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21화: 감춰진 실험
격리실 03의 두꺼운 강화유리 표면에 붉은 경고등이 번쩍였다.
치이익 하는 고압 밸브 소리와 함께 격리벽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틈새로 새어 나온 냉기 속에서 비린 마력 냄새가 훅 끼쳐왔다.
"물러서라."
진우가 민아와 하은수의 앞을 막아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안쪽에서 검붉은 마력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마수가 아니었다. 찢어진 환자복을 걸치고 온몸에 굵은 주입관이 박힌 사내였다.
"아아아악!"
사내는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쇄골과 양팔의 피부 아래로 푸른 핏줄이 흉측하게 돋아 있었고 불규칙한 마나 파동이 살갗을 찢을 듯 부풀었다.
체내 마나 회로가 한계를 넘어 폭주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심장이 파열하거나 체내 마력이 터져 복도 전체를 날려 버릴 상태였다.
"강성태…… 박사…… 멈춰…… 제발……!"
사내의 입술 사이로 피거품이 튀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가 허공을 할퀴었다. 손톱이 바닥 콘크리트를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민아가 칼집을 비껴들며 거리를 벌렸다.
"각성자예요! 마력 과부하로 자폭하기 직전입니다!"
"만지지 마!"
하은수가 소리쳤다.
"저 몸에 연결된 주입관은 강제 마나 증폭선이야. 건드리는 순간 마력이 도화선처럼 터져!"
사내가 피를 흘리며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은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C급 근접 헌터를 웃돌았다.
진우는 피하지 않고 오른손을 뻗어 사내의 쇄골 중앙에 손바닥을 얹었다.
1서클 마력 분산.
진우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잔잔한 파동이 사내의 흉곽을 감쌌다. 맹렬하게 끓어오르던 붉은 마력이 손바닥 아래에서 맥없이 흩어졌다.
"커헉……!"
"숨을 쉬어라."
진우의 왼손 끝이 허공에 둥근 룬을 그렸다.
2서클 순환 유도.
푸른 빛줄기 세 개가 사내의 목 뒤와 양 팔꿈치를 파고들었다. 뒤틀려 엉켜 있던 마나 도선이 제자리를 찾으며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피부 위로 튀어나왔던 흉측한 핏줄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폭주하던 마력이 평형을 되찾자 사내의 다리가 힘없이 꺾였다. 민아가 달려와 사내의 상체를 부축했다.
"정신이 드십니까?"
사내는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초점이 돌아온 눈동자가 진우의 얼굴에 멎었다.
"강…… 박사님……?"
진우의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백 년 동안 잊은 적 없는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아니다. 나는 그의 아들이다."
진우의 낮은 목소리에 사내의 메마른 입술이 떨렸다.
"아들…… 진우……? 박사님이 늘…… 품에 사진을……."
사내의 거친 손이 허공을 더듬다 진우의 옷자락을 쥐었다. 살기가 전혀 없는 필사적인 손길이었다.
"도망쳐야 해…… 여기는 사람이 있을 곳이……."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나."
"박사님은…… 끝까지 거부하셨어…… 우리를 실험체로 쓰는 걸 막으려다가……."
사내의 숨이 가빠졌다.
"심부 챔버…… 장치를 멈춰야 해…… 게이트를 억지로……."
사내는 말을 맺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맥박은 약했지만 폭주는 완전히 멎었고 호흡도 고르게 이어졌다.
민아가 사내의 맥박을 짚었다.
"살아 있어요. 마력 역류는 잡혔습니다."
부모님은 이 잔혹한 실험의 공범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위 각성자들을 지키기 위해 연구를 거부하고 저항하다 격리된 것이었다.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는 동시에 서늘한 분노가 치밀었다.
하은수가 벽면 단말기 앞에 앉았다. 해독기를 단말에 꽂은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연구소 메인 서버가 자폭 카운트를 돌리기 시작했어. 서도현이 경보를 울리면서 파기 신호를 보낸 거야."
"자료를 건질 수 있나."
"이 단말은 지하 3구역 국소망이라 몇 분 벌 수 있어. 찌꺼기라도 다 긁어모은다."
화면 위로 텍스트 파일들이 쏟아져 내렸다.
모니터에 뜬 기록들은 단순한 길드 비리가 아니었다.
