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위험생물 사육사

9화: 흰 비늘의 알
한결이 열쇠를 한 번 더 돌리자 빗장이 안쪽으로 밀렸다.
무쇠 차단문이 손바닥 너비만큼 벌어졌다. 은빛을 머금은 냉기가 발목을 스치고 복도의 결계등이 잠시 흐려졌다.
한결은 문을 더 밀기 전에 손을 멈췄다. 귀 안쪽에는 아직 가는 이명이 남아 있었다. 방금 겪은 과부하를 다시 부를 생각은 없었다.
“얼마 남았습니까?”
“일곱 분.”
카이가 주머니의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검은 자물쇠에 열쇠를 꽂은 순간부터 시간을 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문을 연 시각과 이유는 기록한다. 안에서 폭주 징후가 생기면 내 지시에 따라 바로 물러나.”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가 그 앞을 비집고 들어가려다 피 묻은 그의 코끝을 보고 멈췄다.
“너부터 상태 확인. 손가락 세 개 보이지?”
“세 개요.”
“좋아. 또 벽에 손대고 눈 풀리면 끌고 나올 거야.”
리아는 약재 가방에서 작은 천을 꺼내 한결에게 건넸다. 한결이 코끝을 닦는 사이 카이는 문을 몸으로 받쳤다. 경첩에 닿은 배면 마력관이 낮게 떨렸다.
“문이 저절로 닫힐 수도 있다.”
카이는 차단문 바로 앞 돌바닥에 칼집 끝으로 짧은 선을 그었다.
“이 선을 넘는 사람은 둘뿐이다. 나는 출구를 지킨다. 돌아오라고 하면 즉시 돌아와.”
한결과 리아가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문턱을 넘자 발소리가 짧게 끊겼다. 바닥 전체에 옅은 서리가 깔려 있었고 두 사람의 발자국만 검은 돌을 드러냈다. 사람을 가두는 철창도 사육 기록을 꽂는 표찰도 보이지 않았다.
봉인실에는 우리가 없었다. 천장의 낡은 룬등 세 개가 천천히 밝아지면서 벽에 박힌 배관과 낮은 석대를 비췄다. 벽을 따라 돌아온 관들은 석대 밑에서 한데 모였다. 바닥은 깨끗했지만 사람이 오간 흔적은 없었다. 오래 닫혀 있던 방 특유의 마른 먼지 냄새가 차가운 공기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리아가 문 안쪽과 바깥쪽에 각각 온도석을 내려놓았다. 안쪽 돌은 순식간에 푸른 기를 짙게 띠었다.
“열기가 빠져나가는 게 아니야. 문을 열자 바깥 공기가 안으로 빨려 들어가.”
한결도 발치에서 느꼈다. 차가운 기운이 밖으로 새는 동안 얇은 공기 한 줄기는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이 방은 닫혀 있을 때와 문이 열린 지금의 조건이 달랐다.
“빨리 확인하고 닫아야겠습니다.”
그가 석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흰 서리가 느리게 걷혔다.
석대 위의 윤곽을 본 한결은 발을 멈췄다. 복도를 가득 채운 듯했던 고동이 한 점에서 울리고 있었다.
석대 위에는 둥근 것이 놓여 있었다.
한결의 가슴께까지 닿는 높이였다. 바위라고 생각하기에는 표면의 흰 무늬가 너무 규칙적이었다. 작은 비늘들이 서로의 끝을 덮으며 단단한 곡면을 이루고 있었다. 룬등 빛을 받은 비늘마다 달빛을 얇게 바른 듯한 윤기가 났다.
“알……?”
리아가 입을 벌린 채 걸음을 멈췄다.
한결도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흰 비늘은 위로 갈수록 촘촘해졌다. 가장 낮은 줄 몇 장은 오래된 서리에 가려졌지만 껍질의 곡면에는 깨진 틈이 없었다. 한결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가 주먹을 쥐고 내렸다.
벽 너머에서 들은 거대한 고동이 이 작은 공간 안에서 또렷해졌다. 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컸다. 하지만 매끈한 위쪽과 석대에 닿은 넓은 밑면은 분명 껍질의 형태였다.
