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16화: 사냥꾼의 등장
백미러 속 검은 승합차가 세 번째 모퉁이까지 따라붙었다.
그 뒤에는 헤드라이트를 끈 차량 두 대가 더 있었다.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거리를 벌렸다가 정확히 같은 간격으로 좁혀 왔다.
민아가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아레스 차량이에요. 정문에서 제 차 번호를 봤을 거예요."
"앞에도 있다."
진우의 말이 끝나자 내비게이션 화면에 붉은 선이 생겼다. 가람동 외곽 물류단지로 이어지는 진입로가 마력 누출 긴급 통제 구간으로 바뀌었다. 등록 시각은 불과 2분 전이었다.
도로 건너편에서는 아레스 표식이 붙은 방호 차량이 이동식 차단벽을 내리고 있었다. 공공 도로 전체를 막은 것은 아니었다. 밤이면 화물차도 끊기는 산업 단지 사유 도로만 골라 임시 통제 구역으로 만든 것이다.
"협회 감사가 시작됐는데 추적조를 움직인다고요?"
"감사관이 도착하기 전에 끝내려는 거겠지."
진우는 무릎 위에 놓인 두 묶음의 기록을 보았다.
하나는 부모님의 사진과 강제 이송 내역이 든 누런 서류철이었다. 다른 하나는 표지에 에테르 1차라는 붉은 글씨가 찍힌 회색 연구 일지였다.
서류철을 펼치자 부모님의 젊은 얼굴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대상자 07: 강성태]
[대상자 08: 이혜숙]
아버지는 증명사진에서도 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긴 촬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 끝을 단정하게 다물고 있었다.
진우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얇은 종이 모서리가 구겨지기 직전 그는 손을 늦췄다.
이름을 찾는 데만 백 년이 걸렸다. 분노 때문에 남은 길마저 망가뜨릴 수는 없었다.
"민아 씨. 중요한 기록부터 보존해라."
민아는 조수석 거치대에 단말을 세웠다. 신호가 살아 있는 동안 협회 민원 원본 보관함과 푸른하늘 보안 서버를 동시에 열었다.
부모님의 인적 사항과 강제 배속 기록. 심부 관측소라는 명칭. 천공 특수사업팀의 붉은 직인.
그녀는 장마다 촬영 시각과 접수 번호를 붙였다. 마지막 파일을 전송하자 화면에 세 개의 보존 표시가 차례로 떴다.
[협회 민원 원본 보관함]
[푸른하늘 보안 서버]
[외부 암호 사본]
"전부 올라갔어요. 삭제 명령이 들어와도 세 군데를 동시에 지울 수는 없어요."
진우는 뒤차 앞유리에 번지는 마력 파동을 살폈다. 문서에 추적 술식이 심어진 것은 아니었다. 감시 장비가 차체 번호와 열을 계속 맞춰 보고 있었다.
손상된 코어가 둔하게 욱신거렸다. 균열 안에서 룬을 연 뒤 기지 감지망까지 속인 대가가 남아 있었다.
진우는 통증을 누르며 오른쪽 갈림길을 가리켰다.
"저기로 간다. 사람이 없는 곳이 좋다."
표지판 너머에는 문을 닫은 화물 물류단지가 있었다.
물류단지로 들어서자 가로등이 앞쪽부터 차례로 꺼졌다.
계기판이 흔들리고 스마트폰의 통신 표시가 사라졌다. 길 양쪽에 세워 둔 소형 마력 교란기에서 붉은 불빛이 깜빡였다.
앞에서는 철제 차단벽이 내려오고 있었다. 뒤에서는 검은 차량들이 입구를 막았다.
민아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갇혔어요. 차로 밀면 오른쪽 정비 통로까지는 갈 수 있지만 오래 못 버텨요."
"그 통로로 빠져나가라."
진우는 누런 서류철 전체를 방수 봉투에 넣어 민아에게 건넸다. 부모님의 사진과 천공의 승인서가 든 원본이었다.
자신의 손에는 에테르 1차 연구 일지만 남겼다. 아레스가 멀리서 보더라도 놓칠 수 없는 붉은 표지였다.
"이걸 협회 조사관에게 직접 전해라. 접수 번호와 함께 원본으로 등록하고 사본을 더 남겨."
"진우 씨는요?"
"내가 남는다."
민아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강태호는 A급이에요. 혼자 상대하라고 제가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에요."
"함께 있으면 서류와 사람을 동시에 지켜야 한다. 네가 빠져나가면 하나만 보면 돼."
"그 하나가 진우 씨 목숨이잖아요."
진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을 걱정해 남겠다는 얼굴이었다. 백 년 동안 수많은 병사가 같은 표정으로 퇴각 명령을 거부했다.
그러나 민아는 그의 병사가 아니었다.
"이건 명령이 아니다. 역할을 나누자는 거다."
그가 붉은 표지의 연구 일지를 들어 보였다.
"놈들은 내가 가진 것을 쫓는다. 민아 씨는 부모님께 닿을 증거를 살려라."
민아의 시선이 일지와 방수 봉투 사이에서 흔들렸다. 잠시 뒤 그녀는 봉투를 재킷 안쪽에 넣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10분 안에 협회에 긴급 신고를 넣을게요. 그 전에 연락하세요. 반드시요."
"그러지."
진우가 차에서 내리자 추적 차량들의 전조등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그는 일부러 연구 일지의 붉은 표지가 보이도록 옆구리에 끼웠다.
