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14화: 불청객 청소
두 번째 잠금 룬은 첫 번째보다 훨씬 깊은 곳에 박혀 있었다.
진우가 손가락을 대자 격벽 안쪽에서 붉은 선이 꿈틀거렸다. 문을 닫은 술식이 아니라 안쪽 압력을 바깥으로 떠넘기는 배출식이었다. 힘으로 끊으면 균열의 압력이 한꺼번에 쏟아져 생존자와 초급 각성자들이 휩쓸릴 수 있었다.
"도윤. 사람들이 있는 곳을 벽 쪽으로 붙여라."
"진우 씨는요?"
"문을 연다. 세 번 숨 쉬고 한 줄로 움직여."
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좁은 우회로에 서 있던 열두 명이 서로의 어깨를 붙이고 순서를 만들었다.
진우는 룬의 붉은 선을 따라 마력을 흘렸다.
선 하나를 지울 때마다 코어 안쪽이 긁히는 듯 아팠다. 그는 통증을 무시하고 압력을 가장 약한 방향으로 돌렸다. 붉은 선의 끝이 바닥으로 내려가자 격벽 위쪽의 진동이 멎었다.
그 순간 통로 반대편에서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강진우 헌터. 손을 떼십시오."
검은 방호복을 입은 사내들이 통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남자는 푸른 마력이 번진 긴 쇠사슬을 한 손에 감고 있었다.
"강태문입니다. 현장 질서를 회복하러 왔습니다."
"질서는 사람을 안에 가두고 밖에서 잠그는 게 아닌가."
"당신은 구조 권한이 없습니다. 생존자와 지원자는 아레스 관리 대상입니다."
태문이 손을 들자 전투조 두 명이 뒤쪽 통로로 움직였다. 다른 두 명은 초급 각성자들의 앞을 막았다. 꺼져 있던 팔찌의 붉은 불빛이 다시 켜졌다.
도윤이 팔목을 움켜쥐었다.
"또 신호가 들어옵니다."
진우는 붉은 불빛 아래의 가느다란 선을 보았다. 팔찌가 주인의 맥박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강제로 활성화한 탓에 대상자들의 호흡이 하나둘 가빠졌다.
"멈춰라."
"거부하면 균열이 안정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생체 반응이 필요합니다."
태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사람을 숫자로 부르는 목소리였다.
격벽 안쪽에서 다친 남자가 헛기침을 했다. 비상 발신기를 쥔 여자의 얼굴이 질렸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데려가서 또 아래로 보낼 겁니다."
아래 시설. 심부에서 수치를 끌어올리던 관측기. 마력을 빼앗기며 흔들리는 초급 각성자들.
진우는 격벽의 두 번째 룬을 한 줄 더 눌렀다.
"먼저 나간다."
손끝에서 흰빛이 번졌다. 룬의 틈이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큼 벌어졌다. 안쪽 압력이 통로로 밀려왔지만 진우는 바닥의 돌 세 개를 차례로 밟았다. 얇은 바람막이가 일행 앞에 펼쳐지며 압력을 양옆으로 갈랐다.
"도윤. 다친 사람부터."
도윤이 격벽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부상자의 팔을 자기 어깨에 걸치고 여자를 부축했다. 마지막 생존자가 틈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태문이 사슬을 던졌다.
푸른 사슬이 생존자의 발목을 향해 날아갔다.
진우의 손가락이 허공을 튕겼다.
1서클 응용 마법, 잔향 흐리기.
사슬의 궤도가 반 치우쳤다. 쇠사슬은 생존자의 발목 대신 벽에 박혔다. 태문이 힘을 주어 당기자 격벽의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네가 방해받을 일을 하지 않으면 된다."
태문이 통로를 가로질러 달려왔다. 거리는 짧았고 공격은 빨랐다. 쇠사슬이 진우의 목을 향해 휘어졌다.
진우는 몸을 낮춰 사슬을 피했다. 동시에 바닥에 번진 마력을 한 점으로 모았다. 태문의 발밑 돌이 미끄러지며 중심이 무너졌다.
태문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비틀어 진우의 턱을 걷어찼다.
진우가 팔을 들어 막았다. 충격이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진우는 태문의 방호 장갑과 팔꿈치 보호대 사이에 끼워진 마력 연결부를 읽었다. 손가락 두 개를 겹쳐 그 부분만 가볍게 눌렀다.
딱.
