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22화: 부모님의 흔적
중앙 챔버의 붉은빛이 사그라지자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세 개의 금속 링이 멈추고 차원의 균열도 닫혔다. 절단된 냉각 배관에서 하얀 수증기만 치익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아레스 특수팀원들은 굳어 있었다. 마력탄을 비틀어 버리고 거대한 인위 증폭 장치를 손짓 하나로 멈춘 자였다. 그들은 진우의 서늘한 눈빛 앞에 방아쇠조차 당기지 못했다.
"멍하니 있지 마라."
진우의 낮은 목소리가 챔버 안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너희 상부는 이미 이 시설을 버렸다. 살고 싶다면 지상으로 뛰어라."
특수팀원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벽면의 비상등이 붉게 깜빡이며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지하 3구역 통제권 상실 확인.]
[본부 비상 프로토콜 엡실론 가동. 시설 전 구역 기폭 대기.]
[자폭 시퀀스 활성화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자폭……?"
특수팀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본부의 명령은 자신들까지 통째로 생매장하겠다는 처분이었다. 대원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승강로를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진우 씨! 서둘러야 해요!"
민아가 칼집을 고쳐 쥐며 복도 쪽을 가리켰다.
"저들이 빠져나가는 틈에 2구역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통로가 닫히면 갇혀요!"
하은수도 콘솔에서 빼낸 외장 드라이브를 품에 넣고 고정 장비 배낭을 둘러멨다.
"2구역 비상 계단이 서쪽 배전실 뒤에 있어. 승강기는 전원이 끊겼으니 발로 뛰어야 해!"
진우가 앞장섰다.
"안내해라."
세 사람은 중앙 챔버를 빠져나와 어두운 비상 계단으로 뛰어들었다.
비상 통로는 위태로웠다. 천장 배관에서 새어 나온 냉각수가 계단 위로 쏟아져 내렸다.
쿵―!
머리 위에서 육중한 금속음이 울렸다. 아레스 본부가 원격으로 층간 방폭벽을 내리기 시작했다.
"2구역 격벽이 닫히고 있어! 저건 마나 합금이라 닫히면 끝장이야!"
계단 끝 2구역 입구에서 두꺼운 철판이 떨어져 내렸다. 남은 틈은 몸 하나 간신히 빠져나갈 정도였다.
진우는 허공을 딛고 계단참을 뛰어넘었다. 손끝에서 푸른빛 궤적이 번쩍였다.
1서클 편향.
진우는 격벽 자체를 받아치는 대신 양쪽 레일 틈새의 유압 실린더 제어선에 마력의 쐐기를 박아 넣었다.
지지직!
기름이 뿜어져 나오며 떨어지던 격벽이 지상 1미터 높이에서 덜컥 멈춰 섰다.
"지나가라."
민아가 바닥을 구르며 격벽 틈을 통과했다. 뒤이어 하은수가 장비를 안고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진우까지 복도로 넘어서자 마력의 쐐기가 풀린 격벽이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뒤쪽 계단이 차단되며 퇴로 하나가 사라졌다.
"하아…… 심장 떨어질 뻔했네."
하은수가 숨을 몰아쉬었다. 민아가 전술 라이트로 복도를 살폈다.
지하 3구역이 피 냄새 가득한 실험실이었다면 2구역은 정돈된 연구 시설이었다. 하얀 벽면과 유리문 사이로 흩어진 서류들이 급박했던 철수를 보여주었다.
진우는 복도 안쪽을 바라보았다. 벽면 곳곳에 오래된 마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레스의 거친 기운과 달리 차분하고 섬세한 질서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맡았던 낡은 종이 냄새와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 백 년의 세월을 건너왔음에도 그 마력의 결은 선명했다.
"이 안쪽이다."
진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복도 끝에는 특수 프로젝트 통제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방폭문이 있었다. 문의 중앙에는 마나 합금 다이얼과 푸른 수정 렌즈가 박혀 있었다.
"이곳이야. 특수 격리 금고."
하은수가 제어반을 뜯고 단말을 연결했다. 그러나 화면에는 붉은 경고창만 떠올랐다.
[접근 거부: 총괄 연구 책임자 인증 필요]
[물리적 강제 해체 감지 시 내부 보관함 테르밋 소각 즉시 점화]
"이중 락이야. 전자 보안은 뚫어도 마지막은 마나 생체 인증이야. 강성태 박사나 이혜숙 연구원의 고유 마나 파장이 닿아야 열려. 억지로 부수면 안에 든 서류가 전부 타 버려!"