앞차의 무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렀다.
"에테르 표식 확인. 문서는 목표가 들고 있다. 전 차량은 강진우에게 붙어!"
민아의 승합차가 오른쪽 정비 통로로 움직였다. 검은 차량 하나가 반사적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무전이 다시 울리자 진우 쪽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승합차가 통로 끝을 지나는 순간 진우가 손가락을 가볍게 당겼다.
통로 위에 매달려 있던 낡은 방화문의 걸쇠가 풀렸다. 거대한 철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쾅!
붉은 후미등이 철문 너머로 멀어졌다. 그제야 진우는 야적장 안쪽으로 걸어갔다.
화물 컨테이너 사이의 빈터에 검은 차량 여섯 대가 원을 그렸다.
방호복을 입은 아레스 추적조가 차에서 내렸다. 사수들이 진우에게 무기를 겨누면서도 방아쇠에는 손가락을 걸지 않았다.
"문서 맞으면 쏘지 마. 찢어지면 우리가 죽는다."
누군가 작게 속삭였다.
그들은 진우를 포위한 채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낮은 엔진음이 적재장 바깥에서 울렸다.
장갑을 덧댄 대형 차량이 닫힌 차단벽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철판이 종잇장처럼 접히며 안쪽으로 날아왔다.
진우가 반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철판은 그의 어깨를 스쳐 컨테이너 벽에 박혔다.
차량 뒷문이 열렸다.
거구의 사내가 천천히 내려섰다. 짧게 깎은 머리와 두꺼운 목에는 검은 제어구가 둘러져 있었다. 양팔의 금속 증폭기에서는 붉은 마력이 맥박처럼 뛰었다.
강태호였다.
그가 첫발을 내딛자 아스팔트가 움푹 꺼졌다. 마력 교란기의 불빛이 동시에 흔들리고 가까이 있던 추적조원들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강태호는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았다. 진우와 붉은 일지만 번갈아 봤다.
"네가 강진우냐."
"그렇다."
"강태문 장비를 망가뜨리고 가람 지부까지 턴 놈치고는 볼품이 없군."
태호가 목을 한 번 꺾었다. 뼈가 맞물리는 둔탁한 소리가 빈터에 퍼졌다.
"그 서류부터 바닥에 놓아라. 무릎도 꿇고. 그러면 팔다리부터 부러뜨려 주지."
"그 뒤에는?"
"균열에 던져야지. 마수가 먹으면 시체를 찾을 수고도 없으니까."
사내는 농담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없애 온 방법을 말할 뿐이었다.
진우는 대답하지 않고 연구 일지 표지를 한 번 두드렸다.
태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간을 끌 생각이냐?"
"조금 전까지는."
민아의 차량에서 느껴지던 희미한 마력 파형이 감지 범위 밖으로 사라졌다. 이제 부모님의 기록도 동료도 전장 밖에 있었다.
진우가 물었다.
"이 문서가 무엇인지는 아나?"
"알 필요 없다. 위에서 가져오라고 했으면 가져가는 거다."
"사냥꾼이라 들었다."
진우의 시선이 태호의 목에 채워진 제어구로 향했다.
"내가 보기에는 목줄을 찬 사냥개에 가깝군."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태호의 입가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강태호의 목 뒤 제어구가 붉게 달아올랐다.
굵은 마력이 척추를 타고 양팔의 증폭기로 흘렀다. 그가 주먹을 쥐자 금속 마디가 맞물리며 짐승의 턱 같은 소리를 냈다.
추적조 사수들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주변 차량의 차체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낮게 떨었다.
"네가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관심 없었다."
태호가 몸을 낮췄다.
"한 대 맞고도 입을 놀릴 수 있는지만 보자."
바닥이 폭발했다.
태호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의 아스팔트가 원형으로 주저앉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살의는 곧장 진우의 머리를 향했다.
진우는 피하지 않았다.
발밑에 얇은 마력 선 하나를 긋고 왼발 주변의 마찰을 지웠다. 오른손 앞에는 종잇장보다 얇은 바람막이를 비스듬히 세웠다.
1서클 마법 두 개가 겹쳤다.
콰앙!
태호의 주먹이 진우의 손바닥에 부딪혔다.
충격파가 빈터를 휩쓸었다. 차량 유리창이 일제히 터지고 컨테이너 문이 안쪽으로 찌그러졌다. 공중에 뜬 아스팔트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진우의 몸은 반 바퀴 미끄러졌다. 그러나 발은 넘어지지 않았고 손바닥은 태호의 주먹을 놓치지 않았다.
일지를 든 왼손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태호의 눈이 커졌다.
"뭐야."
자신이 쏟아낸 힘이 팔꿈치와 어깨를 거슬러 되돌아오고 있었다.
진우는 손바닥 안의 금속 증폭기를 살폈다. 양팔의 마력과 목 뒤 제어구는 단 하나의 굵은 결로 이어져 있었다.
강하지만 단순했다. 한 군데만 비틀어도 전신의 힘이 서로 충돌할 구조였다.
손상된 코어가 쓰리게 뛰었다.
이 정도를 무너뜨리는 데 높은 서클은 필요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끝났다."
진우가 태호의 주먹을 천천히 밀어냈다.
그의 발밑에 첫 번째 기초 룬이 희게 켜졌다.
"이제 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