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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5화

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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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도착과 인수의 틈

칼날을 가르는 쌍도

“말이 길다.”

가운데 사내가 칼을 뽑아 하륜의 쇄골을 겨누며 쇄도했다. 칼날에 실린 살기는 단순한 겁박이 아니었다.

하륜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등에 멘 17번 혼례함을 지키기 위해 몸을 옆으로 비틀며 팔뚝으로 사내의 손목을 쳐내려 했다. 그러나 내공이 텅 빈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의 상처가 찢어지며 핏방울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찰나였다.

챙!

어스름을 찢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사내의 칼이 허공으로 튕겨 올라갔다. 어둠 속에서 번개처럼 날아든 칼날 하나가 사내의 칼등을 정확히 후려친 것이다.

“누구냐!”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릴 때 또 한 자루의 칼이 그의 멱살을 스치며 바닥에 꽂혔다.

“청운표국 총표두 서윤아다.”

서윤아의 서늘한 목소리가 숲의 적막을 갈랐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윤아가 두 자루의 쌍도를 엇갈려 쥔 채 사내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녀의 뒤편 숲길에서는 철강이 육중한 도끼를 휘두르며 뒤따라오던 산적 두 놈을 걷어차고 있었고 유발은 곤봉을 단단히 쥐고 양옆의 퇴로를 막아섰다.

“총표두님!”

하륜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윤아의 등을 바라보았다. 윤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낮게 읊조렸다.

“살아 있었군, 국주.”

“약속대로 문 앞까지 왔습니다.”

“그럼 됐다. 나머지는 우리가 정리한다.”

담문 앞을 지키던 세 사내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저린 손목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우린 송가장의 심부름을 하는 자들이다! 표국 놈들이 감히 여기서 행패를 부려?”

윤아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사내의 칼을 발끝으로 툭 차올려 손에 쥐었다. 칼자루 끝에 새겨진 거친 톱니 자국, 그것은 낙수현 뒷골목의 무뢰배들이나 쓰는 조잡한 무기였다.

“송가장 하인 흉내를 내려면 손에 박힌 노름판 굳은살부터 지우고 왔어야지.”

윤아가 사내의 턱밑으로 칼끝을 들이밀었다.

“담문 빗장을 푼 놈이 누구냐? 안에서 너희를 부른 자가 누구지?”

사내가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그때 숲 아래쪽에서 산적 잔당 대여섯 명이 횃불을 치켜들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륜을 놓치고 능선을 우회해 쫓아온 자들이었다.

“철강, 유발! 저놈들이 담에 접근하지 못하게 쳐내!”

“맡겨 주십시오!”

철강이 우렁찬 기합과 함께 도끼자루를 비틀며 숲 어귀로 쇄도했다. 유발의 곤봉이 어둠 속에서 둔탁한 타격음을 뿜어냈다.

담문 앞의 무뢰배들은 전세가 역전되자 칼을 버리고 비탈 아래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륜은 그들의 등을 쫓지 않고 열리기 시작한 담문 안쪽의 어둠을 똑바로 응시했다.

진짜 싸움은 바깥의 칼부림이 아니라 이 문턱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과 인수의 틈

끼이익.

육중한 철제 빗장이 풀리며 송가장의 서쪽 담문이 활짝 열렸다.

등불을 든 하인 서넛과 함께 비단 장삼을 걸친 중년 사내가 거만한 태도로 걸어 나왔다. 송가장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마 서리였다. 그의 눈빛은 숲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오직 하륜의 등에 묶인 17번 혼례함에만 꽂혀 있었다.

“시끄럽게 무슨 행패인가! 표국 놈들이 어찌 이리 천박하게 굴어?”

마 서리가 소매를 펄럭이며 하륜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륜은 등에 묶인 끈을 가다듬으며 포권을 취했다.

“청운표국 국주 진하륜입니다. 의뢰받은 17번 혼례함을 송가장 서쪽 담문까지 배송 완료했습니다.”

마 서리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서쪽 기와 끝에 걸린 붉은 노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완료는 무슨 얼어 죽을 완료! 저 해를 보아라. 해가 이미 서쪽 담 기와에 닿지 않았느냐! 신시가 지나 해가 졌으니 기한을 어긴 것이다!”

마 서리는 기다렸다는 듯 뒤에 선 하인들에게 손짓했다.

“기한을 어겼으니 표단 계약에 따라 운임은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 혼례가 코앞이니 함이나 냉큼 넘기고 썩 물러가라!”

하인 둘이 하륜의 어깨로 손을 뻗으려 했다.

하륜은 물러서지 않고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손대지 마십시오!”

그 기세에 하인들이 흠칫하며 멈칫했다.

