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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2화

천하제일 표국의 절대 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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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진흙길 위의 시간표

마방의 현실과 배차

마방의 공기는 축축하고 무거웠다.

하륜은 말의 등뼈와 발굽을 차례로 짚었다. 거친 털 아래로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가 손끝에 느껴졌다. 폭우가 쏟아지는 동안 제대로 된 여물을 먹지 못한 탓인지 두 필 모두 숨이 가빴다.

“이 녀석들로는 전 구간을 전력으로 달리지 못합니다.”

뒤에서 목발을 짚은 노칠이 다가오며 마른기침을 뱉었다.

“국주님, 왼쪽 갈색 놈은 지난달 낙석에 뒷다리를 채여 무거운 짐을 얹으면 절뚝입니다. 오른쪽 검은 놈만 겨우 제 몫을 합니다.”

하륜은 마구간 기둥에 걸린 낡은 멍에를 내려다보았다. 옻칠이 벗겨진 멍에에는 오래된 땀 자국과 비에 젖은 진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말 두 필. 그중 온전한 놈은 하나. 움직일 수 있는 표사는 나를 포함해 넷.’

머릿속에서 숫자들이 빠르게 정렬되었다.

낙수현에서 송가장까지의 평지 큰길은 삼십 리였다. 평소대로라면 건장한 표마로 두 시진이면 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다리가 끊겨 백곡령 산길로 우회하면 거리는 쉰 리로 늘어난다.

폭우가 막 그친 진흙탕 산길은 평지보다 체력 소모가 세 배 이상 컸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세 시진 반.”

하륜은 마방 바닥에 나뭇가지로 선을 그었다.

“첫 스무 리는 마차로 달립니다. 평지 도로가 끝나는 외곽 삼거리까지는 마차로 짐과 사람의 체력을 보존해야 합니다.”

마중원이 붕대 감은 팔을 추스르며 물었다.

“외곽 삼거리 너머는 가파른 산길이라 마차가 들어가지 못할 텐데요?”

“거기서 마차를 버리고 전환합니다. 말 두 필에 화물과 비상 장비를 나누어 얹고 도보로 산을 넘습니다. 산길 열다섯 리를 두 시진 안에 주파하고 남은 험로 십오 리는 짐을 맞바꾸며 주파합니다.”

“짐을 맞바꾸다니요?”

노칠이 눈을 깜빡였다.

“지친 사람이 화물을 계속 메고 있으면 속도가 떨어집니다. 이십 정마다 화물을 짊어지는 사람을 교대하고 앞선 자는 길을 트며 뒤선 자는 퇴로를 확보합니다. 멈추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게 핵심입니다.”

노칠과 마중원은 멍하니 바닥의 선과 숫자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표행이란 무공이 강한 자가 앞장서고 짐꾼이 뒤따르는 주먹구구식 행군이었다. 시간을 쪼개고 구간마다 수송 방식을 바꾸는 계산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노칠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국주님이 쓰러지시더니 정말 딴사람이 되셨네.”

“딴사람이 된 게 아니라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겁니다.”

하륜은 나뭇가지를 던지고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표단의 무게와 출발

창고 마당에서는 건장한 체구의 표사 둘이 행장을 꾸리고 있었다.

한 손에 묵직한 손도끼를 든 철강과 날렵한 체구에 장검을 찬 유발이었다. 두 사람 모두 진무백 시절부터 청운표국에 몸담아 온 이류 수준의 무인이었다.

철강이 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하륜을 쳐다보았다.

“국주님, 송가장 혼례함을 들고 백곡령을 넘자고 하셨다지요?”

“그렇습니다.”

“제정신이십니까? 백곡령은 평소에도 산쥐새끼들이 들끓는 곳입니다. 비까지 와서 땅이 죄다 죽탕인데 넷이서 칼 차고 들어가면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꼴입니다.”

유발도 거들었다.

“지난달에도 성도표국 짐마차가 백곡령 근처에서 털렸습니다. 호송 표사 셋이 팔다리가 부러져 실려 왔어요. 겨우 십팔 냥 벌자고 목숨을 걸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스물다섯의 젊은 국주가 빚에 쫓겨 무모한 도박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륜은 품에서 방금 작성한 표단을 꺼내 그들의 눈앞에 펼쳤다.

“표단을 보십시오. 우리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닙니다.”

