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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위험생물 사육사7화

아카데미의 위험생물 사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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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유예의 조건

아침 햇살이 깨진 천장 유리 틈으로 비쳐 들며 제7사육장 복도의 흙먼지를 비췄다.

관리실 탁자 위에는 밤새 정리한 세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한결이 쓴 행동 관찰표, 리아의 투약 일지, 그리고 카이가 날인한 감시석 확인서였다.

한결은 깃펜을 쥐고 백지 한 장을 새로 펼쳤다.

정오까지 셀레나 교수에게 제출해야 할 서류는 단순한 관찰 일지가 아니었다. 다른 실습생이 들어와도 사고 없이 위험생물을 다룰 수 있도록 규격화한 ‘개체별 관리 원칙’이었다.

“일단 마핵의 박동 리듬을 기준으로 적어 볼까 합니다.”

한결의 말에 맞은편에서 시약병을 정리하던 리아가 손을 내저었다.

“안 돼. 원칙은 너 없는 사육장에서도 작동해야 해. 조련학과 실습생이든 기사단 경비병이든 보고 따라 할 수 있어야 하잖아. 네 공명 청진을 남들에게 떼어 줄 수는 없으니까.”

한결은 깃펜을 내려다보았다. 리아의 지적은 정확했다. 변경 보호소에서는 감각만으로 충분했으나 이곳은 규율과 평가로 증명해야 하는 아카데미였다.

“알겠습니다. 감각에 의존하는 표현은 전부 빼겠습니다.”

한결은 양피지 상단에 단정한 글씨로 제목을 적었다.

‘제7사육장 3번 사육실 위험생물(뿔토끼 4개체) 안전 관리 원칙.’

그는 지난밤 입증했던 네 가지 핵심 원칙을 차례로 정리했다.

첫째. 먹이는 개체 수에 맞춰 네 구역으로 나누고 시야 차단 칸막이를 둔 채 순차 공급한다. 단일 급이통에 사료를 모아 주면 서열 싸움과 영역 침범이 발생한다.

둘째. 자극 발생 시 선제 제압을 금지하고 후퇴선 확인을 우선한다. 개체가 바닥 안전선 안으로 물러서는지 관찰하고 선을 넘어 돌진할 때만 물리적 차단을 시행한다.

셋째. 시설 이상 진동 발생 시 개체 공격으로 오인하지 말고 결계석과 배관 상태를 우선 점검한다.

넷째. 이상 징후는 분변 점도, 호흡수, 귀의 각도 등 외부 관찰 지표를 종합해 판정한다.

“여기에 먹이 종류도 못 박자. 변질 사료나 인공 첨가물은 전면 금지. 회복기에는 연한 은버들 껍질과 물만 준다.”

리아의 조언까지 덧붙이자 한 장의 원칙이 완성되었다. 모호한 직관 대신 명확한 행동 지침이 채워졌다.

그 순간 철컥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기사복을 입은 카이 렌하르트가 들어섰다.


카이는 결계검 손잡이를 쥔 채 탁자 앞으로 다가왔다.

“기사단 감시석의 신호 기록을 확인하러 왔다.”

“추가 경보는 없었습니다. 방금 정리한 관리 원칙입니다. 읽어 보십시오.”

한결이 건넨 양피지를 훑던 카이의 미간이 좁혀졌다.

“후퇴선 관찰 전 제압 금지라. 기사단 교본에는 없는 내용이다. 현장에서는 일 초의 망설임이 인명 피해로 이어진다.”

“사육실 안의 마수는 기습해 온 야생 개체가 아닙니다. 갇힌 상태에서 위협을 느끼고 방어하는 생명입니다.”

한결은 카이의 푸른 눈을 마주 보았다.

“위협을 느끼지 않게 공간을 열어 주면 공격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지난밤에도 카이 씨가 결계검을 뽑지 않고 선 밖으로 물러섰을 때 녀석들은 자기 구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건 네가 곁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카이의 반론에 리아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럼 네가 직접 해 보면 되잖아, 카이. 무기를 찬 기사가 이 원칙대로 다가갔을 때도 공격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매뉴얼이라는 뜻이지.”

카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결계검을 고쳐 매었다.

