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20화: 연구소 침투
비상 통로의 불이 꺼진 뒤에도 세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하은수는 저장핵이 고정된 장비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금속 프레임에 연결된 케이블이 배낭과 허리에 엉켜 있었지만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속도를 줄여. 장비가 계단에 부딪히면 기록도 같이 끝장이야."
"네가 떨어뜨리지 않으면 된다."
"그 말이 격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최민아가 앞에서 손전등을 가렸다. 통로 끝의 철망 너머로 붉은 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전자상가 지하를 수색하는 아레스의 드론이었다.
진우는 철망 앞의 공기를 눌렀다. 희미한 굴절막이 퍼지자 드론의 렌즈에는 낡은 배관과 빈 통로만 보였다.
"얼마나 버텨요?"
"저들이 신호를 직접 읽지 않는다면 충분하다."
하은수가 단말을 확인했다. 화면 가장자리의 붉은 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추적 패킷이 장비의 전원 주파수를 물고 있어. 오래 머물면 저장핵이 우리 위치를 알려 주게 돼."
민아가 철망 너머를 살폈다.
"밖은 관리도로예요. 검문 차량이 두 대 있습니다."
진우는 벽에 손을 댔다. 콘크리트 안쪽으로 사용하지 않는 배수관이 이어져 있었다. 손끝으로 선을 긋자 녹슨 철망 한 칸이 소리 없이 분리됐다.
"저기로 나간다."
"전 이 장비를 들고 기어가야 하는데요."
"작게 만들 수 있나?"
하은수가 헛웃음을 삼켰다.
"지금 그걸 묻는다고?"
진우는 케이블을 마력으로 끊지 않고 손으로 풀었다. 하은수는 잠시 그 모습을 보다가 분리할 수 있는 부품을 가리켰다.
세 사람은 배수관을 따라 폐정수장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새벽 안개가 풀잎 위에 낮게 깔려 있었다. 도로를 지나는 순찰차의 불빛이 안개를 붉게 물들였다.
하은수가 단말을 켰다. 좌표 조각의 세 점 중 하나가 깜빡이며 북서쪽을 가리켰다.
"여기가 첫 중계소야. 정확한 방 하나가 아니라 시설 반경만 잡혀."
"중계소가 이곳에 있다는 뜻인가요?"
"폐정수장 아래에 아레스가 숨겨 둔 통신 관문이 있어. 여길 통과해야 다음 좌표가 내려와."
폐정수장 건물에는 철거 예정 표지가 붙어 있었다. 진우는 건물 아래에서 일정한 마력의 맥동을 느꼈다. 자연적인 게이트와 달리 누군가 파동의 박자를 억지로 맞춘 흔적이었다.
그때 건물 뒤편에서 검은 차량 두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은수가 낮게 말했다.
"우리가 올 걸 기다리고 있었어."
펌프실 안쪽 제어반을 뜯어내자 빈 공간이 드러났다. 하은수는 그곳에 저장핵 장비를 밀어 넣고 발광부를 천으로 가렸다. 중계소 단말에는 얇은 케이블 하나만 연결했다.
"첫 접속은 내가 한다. 진우는 손대지 마."
"아직 손대지 않았다."
"전원 살리겠다고 회로를 뒤집으려 했잖아."
민아가 벽면 패널을 열었다. 수동 밸브 세 개가 드러났다.
"경비조가 들어오면 통로에 물을 뺄 수 있어요. 진입 속도를 늦추겠습니다."
"사람이 다치나."
"바닥만 미끄러워져요."
"사용해라."
하은수가 단말에 손을 올렸다.
[독립 위성망 접속 창까지 02:19]
[일회용 키 투입 시 복구 경로 자동 폐쇄]
"키를 쓰면 돌아갈 길이 사라져."
"돌아갈 생각은 없다."
"나는 있는데. 내 작업장을 두 번 날리고 싶지는 않거든."
화면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하은수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내부 주소가 하나 잡혔어. 아레스 본부를 거치지 않고 지하 3구역으로 내려가."
밖에서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레스 길드 현장팀이다. 저장핵을 넘기면 하은수의 신병은 본부 판단에 맡기겠다."
민아가 검을 뽑았다.
"서도현이에요."
하은수의 얼굴이 굳었다.
"해독을 멈추면 길이 닫혀. 계속하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확정해 주고."
진우는 저장핵과 연결된 케이블을 바라봤다.
"계속해."
"그럼 문을 막아 줘."
진우가 문과 바닥 사이에 작은 룬을 흘려보냈다. 경첩이 안쪽으로 고정됐다. 곧바로 포획용 마력망이 철문을 통과해 펌프실을 덮었다.
민아가 움직이려 했지만 진우가 손을 들었다.
그물은 잡아당길수록 대상의 마력을 묶는 장비였다. 진우는 매듭 네 곳의 방향을 뒤집었다. 푸른 실선이 사람 대신 철문과 바닥을 묶었다.
하은수가 그를 돌아봤다.
"장비를 해킹한 건가?"
"매듭의 방향을 바꿨다."
"이제 그 말이 조금 이해돼."
접속 시간이 끝나자 하은수가 일회용 키를 투입했다.
[접속 승인]
[중계소 1차 인증 완료]
[하부 승강로 원격 개방 가능]
동시에 조명이 붉게 변했다.