철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종이쪼가리가 칼을 막아 줍니까?”

“이 종이는 당신들의 목숨을 지키는 기준입니다. 표단 넷째 조항을 읽어 보시죠. ‘적의 습격 규모가 호송 인원의 무력을 명백히 상회하거나 지형 붕괴로 생명의 위험이 발생할 경우 화물의 보존보다 인명의 안전을 우선하며 청운표국은 즉시 후퇴할 권리를 가진다.’”

철강과 유발의 표정이 굳어졌다.

강호의 어떤 표국도 표사에게 후퇴할 권리를 서류로 보장해 주지 않았다. 짐을 잃으면 표사의 목숨값으로 메우는 게 일반적인 상례였다.

“표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표물을 나를 사람이 죽으면 표국은 끝납니다. 우리는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기한 안에 배송을 완료하러 가는 겁니다.”

하륜은 붉은 비단으로 감싼 17번 혼례함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질긴 기름종이와 방수포로 함을 세 겹 감쌌다.

“산적이 나타나면 정면에서 맞서 싸우지 마십시오. 유발은 지형을 이용해 시야를 차단하고 철강은 화물을 멘 자를 엄호합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오면 표물을 은닉하고 퇴각합니다. 그 책임은 전부 국주인 제가 집니다.”

마당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윤아가 나섰다.

“철강, 유발. 하륜이 말대로 해. 마차 결속 끝났으면 바로 출발한다.”

총표두 윤아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두 사람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총표두.”

“시간이 없다. 말 올려라.”

하륜은 방수포로 단단히 여민 혼례함을 마차 중심부 흔들림이 가장 적은 축 위에 고정했다.

삐걱거리는 수레바퀴 소리와 함께 청운표국 마차가 낙수현 관문을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무너진 석교

낙수현 관문을 벗어나자 사방이 온통 흙탕물 천지였다.

사흘 밤낮으로 퍼부은 폭우는 도로 양옆의 배수로를 완전히 삼켜 버렸다. 바퀴가 진흙에 빠질 때마다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이랴!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철강이 고삐를 잡고 채찍을 휘둘렀다. 검은 말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진흙탕을 박차고 나아갔다.

하륜은 마차 짐칸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해가 서쪽으로 한 뼘 기울어 있었다.

‘예상 시간보다 일 각 지체됐다.’

도로 바닥의 저항이 생각보다 심했다. 진흙탕이 마차 바퀴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길의 끝자락인 낙하천 삼거리에 도달했다.

“멈춰라!”

선두에서 말을 몰던 윤아가 급히 말을 세웠다.

하륜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강가로 다가갔다. 눈앞의 광경은 처참했다.

낙하천을 가로지르던 거대한 홍예 석교의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붉은 황토 급류가 집채만 한 바위를 굴리며 무너진 교각 사이로 포효하고 있었다.

“다리가 통째로 뜯겨 나갔잖아!”

철강이 혀를 내둘렀다.

윤아가 무너진 다리의 잔해 쪽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부러진 석조 난간과 지지목을 만져보던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상해.”

“무엇이 보입니까?”

하륜이 다가가 물었다.

윤아는 뜯겨 나간 목재 결구를 가리켰다.

“지지목 결속 쇠못이 뽑혀 있어. 거센 물살에 부러진 게 아니라 미리 빗장을 풀어 둔 것처럼 통째로 빠져나갔어.”

하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자연재해가 아니다.’

만금상 도문석의 조롱 섞인 얼굴과 아버지의 장부에 적혀 있던 내부 누설이라는 글자가 뇌리를 스쳤다. 누군가 청운표국의 숨통을 끊기 위해 혹은 이 노선 자체를 마비시키기 위해 다리에 손을 댔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배후를 추적할 여유가 없었다.

“마차를 버립니다.”

하륜이 단호하게 말했다.

“예? 마차를 버려요?”

철강이 놀라 되물었다.

“여기서부터는 백곡령 산길입니다. 마차를 끌고 갈 수도 없고 시간만 잡아먹습니다. 덤불 속에 마차를 숨겨 두고 말 두 필에 짐을 나누어 메십시오.”

하륜은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마차 짐칸에서 혼례함과 방수 배낭을 꺼내 말안장에 단단히 동여맸다.

