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의 천재 식물학자

14화: 세 번 뜯긴 청월 열매
신목 아래의 물길을 돌린 지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았다.
아카데미 북쪽 외벽 너머에서 말 울음과 쇠바퀴 소리가 터졌다. 구형 연금술 원료 창고의 뒷문을 빠져나오던 수레 한 대가 헌병대의 방패벽 앞에 멈춰 섰다.
수레에는 찌그러진 은빛 통과 시든 덩굴 뭉치가 실려 있었다.
"가을에 쓰고 남은 폐기물입니다. 창고는 넉 달 전부터 비어 있었습니다."
회색 작업복을 입은 창고 관리인이 거듭 말했다. 그는 아직 용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었고 헌병 한 명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
펠릭스가 그의 멱살을 잡으려 하자 로완이 팔을 들어 막았다.
"말보다 이쪽이 먼저입니다."
로완은 수레 위 덩굴 한 줄기를 집어 들었다. 잎은 축 늘어졌지만 잘린 열매자루 끝에서는 아직 맑은 수액이 배어 나왔다.
손가락으로 잎 뒷면을 쓸자 푸른 가루가 묻었다. 검은 병원 포자도 은분도 아니었다. 달빛을 받은 듯 은청색으로 반짝이는 청월 덩굴의 꽃가루였다.
실비아가 가루를 내려다보며 눈썹을 좁혔다.
"청월 덩굴은 초여름에만 꽃이 피어요. 야외에서는 한겨울에 남아 있을 수 없는 꽃가루입니다."
"게다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오늘 새벽까지 꽃이 열려 있었다는 뜻입니다."
관리인의 입술이 굳었다.
"수도에서 묻어 온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 열매자루도 수도에서 방금 잘라 왔겠군요."
로완은 수레 바닥에 떨어진 꽃받침 하나를 집었다. 가장자리의 상처는 짙게 굳지 않았고 손톱으로 누르자 푸른 즙이 번졌다.
에르단이 은분 슬러지 시료가 든 봉인함을 헌병대장에게 내밀었다.
"아카데미 결계 아래의 비밀 도관이 이 창고를 가리키고 있소. 신목에서 빼돌린 물이 실제로 도착했는지 확인해야 하오."
학장의 긴급 수색 인장을 확인한 헌병대장이 손을 들었다. 병사들이 창고 문을 열었지만 안에는 빈 선반과 마른 세척통뿐이었다.
펠릭스가 이를 갈았다.
"벌써 전부 치운 건가."
로완은 선반이 아니라 바닥을 보았다.
판석 틈에 손가락만 한 덩굴손 하나가 나와 있었다. 창문에서는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덩굴손 끝은 밝은 남쪽이 아닌 바닥 틈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는 등불을 끄게 했다.
창고가 어두워지자 판석 아래에서 희미한 청색광이 새어 나왔다. 덩굴손은 그 빛을 향해 갈고리처럼 감겨 있었다.
"식물은 빛이 있는 쪽을 숨기지 못합니다."
한스가 좁은 끌을 판석 가장자리에 넣었다. 돌을 들어 올리자 따뜻하고 눅눅한 공기가 솟구쳤다. 달콤한 열매 향 뒤에 시큼한 뿌리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계단 아래에는 지상 창고보다 넓은 재배실이 숨어 있었다.
푸른 조명 룬 수십 개가 낮은 천장에 박혀 있었고 석조 재배조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재배조마다 청월 덩굴이 얽혀 있었다. 수확이 끝난 덩굴들은 잎이 누렇게 바랜 채 철제 지지대에 매달려 있었다.
중앙 저장조에는 세 갈래 문양이 새겨진 주철관이 꽂혀 있었다.
한스가 숨을 삼켰다.
"신목에서 이어진 관입니다."
"여기는 원료 세척장입니다. 덩굴은 버리기 전에 씻어 놓은 것뿐입니다."
관리인이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로완은 가장 가까운 덩굴의 줄기를 돌려 보았다. 같은 가지에서 뻗은 열매자루 세 개가 모두 잘려 있었다.
