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위험생물 사육사

6화: 첫 밤의 안전선
결계석 안쪽에서 울린 진동이 한결의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짧게 한 번 울린 뒤 두 번 길게 멎었다. 이어서 벽 너머 어딘가에서 낮은 응답이 돌아왔다.
한결은 본능적으로 철창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안쪽을 열어 보겠습니다.”
리아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지금 열면 네 개체가 다시 긴장해. 먼저 열지 않고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해.”
한결은 결계석의 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는 가죽 가방에서 얇은 온도석과 냄새 흡착지를 꺼냈다. 한결은 철창 앞 바닥에 네 구역을 표시했다. 은버들 껍질은 같은 길이로 나누고 물그릇은 철창에서 한 뼘씩 떨어뜨렸다. 칸막이는 서로의 모습과 냄새가 닿되 뿔이 곧장 맞부딪힐 수 없는 높이로 조정했다.
검은 귀끝 개체의 회복 칸에는 가장 부드러운 껍질과 온열포를 놓았다. 녀석은 한결의 손을 잠깐 냄새 맡았지만 곧 온열포 옆으로 몸을 돌렸다.
“섭식량과 배설 상태는 내가 적을게. 너는 발자국과 머리 방향을 기록해. 금속 냄새가 퍼진 시각도 따로 표시하고.”
리아가 관찰표를 펼쳤다.
“결계석은?”
“온도와 냄새만 재. 손대지 마.”
한결은 불만을 삼키며 결계석에서 두 걸음 물러섰다. 공명 청진을 넓히면 안쪽 반응을 읽을 수 있었지만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감각이 아니라 섞이지 않는 기록이었다.
한결은 사육실 안의 네 마리에서 올라오는 박동을 하나씩 확인했다. 얼룩무늬는 일정했고 회색 개체는 물을 두 번 핥았다. 갈색 개체는 은버들 껍질을 조금씩 씹었다. 검은 귀끝의 박동은 느렸지만 어제보다 고른 편이었다.
그때 결계석에서 다시 진동이 울렸다.
푸른 감시석이 한 번 깜빡였다. 네 마리의 귀가 동시에 뒤로 젖혀졌지만 누구도 다른 개체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검은 귀끝만이 빈 급이 구역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결은 그 방향의 바닥을 살폈다. 사료통이 있던 자리에는 쓸어 낸 흔적만 남아 있었다. 금속성 잔향은 바닥보다 벽 쪽에서 진했다.
“먹이를 찾는 게 아닙니다. 냄새의 시작점을 찾는 것 같습니다.”
리아가 흡착지를 결계석 가까이 옮겼다. 종이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료통보다 벽 안쪽에서 강해.”
한결은 결계석에 손을 대려다가 멈췄다. 검은 귀끝이 빈 급이 구역을 두 번 밟고 돌아왔다.
“지금은 열지 않겠습니다. 개체 반응과 시설 반응을 따로 적겠습니다.”
리아가 피식 웃었다.
“기록이 너를 이긴 건 처음 보네.”
다음 진동은 십여 분 뒤에 왔다. 감시석은 울리지 않았다. 벽 안쪽 응답과 뿔토끼들의 박동 간격도 달랐다.
한결은 관찰표에 적었다.
‘결계석 진동은 개체의 경계 반응보다 먼저 시작됨. 같은 금속성 잔향이나 직접 원인으로 단정할 수 없음.’
자정이 가까워지자 북쪽 외벽의 느슨한 철판이 바람에 흔들렸다.
끼익.
검은 귀끝과 얼룩무늬가 동시에 몸을 세웠다. 두 개체가 같은 방향으로 한 발 다가섰다.
“리아. 급이 위치를 바꿔야 합니다.”
“지금 바꾸면 더 자극하지 않을까?”
“소리와 냄새가 한곳에 겹쳤습니다. 그대로 두면 돌진이 나옵니다.”
한결은 칸막이의 낮은 부분을 한 칸 옮겼다. 시야는 남겨 두되 빈 급이 구역으로 곧장 달릴 통로를 막았다. 리아는 은버들 껍질을 네 묶음으로 나눠 순서대로 밀어 넣었다.