석대 둘레에는 돌로 만든 낮은 받침 네 개가 있었다. 위에 덮개나 사슬을 걸었던 자국은 없었다. 받침은 알을 조이기보다 기울어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었다.
“미등록 개체다.”
문가에서 카이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그는 결계검을 뽑지 않았지만 손은 손잡이에 얹혀 있었다.
“등급 표식도 없다. 이 크기의 알이라면 부모 개체의 위험을 가늠할 수 없어.”
“그렇습니다.”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보겠습니다.”
리아가 냄새 흡착지를 석대 가장자리 위에 펼쳤다. 종이가 회색으로 물들지 않았다.
“독성 기화물은 없어. 다만 오른쪽 바닥이 왼쪽보다 훨씬 차가워.”
한결은 바닥에 웅크렸다. 석대 아래의 마력관은 네 가닥으로 갈라져 있었다. 세 가닥 아래에는 얇은 서리가 고르게 앉았고 네 번째 아래에는 서리가 두껍게 뭉쳐 있었다. 부러지거나 새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알에서 세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숨을 고르게 했다. 공명 청진을 깊이 밀어 넣지 않았다. 귀와 손끝에 이미 닿는 박동의 간격만 세었다.
쿵. 긴 쉼. 쿵.
거대한 박동 사이에 가느다란 떨림이 끼어 있었다. 마치 두꺼운 껍질 안에서 아주 작은 것이 방향을 바꾸는 듯했다. 무엇인지 단정할 수는 없었다.
“살아 있습니다.”
한결이 낮게 말했다.
카이의 시선이 알로 돌아갔다.
“마핵의 잔류 진동일 가능성은?”
“문을 열 때 간격이 바뀌었습니다. 같은 주기로 돌아오고 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맞습니다.”
한결은 부정하지 않았다. 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안전하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리아가 온도석을 들어 보였다. 오른쪽 석대 아래쪽에서 청색이 유난히 진했다.
“문을 연 뒤 오른쪽 온도만 더 떨어졌어. 공기 통로가 막혀 있거나 관의 순환이 다른 거야. 어느 쪽인지는 아직 몰라.”
석대 옆 좁은 홈에는 오래된 물기가 하얗게 얼어 있었다. 홈의 끝은 알의 밑면으로 이어졌다. 손을 대면 쉽게 깨질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연결되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한결은 주머니에서 흑철 열쇠를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문을 열게 해 준 열쇠가 이 방까지 손댈 권한을 준 것은 아니었다.
“다섯 분.”
카이가 말했다.
리아는 한결의 손목을 붙잡아 자기 앞에 들었다. 손가락 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공명 청진은 여기까지. 확인하려면 내가 잴 수 있는 것만 재.”
“알겠습니다.”
한결은 고개를 숙였다. 혼자 다 듣겠다고 버텼다면 문턱에서 또 주저앉았을 것이다.
리아가 얇은 장갑 한 켤레를 꺼냈다.
“표면 온도만. 손을 오래 대지 마. 네 체온이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
리아는 먼저 온도석을 알에 가까운 받침 위에 올렸다. 청색이 고르게 번지다가 오른편에서만 진해졌다. 측정값을 확인한 뒤 그녀는 온도석을 다시 자기 손에 쥐었다.
“접촉은 허용할 수 없다.”
카이가 즉시 말했다.
한결은 움직이지 않고 카이를 돌아보았다.
“껍질을 두드리거나 들어 올리지 않겠습니다. 손끝을 대고 박동의 반응만 확인하겠습니다. 위험하면 바로 물러날게요.”
카이는 차단문과 두 사람 사이 거리를 가늠했다. 검집 끝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두 번 치면 물러나. 대답하지 않으면 내가 데리고 나간다.”
한결은 장갑을 끼고 알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흰 비늘 사이사이에 아주 옅은 결이 있었다.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투명한 선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결은 왼손의 검지와 중지 끝을 가장 바깥 비늘 하나에 가볍게 얹었다.
차가웠다.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손가락 아래에서 묵직한 울림이 한 번 지나갔다. 이어 평소보다 짧은 간격으로 또 한 번.
쿵. 쿵.
한결은 바로 손을 뗐다.
