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귀환한 절대마법사

13화: 보이지 않는 손
균열 입구의 푸른빛이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바람이 아니라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숨결 같았다. 철제 바리케이드에 걸린 폐쇄 테이프가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끝부분부터 검게 타들어 갔다.
열두 명의 초급 각성자가 동시에 움찔했다. 박도윤은 단검 손잡이를 너무 세게 쥔 탓에 손등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서도현은 그런 그들을 둘러보며 전자 서류판을 들어 올렸다.
"현장 진입 전 마지막 안내입니다. 안쪽에서는 지정된 경로만 따르십시오. 지시를 어기면 구조 인력이 여러분의 위치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말은 안내였지만 목소리는 협박에 가까웠다.
진우는 대답 대신 가장 가까운 도윤의 손목을 보았다. 헐거운 임시 헌터 팔찌 아래로 희미한 마력 결이 흐르고 있었다. 위치를 외부에 전송하는 단순한 감시 표식이 아니었다.
결은 균열 안쪽을 향해 가늘게 당겨지고 있었다.
각 팔찌에 새겨진 술식은 일정 지점에 닿으면 착용자의 마력과 맥박을 한곳으로 모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표식 자체를 부수면 아레스가 즉시 이상을 알아챌 것이다.
진우는 손끝에 아주 얇은 마력 실을 감았다.
1서클 응용 마법, 잔향 흐리기.
눈에 띄지 않는 바람이 열두 개의 팔찌를 스치고 지나갔다. 발신은 그대로 두되 안쪽의 유도 결만 흐릿하게 번졌다. 손상된 코어가 낮게 찢기는 듯 아팠다.
진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내렸다.
"내 뒤에 서라. 내 허락 없이 앞서거나 갈라지지 마라."
도윤이 서도현과 진우를 번갈아 보았다.
"그래도 현장 책임자가……"
"네 아버지 치료 순번을 말한 자가 네 목숨까지 책임지진 않는다."
짧은 말이었다. 도윤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진우의 뒤에 섰다. 안전모를 쓴 여자가 그 옆으로 붙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줄을 만들었다.
서도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강진우 헌터. 현장 지휘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길잡이로 쓰는 지휘라면 따를 이유가 없다."
"근거 없는 말입니다."
"그럼 이들의 팔찌가 왜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서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곁에 있던 검은 방호복 차림의 사내에게 고개를 기울였다.
"정찰조가 앞선다. E급 지원자들은 뒤를 따라가게 하세요."
진우는 그 말에 담긴 순서를 들었다. 앞서 위험을 확인할 정찰조가 아니라 초급 각성자들을 지정된 지점까지 보내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철문 너머로 발을 옮겼다.
"내가 먼저 간다."
균열 안쪽의 공기는 서문 바깥보다 훨씬 무거웠다.
푸른 빛은 몇 걸음 지나지 않아 탁한 회색으로 바뀌었다. 벽과 천장은 마치 젖은 돌을 억지로 비틀어 붙인 것처럼 뒤틀려 있었다. 멀리서 들리는 진동이 통로를 타고 올 때마다 바닥의 모래가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아레스 정찰조의 조장이 왼쪽 갈림길을 가리켰다.
"저쪽입니다. 미리 설치한 안전 표식이 있습니다."
벽에는 노란 막대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초급 각성자들은 그 불빛을 보자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진우는 멈췄다.
막대등 아래의 돌가루가 너무 고르게 쌓여 있었다. 벽 속 마력은 왼쪽에서 바깥쪽으로 흐르지 않았다. 억지로 눌러 둔 압력이 통로 중앙을 향해 축적되고 있었다.
"그 길로 가지 마라."
조장의 얼굴이 굳었다.
"안전 확인을 마친 길입니다."
"확인은 누가 했지?"
"아레스의 전문 인력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장에서 작은 돌 하나가 떨어졌다. 돌은 바닥에 닿기 직전 검은 가루로 풀어졌다.