[에테르 안정화 2단계: 생체 매개체 반응 시험 보고서]
- 대상: E~D급 미등록 각성자 및 부채 연체자 12명.
- 방법: 체내 마나 코어에 인위적 주파수를 주입하여 차원 균열 파동과 동기화 유도.
- 결과: 11명 코어 붕괴로 뇌사 및 폐기. 1명(피실험체 03) 적합 반응 보이나 극심한 마력 거부 반응으로 격리 유지.
- 비고: 책임 연구원 강성태의 지속적인 시험 거부 및 데이터 파기 시도로 인해 연구 권한 박탈 및 강제 이송 조치.
민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람을…… 부품으로 썼다고요? 마나 코어를 비틀어서 게이트와 동기화시켰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게이트를 억지로 열기 위한 열쇠로 쓴 거지."
하은수가 잇새로 숨을 내뱉었다.
"사람의 마나를 특정 주파수로 끓어오르게 만들어서 차원 틈새에 던져 넣으면 게이트가 그 사람을 매개체 삼아 터져 나와. 일종의 인간 안테나이자 제물이야."
하은수의 주먹이 떨렸다. 가족을 잃었던 의문의 게이트 사고가 스쳤다.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이런 손길이 닿아 있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목을 죄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단순한 깡패 길드가 벌일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고."
진우는 말없이 화면을 응시했다.
아르카디아에서도 비슷한 자들이 있었다. 마신의 힘을 탐내며 산 제물을 바치던 금기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늘 새로운 질서를 입에 담았지만 결과는 학살뿐이었다. 이 세계의 자들도 본질은 똑같은 괴물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디로 이송되었나."
"이송 기록은 암호화되어 있어. 하지만 행선지 코드가…… 잠깐 이게 뭐야?"
하은수의 눈이 모니터 구석의 배선도에 고정되었다.
"지하 3구역 끝에 연구소 전력의 80퍼센트를 집어삼키는 구역이 있어. '중앙 챔버'라고 적혀 있는데 배관 규격이 비상식적이야."
웅―
바닥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공간의 결이 뒤틀리며 차원 장벽이 마찰할 때 생기는 기괴한 파동이었다.
"저 안쪽에 무언가 돌아가고 있다."
진우가 복도 안쪽을 가리켰다. 민아는 피실험체 사내를 격리실 안쪽 안전한 그늘에 눕히고 비상 담요를 덮어 주었다.
"꼭 살아서 증언해 주셔야 해요."
세 사람은 차원 파동이 뿜어져 나오는 복도 끝 거대한 방폭문으로 향했다.
방폭문은 이미 반쯤 부서져 있었다. 문틈 사이로 보랏빛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진우가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거대한 원형 공동 한가운데에 3층 건물 높이의 기계 장치가 서 있었다.
원통형 금속 타워 중심부에는 거대한 붉은색 마나스톤 코어가 박혀 있었고 수십 개의 냉각 파이프와 초고압 케이블이 코어를 감싸고 있었다.
장치 상단에서는 세 개의 거대한 금속 링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허공을 갈랐다. 금속 링이 교차할 때마다 허공이 종이처럼 구겨지며 가느다란 검은 균열이 번쩍였다.
인공적으로 찢긴 차원의 틈새에서 순수한 게이트 마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바닥의 집광판들이 그 에너지를 빨아들여 어딘가로 전송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죠?"
민아가 장치를 올려다보며 넋을 잃었다. 공기 중의 마나 농도가 너무 짙어 숨을 쉴 때마다 폐부가 따가웠다.
"인위 증폭 장치다."
진우가 차갑게 말했다.
"자연적인 차원의 틈을 억지로 벌리고 마나스톤 코어의 힘으로 균열을 키우는 장치야. 저 장치를 계속 돌리면 아무것도 없는 땅 한가운데에 S급 게이트도 강제로 열 수 있다."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만든다고요?"
민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시가 폐허가 되는 재앙이 인간의 손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은 헌터로서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악몽이었다.
하은수가 메인 콘솔 패널을 뜯어내고 내부 칩셋을 살폈다.
"이건 말도 안 돼……."
"무엇을 보았나."
