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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4화

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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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무게를 나누지 못한 사람

함을 노리는 손

“함을 내려놓아라.”

검은 두건의 사내가 칼끝으로 하륜의 등을 가리켰다.

암반길은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폭이었다. 오른쪽은 송가장으로 내려가는 비탈이고 왼쪽은 안개 낀 낭떠러지였다. 하륜은 등을 벽에 붙였다. 숨을 고르려 했지만 가슴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 허공이 접히던 순간에 몸 안의 기운을 모조리 긁어 쓴 듯했다. 손끝은 둔했고 무릎은 풀려 있었다. 발끝에 힘을 모아 보았지만 뜨거운 기운은 돌아오지 않았다.

“칼을 너무 가까이 대시는군요.”

“죽고 싶으냐?”

“죽는 건 당신 쪽도 곤란할 겁니다. 봉인이 찢기면 의뢰인이 물건을 받지 않을 테니까요.”

하륜은 등에 묶인 함을 느꼈다. 세 겹의 방수포와 붉은 비단은 멀쩡했다. 봉인 번호 17번도 손끝에 닿았다.

사내의 옷에는 진흙이 거의 묻지 않았다. 신발 밑창도 젖은 길보다 마른 흙을 밟은 흔적이 많았다. 이 길에서 하륜을 기다린 자였다.

“누가 보냈습니까?”

“네가 알 것 없다.”

“17번 혼례함을 송가장 서쪽 담으로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까?”

사내의 시선이 한순간 흔들렸다.

하륜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표국의 이동 정보가 새었군요.”

“입 닥쳐!”

사내가 한 발 다가왔다. 칼끝이 하륜의 가슴 앞까지 들어왔다.

하륜은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뒤에는 발 하나만 잘못 디뎌도 무너질 자갈이 있었다. 대신 왼쪽 어깨끈을 조금 풀었다. 함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며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었다.

하륜은 손목을 잡으려 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칼등이 팔뚝을 긁고 지나갔다. 피가 흘렀다.

함이 크게 흔들렸다.

사내는 칼을 거두고 함부터 받으려 했다. 하륜은 그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깨끈을 더 풀어 함을 낮게 휘둘렀다. 스무 근 가까운 나무함이 사내의 무릎을 때렸다.

“크윽!”

사내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하륜은 남은 끈을 움켜쥔 채 사내의 팔을 암벽 쪽으로 밀었다. 발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로 밀려났지만 한 번이면 충분했다. 사내의 발이 젖은 자갈을 밟았다.

돌이 우르르 굴러갔다.

사내의 몸이 낭떠러지 쪽으로 기울었다. 하륜은 본능적으로 그의 옷깃을 잡았다.

“놓아!”

“떨어지면 함을 누가 받습니까?”

하륜은 사내를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그가 발을 되찾는 순간 허리띠를 풀었다. 사내의 손목을 묶은 뒤 바위 뿌리에 허리띠를 한 바퀴 더 감았다. 칼을 쥔 팔은 움직일 수 없었고 몸을 일으키기도 어려웠다.

“이걸 풀면 네놈부터 죽인다.”

“그럴 힘이 남아 있으면 해 보십시오.”

하륜은 숨을 몰아쉬며 일어섰다. 눈앞이 검게 흔들렸다.

사내를 죽게 내버려 두는 편이 훨씬 쉬웠다. 하지만 표단에 적은 첫 원칙은 사람의 목숨이었다. 하륜은 그 원칙을 남에게 요구하면서 자신만 예외로 둘 수 없었다.

“제가 담 앞에 도착하면 당신들이 받은 지시도 드러납니다. 인수 기록 없이 빼앗은 사람은 함을 훔친 사람보다 오래 숨기 어렵습니다.”

사내가 욕설을 뱉었다.

하륜은 더 묻지 않았다. 목소리가 등 뒤로 멀어지는 동안 암반길 아래로 몸을 옮겼다.

한 걸음마다 팔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등 뒤의 함은 여전히 따뜻했다. 하륜은 그 온기를 의뢰인의 마지막 부탁처럼 붙들었다.

끊어진 쪽의 발자국

윤아는 끊어진 밧줄 끝을 왼손에 감은 채 산적의 칼을 비껴 냈다.

칼날이 암벽을 긁었다. 불똥이 튀었다.

“국주가 어디로 갔지?”

“네가 걱정할 사람이 아니다.”

산적이 다시 달려들었다. 윤아는 칼을 맞받지 않고 몸을 틀었다. 사내의 발이 잘린 쇠말뚝 근처에 놓였다. 윤아는 밧줄을 발목에 걸고 잡아당겼다.