“좋다. 정오 점검 전에 검증하겠다.”

세 사람은 3번 사육실 앞으로 이동했다. 뿔토끼 네 마리는 각자의 구역에 웅크려 있었다. 검은 귀끝 개체는 온열포 옆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일행을 바라보았다. 복부는 정상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호흡도 일정했다.

한결이 바닥을 가리켰다.

“제가 말하는 순서대로 해 주십시오. 검은 뽑지 마시고 허리춤에 두십시오.”

“지침을 말해라.”

“1단계입니다. 철창에서 세 걸음 떨어진 첫 번째 선에서 멈추십시오. 급격한 움직임 없이 자세를 낮춥니다.”

카이가 군화 소리를 죽이며 다가갔다. 첫 선에 발이 닿자 쇠붙이 냄새를 맡은 얼룩무늬 개체가 뿔을 세웠다.

카이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검 손잡이로 향했다.

“검에 손대지 마십시오.”

한결의 나직한 제지에 카이는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삼 초. 오 초.

얼룩무늬 개체가 코를 벌름거리더니 곤두섰던 뿔을 내렸다. 적대적인 마력이 느껴지지 않자 녀석은 긴장을 풀고 뒷다리를 접었다.

“2단계입니다. 낮은 칸막이 틈새로 준비된 은버들 껍질을 넣으십시오. 눈을 마주치지 말고 손끝만 천천히 움직입니다.”

카이는 은버들 껍질 한 묶음을 철창 아래로 밀어 넣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회색과 갈색 개체가 다가와 껍질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안쪽에 있던 검은 귀끝 개체도 다가와 부드러운 껍질 조각을 코로 툭 친 뒤 자리에 앉아 씹었다.

평온한 갉작거림만이 감돌았다. 충돌은 없었다.

카이는 몸을 일으켜 두 걸음 물러섰다.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번졌다.

“……공격하지 않는군.”

“상대가 규칙을 지키면 마수도 규칙을 지킵니다. 입회 확인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카이는 양피지를 내려다보다가 깃펜을 들어 맨 아랫줄에 서명했다.

‘기사학 1학년 실습생 카이 렌하르트 입회 검증 완료.’

그가 펜을 돌려주는 순간 아카데미 중앙 시계탑에서 정오를 알리는 묵직한 종소리가 울렸다.

딩— 딩— 딩—.

종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더니 단안경을 낀 셀레나 모르트 교수가 걸어 들어왔다.


셀레나는 3번 사육실 앞을 매서운 눈빛으로 훑었다. 네 구역으로 나뉜 칸막이, 안정된 뿔토끼들, 그리고 결계등 아래의 감시석을 차례로 확인했다.

“정오입니다. 지시했던 관리 원칙은 준비되었습니까?”

한결이 양피지를 정중하게 내밀었다.

셀레나는 단안경을 고쳐 쓰며 서류를 정밀하게 검토했다. 시선이 하단에 적힌 리아의 처방과 카이의 서명에 머물렀다.

“사육사의 직관을 완전히 덜어냈군요. 초식 마수의 영역 본능과 후퇴 거리를 이용해 교전을 억제하고 섭식 순서를 통제해 공격성을 분산시킨다. 형식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보고서입니다.”

셀레나는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고작 뿔토끼 네 마리의 소란을 막았다고 해서 사육장의 가치가 입증된다고 생각합니까? 도리안 마르켄 이사를 비롯한 심의위원들은 다음 달 회의에서 제7사육장을 지워버릴 명분만 찾고 있어요.”

리아의 안색이 굳어졌으나 한결은 흔들리지 않았다.

“설득할 수 있습니다. 뿔토끼들이 서로를 찌른 것은 본성이 악해서가 아니라 썩은 사료와 오염된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환경을 바로잡고 안전한 선택지를 주자 녀석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한결은 복도 너머의 어둠을 가리켰다.

“남겨진 다른 위험생물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한다면 다른 마수들 역시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것이 이 사육장이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셀레나의 차가운 눈동자가 한결을 응시했다. 그때 카이가 한 걸음 나섰다.

“방금 본인이 직접 관리 원칙에 따라 실습을 진행했고 무기 없이 방어 공격을 통제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3번 사육실에 대한 즉각 처분 훈련은 명분이 부족하다고 판단합니다.”

