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

3화: 끊어진 길의 한 걸음
칼날 위의 인계
절벽을 타고 오른 바람이 하륜의 등을 후려쳤다.
몸이 앞으로 기울자 등에 묶은 혼례함이 반 박자 늦게 흔들렸다. 허리에 감긴 밧줄이 팽팽해지며 그를 붙들었다.
“벽에 붙어.”
앞서가던 윤아가 몸을 낮춘 채 말했다.
하륜은 젖은 암벽에 손바닥을 댔다. 발밑에는 장정의 손바닥만 한 돌턱뿐이었다. 그 아래로 안개와 흙탕물이 뒤섞인 협곡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오른발 두 치 앞에 홈이 있어. 거기 딛고 내가 선 곳까지 와.”
“확인했습니다.”
“숨부터 쉬어. 네 발이 떨려.”
가슴보다 종아리가 먼저 비명을 질렀다. 허약한 몸으로 산을 오른 데다 스무 근에 가까운 함까지 멘 탓이었다.
하륜은 짧게 숨을 내뱉은 뒤 발을 옮겼다.
발끝이 홈에 걸렸다. 윤아가 밧줄을 당기는 힘과 바람이 미는 힘이 허리를 사이에 두고 맞섰다. 암벽의 돌기를 움켜쥔 하륜은 윤아가 있는 바위턱까지 몸을 밀었다.
두 사람이 겨우 설 만한 공간이었다.
그는 등 뒤를 더듬었다. 기름종이는 찢어지지 않았고 세 겹 방수포도 단단했다.
“사람보다 함부터 확인하네.”
“제 몸 상태는 느껴집니다. 함은 말을 못 하니까요.”
윤아가 헛웃음을 흘렸다.
멀리 숲 너머에서 철강의 우렁찬 고함이 들렸다.
“이놈들아! 청운표국이 여기 있다!”
곧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사내들의 욕설이 뒤섞였다. 횃불로 시선을 끄는 단계는 끝났다. 산적들이 미끼에 닿은 것이다.
“생각보다 빨라.”
윤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철강과 유발은 오래 버틸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능선 너머로 빠지면 약속한 대로 말을 풀고 퇴각할 겁니다.”
“그 둘 걱정하기 전에 네 발부터 봐.”
윤아는 다음 돌턱으로 몸을 옮기려다 멈췄다. 암벽에 박힌 쇠말뚝 하나가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그녀가 말뚝 목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검붉은 녹 사이로 번들거리는 은빛 자국이 드러났다.
“녹슬어 부러진 게 아니야.”
말뚝은 절반 넘게 잘린 채 얇은 쇳조각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빗물이 씻고 지나간 절단면은 아직 날카로웠다.
“누가 날붙이로 미리 쳐 놨군요.”
“이 샛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산꾼도 비가 온 뒤에는 들어오지 않는 곳이야.”
주 통로를 막은 벌목과 석교에서 뽑힌 쇠못이 떠올랐다. 우연이라 부르기에는 막힌 길이 너무 정확했다.
누군가 청운표국이 고를 수 있는 길을 차례대로 지우고 있었다.
“이 말뚝은 쓰지 않습니다. 저 바위기둥까지를 한 구간으로 잡죠.”
“여기서는 내가 정해. 넌 내가 디딘 자리만 밟아.”
하륜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윤아의 눈이 잠시 가늘어졌다. 하륜이 순순히 현장 판단을 넘길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한 걸음씩 움직였다.
끊어진 두 장
절벽 모퉁이를 돈 윤아가 갑자기 팔을 벌렸다.
“멈춰.”
하륜은 내밀던 발을 거뒀다.
그들 앞에서 길이 사라져 있었다.
폭우에 떨어져 나간 암반 사이로 두 장 남짓한 틈이 벌어졌다. 맞은편에는 송가장 쪽으로 이어지는 돌턱이 보였다. 사람 하나가 뛰어서 건널 거리는 아니었다.
붉은 해의 아랫부분이 산등성이에 닿기 시작했다.
“돌아가면 늦어.”
윤아가 먼저 말했다.
“돌아갈 길도 산적에게 막혔습니다.”
“그럼 건너야지.”
그녀는 허리춤에서 쇠갈고리를 꺼냈다. 갈고리에 밧줄 끝을 묶은 뒤 맞은편 돌출부를 향해 휘둘렀다.
첫 번째 갈고리는 바위 표면을 긁고 떨어졌다. 두 번째는 돌기 뒤로 넘어갔지만 잡아당기자 힘없이 빠졌다.