하은수가 이를 악물었다. 진우는 조용히 금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
수정 렌즈 표면에 손바닥을 얹었다. 차가운 표면 너머로 잠들어 있는 마나 회로가 느껴졌다.
아레스의 보안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연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걸어 잠근 방어선이었다.
진우는 눈을 감았다.
가슴속 코어에서 맑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필요한 것은 파괴력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만이 낼 수 있는 영혼의 공명이었다.
품속의 연구 일지에서 흘러나오는 잔향을 짚으며 자신의 마력 파동을 미세하게 조율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이마를 짚어 주던 손길처럼 부드러운 박자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위이잉―
푸른 수정 렌즈가 은은한 백색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나 파형 분석 중……]
[오차율 0.02%. 1차 직계 혈족 파장 일치 확인.]
[생체 공명 승인. 환영합니다 강성태 박사님.]
치이익!
고압 질소가 빠져나가며 다이얼이 스스로 회전했다. 묵직한 빗장이 풀리더니 금고 문이 천천히 앞으로 밀려 나왔다.
"……열렸어? 본인이 아니면 안 열리는 구조였는데?"
"피가 같으니까."
진우는 담담하게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파도가 일렁였다.
금고 중앙 보관대 위에는 두꺼운 방화 케이스 하나와 외장 데이터 드라이브가 놓여 있었다.
케이스 표면에는 어머니의 단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에테르 안정화 제어식: 최종 프로토타입 원본]
진우가 버클을 풀자 수백 장의 연구 서류와 도면이 드러났다. 민아와 하은수가 다가와 숨을 죽였다.
진우는 맨 위의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연구 목적: 도심지에 발생하는 게이트의 마나 압력을 0으로 수렴시켜 자연 소멸 또는 영구 폐쇄 유도. 각성자와 비각성자 모두를 차원 재해로부터 보호하는 영구적 방벽 구축.]
"게이트를 닫는 연구였어……."
민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우는 다음 장을 넘겼다. 붉은 도장이 찍힌 상부의 지시서가 붙어 있었다.
[상부 지시 사항: 에테르 상쇄 제어식의 파형을 180도 반전할 것. 마나 압력을 특정 좌표에 집속시켜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여는 개방 제어식으로 개조할 것.]
[연구진 의견: 본 연구는 인명 보호를 위한 기술이다. 대도시 한복판에 게이트를 열어 재앙을 촉발하는 살상 무기 개발에는 결코 응할 수 없다. 제어식 반전 요구를 전면 거부함.]
그 뒤에는 처분 문건이 이어졌다.
[처분 결과 통보]
- 사유: 명령 불복종 및 핵심 연구 성과 은닉.
- 조치: 공식 기록상 '마포 제3게이트 현장 조사 중 돌발 붕괴로 인한 실종 및 사망'으로 전산 처리.
- 실제 집행: 신병 확보 후 지하 3구역 특수 격리실로 강제 이송.
"사고가 아니었어."
하은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연구를 무기로 쓰려다 안 되니까 멀쩡한 사람을 죽은 자로 만들어 버린 거야. 게이트 사고로 위장해 납치한 거라고!"
민아도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진우의 시선은 서류의 가장 마지막 장에 멈추었다.
연구 노트 귀퉁이를 찢어 어머니가 볼펜으로 눌러 쓴 메모였다. 종이 곳곳에 마른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진우야.]
단 세 글자를 보는 순간 진우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가 이 연구를 지키는 것은 세상의 아이들이 너처럼 갑자기 사라지는 비극을 다시는 겪지 않게 하기 위함이란다. 비록 사람들이 우리를 잊더라도 결코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을 거다.
만약 기적처럼 네가 살아 돌아와 이 글을 본다면 부디 우리를 용서해 다오.
우리는 끝까지 버틸 거다. 네가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그날까지 결코 꺾이지 않으마. 사랑한다 우리 아들.]
눈물 자국 위로 번진 잉크는 어머니의 떨리는 손길을 전하고 있었다. 진우는 서류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백 년의 전쟁터에서 버티게 했던 기억. 언젠가 돌아가 어머니의 밥을 먹고 아버지의 손을 잡겠다는 약속. 부모님은 진우를 잊지 않았고 잔혹한 협박 속에서도 신념을 지켰다.