하륜은 품에서 피와 흙탕물에 젖지 않도록 가죽 주머니에 밀봉해 두었던 청운표국의 정식 표단을 꺼내 펼쳤다.

“마 서리님, 표단의 문구를 똑똑히 보십시오. ‘송가장 서쪽 외문 도달 기한은 해가 서쪽 담 기와에 닿는 신시 정각’이라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륜은 서쪽 담벼락을 가리켰다. 기와의 그림자가 담문 문턱을 막 넘어서려는 찰나였다.

“태양의 중심이 기와 끝에 닿는 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표물은 기한 내에 송가장 서쪽 외문 앞에 정확히 도착했습니다. 아직 신시의 마지막 경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 서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안채 사랑채에 있는 노부인께 올리지 못했는데 어찌 배송이 끝났단 말이냐? 여기서 사랑채까지 가는 동안 해가 완전히 떨어질 텐데!”

하륜의 입가에 엷은 냉소가 스쳤다. 적들이 노린 함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험로를 만들어 시간을 끌고 담문 앞에서 잡배들을 동원해 몇 줌의 시간을 더 지체시킨 뒤 ‘외문 도착’과 ‘사랑채 검수’ 사이의 이동 시간을 핑계 삼아 기한 초과로 몰아가려는 수법.

“마 서리님, 물류의 기본은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가르는 것입니다.”

하륜이 먹을 듬뿍 머금은 휴대용 필관을 꺼내 표단 부속서 여백에 힘차게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본 표단에 명시된 청운표국의 운송 책임은 송가장 서쪽 외문까지입니다. 이 문턱에 닿은 시각은 바로 지금, 일몰 직전 신시 정각입니다. 따라서 외문 도착은 기한 내에 정상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무슨 헛소리를!”

“헛소리가 아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외문 도착 확인증’에 서리님의 관인을 날인하십시오. 도착 시각을 공증받은 뒤 제가 직접 함을 메고 동쪽 사랑채로 들어가 정식 수령인이신 송 노부인께 봉인을 검수받겠습니다.”

“내가 왜 그딴 종이에 도장을 찍는단 말이냐!”

“찍지 않으시겠다면 송가장이 정당한 배송 도착을 고의로 방해하고 수령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하여 관아의 규례에 따라 송 노부인께 직소하겠습니다. 혼례 직전에 표단 위약 소송이 관아에 접수되면 송가장의 위신이 어찌 되겠습니까?”

하륜의 흔들림 없는 눈빛과 조목조목 찌르는 논리에 마 서리의 턱이 파르르 떨렸다. 뒤에 선 하인들도 눈치를 보며 주춤거렸다.

마 서리는 이를 갈며 품에서 서리 직인을 꺼내 들었다.

쿵!

붉은 인주가 찍힌 직인이 하륜의 표단 부속서에 선명하게 찍혔다.

[송가장 서쪽 외문 도착 확인: 신시 정각, 수령 대기 접수 완료.]

하륜은 마른 표단을 거두어 품에 넣었다.

도착 시각과 검수 시각을 명확히 쪼개어 증명한 순간, 청운표국을 옭아매려던 억지 지연의 덫은 산산조각 났다.

등을 맡긴 문턱

“잡아라! 저 함을 안으로 들이면 안 된다!”

숲 어귀에서 거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철강과 유발의 방어선을 뚫고 우회한 산적 잔당 셋이 횃불과 칼을 치켜든 채 서쪽 담문으로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피발이 서 있었고 오직 하륜의 등에 묶인 17번 함만을 노리고 있었다.

송가장의 하인들은 기겁하며 담 안쪽으로 물러섰고 마 서리 역시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산, 산적이다! 문을 닫아라!”

마 서리가 문짝을 붙잡고 닫으려 하자 윤아가 번개처럼 몸을 날려 문틈 사이에 칼집을 찔러 넣었다.

쿵!

문이 닫히지 않고 튕겨 나갔다.

윤아는 땀과 핏물로 젖은 얼굴로 하륜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국주.”

“총표두.”

“뒤는 돌아보지 마라.”

윤아가 쌍도를 엇갈려 쥐며 담문을 등지고 섰다.

“송 노부인이 있는 동쪽 사랑채까지 백 장이다. 저 사기꾼 같은 집사 놈 앞세워서 당장 가. 이 문턱은 청운표국이 한 발짝도 내주지 않는다.”

달려들던 산적 하나가 윤아의 어깨를 향해 도를 내리찍었다.

챙-!

윤아는 왼손의 칼로 일격을 비껴내고 오른손의 칼등으로 산적의 명치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 억 소리와 함께 산적이 굴러떨어졌다.

