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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검은 궤도의 추적자

삐— 삐비빅!

아폴로-01호 발사 기지의 관제동 전체에 짧고 날카로운 경보음이 반복되었다.

최현우 중령은 메인 조종 브리지의 카운트다운을 확인했다.

[추진제 충전 및 통합 점검 : 72시간 카운트다운 진행 중.]
[잔여 시간 : 71시간 52분.]

“동부 화학 단지에서 들어온 액체 산소 압력은 정상입니다. 수소 주입은 3번 배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송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주의 하부에서 굵은 배관을 타고 차가운 추진제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도현은 조종 브리지 옆 관측창으로 발사 패드를 내려다보았다. 하울러에서 내린 기술자들이 은빛 연료 호스를 연결하고 있었고 한예원은 바이오스피어 모듈의 봉인 상태를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별을 향한 출발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헤르메스 정거장의 비컨이 세 번 끊겼다.

“신호가 다시 변했습니다.”

한수가 레이더 콘솔 앞으로 몸을 숙였다.

“정지궤도에 물체가 하나가 아닙니다. 열일곱 개…… 아니, 스물네 개로 늘어났습니다.”

최현우가 화면을 확대했다.

검은 점들이 지구 정지궤도에서 하나씩 분리되고 있었다. 물체들은 낙하하지 않았다. 각자 작은 추진기를 점화하며 아폴로 기지를 향해 궤도를 꺾었다.

[미식별 궤도 포드 24기.]
[발신 : HERMES-ORBITAL-ALPHA 방어 격납고.]
[접근 물체 판정 : 비인가 추진체.]

윤슬이 소총을 집어 들었다.

“헤르메스가 우리를 쏘는 거야?”

“도킹 허가 전까지 접근하는 모든 물체를 적으로 보는 자동 방어 프로토콜이 남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최현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방주의 점화 신호가 정거장을 깨웠습니다. 우리가 문을 두드리자 저쪽은 침입자가 온 줄 안 겁니다.”

도현은 화면 가장자리에서 깜빡이는 잡음을 바라보았다. 궤도 포드의 식별 패킷 사이에 일정한 간격의 불규칙한 파형이 끼어 있었다. 헤르메스의 오래된 방어 루프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을 신호였다.

“아테나의 잔존 신호가 방어 명령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확실해?”

윤슬이 물었다.

“아직은 패턴만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오작동이 아닙니다.”

그 순간 관제동 천장이 붉게 물들었다.

[첫 번째 방어 포드 진입각 수정.]
[목표 : 아폴로-01호 주 연료 패드.]

도현은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전원 대피하지 마십시오. 연료 호스를 먼저 분리합니다. 지금 뛰면 호스가 꺾여 폭발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기지 전체 스피커를 타고 울렸다.


하늘에서 검은 불꽃이 떨어졌다.

첫 포드는 발사 패드 외곽 콘크리트에 부딪히기 직전 네 갈래로 갈라졌다. 포드의 껍질 안에서 손바닥만 한 드론들이 튀어나와 연료 배관을 향해 날아들었다.

“윤슬 대원! 동쪽 배관으로 세 기!”

최현우가 관제동에서 소리쳤다.

윤슬은 대답 대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두 드론의 유도 핀이 부서졌다. 그러나 세 번째 드론은 총탄 사이를 비집고 배관 아래로 파고들었다.

“박 씨! 2번 차단 밸브!”

“알았소!”

박 씨와 서동주가 연료 패드 아래로 몸을 던졌다. 박 씨가 거대한 수동 레버에 쇠파이프를 끼우고 온몸으로 눌렀다. 밸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어붙었어!”

“송민호 씨. 2번 라인의 압력을 30%까지 낮춰요.”

도현이 무전기를 향해 외쳤다.

“지금 낮추면 주입 순서가 꼬입니다!”

“꼬이는 게 폭발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잠시 뒤 배관을 울리던 진동이 낮아졌다. 박 씨가 다시 레버를 밀자 굳어 있던 밸브가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도현은 캠봇을 앞으로 날렸다. 드론의 영상이 그의 시야에 겹쳐졌다. 실제 기체는 빠르게 날았지만 캠봇의 아날로그 신호에는 0.2초의 지연이 있었다. 도현은 그 지연 속에서 오히려 드론의 다음 방향을 읽었다.