그의 쇄골 흉터가 따끔했다. 벽에 기대 청진했을 때와 달리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한결은 저도 모르게 흐트러진 호흡을 바로잡았다.
“한결?”
“두 번 빨라졌습니다.”
“네가 닿아서?”
“그럴 수도 있고 문이 열린 영향일 수도 있어요.”
리아는 이미 온도석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표면 온도는 거의 그대로야. 네 손을 댄 직후 오른쪽 돌의 냉기만 잠깐 약해졌어. 내가 본 건 거기까지.”
카이는 결계검의 감지석을 확인했다. 청백색이었다. 적색 불꽃은 일어나지 않았다.
알 안쪽의 박동은 조금 뒤 원래 간격으로 돌아갔다. 한결은 다시 손을 뻗지 않았다. 알아낸 것은 살아 있는 반응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석대 오른쪽 아래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얼어붙은 홈 사이로 작은 금속 조각이 떨렸다. 한결이 몸을 낮추자 리아가 팔을 붙잡았다.
“그 홈 깨지 마. 구조가 어딜 잇는지도 모르잖아.”
“네. 기록만 해 둡시다.”
리아는 수첩에 네 갈래 관의 위치와 서리 두께를 간단한 그림으로 옮겼다. 온도가 달랐다는 사실과 통로가 막혔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서로 다른 줄에 적었다.
한결은 손바닥에 남은 냉기를 쥐어 보았다. 살을 베는 독한 냉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안정된 둥지의 온기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시간이다.”
카이의 짧은 선언이 석실에 울렸다.
한결은 알을 다시 보았다. 희고 커다란 껍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안으로 들어온 공기 때문에 표면을 감싼 서리가 조금씩 옮겨 붙고 있었다.
“문을 닫겠습니다.”
한결이 먼저 말했다.
리아가 그를 놀란 듯 보았다.
“괜찮겠어?”
“열어 둔 채로 관찰하면 조건을 더 바꾸게 됩니다. 지금은 옮기지도 고치지도 말아야 해요.”
“더 따뜻한 곳으로 옮기면 나아질지도 모르잖아.”
“어느 온도에서 버텨 왔는지 아직 모르니까요. 알과 이 관이 어떻게 연결됐는지도요.”
리아는 대답 대신 수첩을 닫았다. 한결도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카이는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진압대 호출은 보류한다. 대신 지도교수에게 즉시 보고한다. 내가 확인한 마력 수치와 현장 상태를 적겠다.”
“적색 경보가 아니었다는 것도.”
리아가 덧붙였다.
“독성 기화물도 없었고요. 오른쪽 온도 차이는 원인 미확인이라고 적어 주세요.”
“접촉 뒤 박동이 두 번 가까워졌다는 것도요. 제 손 때문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카이가 짧게 끄덕였다. 한결은 알을 향해 한 걸음 물러섰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 말에 답이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아직 이곳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아무 말 없이 나갈 수는 없었다.
세 사람이 문턱 밖으로 나왔다. 카이는 손을 뻗어 무쇠 차단문을 천천히 밀었다. 얇은 공기 흐름이 끊기고 은빛 안개가 문의 틈 안으로 접혔다.
한결은 바닥에 그어진 선 밖으로 리아를 먼저 보냈다. 자신도 완전히 물러선 다음 카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칵.
한결은 흑철 열쇠로 빗장을 다시 걸었다. 리아가 기록지에 시간을 적었고 카이는 신호탄 대신 서명용 펜을 꺼냈다.
“교수에게 내가 직접 가져가겠다. 너희는 이 앞을 지켜.”
“문은 다시 열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복도 온도와 감지석 색을 확인할게요.”
한결의 말에 카이가 서명한 기록지를 접었다. 리아는 문 앞 돌바닥에 온도석을 남겨 두었다.
카이가 한 걸음 떼자 닫힌 문 너머에서 고동이 울렸다.
쿵.
한결의 왼쪽 쇄골이 한 박자 늦게 뜨거워졌다.
그는 문을 돌아보았다. 방금 닫은 문 너머의 박동과 자신의 흉터가 같은 리듬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열기는 무엇에 대답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