철강이 뒤따라와 도끼를 문기둥 옆에 쾅 찍어 누르며 거대한 벽을 만들었다.

“국주님! 혼례함만 무사히 전하십시오! 저희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아무도 이 문을 넘지 못합니다!”

유발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곤봉으로 다가오는 적들의 무릎을 후려쳤다.

표사들의 피 묻은 등판이 하륜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전생에서 하륜은 모든 위기를 혼자 짊어지려 했다. 밤을 새우고 혼자 배차를 짜고 혼자 도로를 달리다 결국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이 설계한 약속을 믿고 목숨을 걸고 길을 지켜 주는 동료들이 등 뒤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표국의 길이었다.

“가겠습니다. 반드시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하륜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내공은 바닥났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등 뒤에 실린 17번 혼례함의 무게는 더 이상 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동료들의 신뢰이자 표국의 자부심이었다.

“길을 안내하십시오, 마 서리님.”

하륜의 서늘한 목소리에 질린 마 서리가 넋이 나간 채 사랑채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륜은 이를 악물고 그 뒤를 쫓아 송가장의 회랑을 박차고 달렸다.

등 뒤에서 쇠붙이가 부딪히는 격렬한 소리가 노을 진 하늘을 울리고 있었다.

붉은 밀랍의 증명

송가장 동쪽 사랑채 앞마당은 혼례 준비로 분주하면서도 기괴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붉은 융단이 깔린 마당 중앙,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친족들과 하객들이 초조한 얼굴로 서성이고 있었다. 혼례를 올릴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신부에게 전달되어야 할 혼례 패물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랑채 대청마루 한가운데에는 백발을 단정히 쪽 찐 노부인이 차가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송가장의 실질적인 주인인 송 노부인이었다. 그녀의 앞에는 시계 역할을 하는 청동 향로의 마지막 향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어찌 되었느냐? 아직도 낙수현 표국 놈들의 소식이 없는 게냐?”

송가장의 친족 어른 하나가 혀를 차며 소리쳤다.

“내 뭐라 했습니까! 삼류 표국에 혼례함을 맡기다니 가문의 망신입니다. 만금상에 웃돈을 주고 맡겼어야 했습니다!”

그때 회랑 끝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한 청년이 마당으로 뛰어들었다.

먼지와 피로 물든 청포,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검은 머리카락, 하지만 품에 안긴 물건만은 비단 보자기에 싸여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상태였다.

진하륜이었다.

“청운표국 국주 진하륜, 의뢰받은 17번 혼례함을 가지고 송 노부인께 당도했습니다!”

하륜의 맑고 힘 있는 목소리가 사랑채 앞마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소란스럽던 마당이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뒤따라 숨을 헐떡이며 뛰어온 마 서리가 송 노부인 앞에 엎드리며 다급히 외쳤다.

“노부인! 이놈들이 늦었습니다! 해가 다 져서야 마당에 들어왔으니 기한 위반입니다!”

마 서리의 모함에 하륜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품에서 붉은 직인이 찍힌 표단 부속서를 꺼내 높이 치켜들었다.

“송가장 서쪽 외문 도착 시각, 신시 정각. 마 서리님의 공증 직인이 찍혀 있습니다. 청운표국은 단 일 각의 지연도 없이 약속된 기한 내에 송가장에 도달했습니다.”

송 노부인의 날카로운 눈빛이 마 서리를 꿰뚫었다. 마 서리는 사색이 되어 고개를 떨구었다.

하륜은 천천히 대청마루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가슴에 품고 있던 17번 혼례함을 두 손으로 정중히 받들어 올렸다.

세 겹의 방수포가 걷히자 붉은 비단에 싸인 단단한 흑단목 함이 자태를 드러냈다. 함의 뚜껑과 몸통을 가로지르는 붉은 밀랍 봉인, 그 중앙에 찍힌 선명한 ‘17’이라는 숫자.

단 하나의 흠집도 미세한 균열도 없는 완벽한 원형 그대로였다.

하륜의 옷자락에는 낭떠러지와 배수로를 구르며 찢긴 상처와 핏자국이 가득했지만 그가 바친 혼례함만은 방금 공방에서 나온 것처럼 정갈했다.

송 노부인의 눈에 깊은 이채가 번졌다. 그녀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마루 끝으로 걸어 나왔다.

수많은 표행을 보아 왔지만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화물의 봉인을 티끌 하나 없이 지켜낸 표국 국주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봉인 번호 17번. 훼손 없음.”

송 노부인의 묵직한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그녀의 주름진 손이 천천히 내려와 17번 혼례함의 붉은 밀랍 위로 닿았다.

마침내 첫 번째 배송의 마지막 관문인 정식 검수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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