푸른 마력이 끊겼다. 태문의 오른팔이 힘을 잃고 아래로 처졌다.
"무슨……."
"장비를 너무 믿었다."
진우가 그의 가슴을 밀었다. 큰 힘은 아니었다. 발밑의 마찰을 없앤 뒤였다. 태문은 통로 벽까지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뒤에서 전투조가 달려들었다. 한 명은 진우를 향해 짧은 창을 찔렀고 다른 한 명은 초급 각성자들에게 마력탄을 겨눴다.
진우는 창끝을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창의 마력이 손가락 앞에서 멈췄다.
"사람 쪽으로 겨누지 마라."
그는 창을 옆으로 돌려 바닥에 박았다. 이어 바람막이를 좁게 펼쳐 마력탄을 천장 쪽으로 밀어 올렸다. 탄환이 돌벽에 부딪히며 검은 먼지를 쏟아 냈다.
"전부 고개를 숙여!"
도윤이 먼저 소리쳤다. 사람들은 도윤의 지시에 따라 몸을 낮췄다. 진우는 그들의 팔찌에 손을 뻗었다.
신호를 끊으면 아레스가 즉시 이상을 알아챈다. 대신 유도 결만 거꾸로 접어 전투조의 단말을 향하게 했다. 열두 개의 맥박 수치가 한꺼번에 단말 화면으로 몰렸다.
단말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멈춰!"
전투조 한 명이 단말을 붙잡았지만 화면의 글자가 이미 떠올라 있었다.
[3-임시 회수 실패]
[대상자 생체 반응 재수집]
[심부 측정값 확보 후 현장 폐쇄]
도윤이 그 문구를 보았다. 진우도 놓치지 않았다. 사람을 회수하고 심부 수치를 확보하라는 명령은 구조 작업과 거리가 멀었다.
진우는 주머니에서 민아의 보조 단말을 꺼냈다. 화면을 향해 단말을 들자 통신이 한 칸 잡혔다.
"민아 씨. 지금 전송한다."
"받고 있어요. 화면도 보여요."
진우는 명령 단말과 바닥에 떨어진 은색 관측기를 차례로 비췄다. 민아의 단말에 원본 저장 표시가 떴다.
"협회 서버와 푸른하늘 서버에 동시에 올릴게요. 삭제돼도 남도록 묶겠습니다."
"사람부터 빼내."
"알겠어요. 서문에 협회 통제 인력이 도착했어요. 서도현이 현장 권한을 주장하고 있지만 영상은 이미 접수됐어요."
태문은 왼팔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진우는 그의 앞에 서서 사슬의 중심 마디를 밟았다.
"그 단말을 내놓아라."
"당신이 뭘 안다고……."
"사람을 미끼로 쓰는 현장이라는 건 안다."
태문이 이를 악물고 사슬을 당겼다. 진우는 발끝으로 마력을 밀어 넣었다. 사슬 전체가 바닥에 납작하게 붙었다.
그는 태문의 손목을 꺾지 않았다. 대신 장갑의 연결부와 방호복의 잠금만 차례로 끊었다. 태문의 몸을 두른 강화 마력이 빠져나가자 사내는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었다.
"죽일 생각은 없다."
진우가 낮게 말했다.
"하지만 다시 사람을 끌고 오면 다음에는 장비만 부수지 않는다."
태문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 사이 격벽 위쪽에서 균열음이 터졌다.
콰드득.
두 번째 룬을 연 대가로 천장이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돌조각이 우회로 앞에 떨어졌다. 생존자 중 여자가 다친 남자를 끌어당겼다.
"진우 씨! 길이 막혀요!"
진우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세 번째 잠금 룬이 통로의 무게를 붙잡고 있었다. 그것을 풀면 길은 열리지만 균열의 중심도 함께 무너진다.
코어의 통증이 심장까지 차올랐다. 큰 마법은 쓸 수 없었다. 정확한 술식 하나면 충분했다.
진우는 바닥에 떨어진 쇳조각을 집어 세 번째 룬의 중앙에 던졌다. 쇳조각이 붉은 선에 닿자 룬의 흐름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도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대로 움직여라."
"네."
"사람 수를 세고 마지막에 나와. 생존자 셋은 가운데에 둬. 아레스 놈들은 앞에 세운다."
도윤이 잠깐 태문을 보았다.
"저 사람들도 데려가요?"
"죽게 두지 않는다. 증언할 사람이 필요하다."
진우가 세 번째 룬을 눌렀다.
