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20화: 세 번째 종 아래의 손
폐쇄 통로의 끝에서 젖은 발자국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의상 보관동의 철문으로 향했고 다른 하나는 벽면의 배수구 아래로 이어졌다. 물방울은 배수구 쪽에서 떨어지고 있었지만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엘레나가 지휘봉을 멈췄다.
"왜?"
"저 물은 발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옷감에 묻은 공명액입니다. 물방울 간격이 일정합니다. 누군가 이동 경로를 만들려고 일부러 뿌렸어요. 진짜 흔적은 철문 안쪽에 있습니다."
하진이 문고리에 손을 대자 차가운 진동이 손목을 타고 올랐다. 철문 너머에서 옷걸이 하나가 아주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흔들림의 간격은 페르가 두드리는 셋째 박과 같았다.
"무음 커튼입니다."
루카스가 보관동의 낡은 도면을 펼쳤다.
"이 안쪽 벽에는 소리를 흡수하는 양털 커튼이 세 겹으로 걸려 있어. 예전에 대형 의상에 마법을 입힐 때 쓰던 공간이야."
"그럼 오히려 편하겠군요. 적도 우리 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하진이 문을 밀었다.
검은 어둠 속에서 수백 벌의 무대 의상이 흔들렸다. 붉은 망토와 은빛 갑주와 낡은 가면이 빽빽한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작은 종 하나가 바람도 없는데 흔들렸다.
딸랑.
종이 울린 순간 통로의 끝에서 검은 선이 번쩍였다. 엘레나가 지휘봉을 들어 올리기도 전에 세 겹의 커튼이 한꺼번에 닫혔다.
"흩어지지 마!"
엘레나의 목소리가 천에 먹혀 사라졌다.
하진의 시야에서 모두가 끊겼다. 발소리도 악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양털 커튼이 모든 진동을 머금은 뒤 반 박자 늦게 다른 위치로 토해 내고 있었다. 적은 그 지연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옷걸이가 한 번 흔들릴 때마다 검은 선이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다. 하진은 그 선을 따라가면 자신이 두 걸음 뒤의 위치로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림자 하나가 오른쪽 통로를 스쳤다.
하진은 쫓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 떨어진 단추를 주워 손가락으로 튕겼다.
딱.
단추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는 사라졌지만 옷감 세 겹이 아주 조금 늦게 떨렸다. 하진은 그 지연을 세었다. 한 박. 반 박. 다시 한 박.
"루카스. 왼쪽에서 세 번째 선반을 밀어요. 엘레나에게 들릴 필요 없습니다."
루카스가 눈을 크게 떴지만 곧 몸을 낮췄다. 선반이 삐걱거리며 밀리자 붉은 망토 사이에서 검은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얇은 금속판 여섯 개가 옷걸이의 흔들림을 받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반사하고 있었다.
그 장치가 반응하며 반대편 커튼을 열었다.
그 틈으로 부상당한 침입자가 뛰쳐나왔다. 한쪽 팔은 피로 젖어 있었고 손에는 검붉은 오염석이 들려 있었다.
"더는 따라오지 마라!"
그가 오염석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무음 공간 전체가 뒤집혔다. 들리지 않던 소리가 한꺼번에 되살아나며 천장 위로 솟았다. 옷걸이와 가면과 갑주가 서로 부딪쳐 거대한 쇳소리를 만들었다. 커튼이 머금고 있던 진동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며 사람들의 방향 감각을 뒤섞었다.
엘레나가 커튼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진!"
"연주하지 마세요!"
하진은 오르간 모듈의 건반을 열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을 두 번 두드렸다. 첫 번째는 약박이었다. 두 번째는 그보다 조금 늦었다.
페르가 멀리서 그 신호를 알아듣고 북을 쳤다.
쿵.