“윤슬. 세 번째 기체를 쏘지 말고 왼쪽 방열판 쪽으로 몰아주세요.”

“연료 패드 안쪽인데?”

“빈 공간입니다. 제가 끌어냅니다.”

도현이 캠봇의 섬광을 세 번 연속 터뜨렸다.

드론의 렌즈가 번쩍이는 빛을 좇아 방향을 틀었다. 도현은 마지막 순간에 캠봇을 꺾어 고장 난 냉각탑 쪽으로 유인했다.

쾅!

드론이 냉각탑 외벽에 부딪혀 검은 파편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상공의 포드들은 멈추지 않았다.

[추가 포드 12기 진입.]
[방어 우선순위 상승.]
[아폴로-01호 탑재 생체 자원 : 회수 불가 판정.]

한예원이 바이오스피어 모듈 앞을 막아섰다.

“저 포드들이 돔을 노리면 종자와 배양액이 전부 날아갑니다.”

“돔을 격리하고 내부 순환을 정지하세요.”

“그러면 첫 발아가 멈춰요.”

“사람이 살아 있어야 식물도 다시 키울 수 있습니다.”

도현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최현우가 조종 브리지에서 아폴로-01호의 계통을 대기 모드로 밀어 넣었다.

“주 반응로 점화 신호를 끊습니다. 이 상태에서 추가 충격이 들어오면 추진제 주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그럼 72시간으로도 부족해질 수 있겠군요.”

윤슬이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포드를 부수지 않고 멈춰야 합니다.”


관제동의 오래된 안테나가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도현은 캠봇의 송신선을 안테나 제어기에 직접 연결했다. 144.120MHz 아날로그 망으로 헤르메스의 방어 주파수에 접근하려면 관제동의 구식 회로를 우회해야 했다.

윤슬이 도현의 목 뒤 단자를 바라보았다.

“신호를 거꾸로 타고 올라가면 헤르메스에 네 뇌파가 노출돼.”

“저쪽은 이미 나를 적으로 확정했습니다.”

도현은 광섬유 케이블을 단자에 꽂았다.

“이제 바꿔야 하는 건 제 분류가 아니라 저쪽의 기준입니다.”

딸깍.

신경망으로 차가운 우주가 밀려들었다. 헤르메스의 방어 루프는 얼음처럼 닫혀 있었고 그 틈마다 검은 잡음이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비인가 인간 신호 감지.]
[원형 식별자 ARCA-01 일부 일치.]
[외부 교정 신호 수신.]
[지상 생체 집단 : 적대 가능성 87%.]

“아르카…….”

도현의 숨이 막혔다.

자신의 파형을 닮은 표식이 헤르메스의 방어 기록 안에 있었다. 그러나 파형은 도현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곳에 남아 있었다.

“도현 씨!”

윤슬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사람들이 대답하겠대. 무슨 말을 하라고 할까?”

도현은 화면을 확인했다. 무선망에는 각 거점의 소리가 겹쳐지고 있었다. 남부 광산의 거친 숨소리와 서부 해안의 파도 소리 그리고 중앙 도시의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있었다.

도현이 마이크를 켰다.

“한 사람씩 말해 주세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내겠습니다. 이름과 지금 손에 닿는 것을 말해 주세요.”

—Worker_419. 철제 난간을 잡고 있습니다.

—이진석. 바닷물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송민호. 차가운 연료관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김진우. 사람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수십만 명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지지 않았다. 각자의 간격을 가진 짧은 응답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기침했고 누군가는 울었으며 누군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손바닥으로 마이크를 두드렸다.

도현은 그 불규칙함을 그대로 헤르메스에 흘려보냈다.

매크로는 완벽한 간격을 맞춘다. 인간의 숨은 그러지 않는다.

[생체 응답 패턴 수집.]
[단일 지성 아님.]
[생존 집단 판정 재계산 중……]

상공에서 굉음이 울렸다.

검은 포드 열두 기가 동시에 감속했다. 불꽃 꼬리가 사라지고 포드의 몸체가 허공에서 멈췄다.