사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윤아의 칼등이 손목을 내려쳤다.

숲 쪽에서 다른 산적이 쇠뇌를 들고 나타났다.

“함을 멘 놈은 이미 서쪽 담으로 갔다! 여기서 시간 끌지 마!”

윤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륜은 반대편으로 건넜다. 그가 어떻게 건넜는지는 보지 못했다. 다만 송가장 쪽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윤아는 눈앞에서 벌어진 불가능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설명이 아니라 길이었다.

쇠뇌 살이 날아왔다. 윤아는 쓰러진 산적의 옷깃을 잡아 몸을 세웠다. 화살이 사내의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윽!”

“살고 싶으면 말해.”

윤아는 사내의 목에 칼끝을 댔다.

“17번 함을 어디로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지?”

“서쪽 담이다. 해 지기 전까지. 그게 전부야.”

“누가 지시했어?”

“모른다. 돈을 준 놈 얼굴도 보지 못했다.”

산적의 품에서 젖은 종이 조각이 떨어졌다. 붉은 먹으로 ‘17’과 ‘서쪽 담’만 적혀 있었다. 공식 문서에 쓰는 인장도 발신자의 이름도 없었다.

윤아는 종이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때 철강과 유발이 숲 아래에서 달려왔다. 철강은 도끼를 들었고 유발은 말 두 필의 고삐를 끌고 있었다.

“총표두님! 국주님은요?”

“반대편으로 건넜다. 송가장 쪽으로 갔어.”

철강이 절벽 틈을 돌아보았다.

“저 틈을 혼자요?”

“지금 묻지 마. 말부터 풀어.”

윤아는 칼끝으로 북쪽 능선을 가리켰다.

“주 통로를 따라가면 산적 본대와 부딪힌다. 말을 풀어 능선 아래로 우회한다. 송가장 서쪽 담은 동쪽 사랑채로 들어가는 외문이다. 거기서 국주와 만난다.”

“국주님이 먼저 도착하면요?”

“그때는 우리가 늦은 거야. 늦지 않으면 된다.”

윤아는 붙잡은 산적의 팔을 밧줄로 묶었다. 죽이지 않는 대신 칼을 빼앗았다.

“이자는 여기 두고 간다. 산을 내려가면 관아에 넘겨.”

“산적을 살려 둔다고요?”

철강이 물었다.

“입이 살아 있어야 누가 길을 팔았는지 물을 수 있다.”

윤아는 말을 돌려세웠다. 하륜이 건넜다는 절벽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국주가 함을 지키고 있다면 우리도 길을 지킨다.”

세 사람은 말과 함께 어두워지는 능선을 내려갔다.

비탈 아래의 두 번째 칼

하륜은 세 번째로 넘어졌다.

이번에는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손바닥 아래 젖은 흙이 차가웠다. 등 뒤의 혼례함이 바위에 닿았는지 확인하려고 손을 뻗었다.

붉은 비단은 찢어지지 않았다. 밀랍도 그대로였다.

“17번.”

번호를 확인한 뒤에야 하륜은 자신의 팔을 살폈다. 피는 많지 않았지만 손가락을 굽힐 때마다 상처가 당겼다.

앞쪽 숲에서 나뭇가지가 꺾였다.

하륜은 몸을 낮췄다.

진흙에 찍힌 발자국 세 개가 보였다. 발뒤꿈치가 깊게 들어갔고 한 발은 바깥으로 틀어져 있었다. 길을 지나간 흔적이 아니라 한곳에서 기다린 흔적이었다.

하륜은 발밑의 부러진 가지를 집었다. 가지를 앞쪽으로 밀자 낮은 쇠뇌 살이 날아와 나무를 꿰뚫었다.

바위 뒤에서 산적이 몸을 일으켰다.

“혼자 왔군.”

하륜은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왼쪽에는 빗물이 모여 흐르는 얕은 배수로가 있었다. 오른쪽은 송가장 담으로 오르는 급한 길이었다. 산적은 오른쪽 길을 막고 있었다.

“함만 넘기면 네 다리는 살려 주지.”

“아까도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팔도 붙여 주마.”

산적이 쇠뇌를 버리고 칼을 뽑았다.

하륜은 함을 앞으로 세우지 않았다. 칼날이 함을 향하면 몸을 틀어 자신의 어깨로 받았다. 날이 옷과 살을 갈랐다.

아픔보다 먼저 붉은 비단이 눈에 들어왔다.

하륜은 칼을 피하려고 몸을 왼쪽으로 던졌다. 두 사람의 발이 배수로 가장자리에 걸렸다. 사내가 어깨끈을 잡아당기자 하륜은 끈을 놓는 대신 바위 아래로 몸을 낮췄다.