“철강이 선두에서 길을 열고 유발이 후방을 경계합니다. 윤아와 제가 중앙에서 화물 말을 끕니다. 지금부터 백곡령 정상까지 쉬지 않고 걷습니다.”

표사들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무너진 다리를 본 순간 그들도 이 배송이 단순한 심부름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었다.

네 사람과 말 두 필은 거센 강바람을 등지고 험준한 백곡령 오르막길로 발을 디뎠다.

막힌 산길과 절벽

백곡령 숲속은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했다.

울창한 고목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발밑은 빗물에 젖은 낙엽과 썩은 흙으로 미끄러웠다. 말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하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재촉했다. 허약한 몸 탓에 다리에 쥐가 날 것처럼 당겨왔다. 하지만 전생에서 밤샘 작업을 버텨내던 근성으로 버텼다.

얼마나 올랐을까. 앞서 수색을 나갔던 유발이 낮은 자세로 급히 돌아왔다.

“총표두님, 국주님. 앞쪽 삼거리 길목이 막혔습니다.”

윤아가 쌍도 자루를 쥐며 물었다.

“산사태냐?”

“아닙니다. 아름드리나무 대여섯 그루가 길목을 가로질러 베어져 있습니다. 도끼 자국이 선명합니다.”

유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너머 바위 그늘에 흑도 복장을 한 놈들 서넛이 망을 보고 있습니다. 백곡령 산적패 놈들입니다.”

철강이 도끼를 고쳐 쥐며 이를 갈았다.

“길목을 아예 틀어막고 지키고 있었군. 뚫고 지나가시겠습니까?”

윤아가 고개를 저었다.

“망보는 놈이 서넛이면 안쪽에 본대가 최소 스무 명은 더 있어. 네 명으로 짐을 지키며 정면 돌파하는 건 무리야.”

하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노을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해가 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한 시진 반.

여기서 발이 묶이거나 산적들과 전투를 벌이면 혼례 시간인 해거름 전까지 송가장에 닿는 것은 불가능했다. 선금 몰수는 물론이고 청운표국의 간판이 만금상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다른 길은 없습니까?”

하륜의 물음에 윤아가 굳은 표정으로 서쪽 능선을 가리켰다.

“있긴 해. 백곡령 서쪽 단애를 끼고 돌아가는 샛길이 있어. 하지만 그 길은 사람이 다닐 길이 아니야. 폭이 한 자도 안 되는 낭떠러지 절벽길이고 발 하나 헛디디면 그대로 천길 협곡 바닥으로 떨어져.”

“말은 못 지나가겠군요.”

“말은커녕 원숭이도 기어가는 길이야. 게다가 비 때문에 바위가 젖어 있을 텐데 거길 가겠다고?”

윤아의 반대에 하륜은 결연한 눈빛으로 17번 혼례함을 고쳐 멨다.

“말은 여기에 묶어 두고 화물만 떼어 등에 업겠습니다.”

“하륜아!”

“산적으로 막힌 길은 길이 아닙니다. 갈 수 없는 길을 뚫으려다 시간을 버리느니 위험하더라도 뚫려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륜은 철강과 유발을 돌아보았다.

“철강과 유발은 여기서 말을 지키며 산적의 주의를 끌어 주십시오. 숲 가장자리에서 횃불을 피우고 소리를 내어 우리가 정면 길목을 뚫으려는 것처럼 위장하십시오.”

“국주님, 그럼 짐은 어쩌고요?”

“윤아와 제가 화물을 메고 절벽 샛길을 넘겠습니다. 송가장 뒤편 능선으로 바로 떨어지는 최단 코스입니다.”

철강과 유발은 하륜의 기백에 압도된 채 침을 삼켰다. 나약하던 서생 도련님의 눈빛이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최선의 경로를 찾아내는 냉철한 지휘관의 눈이었다.

윤아는 하륜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미친 짓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 말고는 없네.”

윤아는 허리춤에서 질긴 삼베 밧줄을 꺼내 하륜의 허리와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묶었다.

“내가 앞장선다. 발 헛디디면 네 녀석 몫까지 끌고 갈 테니까 꽉 잡아.”

“부탁드립니다, 총표두.”

하륜은 등에 진 방수 배낭의 끈을 조였다.

붉은 노을이 절벽 끝자락을 피처럼 물들이고 있었다.

하륜과 윤아는 칼날처럼 솟아오른 깎아지른 절벽 샛길을 향해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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