진우는 오른쪽의 좁은 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상된 코어를 억지로 깨우자 옅은 바람막이가 일행 앞에 펼쳐졌다. 무너져 내리는 마력 먼지를 양옆으로 밀어내는 정도의 약한 술식이었다.
"한 명씩 지나가라. 벽에 손대지 마."
"저기는 너무 좁아요."
안전모를 쓴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좁아도 살아서 나갈 수 있다."
진우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도윤이 가장 먼저 틈으로 들어갔다. 뒤따르던 남자가 발을 헛디뎠지만 도윤이 그의 팔을 잡아 세웠다. 열두 명이 모두 오른쪽으로 빠져나온 순간 왼쪽 통로의 막대등이 일제히 꺼졌다.
콰직.
돌벽이 안쪽으로 주저앉았다. 먼지 속에서 검은 가시가 돋친 짐승의 앞발 하나가 잠깐 드러났다가 다시 매몰됐다.
정찰조장이 이를 악물었다.
"변수가 생긴 겁니다."
"변수는 사람을 먼저 넣지 않는다."
진우는 더 말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막힌 통로 저편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이번에는 진우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마력 파동이 아니었다. 세 번째 충격 뒤에 쉰 목소리가 벽을 넘어왔다.
"누구 없습니까! 여기 사람이 있어요!"
도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진짜 사람이었네요."
정찰조장이 성급하게 앞으로 나섰다.
"구조 대상은 아닙니다. 안쪽 잔류자일 가능성이 있으니 접근하지 마십시오."
진우는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격벽을 바라봤다. 돌문에 새겨진 룬은 낡았지만 최근에 덧씌운 붉은 선이 있었다.
누군가는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문을 잠갔다.
격벽 앞에는 손바닥만 한 단말기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찰조장이 그것을 가리켰다.
"봉인이 불안정합니다. 지원자 전원의 생체 인증을 넣으면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팔찌를 이쪽에 대세요."
초급 각성자들이 주춤했다. 도윤이 팔찌를 감싼 손을 움켜쥐었다.
"인증하면 정말 열리는 겁니까?"
"구조 절차입니다. 시간을 끌면 안에 있는 사람도 위험해집니다."
진우는 단말기 앞에 쪼그려 앉았다. 붉은 선을 따라 흐르는 마력은 격벽의 잠금 장치가 아니라 통로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문을 여는 룬은 세 겹이었다. 반면 팔찌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결은 문과 닿지 않았다. 그것은 아래쪽 어둠을 향해 뻗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불규칙한 숨소리와 발톱이 돌을 긁는 소리가 겹쳐 들렸다.
마수 둥지였다.
진우의 시선이 천천히 정찰조장에게 향했다.
"이건 생체 인증이 아니다."
조장의 손이 허리춤 단말기로 움직였다.
"무슨 뜻입니까?"
"팔찌의 맥박을 아래로 흘려보내 마수를 깨우는 유인 장치지. 문이 열릴 때까지 이들을 여기 붙들어 둘 생각이었나."
"근거가 없군요."
"있다."
진우는 붉은 선 한가운데에 손가락을 댔다.
미세한 마력이 룬 안으로 파고들었다. 손상된 코어가 순간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시야 가장자리가 어두워졌지만 진우는 마력의 흐름을 놓지 않았다.
그는 팔찌에서 끌어가던 유도 결을 끊지 않았다. 대신 끝을 비틀어 정찰조장의 허리춤 단말기와 연결했다.
삐이익.
날카로운 경보가 통로를 갈랐다. 조장의 단말기 화면에 열두 개의 맥박 수치가 한꺼번에 떠올랐다가 붉은 점 하나로 압축됐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네가 부른 것을 네게 돌려줬을 뿐이다."
아래쪽 어둠에서 짐승의 울음이 터졌다.
검은 그림자들이 갈림길 너머에서 움직였다. 유인 신호는 이제 초급 각성자들이 아니라 정찰조장의 단말기를 향하고 있었다.
정찰조 인력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중 하나가 격벽 대신 통로 안쪽에 박아 둔 은색 관측기를 황급히 챙겼다.