비어 있던 박자가 바닥에 고정됐다. 나디아의 첼로가 그 빈틈 아래에 낮은 선을 깔았다. 검은 파동이 선반 사이를 휘돌았지만 더는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역위상 장치는 소리가 아니라 포기한 시간을 먹고 있었다. 하진은 빈 박자를 없애는 대신 한곳에 묶어 장치의 먹이를 끊었다.
"지금입니다."
엘레나의 지휘봉이 바닥을 찍었다. 이반의 바이올린이 짧은 음을 던졌고 클로에의 플루트가 그 음의 끝을 받아 올렸다. 오스카와 에릭의 금관은 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옷감 사이에 갇힌 공기를 압축했다.
침입자의 발밑에서 은빛 고리가 닫혔다.
"움직이지 마!"
마르쿠스가 달려들어 그의 손목을 꺾었다. 오염석이 바닥에 떨어졌다.
침입자는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 손목의 붕대 아래에서 붉은 선이 솟아 목덜미까지 타고 올라갔다.
"살려…… 줘……."
그가 무릎을 꿇었다.
하진이 오염석을 차폐 천으로 덮었다.
"이 사람 몸 안에 신호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끊으면 심장까지 역류해요."
세르반이라는 이름은 그가 지니고 있던 낡은 바이올린 케이스 안쪽에서 확인됐다. 상급 현악 연주자 명부에 남은 이름이었다. 그의 바이올린 꼬리받침에는 검은 실 한 가닥이 감겨 있었다.
"두 보조 공명관에 장치를 설치한 사람이 너냐?"
마르쿠스가 물었다.
세르반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제가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지시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하진은 검은 실을 건드리지 않고 바이올린의 현을 바라보았다. 현 네 개가 서로 다른 박자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멀리서 같은 악기를 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신호를 받는 줄이 아니에요. 되돌려 보내는 줄입니다. 바이올린을 켜면 꼬리받침의 금속판이 잔향을 받아 무대 뒤 예비 배관으로 전송해요."
세르반의 입술이 떨렸다.
"저는 연주만 하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을 해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네가 장치를 설치했지."
엘레나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하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자백보다 역류를 먼저 막아야 합니다."
그는 바이올린을 빼앗지 않았다. 현을 누르는 위치만 손끝으로 가리켰다.
"4악장 종결부의 하강 음형을 한 음씩 끊어 주세요. 끝까지 연주하지 말고 다음 음이 올 자리를 비워 둡니다."
엘레나가 단원들에게 손짓했다. 이반과 클로에가 교대로 짧은 음을 냈다. 하진은 그 사이에 낮은 C를 얹었다. 검은 실이 꿈틀거리며 세르반의 목을 조르던 붉은 선을 조금씩 늦췄다.
세르반이 숨을 토했다.
"무대관리부…… 서기 카델입니다. 비상 출입표와 예비 신호판을 그가 넘겼어요. 저는 지시받은 대로 배관에 장치를 넣었을 뿐입니다."
"카델이 불협화음의 일원인가?"
"모르겠습니다. 그는 늘 세 번째 종이 울린 뒤에 왔습니다. 빈 지휘대 아래에서 종이를 꺼내고 지시를 바꿨죠. 제 바이올린이 그 신호를 무대 뒤로 되돌려 보내는 릴레이였습니다."
하진의 눈이 바이올린 꼬리받침으로 향했다.
그때 현 하나가 저절로 울렸다.
딱.
세르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카델이 장부를 태우고 있어요."
하진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루카스는 세르반을 안정시켜요. 엘레나는 이반과 클로에를 데리고 예비 신호판을 찾습니다. 마르쿠스는 무대 잠금을 열 수 있죠?"
마르쿠스가 공식 인장 원형을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내가 앞장선다."
의상 보관동 안쪽의 좁은 방에서 불길이 솟고 있었다. 카델은 무대 지휘용 장부를 철제 통에 밀어 넣고 있었고 옆에는 붉은 실이 연결된 검은 지휘봉이 놓여 있었다.