맨 아래 절단흔은 검고 단단하게 굳었다. 그 위의 상처는 연갈색 코르크층이 덮였고 가장 위쪽은 아직 푸른 수액이 맺혀 있었다.
세 절단흔 사이의 마디는 비정상적으로 짧았다. 각 마디에는 억지로 뜯어낸 겨울눈 비늘이 마른 껍질처럼 붙어 있었다. 휴면할 눈을 세 차례 깨워 같은 생육기 안에 꽃대를 밀어 올린 흔적이었다.
"세척하려고 꽃눈까지 깨우지는 않습니다."
로완은 줄기 밑동의 흙을 걷었다. 뿌리 끝은 희지 않고 유리처럼 반투명했다. 잔뿌리 표면에는 은빛 결정이 소금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고농도 마나수를 계속 부었습니다. 바깥 물의 농도가 너무 높아지니 뿌리 안의 물이 오히려 빠져나갔고 새 뿌리는 굳어 버렸습니다. 잎을 키울 저장 양분까지 꽃과 열매로 끌어다 썼어요."
실비아가 중앙 저장조의 물을 유리관에 담았다. 수정 감측판이 푸르게 타오르다가 세 갈래 은빛 파문을 만들었다.
그녀는 신목 아래에서 채취한 은분 슬러지 병을 나란히 들었다.
"안식 마나의 결이 같습니다. 파동 간격도 일치해요. 이 물은 수호 신목의 뿌리를 통과한 침출수입니다."
에르단의 지팡이가 돌바닥을 울렸다.
"신목을 썩게 만든 물로 열매를 키웠단 말인가."
청월 열매는 하급 마나 회복 포션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원료였다. 한 해에 한 번만 열매를 맺어 겨울이면 값이 세 배까지 뛰었다.
펠릭스가 세 겹의 절단흔을 보며 낮게 말했다.
"원래 한 번일 수확을 한 생육기 안에 세 번으로 늘린 거야. 그래서 제국 약초 상단이 계절과 상관없이 재고를 풀 수 있었군."
"네 번째 열매는 없었을 겁니다."
로완이 누렇게 뜬 끝잎을 손끝으로 받쳤다.
"뿌리에 남은 힘이 없습니다. 한 번만 더 꽃을 피웠다면 모주까지 죽었겠죠."
관리인이 출구와 중앙 저장조를 번갈아 보았다. 곁을 지키던 헌병이 봉인 시료 쪽으로 몸을 돌린 순간 그의 구두 뒤축이 벽 아래에 숨은 붉은 압력판을 밟았다.
쿵.
철문이 저절로 내려와 계단 입구를 막았다. 천장의 푸른 조명 룬이 붉게 변하며 뜨거운 바람을 뿜었다.
"증거를 없애려는 겁니다!"
헌병 두 명이 관리인을 바닥에 눌렀다. 그러나 이미 석조 재배조에서 허연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스가 물통을 들어 올렸다.
"물을 붓겠습니다!"
"찬물을 한꺼번에 부으면 안 됩니다. 갈라진 뿌리가 전부 터져요."
로완은 가장 가까운 잎을 뒤집었다. 잎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빠르게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뜨거운 바람보다 뿌리 아래의 온도가 더 빨리 오르고 있다는 신호였다.
"에르단님은 건조 룬을 부수지 말고 출력을 한 칸씩 낮춰 주십시오. 실비아 부교수님은 철문 틈의 환기 결계만 여세요."
로완은 한스와 펠릭스에게 젖은 포대를 천장 조명 아래 펼치게 했다. 직접 빛을 가리자 잎 표면에서 오르던 열기가 조금 느려졌다.
그는 중앙 저장조 뒤의 주철관 밸브로 달려갔다. 신목 아래의 바이오 필터를 거친 뒤 이곳으로 오는 물에는 마나가 남아 있지 않아야 했다.
관 끝의 물을 은분 시험지에 떨어뜨리자 빛은 번지지 않았다. 손목 안쪽으로 온도를 확인하니 지하를 지나온 물은 얼음장처럼 차갑지도 않았다.