진우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관측기에는 사람을 구하기 위한 구조 장비가 아니라 심부에서 올라오는 마력 수치를 기록하는 눈금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아레스가 원하는 것은 이곳의 생존자도 아니었다.
이들이 공포에 몰린 채 팔찌를 활성화할 때 생길 마력 반응. 그것을 측정하려는 것이었다.
진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도윤. 모두 뒤로 물러서라. 벽 쪽에 붙어 있어."
"안에 있는 사람들은요?"
"내가 길을 만든다."
진우는 격벽의 첫 번째 잠금 룬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세 줄을 한꺼번에 끊으면 안쪽과 바깥의 압력이 충돌한다. 지금의 코어로는 그 반동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가장 얇은 선 하나만 골라 천천히 지웠다.
돌문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밀려났다.
틈 사이로 피 냄새와 차가운 약품 냄새가 함께 새어 나왔다. 안쪽에는 낡은 작업복을 입은 세 사람이 웅크리고 있었다. 한 남자는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젊은 여자는 손에 작은 비상 발신기를 꼭 쥐고 있었다.
"밖에 아레스 사람이 있습니까?"
여자가 숨죽여 물었다.
"있다."
그녀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우린 아래 시설에서 빠져나왔어요. 잡히면 다시 끌려가요. 제발 문을 닫지 마세요."
진우는 그 말 뒤에 숨은 수많은 질문을 삼켰다. 아래 시설이 무엇인지 왜 이들이 갇혔는지 부모님의 단서와 연결되는지 지금 묻는 것은 사치였다.
먼저 살아서 나가야 했다.
그는 보조 단말을 꺼냈다. 화면에는 간신히 한 칸 남은 통신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민아 씨. 들리나."
잠시 잡음이 흐른 뒤 민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려요. 진우 씨 위치가 이상하게 흔들려요. 무슨 일이에요?"
"구조 신호는 사람이다. 아레스 정찰조가 초급 각성자 팔찌를 유인 장치로 쓰려 했다. 단말 기록과 관측기 화면을 전송한다. 현장 중지 요청을 계속 넣어라."
"받았어요. 푸른하늘 서버에도 올라갔어요. 협회 쪽에서 서문 통제 인력을 보낸다고 해요."
진우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지원은 아니었지만 바깥에 증거가 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레스는 마음대로 사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통로 벽에 박힌 스피커가 지직거리며 켜졌다.
"강진우 헌터. 현장 질서를 교란한 행위로 즉시 임무에서 배제합니다. 모든 지원자는 원위치로 돌아가십시오."
서도현의 목소리였다.
도윤이 겁에 질린 얼굴로 진우를 바라봤다.
"돌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진우는 격벽의 틈과 어둠 속 생존자들을 차례로 보았다.
"너희는 여기서 나간다."
"하지만 길이……"
"아까 지나온 좁은 통로로 돌아가면 된다. 내가 뒤를 지킨다."
정찰조장은 멀리서 마수의 울음에 쫓기며 퇴로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은색 관측기는 바닥에 떨어진 채 붉은 수치를 토해 내고 있었다.
진우는 그것을 밟아 부수지 않았다. 단말에 기록을 남긴 이상 감추려 해도 이미 늦었다.
그는 도윤에게 보조 단말을 건넸다.
"밖으로 나가면 민아 씨에게 이걸 전해라. 사람 수를 확인하고 누구도 흩어지지 않게 해."
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단말을 받았다.
"진우 씨는요?"
"문을 조금 더 연다. 안의 사람도 데리고 나와야 한다."
스피커가 다시 켜졌다. 이번에는 서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강진우. 당신은 선택을 잘못했습니다."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돌문 위의 두 번째 룬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코어의 통증이 손목까지 번졌지만 그의 호흡은 흔들리지 않았다.
균열 입구 쪽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하나씩 가까워졌다.
통신 너머로 서도현이 다른 누군가에게 명령했다.
"강태문 헌터. 목표의 퇴로를 막아라."
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초급 각성자들을 밀어 넣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번에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