"아레스의 기술이 아니야. 이 링 제어 모듈에 박힌 번호 봐. 국가 기간망 최상위 보안 등급 코드가 박혀 있어. 마나 전력망도 가람동 사설 전력이 아니라 수도권 특수 차원 송전망에 직결되어 있다고!"
하은수가 이를 악물었다.
"아레스 같은 깡패 길드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국내 최정상 길드나 국가급 연구기관의 자본과 기술이 통째로 들어간 장비야. 아레스는 그저 관리인에 불과했어!"
아레스는 거대한 배후의 하청을 받아 현장 실험을 대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우는 회전하는 금속 링을 노려보았다. 부모님을 빼앗고 세계를 장난감처럼 주무르려는 배후가 누구든 용서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위이이잉―!
그때 장치 상단의 경고등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보안 프로토콜 델타 발동]
[증폭 코어 강제 과부하 모드 전환: 폭발까지 02:00]
[시설 자폭 및 차원 붕괴를 시작합니다]
중앙의 거대한 마나스톤 코어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금속 링의 회전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졌다.
"장치를 자폭시키려고 해!"
하은수가 소리쳤다.
"저 코어가 터지면 폐정수장 지하 전체가 증발해! 지상 도로까지 통째로 함몰된다고!"
동시에 지하 승강로 쪽에서 폭음과 함께 금속 문이 날아갔다.
완전 무장한 아레스의 특수팀 열두 명이 방패를 앞세우고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움직이지 마라! 침입자 전원 사살이다!"
마력탄 수십 발이 챔버 안을 가득 메웠다. 민아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장치를 멈춰야 해요! 여기서 터지면 당신들도 다 죽는다고요!"
"상관없다! 본부의 명령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버리는 패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맹목적으로 총을 쏘아댔다.
"하은수. 콘솔에서 부모님 서류의 보관 위치를 찾아라."
진우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손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쓸어내렸다.
1서클 편향.
진우의 전면에 형성된 비스듬한 마력막에 닿은 마력탄들이 천장과 바닥으로 어지럽게 튕겨 나갔다. 특수팀원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수십 발의 탄도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전부 비틀어 버리는 궤적은 본 적이 없었다.
진우는 그들을 상대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았다.
코어 표면의 균열이 벌어지며 검붉은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1분 남짓이었다.
"폭발은 코어와 냉각선이 동시에 과부하될 때 일어난다."
진우가 공중으로 가볍게 도약했다. 중력을 무시하듯 허공을 밟고 올라선 그의 오른손에 서늘한 푸른 빛이 맺혔다.
2서클 절단.
진우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세 갈래 푸른 선이 허공을 갈랐다. 마력선은 거대한 기계 본체를 건드리지 않고 코어로 이어지는 여섯 개의 동력 공급선과 냉각 파이프 결합부만을 베어 넘겼다.
콰아아앙!
압축 냉각 가스가 하얗게 뿜어져 나오며 굉음을 내던 세 개의 금속 링이 힘을 잃고 멈춰 섰다. 붉게 달아오르던 마나스톤 코어의 빛이 사그라들며 회전하던 차원의 틈새가 흔적도 없이 닫혔다.
폭발의 위기가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가라앉았다.
특수팀원들은 넋을 잃고 허공에서 내려앉는 진우를 바라보았다. 군용 차원 증폭 장치의 핵심 도선만을 잘라내 폭주를 멈춘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솜씨였다.
"찾았어!"
하은수가 붕괴 직전의 콘솔에서 외장 저장장치를 낚아채며 소리쳤다.
"강성태 박사와 이혜숙 연구원의 원본 연구 서류 위치가 나왔어! 이 장치의 제어식 원형 파일이야!"
"어디냐."
"지하 2구역 특수 격리 금고야! 아레스가 본부로 반출하기 직전에 밀봉해 둔 상태로 묶여 있어!"
하은수가 땀을 닦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본부 직속 타격대가 더 몰려오고 있어. 서둘러야 해."
특수팀원들이 다시 무기를 겨누려 했지만 진우가 그들을 차갑게 쏘아보았다. 푸른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대원들은 얼어붙었다.
진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성큼 걸음을 옮겼다.
"2구역으로 간다."
아레스라는 하수인의 장막 너머에 숨어 있는 진짜 적의 실체와 부모님의 온전한 진실이 손끝에 닿을 듯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