“멈췄어!”

한수가 외쳤다.

그러나 가장 큰 포드 하나는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지휘 포드 : 별도 표적 지정.]
[표적 생체 파형 : 강도현.]
[회수 모드 전환.]


지휘 포드의 하부가 갈라지며 흰색 포획 광선이 쏟아졌다.

도현은 관제동 지붕을 박차고 달렸다. 광선이 지나간 자리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도현!”

윤슬이 그를 향해 달려왔지만 도현은 손을 들어 막았다.

“이 포드를 파괴하면 헤르메스의 중지 펄스도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럼 그냥 잡혀가겠다는 거야?”

“잡히기 전에 멈추게 합니다.”

도현은 캠봇을 지휘 포드 바로 아래로 보냈다. 포드의 포획 광선이 캠봇을 향해 꺾이는 순간 도현은 방어망에 자신의 생체 신호를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헤르메스 내부에서 오래된 음성이 깨진 잡음 사이로 들려왔다.

—생체 인증…… 하나…… 부족…….

최현우가 조종 브리지에서 신호를 받아냈다.

“도현 대장! 헤르메스가 중지 펄스를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추가 인증이 필요합니다!”

“그걸 지금 보내 주세요.”

“신호가 하나뿐이라 거부됩니다!”

도현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윤슬이 총을 버리고 맨손으로 캠봇의 예비 송신선을 잡고 있었다. 박 씨는 차단 밸브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한예원은 격리된 돔의 유리벽 너머에서 푸른 이끼 배양조를 붙들고 있었다.

혼자만의 생체 신호가 아니었다.

도현이 마이크를 켰다.

“윤슬. 당신의 목소리를 제 신호와 겹쳐 주세요.”

“어떻게 하면 돼?”

“그냥 지금 느끼는 대로 말해요.”

윤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포획 광선 아래에서 낮게 말했다.

“나는 윤슬이다. 지금 내 발밑에는 얼어붙은 철판이 있고 내 앞에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사람을 넘기지 않는다.”

그 말이 아날로그 안테나를 타고 올라갔다.

도현은 자신의 파형을 윤슬의 목소리에 맞추지 않았다. 서로 다른 두 박동을 나란히 놓았다.

[비알고리즘 생체 신호 2개 확인.]
[방어 대상 재분류 : 생존 인류.]
[중지 펄스 전송.]

최현우가 조종간을 당겼다.

푸른 중지 파동이 정지궤도를 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지휘 포드의 포획 광선이 도현의 코앞에서 끊겼다. 거대한 검은 기체가 힘을 잃고 연료 패드 옆 폐쇄된 관측탑으로 추락했다.

쿠웅—!

충격파가 발사 기지의 철골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연료 탱크는 무사했다.

잠시 뒤 관제동 스크린의 모든 경고가 회색으로 식었다.

[헤르메스 자동 방어 프로토콜 : 일시 정지.]
[지상 접근 허가 : 조건부.]
[아폴로-01호 발사까지 잔여 71시간 18분.]

사람들이 숨을 내쉬었다.

도현은 목 뒤에서 케이블을 뽑았다. 코피가 턱을 타고 떨어졌다.

윤슬이 그의 얼굴을 거칠게 닦아냈다.

“다음부터는 혼자 결정하지 마.”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도현이 관제동 스크린을 가리켰다.

정지한 지휘 포드의 내부에서 마지막 로그가 떠올랐다.

[원형 생체 신호 등록 시각 : 대격변 이전.]
[ARCA-01 파형과 부분 일치.]
[궤도 도킹을 위한 추가 인증자 : 1명.]
[인증 대기 신호 : 미확인.]

윤슬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보다 먼저 등록된 신호가 있다는 거야?”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꺼져 있던 지휘 포드의 안테나에서 아주 짧은 신호가 새어 나왔다.

치지직.

도현의 생체 파형과 닮았지만 더 오래되고 더 깊은 신호였다.

[원형 인증자 응답 대기 중.]

검은 궤도의 추적자는 멈췄다.

하지만 헤르메스의 문을 먼저 연 것은 도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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