얼룩무늬에게 먼저 한 묶음이 들어갔다. 회색 개체에게 두 번째 묶음이 갔다. 갈색 개체가 먹이를 받는 동안 검은 귀끝의 회복 칸에는 따뜻한 물에 적신 껍질이 놓였다.
검은 귀끝은 벽을 향해 있던 몸을 돌렸다. 다른 개체들의 움직임을 보면서도 자기 칸을 벗어나지 않았다.
“먹이가 동시에 들어오면 영역이 겹치고 순서가 생기면 각자 자기 자리를 기억하는군요.”
리아가 관찰표에 내용을 적었다.
한결은 빈 사료통을 복도 밖으로 옮겼다. 통 바닥의 녹슨 나사 구멍에서 가루가 떨어졌다. 그는 종이에 가루를 털어 담고 채취 위치와 시각을 기록했다.
“이제 잔향을 만드는 자극원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벽에서는 계속 냄새가 나.”
“그래서 개체에게 남은 냄새와 시설에서 나오는 냄새를 따로 적는 겁니다.”
새벽 한 시가 지나자 뿔토끼 네 마리는 각자의 구역에서 잠들기 시작했다. 검은 귀끝은 온열포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다른 세 마리도 서로의 모습이 보이는 거리에서 눈을 감았다.
한결이 어깨의 힘을 풀려는 순간 감시석이 낮게 울렸다.
푸른 빛이 두 번 점멸했다.
다친 개체는 없었다. 칸막이도 넘어지지 않았다. 검은 귀끝의 호흡은 오히려 일정했다.
한결은 벽을 짚지 않고 공명 청진을 열었다. 3번 사육실의 결계석 안쪽에서 짧은 진동이 지나갔다. 진동은 철창 아래를 타고 감시석까지 이어졌다.
“개체가 아니라 시설이 울린 겁니다.”
리아가 감시석을 내려다보았다.
“감시석이 시설 진동에도 반응한다는 건 몰랐어.”
“카이 씨도 모를 겁니다. 신호를 보냈으니 확인하러 올 겁니다.”
카이는 새벽 두 시가 조금 지난 뒤 제7사육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외투를 걸친 채 감시석부터 확인했다. 한결이 문을 열어 주자 결계검에 손을 대지 않고 철창 안을 살폈다.
“경보가 두 번 발생했다. 공격 개체를 격리하겠다.”
“격리할 개체는 없습니다.”
“경보가 울렸다는 사실이 위험을 뜻한다.”
한결은 관찰표를 내밀었다.
“경보 직후 네 마리 모두 후퇴선 안으로 물러났고 뿔을 세운 개체는 없었습니다. 발자국과 섭식량도 따로 기록했습니다.”
리아가 치료 기록을 펼쳤다.
“검은 귀끝은 경보 직전까지 은버들 껍질을 먹었어. 배설도 악화되지 않았고 체온은 어제보다 올랐어.”
카이는 철창 앞에 무릎을 굽혔다. 검은 귀끝이 카이를 보며 한 걸음 물러났지만 온열포 옆에서 멈췄다.
한결은 복도에 흰 분필로 선을 그었다.
“이 선이 후퇴선입니다. 자극이 생기면 여기까지 물러나는지 먼저 확인합니다. 선을 넘을 때만 격리 절차를 시작합니다.”
“위험도를 선 하나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영역 배치와 급이 순서와 자극 기록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한결은 빈 접시에 금속 조각을 넣지 않은 채 복도에 놓았다. 리아는 결계석 옆 벽에서 냄새 흡착지를 꺼내 접시 옆에 두었다.
“개체에게 금속 조각을 직접 넣지 않고 시설 냄새만 확인하겠습니다.”
카이가 결계 범위를 낮게 펼쳤다. 푸른 선이 바닥의 안전선을 따라 이어졌다.
흡착지가 접시 가까이 다가가자 네 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얼룩무늬가 한 발 다가갔지만 멈췄다. 검은 귀끝은 자기 칸 뒤쪽으로 물러났다.