세 번째 시도에서 쇠갈고리가 검은 바위 뿔을 물었다.
윤아는 밧줄을 세 번 잡아당겼다. 이어 출발 쪽 바위기둥에 등을 붙이고 양발을 벌렸다.
“내가 고정할게. 네가 먼저 가.”
“윤아가 먼저 건너는 편이 낫습니다.”
“내가 가면 누가 밧줄을 당겨? 너 혼자 그 함을 메고 내 무게까지 버틸 수 있어?”
맞는 말이었다.
하륜은 두 사람의 허리를 이은 매듭을 풀었다. 빈 물통과 남은 밧줄 그리고 비상 식량 꾸러미도 내려놓았다. 지금 건너야 할 짐만 등에 남겼다.
17번 혼례함.
출발점의 돌턱과 맞은편 바위 뿔을 번갈아 보았다. 밧줄 길이와 바람의 방향을 가늠했다. 눈으로 본 두 지점은 가까워 보이다가도 협곡을 내려다보는 순간 아득하게 멀어졌다.
“발을 놓지 말고 벽을 밀어. 팔 힘으로만 매달리면 중간도 못 가.”
“중간에서 멈추지 않겠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거든.”
하륜이 밧줄을 잡으려는 순간 머릿속을 희게 긁는 빗소리가 들렸다.
쏟아지는 비. 젖은 도로. 뒤집힌 화물차 안에서 붉게 깜박이던 시각.
배송 완료까지 삼백 미터.
목 안쪽이 조여 왔다. 손바닥이 차갑게 식었다.
“하륜아.”
윤아의 목소리가 빗소리를 뚫었다.
“낭떠러지 보지 마. 내가 잡은 밧줄만 봐.”
하륜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곳에는 화물차도 붉은 등이 비친 도로도 없었다. 바위기둥에 몸을 걸고 그의 무게를 받아 내려는 사람이 있었다.
“갑니다.”
밧줄을 잡고 끊어진 길 위로 발을 내밀었다.
접히는 거리
등 뒤 숲에서 나뭇가지가 꺾였다.
윤아의 고개가 돌아갔다.
“놈들이 왔어.”
절벽 모퉁이 너머로 검은 두건을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의 손에는 짧은 쇠뇌가 들려 있었다.
“찾았다! 함을 멘 놈이 여기 있다!”
함을 멘 자를 찾았다는 말이었다.
산적이 우연히 길목을 지킨 게 아니었다. 적어도 그들은 화물의 모양을 알고 있었다.
“계속 가!”
윤아가 한 손으로 밧줄을 붙잡은 채 다른 손으로 도를 뽑았다.
하륜은 벽을 밀며 옆으로 움직였다. 남아 있는 돌턱은 발가락 절반도 받쳐 주지 못했다. 맞은편까지는 아직 다섯 걸음이었다.
퉁.
쇠뇌 살이 날아왔다.
윤아의 도가 번쩍였다. 튕겨 나간 쇠살이 협곡으로 사라졌다.
그 뒤에서 두 번째 산적이 나타났다. 사내는 하륜을 쏘는 대신 절반 잘린 쇠말뚝에 감겨 있던 검은 줄을 움켜쥐었다.
윤아의 얼굴이 굳었다.
“하륜아! 밧줄 놔!”
산적이 검은 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잘린 말뚝이 암벽에서 뽑혀 나왔다. 말뚝에 받쳐져 있던 돌판이 기울며 하륜의 발밑까지 굵은 금이 내달렸다.
쩌적.
돌턱이 통째로 내려앉았다.
하륜의 몸이 허공으로 꺼졌다. 밧줄이 손바닥 살을 찢었고 등에 묶인 함이 그를 아래로 끌었다.
윤아는 손잡이 밧줄을 허리에 감고 버텼다. 그녀가 기댄 바위기둥 주변에도 금이 번졌다.
“함을 버려! 어깨끈 풀어!”
하륜은 오른손으로 풀림 매듭을 잡았다. 이대로 윤아까지 끌어내릴 수는 없었다. 바위기둥이 한 번 더 흔들리면 함을 놓고 몸부터 올려야 했다.
그 순간 맞은편의 검은 바위 뿔이 눈에 들어왔다.
출발 전에 거듭 확인한 지점이었다. 그 아래 평평한 암반에는 빗물이 고여 붉은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저기까지 두 장.
몸에 붙은 화물은 스무 근 남짓.