리아도 힘을 보탰다.

“소화 회복 경과도 안정적입니다. 사료 오염원 조사가 병행된다면 학술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세 사람의 뜻이 하나로 모였다. 셀레나는 서류철을 덮으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제7사육장의 즉각적인 폐쇄 심의와 기사단 처분 훈련은 공식적으로 유예합니다.”

안도의 숨이 새어 나오는 순간 셀레나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기뻐하긴 이릅니다. 유예 기간은 정확히 한 달입니다. 다음 달 중간 실습 평가일까지가 여러분의 기한입니다.”

셀레나는 붉은 인장이 찍힌 공문을 꺼내 놓았다.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제7사육장에 남겨진 개체 중 공식 폐기 처분 대상으로 분류된 위험생물 한 종을 선택하세요. 그리고 한 달 안에 그 개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보전할 수 있다는 재현 가능한 실습 성과 보고서를 완성해 이사회에 제출하십시오.”

그녀의 시선이 세 사람을 훑었다.

“실패한다면 사육장은 즉시 영구 폐쇄되고 남은 개체 전원은 처분 절차를 밟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폐기 판정을 받은 흉포한 마수를 한 달 안에 순치하고 보전법을 증명해야 하는 가혹한 과제였다. 그러나 한결에게는 소중한 기회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한결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셀레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묵직한 쇠붙이 뭉치를 꺼냈다. 청동과 무쇠 열쇠 수십 개가 꿰어진 낡은 열쇠고리였다.

“제7사육장의 임시 관리 권한을 인계합니다. 이제부터 사육장의 청소와 개체 관리 책임은 전적으로 당신들에게 있습니다.”

셀레나는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돌아보지 않은 채 덧붙였다.

“명심하세요. 열쇠를 쥐었다고 해서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결계석과 배면 마력관의 보수 흔적은 정식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절대로 건드리지 마세요. 닫혀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셀레나가 떠나자 복도에는 세 사람만이 남았다.

“하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리아가 탁자에 주저앉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달이라니 빡빡하지만 그래도 당장 쫓겨나는 건 면했어. 카이 너도 고마워. 네 서명이 결정적이었어.”

카이는 결계검을 정돈하며 답했다.

“사실을 기록했을 뿐이다. 다음 주 처분 모의 훈련은 관찰 실습으로 변경 보고하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다음 대상이 뿔토끼보다 위험한 마수라면 기사단은 언제든 규율대로 칼을 뽑을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카이가 떠난 뒤 한결은 관리 일지에 오늘의 결정을 적었다.

‘제7사육장 폐쇄 심의 한 달 유예. 조건: 폐기 예정 위험생물 1종에 대한 공식 보전·관리 성과 입증.’

기록을 마친 한결은 손바닥 위의 열쇠 뭉치를 내려다보았다. 사육실 번호가 새겨진 황동 열쇠들 사이로 번호가 깎여 나간 낡고 묵직한 흑철 열쇠 하나가 섞여 있었다.

‘이 열쇠는 어디를 여는 걸까.’

의문을 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우웅—

발밑 바닥을 타고 미세한 진동이 올라왔다. 3번 사육실 벽 뒤쪽, 결계석과 배면 마력관이 지나는 깊은 통로 너머 어둠 속이었다.

한결은 숨을 멈추고 공명 청진의 감각을 밀어 넣었다.

쿵. 쿵. 쿵.

뿔토끼의 얕은 박동도 시설 진동도 아니었다. 굳게 닫힌 열 번째 사육실 너머 벽 속에서 들려오는 거대하고 둔탁한 생명의 고동이었다. 마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숨을 고르는 듯한 기이한 맥박이었다.

왼쪽 쇄골에 새겨진 오래된 흰 흉터가 옷자락 밑에서 희미하게 달아올랐다.

“한결? 왜 그래?”

리아가 다가오는 소리에 한결은 손으로 쇄골을 가리며 사육장 안쪽의 어둠을 응시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동은 잦아들었으나 손끝의 전율은 가시지 않았다.

한 달의 시간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육장의 비밀. 한결은 열쇠 뭉치를 단단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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