"한스, 이 물을 빈 세척조에 먼저 받으세요. 손목보다 차가워지면 지상 물과 섞어서 온도를 맞춥니다."
"이 맹물을 쓰는 겁니까?"
"지금은 그게 필요합니다. 뿌리 밖에 쌓인 은분과 마나 염류를 천천히 씻어 내야 해요."
한스가 밸브를 조금 열었다. 미지근한 물이 가장자리 수로를 따라 재배조로 얇게 흘렀다. 로완은 한꺼번에 잠기지 않도록 배수 마개를 절반만 열어 두었다.
회색 물이 첫 재배조 아래에서 빠져나왔다. 두 번째 물은 색이 옅어졌고 세 번째부터는 은빛 거품이 거의 생기지 않았다.
에르단이 지팡이를 천천히 내릴 때마다 붉은 룬도 한 줄씩 어두워졌다. 실비아가 연 환기 틈으로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갔다.
잠시 뒤 안으로 말렸던 청월 덩굴 잎 하나가 느리게 펴졌다.
한스가 검댕 묻은 얼굴로 웃었다.
"살았습니다."
"아직 버틴 겁니다. 회복시켜야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로완은 씻겨 나온 뿌리 가운데 색이 남은 흰 잔뿌리를 가리켰다. 그 위에는 세 차례 결실흔을 품은 줄기가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불탄 장부 대신 생육 과정을 품은 증거가 살아남았다.
헌병대장은 중앙 저장조 물과 뿌리 조직과 신목 은분 슬러지에 같은 사건 번호를 붙였다. 실비아의 감측 수치도 봉인 장부 옆에 기록됐다.
관리인은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였지만 배후의 이름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 식물들은 어디로 옮겨야 가장 오래 보존되겠소?"
"공인 연구실 격리상입니다. 포자와 은분 오염 구획을 나누고 뿌리 상태를 매일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연구실 책임자의 관리 아래 살아 있는 압수물로 봉인하겠소. 열매를 따거나 폐기할 때는 헌병대 입회가 필요하오."
해가 기울 무렵 청월 덩굴 열두 모주가 유리 온실의 격리상에 도착했다.
펠릭스는 세 차례 절단흔이 그려진 증거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이 사실을 공개하면 약초 상단의 청월 열매 재고는 전부 의심받을 거야. 세 번 수확할 수 있다는 것만 알려져도 시장이 뒤집힐 테고."
"죽을 때까지 쥐어짜서 세 번입니다. 그 방법을 그대로 공개하면 다른 재배소도 모주부터 태울 겁니다."
로완은 가장 덜 손상된 덩굴의 마디를 살폈다. 세 번째 열매자루 아래에 콩알만 한 곁눈이 붙어 있었다.
겉은 갈색이었지만 얇은 비늘을 젖히자 안쪽에서 아직 살아 있는 푸른 조직이 드러났다.
"세 번 꽃을 피울 가능성은 남았습니다."
한스가 새 표찰을 들고 다가왔다.
"시험상을 나눌까요?"
"네 구획으로 갑시다. 깨끗한 물 한 구획과 희석한 안식 마나수 두 구획. 마지막은 회복 기간을 길게 둡니다. 뿌리가 다시 희어지기 전에는 어떤 꽃눈도 깨우지 않아요."
펠릭스가 물었다.
"얼마나 묽게 할 생각이지?"
"먼저 사십 분의 일과 팔십 분의 일로 시작합니다. 수확 횟수보다 모주가 다음 해에도 살아 있는지가 기준입니다."
한스가 첫 표찰을 격리상 앞에 꽂았다.
청월 덩굴 연 3회 결실 시험.
연구실 지하에서는 신목이 걸러 낸 맑은 안식 마나수가 새 관수조를 채우고 있었다.
로완은 비교 장부의 첫 장을 펼쳤다.
"세 번 열매 맺게 할 겁니다. 이번에는 죽이지 않고."
그의 손 아래에서 닫힌 곁눈이 미약한 푸른빛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