두 숫자가 머릿속에서 겹쳤다.
아랫배 깊은 곳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실처럼 가느다란 기운이 막힌 경맥을 억지로 비집고 지나갔다. 가슴과 어깨를 찌른 기운은 팔이 아니라 발끝으로 몰렸다.
시야가 뒤틀렸다.
출발점과 맞은편 암반 사이의 허공이 얇은 종이처럼 구부러졌다. 멀리 있던 바위 뿔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두 지점 사이의 풍경만 한 겹 접혀 사라지는 듯했다.
길이었다.
이 한 걸음이 닿지 않으면 함을 버린다. 닿는다면 윤아가 버텨야 할 무게까지 사라진다.
하륜은 고개를 들었다.
“윤아. 바위기둥을 놓고 뒤로 물러나십시오.”
“무슨 소리야! 손 내밀어!”
“사람이 먼저라고 적었습니다. 내 쪽으로 오지 마십시오.”
윤아의 뒤로 쇠뇌를 든 산적이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바위기둥이 기울었다.
하륜은 밧줄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허공에 발을 내디뎠다.
세상이 한 번 접혔다.
발바닥에 단단한 돌이 닿았다.
뒤늦게 무너진 돌판이 손잡이 밧줄을 바위 모서리로 짓눌렀다. 팽팽하던 삼베가 끊어지는 소리가 협곡을 갈랐다.
건너편의 칼
하륜은 맞은편 암반에 무릎을 찧으며 쓰러졌다.
숨이 나오지 않았다. 단전은 바닥까지 긁어낸 항아리처럼 텅 비었고 경맥마다 뜨거운 모래가 쓸고 지나가는 듯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움직이는지부터 확인했다. 몸은 건너왔다.
곧바로 어깨끈을 풀었다. 방수포를 걷자 붉은 비단과 밀랍 봉인 두 겹이 드러났다.
17번.
금도 균열도 없었다.
“하륜아!”
절벽 건너에서 윤아가 외쳤다.
끊어진 길 반대편에 그녀가 서 있었다. 한 손으로 산적의 칼을 막고 다른 손에는 끊어진 밧줄 끝을 감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하륜이 매달린 암반은 완전히 사라졌다. 두 장이던 틈은 그보다 훨씬 넓어졌다.
“어떻게 거기로 간 거야?”
“모릅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직접 본 두 지점과 몸에 고정한 짐이 함께 건너왔다는 사실뿐이었다. 거리와 무게가 대가일지는 더 확인해야 했다. 지금 체내에는 다시 시험할 기운조차 남지 않았다.
산적의 칼이 윤아의 어깨 곁을 스쳤다. 그녀는 몸을 틀어 칼등으로 사내의 턱을 올려쳤다.
하륜이 암벽을 짚고 일어났다.
“윤아! 철강과 유발에게 돌아가십시오. 산 아래 마차에서 합류하십시오.”
“너 혼자 갈 수 있겠어?”
“가야 합니다.”
“그건 대답이 아니야.”
윤아가 산적의 무릎을 걷어찬 뒤 절벽 너머의 하륜을 노려보았다.
“좋아. 대신 쓰러질 것 같으면 함보다 네 몸부터 숨겨. 네가 적은 철수권을 네놈만 빼먹으면 내가 표단을 찢어 버릴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송가장 서쪽 담에서 보자.”
“반드시.”
윤아는 더 묻지 않았다. 산적 둘을 좁은 길 안쪽으로 끌어들이며 숲 쪽으로 물러났다.
하륜은 혼례함을 다시 등에 묶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시야 가장자리가 검게 좁아졌다. 그래도 능선 아래로 송가장의 회색 지붕이 보였다.
해는 절반 이상 산 뒤로 넘어가 있었다.
암벽을 짚고 퇴로를 향했다.
세 걸음도 가지 못해 앞쪽 바위 그늘에서 박수 소리가 났다.
짝. 짝.
“재주가 좋군.”
검은 두건을 쓴 사내 하나가 길 한가운데로 나왔다. 다른 산적들과 달리 옷자락에 진흙이 없었다. 처음부터 송가장 쪽 퇴로에서 기다렸던 자였다.
사내가 칼을 뽑았다.
“함을 내려놓으면 목숨은 살려 주마.”
하륜은 타 버린 경맥을 억지로 끌어 보았다. 발끝에는 아무 기운도 모이지 않았다.
다시 그 한 걸음을 쓸 수 없었다.
그의 등에는 청운표국의 간판값보다 무거운 약속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