"살아 계신다."
진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버티고 계신다. 그렇다면 내가 찾아내면 된다."
하은수가 보관함에서 마지막 이송 승인서를 꺼냈다.
"진우야 이것 봐. 최종 이송 승인서야."
서류 하단에는 붉은 직인이 찍혀 있었다. 아레스 길드의 것이 아니었다.
[이송 승인: 수도권 통합 차원관리본부 극비 인가]
[행선지: S-01 특수 관리 구역]
"수도권 통합 차원관리본부……? 그런 정부 기관은 없어요."
민아의 말에 하은수가 차갑게 읊조렸다.
"위장 명칭이야. 이 코드는 국가 전산망의 최상위 계정이야. 거대한 권력이 파 놓은 사설 통로라고. 아레스는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했어."
진우는 메모리 칩과 서류를 품속에 넣었다.
쿠구구구궁!
연구소 전체가 요동쳤다. 벽면이 갈라지며 콘크리트 덩어리가 쏟아졌다.
[경고. 시설 완전 파기 개시. 최종 기폭까지 03:00.]
"자폭 카운트가 앞당겨졌어! 승강로도 계단도 무너졌다고!"
하은수가 소리쳤다. 민아가 칼을 뽑아 낙석을 쳐냈다.
"다른 탈출로는 없습니까?"
"지하 2구역 북쪽에 옛 배수 터널과 연결된 방수로가 있어! 하지만 잔해로 막혔을 거야!"
"그리로 간다."
진우가 앞장섰다. 복도는 아수라장이었다. 천장의 전등이 튀며 불꽃이 일었고 고압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집채만 한 천장 슬래브가 떨어져 내리자 진우가 가볍게 손을 들었다.
1서클 반발.
보이지 않는 마력의 쿠션이 콘크리트 덩어리를 튕겨내 벽으로 처박았다. 머리 위로는 티끌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방수로 입구에는 무너진 암석과 철제 격벽이 통로를 완전히 메우고 있었다. 일반 헌터 파티라도 중장비 없이 치울 수 없는 벽이었다.
[기폭까지 01:00.]
하은수가 창백해졌다.
"완전히 막혔어!"
"물러서라."
진우가 양손을 뻗었다. 마력의 결을 읽고 가장 취약한 균열점을 찾는 것은 대마법사에게 숨을 쉬는 것보다 쉬웠다.
2서클 진동파.
고주파 마력이 잔해 더미의 중심부를 강타했다.
쿠르르르릉!
바위와 철근들이 모래알처럼 부서져 나갔다. 진우가 손을 휘두르자 1서클 돌풍이 파편들을 바깥으로 날려 버렸다.
순식간에 통로가 뚫리며 서늘한 새벽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통로가 열렸다. 뛰어라!"
민아와 하은수는 부서진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세 사람이 배수 터널을 빠져나와 야산의 흙바닥을 구르는 순간이었다.
쿠와아아앙―!
등 뒤의 대지가 솟구쳐 올랐다. 폐정수장 건물과 지하 구조물이 주저앉으며 붉은 화염과 연기가 새벽하늘을 뒤덮었다. 잔혹한 실험실과 아레스의 범죄 흔적이 먼지구름 속으로 매몰되었다.
흙먼지를 턴 하은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진짜로 살아 나왔어……."
민아도 숨을 몰아쉬며 진우를 보았다. 그의 품에는 부모님의 연구 서류와 메모리 칩이 온전히 안겨 있었다.
동쪽 하늘에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밝아오고 있었다.
진우는 품속의 서류를 지그시 눌렀다. 어머니의 글씨가 적힌 종이의 온기가 가슴을 데워 주었다. 부모님은 살아 있었고 세상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
하은수가 안경을 고쳐 쓰며 단말을 켰다.
"이송 승인서에 찍힌 특수 인가 코드…… 반드시 추적해 낼 거야. 아레스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그 괴물이 누구인지 밝혀내겠어."
진우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누구든 상관없다."
일개 길드든 거대한 권력이든 상관없었다. 부모님을 빼앗고 그들의 신념을 짓밟은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다.
지구의 새벽바람 속에서 9서클 대마법사의 침묵이 거대한 폭풍의 전조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