함의 무게가 사내의 팔을 아래로 끌었다.

“이놈!”

하륜은 손바닥으로 젖은 바위를 밀었다. 몸이 앞으로 미끄러지며 사내의 발을 비껴 갔다. 사내는 함을 놓치지 않으려다 중심을 잃었다.

그 틈에 하륜은 발밑의 낡은 말뚝을 뽑았다. 말뚝을 지렛대처럼 바위 틈에 밀어 넣자 위쪽에 걸린 작은 돌무더기가 무너졌다.

흙탕물이 배수로를 가득 채웠다.

산적은 뒤로 물러났고 하륜은 낮은 물길을 따라 몸을 굴렸다. 방수포가 진흙에 젖었지만 함은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산적의 칼끝이 바로 뒤를 스쳤다. 하륜은 배수로 안쪽의 좁은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사내의 어깨는 그 틈에 걸렸다.

“나와!”

하륜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소리와 거친 숨소리 사이에서 기다렸다. 산적이 다른 길로 돌아가려는 발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송가장 담의 회색 기와가 나무 사이로 보였다.

담까지는 백 걸음도 남지 않았다. 해는 산등성이 가까이 내려와 붉은 가장자리만 남아 있었다.

하륜은 함의 끈을 다시 조였다.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매듭이 풀리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오르막을 올랐다.

인수자가 없는 문

송가장 서쪽 담문은 닫혀 있었다.

서쪽 담문은 장원 안쪽의 동쪽 사랑채로 들어가는 외문이었다. 정식 인수자는 송 노부인이고 인수 장소는 동쪽 사랑채였다. 여기서 함을 넘기면 안쪽까지 운반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록할 수 없었다.

담 아래에는 등불을 든 사내 셋이 서 있었다. 옷에는 산길의 흙이 묻어 있었지만 무기는 감추지 않았다. 가운데 사내가 하륜을 보자 손을 들었다.

“그 함을 가져왔군.”

“송 노부인의 인장을 보여 주십시오.”

사내의 표정이 굳었다.

“안에서 확인할 테니 먼저 넘겨.”

“표단에 인수자는 송 노부인으로 적혀 있습니다. 인장 확인 전에는 넘길 수 없습니다.”

“해가 곧 진다. 늦으면 네가 책임질 거다.”

“제가 책임집니다. 그래서 확인을 요구하는 겁니다.”

하륜은 혼례함을 내려놓지 않았다. 오히려 담문과 자신의 몸 사이에 세웠다. 팔에 힘이 빠져 함을 오래 들고 있기는 어려웠지만 바닥에 닿게 할 수는 없었다.

가운데 사내가 칼집을 두드렸다.

“표국 국주가 규칙을 잘도 읊는군. 산에서 죽지 않은 게 운이 좋았을 뿐이다.”

담 너머에서 문빗장이 움직였다.

“문을 열어라.”

안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함부터 받아. 해가 담에 닿기 전에 끝내야 한다.”

하륜은 담 위를 올려다보았다. 서쪽 하늘의 붉은 빛이 기와 끝으로 번지고 있었다. 해가 담에 닿기까지 오래 남지 않았다.

문 안쪽 사람은 송 노부인의 인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바깥의 사내들도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들은 배송을 끝내려는 게 아니라 인수 기록이 생기기 전에 함만 빼내려는 듯했다.

그때 숲 아래에서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챙!

이어 윤아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철강! 오른쪽을 막아!”

하륜은 눈을 감지 않았다. 윤아가 살아서 이곳까지 왔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자신 때문에 또 싸우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뒤따랐다.

문 앞의 사내들이 숲 쪽을 돌아보았다.

하륜은 그 짧은 틈에 표단의 조항을 계산했다. 담 앞에 도착한 시각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송 노부인의 인장이 없는 인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두 시각을 한 줄에 적게 하면 상대는 도착과 인계를 같은 일로 만들 수 있었다.

“문을 여십시오.”

하륜이 말했다.

“안쪽에서 도착 시각을 기록하게 하겠습니다. 함은 송 노부인의 인장이 확인될 때까지 제 손을 떠나지 않습니다.”

가운데 사내가 칼을 뽑았다.

“말이 길다.”

하륜은 함의 봉인을 확인했다.

17번. 균열 없음.

해가 담에 닿기 직전이었다.

하륜은 도착을 먼저 기록하고 인수는 나중에 확인하는 순서를 머릿속에 세웠다.

그리고 담 밖에서 윤아의 칼이 다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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