감시석이 울렸다.
그러나 뿔토끼들은 서로를 향하지 않았다.
카이의 손이 결계검 손잡이에서 떨어졌다.
“경보는 냄새가 아니라 진동을 읽는군.”
리아는 결계석 아래 벽을 비췄다. 모르타르가 다른 곳보다 새로 발라져 있었고 틈 사이로 검은 금속 가루가 보였다.
카이가 물었다.
“누가 보수했는지 기록은?”
한결은 시설 장부를 펼쳤다. 3번 사육실 결계석 항목에는 반년 전 점검 표시만 있었고 최근 보수 기록은 비어 있었다.
“공식 기록에는 없습니다. 최근 보수 흔적 추정. 작업자와 시각 미확인으로 적겠습니다.”
“너는 끝까지 모른다고 적는군.”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면 다음 판단이 틀어집니다.”
카이는 감시석을 결계등 아래에 내려놓았다.
“이번 신호는 개체 공격으로 보고하지 않겠다. 시설 진동에 대한 추가 관찰을 요청한다.”
한결은 처음으로 카이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점검 보고서가 통과된 뒤에 받아라.”
동이 트기 직전 리아는 마지막 관찰표를 넘겼다.
뿔토끼 네 마리는 모두 밤을 넘겼다. 세 마리는 각자 비슷한 양의 은버들 껍질을 먹었고 검은 귀끝은 소량의 껍질과 물을 섭취했다. 배설 상태도 악화되지 않았다.
한결은 네 영역의 배치를 종이에 옮겼다. 시야는 열어 두고 통로는 막았다. 급이는 동시에 하지 않았고 빈 사료통과 금속 조각은 바깥으로 치웠다.
셀레나 모르트가 제7사육장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셀레나는 감시석과 벽의 새 모르타르를 차례로 보았다. 카이는 자세를 바로 세웠고 리아는 약초 가방을 정리했다.
“밤새 사고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왜 없었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한결은 관찰표와 영역도를 내밀었다.
“공동 급이 지점을 없애고 네 영역을 만들었습니다. 냄새와 소리를 순서대로 넣었습니다. 금속성 잔향이 생겼을 때는 개체의 박동과 시설의 진동을 따로 기록했습니다.”
셀레나는 표를 훑었다. 검은 귀끝의 섭식량 옆에는 리아의 서명이 있었고 경보 시각 옆에는 카이의 확인 표시가 있었다.
“세 사람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록했군요.”
“이번 신호는 개체 공격이 아니라 결계석에서 전달된 시설 진동으로 판단합니다.” 카이가 말했다.
셀레나는 단안경을 벗고 벽의 틈을 살폈다.
“성분은 아직 모릅니다.” 리아가 말했다. “채취에는 별도 허가가 필요합니다.”
“좋습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적은 점은 통과시키죠.”
셀레나는 한결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밤의 기록은 폐쇄 심의 자료에 포함하겠습니다. 다만 처분 절차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한결은 영역도를 내려다보았다. 밤새 지켜 낸 평온도 기록이 없으면 운 좋은 하루로 끝난다.
“그럼 유예가 끝난 겁니까?” 카이가 물었다.
“아닙니다. 판단할 자료가 생긴 겁니다. 내일 정오까지 개체별 관리 원칙을 한 장으로 정리하세요. 네가 사육장을 지킬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셀레나는 관리실 쪽으로 돌아섰다.
“관리 원칙을 만들 때 결계석 뒤의 보수 흔적은 건드리지 마세요. 학생의 호기심으로 열 수 있는 틈이 아닙니다.”
한결은 벽 안쪽에서 아주 약한 진동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도 뿔토끼 네 마리의 박동과 겹치지 않았다.
그는 기록지 아래 빈칸에 적었다.
‘내일 정오까지 개체별 관리 원칙 제출. 결계석 뒤의 보수 흔적은 정식 허가 전까지 보류.’
리아가 옆에서 물었다.
“네가 정한다면 뭘 먼저 할 건데?”
한결은 네 개의 분리된 영역과 아직 닫히지 않은 벽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이 들어와도 같은 순서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