[에테르 표식 확인]
[비인가 접근 감지]
진우가 연구 일지를 꺼냈다. 표지의 표식이 화면과 같은 박자로 빛났다.
"일지를 인증 패널에 대면 아래 문을 열 수 있어."
"그럼 연구소에도 침입 신호가 간다."
철문 바깥에서 절단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서도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강진우! 네가 찾는 연구 기록은 아래에 없다. 저장핵만 넘기면 수배를 없던 일로 만들겠다."
진우는 연구 일지를 하은수에게 건넸다.
"거짓말이다. 아래에 아무것도 없다면 이곳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다."
민아가 수동 밸브를 당겼다. 통로 쪽에서 탁한 물이 빠르게 흘러들었다.
철문이 바깥으로 쓰러졌다. 뒤에서 대기하던 경비조 세 명이 물에 미끄러져 서로 부딪혔다.
"쏴!"
진압탄이 날아왔다. 진우가 벽면의 철제 난간을 휘게 만들자 탄환이 난간에 부딪혀 바닥으로 튕겼다. 탄환에서 끈적한 마력막이 퍼졌다.
민아가 검등으로 한 명의 손목을 치고 다른 한 명의 허리를 밀었다. 쓰러진 사람의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기 전에 옷깃을 잡아 방향을 틀었다.
"죽일 필요 없어요!"
"알고 있다."
진우는 경비조가 다시 발사기를 충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은수는 단말 앞에서 해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면 장비가 파괴되고 중계소 인증도 끊긴다.
진우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2서클 절단.
푸른 선 세 개가 물 위를 가르며 날아갔다. 발사기 손잡이와 허리 배터리와 통신 장치가 동시에 잘려 나갔다. 무기만 잃은 경비조가 당황해 검을 뽑았다.
그 순간 통로 반대편에서 서도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방호복 위에 마력 방패를 겹쳐 입은 모습이었다.
"대상 셋은 생포한다. 저항하면 관절을 부숴도 된다."
서도현의 시선은 저장핵에 머물렀다. 진우보다 장비를 먼저 노리고 있었다.
진우는 바닥에 고인 물속으로 작은 룬을 흘려보냈다. 물결이 갈라지며 길드원들의 발밑을 감쌌다. 결속이 발목과 무릎을 차례로 붙잡았다.
서도현이 방패를 휘둘렀다. 진우는 피하지 않고 얇은 마찰막으로 회전력을 옆으로 밀었다. 서도현의 몸이 물 위에서 돌아 벽에 부딪혔다.
"네 술식은 각성자 능력이 아니군."
"네 장비는 힘이 크다. 흐름은 단순하다."
진우의 손끝이 서도현의 팔을 향하다가 멈췄다. 등 뒤에 오래된 압력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격 방향을 바꿔 서도현의 발밑 물을 밀어냈다. 서도현은 바닥을 구르며 방패를 놓쳤다.
민아가 경비조를 한쪽으로 끌어냈다. 하은수의 목소리가 터졌다.
"됐어! 승강로가 열렸어!"
펌프실 안쪽의 바닥이 갈라졌다. 존재하지 않던 검은 승강로가 아래로 열리며 차가운 공기를 토해 냈다.
서도현이 통신기를 눌렀다.
"지하 3구역에 비인가 접근! 연구소 침입 경보다!"
진우가 그의 손목을 바닥에 결속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지?"
서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열린 승강로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분노보다 두려움이 먼저 떠올랐다.
진우는 그 표정을 기억해 두었다. 세 사람은 승강로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 3구역의 문이 열리자 냉기가 쏟아졌다.
복도 양쪽에는 유리벽으로 막힌 격리실이 줄지어 있었다. 안쪽의 금속 고정대에는 사람의 손목을 묶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닥의 마력 얼룩은 검은 선처럼 복도 깊숙이 이어졌다.
민아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이건 일반 연구소가 아니에요."
하은수가 벽면 단말을 살폈다.
"마나 파동을 사람 몸으로 통과시킨 흔적이야. 생체 실험실에 가까워."
복도 끝의 검은 인증 패널에 에테르 표식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진우가 연구 일지를 가까이 가져가자 화면이 켜졌다.
[에테르 안정화 연구부]
[지하 3구역 접근 기록]
[승인 연구원: 강성태]
[공동 연구원: 이혜숙]
민아가 숨을 삼켰다.
"부모님 이름이 여기 있어요."
진우는 마지막 줄을 읽었다.
[최종 상태: 격리 유지]
[대상 생존 여부: 확인 불가]
하은수가 패널 아래를 살폈다.
"출입 기록은 여기 있었다는 증거야. 지금도 있다는 뜻은 아니야."
"알고 있다."
진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손에 쥔 연구 일지의 표지가 구겨졌다.
그때 복도 안쪽의 붉은 등이 일제히 켜졌다.
[비인가 생체 인증 감지]
[격리실 03 자동 개방]
[대상 안정화 실패]
잠겨 있던 유리벽 안쪽에서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민아가 검을 들어 올렸다.
"안에 누가 있어요?"
하은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사람이면 저런 경보가 안 떠."
유리벽 너머에서 손가락 하나가 천천히 들렸다.
문 안쪽의 스피커가 갈라진 목소리를 토해 냈다.
"강……성태……?"
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동 방송이 다시 울렸다.
[대상 안정화 실패. 제어 절차를 시작합니다.]
격리실의 잠금 장치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