통로의 바닥이 기울었다. 무너진 천장과 검은 먼지가 뒤쪽으로 밀려났다. 바람막이가 일행을 감싸며 좁은 길을 만들었다.
"지금!"
도윤이 사람들을 이끌고 달렸다. 다친 생존자는 이를 악물고 발을 옮겼다. 여자는 비상 발신기를 품에 안은 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진우는 맨 뒤에서 바람의 방향을 조절했다. 전투조 두 명은 이미 넘어져 있었고 태문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강진우! 대상자를 두고 나오십시오. 균열 붕괴는 당신의 책임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진우는 무너지는 천장 너머의 스피커를 바라봤다.
"책임을 좋아하는 모양이군."
그는 손을 들어 스피커 주변의 마력을 끊었다. 목소리가 찢기며 사라졌다.
서문 앞의 푸른빛이 가까워졌다. 바람이 거세지자 초급 각성자들이 하나둘 균형을 잃었다. 도윤은 앞사람의 손을 놓지 않았다.
"열두 명 전부 있습니다! 생존자 세 명도 같이 갑니다!"
그의 목소리가 통로에 울렸다.
진우는 바람을 한 번 더 접어 쓰러진 전투조의 단말과 관측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서문 밖으로 첫 번째 사람이 튀어나오자 민아가 달려와 팔을 잡았다.
"괜찮아요? 다친 곳부터 확인할게요."
푸른하늘 길드원들이 초급 각성자들을 세 줄로 나눴다. 협회 조끼를 입은 인력은 서도현의 제지를 무시하고 생존자들에게 담요와 응급 포션을 건넸다.
도윤은 바깥으로 나온 사람의 수를 다시 세었다.
"열두 명. 모두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우가 태문과 두 명의 전투조를 끌고 나왔다. 사내들의 장비에는 먼지와 균열의 검은 잔흔이 뒤섞여 있었다. 모두 살아 있었지만 누구도 팔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서도현이 통제선 앞으로 나왔다.
"무단으로 현장 지휘를 방해하고 아레스 인원을 공격했습니다. 강진우 헌터는 즉시 협회 조사에 응하십시오."
민아가 진우보다 먼저 휴대 단말을 들어 올렸다.
"현장 영상과 명령 단말 기록은 이미 협회 서버에 올라갔어요. 대상자 팔찌의 유도 결부터 심부 측정 지시까지 모두 남아 있습니다."
서도현의 시선이 태문에게 향했다. 태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말 기록은 이미 민아에게 전송돼 있었다.
생존자 중 비상 발신기를 쥐고 있던 여자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문구를 본 적 있어요. 3-임시라는 표시요. 아래 시설에서 우리를 나눌 때 팔찌와 문서에 붙어 있었습니다."
진우는 여자를 다그치지 않았다.
"그 시설이 어디인지 기억합니까?"
"정확히는 몰라요. 지하로 내려갔고 창문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들어오면 번호를 붙이고 다시 다른 문으로 보냈어요. 우리 셋은 그때 빠져나왔습니다."
그녀가 몸을 떨자 진우는 질문을 멈췄다. 지금 더 캐묻는 것은 구조가 아니라 심문이었다.
민아가 곧바로 생존자 옆에 앉았다.
"괜찮아요. 기억나는 건 나중에 천천히 말해도 돼요."
서도현이 차갑게 웃었다.
"공포 상태에서 나온 진술입니다. 법적 효력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진우는 바닥에 내려놓은 태문의 사슬을 집어 들었다. 사슬 끝에 남은 마력을 가늘게 당기자 검은 잔흔이 장비 위로 퍼졌다.
그는 사슬과 전투조의 방호판에 짧은 문장을 새겼다.
다음엔 사람을 앞세우지 마라.
마지막 글자가 굳자 서문 주변 카메라의 녹화 표시가 동시에 켜졌다.
진우는 서도현을 보았다.
"다음에는 네 문을 연다."
서도현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진우는 쓰러진 강태문을 지나 민아 쪽으로 걸어갔다. 부모님의 이름은 없었지만 아레스가 사람을 어디로 보내고 무엇을 측정했는지는 한 겹 드러났다.
그 겹 아래에 기록실이 있었다.
"민아 씨. 다음은 아레스 기지 기록실이다."
"기록을 찾으려고요?"
"이번에는 문 안에 들어가기 전에 문서를 먼저 가져온다."
진우의 추적은 이제 다음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