"멈춰!"
마르쿠스가 외쳤다.
카델이 지휘봉을 낚아챘다.
"너희는 이미 늦었다. 세 번째 종은 본선 무대에서 울리고 있어."
지휘봉 끝의 역위상 핵이 붉게 빛났다. 보관동의 커튼들이 일제히 닫히며 불길을 가렸다. 카델은 그 틈으로 사라졌다.
루카스가 완충판을 펼쳐 쓰러지는 선반을 막았다. 엘레나는 지휘봉을 바닥에 세 번 찍었다.
탁. 탁. 탁.
커튼 뒤의 옷감이 한 방향으로 흔들렸다.
"오른쪽 아래 통로!"
하진은 지휘봉을 잡지 않고 옷감이 만든 그림자를 따라갔다. 카델이 통로 끝에서 몸을 돌려 역위상 파동을 쏘았다. 소리 없는 충격이 가면과 갑주를 튕겨 냈다.
하진은 첫 음을 내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 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빈틈을 만들었다. 파동은 그 빈틈을 채우려다 스스로 방향을 잃었다.
엘레나가 바닥을 긁어 지휘선을 그었다. 은빛 선이 카델의 발목을 묶었다.
"지금!"
마르쿠스가 달려들어 카델의 어깨를 눌렀다. 검은 지휘봉이 바닥에 떨어졌다.
불길을 피해 루카스가 철제 통을 걷어찼다. 장부가 바닥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불탄 페이지 사이에는 무대관리부 예비 신호판의 인수 기록이 남아 있었다.
<제3종 후 예비 지휘봉 수령자: 카델>
그 아래에는 카델의 약식 서명과 서무계 인장 원형의 파형을 흉내 낸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학생회 인장은 그가 훔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인장 파형을 본선 무대의 예비 신호판에 옮겨 심어 권한을 빌려준 사람이었다.
카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동시에 대음악당 쪽에서 거대한 첫 음이 울렸다.
쿠우우웅!
보관동의 천장이 들썩였다. 본선 무대의 모든 공명판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4악장 시작음에 맞춰 빛나기 시작했다.
시스템 창이 시야를 갈랐다.
[본선 무대 강제 개막 신호 감지]
[4악장 시작음 고정까지: 18초]
[역위상 신호망 완성 조건: 첫 음과 마지막 음의 동시 점유]
카델이 바닥에 엎어진 채 웃었다.
"이제 네가 아무리 좋은 음악을 써도 시작할 수 없어."
하진은 검은 지휘봉을 내려다보았다. 지휘봉 속 핵은 부서지지 않았고 본선 무대 안쪽으로 붉은 선을 계속 뻗고 있었다. 선의 끝은 보관동 벽을 통과해 대음악당의 중앙 지휘대 아래로 이어졌다.
"시작을 막는 게 아닙니다."
하진이 오르간 모듈의 첫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시작을 통제하는 겁니다."
엘레나가 앙상블을 돌아보았다.
"전원 대음악당으로 이동한다! 각자 한 박씩 떨어져도 좋아. 서로의 응답을 놓치지 마!"
루카스는 세르반을 이동 수레에 눕혔다. 나디아가 첼로의 저음으로 수레 바퀴를 밀어 주었고 페르는 통로의 박자를 계속 세었다. 이반과 클로에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짧은 음을 던져 길을 확인했다.
하진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4악장의 첫 음을 일부러 반 박자 늦춰 누를 준비를 했다. 불완전한 시작을 되돌려 본선 무대 안의 신호를 원점으로 보내려는 선택이었다. 성공하면 강제 개막은 무산되지만 실패하면 첫 음과 마지막 음이 동시에 잠긴다. 그 순간 대음악당 전체가 불협의 공명통이 된다.
그러나 대음악당 안쪽에서 세 번째 종이 다시 울렸다.
딸랑.
누군가 이미 본선 무대의 지휘대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