가 위험해진다. 규율을 어길 수는 없다.”

카이의 단호한 목소리에 한결은 물러서지 않고 그의 검 손잡이를 가리켰다.

“카이 씨의 결계검을 보십시오. 감지석이 무슨 색으로 빛나고 있습니까?”

카이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결계검의 감지석은 살기나 폭주를 감지하면 적색으로 타오른다. 하지만 지금 감지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맑은 청백색이었다.

“적색 경보가 아닙니다. 살의도 폭주도 없습니다.”

한결이 단호하게 말했다.

“4번과 6번 사육실을 보십시오. 마수들이 흥분해서 날뛰고 있습니까? 벽 너머의 마력은 파괴가 아니라 불안정한 마력을 흡수해 가라앉히고 있습니다.”

리아도 힘을 보탰다.

“냄새 흡착지에도 독성이나 흥분제 반응은 없어. 온도만 떨어졌을 뿐 완전히 정제된 순수 마력이야.”

카이는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복도 안쪽을 응시했다. 규율과 명확한 생태적 증거가 맞부딪쳤다.

“……이곳은 10번 구역이다.”

카이가 낮게 읊조렸다.

“형이 생전에 남긴 순찰 일지에서 본 적이 있다. 제7사육장의 열 번째 방은 결코 열어서는 안 되는 장소라고 적혀 있었다.”

“카이 씨의 형님이요?”

한결이 묻자 카이는 입술을 깨물며 신호탄을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십 분이다. 그 이상은 지체할 수 없다. 폭주의 징후가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나는 즉시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이다.”

“충분합니다. 확인만 하고 오겠습니다.”

한결은 카이의 양해를 얻어내고 곧장 복도 끝을 향해 달렸다.


복도의 끝은 거대한 아치형 석문으로 막혀 있었다.

석문 위에는 식별하기 힘든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고 앞에는 육중한 무쇠 차단문이 버티고 있었다.

차단문 표면에는 쇠사슬이 감겨 있었고 빗장 중앙에는 묵직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배면 마력관의 끝자락이 차단문의 경첩 부근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결이 문앞 세 걸음 안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쿵—!

갑작스럽게 울린 거대한 박동이 한결의 가슴을 직격했다.

“큭……!”

공명 청진의 감각망을 타고 상상을 초월하는 마핵의 파동이 쏟아져 들어왔다.

머릿속에서 날카로운 이명이 터져 나왔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거리며 발밑의 감각이 사라졌다. 감각 과부하였다. 마수의 상태를 읽는 공명 청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서는 방대한 마력의 격류였다.

“한결!”

뒤따라오던 리아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물러서! 마력 압력이 너무 높아!”

카이도 결계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뛰어나왔다.

“물러나라! 차단문을 결계로 봉쇄하겠다!”

“오지 마십시오!”

한결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손을 뻗어 두 사람을 제지했다.

코끝에서 붉은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려 차가운 바닥에 떨어졌다. 시야가 빙글빙글 돌고 심장이 찢어질 듯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한결은 도망치지 않았다.

상대가 공격해서 생긴 고통이 아니었다. 너무나 크고 깊은 생명의 박동을 한순간에 억지로 받아들이려 했기에 감각이 충돌한 것이었다.

‘제어하려 하지 마라.’

한결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변경 보호소에서 처음으로 거대 마수를 마주했을 때처럼 감각의 벽을 허물었다.

상대를 억누르거나 분석하려 들지 않고 자신의 호흡을 늦췄다.

하나. 둘. 셋.

숨을 깊게 들이쉬며 문 너머에서 울려오는 거대한 박동의 리듬에 자신의 심장박동을 맞추어 나갔다.

쿵…… 쿵…… 쿵…….

거칠게 날뛰던 마력의 파도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머리를 쪼개는 듯하던 이명이 서서히 물러나고 맑고 고요한 박동만이 귓가에 남았다. 쇄골의 흉터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가 부드러운 온기로 바뀌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어둠 속에 홀로 갇혀 온기를 갈구하는 아주 여리고 순수한 부름이었다.

“……살아 있습니다.”

한결이 입술의 피를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이 문 너머에 누군가 살아 있습니다.”

한결은 주머니에서 번호 없는 흑철 열쇠를 꺼냈다. 손을 뻗어 차단문 빗장 중앙의 거친 자물쇠 구멍을 더듬었다.

흑철 열쇠를 구멍에 밀어 넣자 부드럽게 틈새로 맞물려 들어갔다.

달칵.

내부의 무거운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적막한 지하 복도에 울려 퍼졌다.

한결은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차단문 틈새로 서리처럼 하얗고 은은한 마력의 빛이 실오라기처럼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닫혀 있던 비밀의 문이 천천히 열리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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