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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방주의 심장
쿠구구구궁—!
육중한 10만 톤급 콘티넨털 하울러 01호가 45도 급경사의 인클라인 궤도를 거세게 짓밟으며 올라갔다.
차창 밖을 짙게 뒤덮고 있던 축축한 밤안개가 순식간에 양옆으로 갈라지며 발아래로 하얗게 내려앉았다.
대지를 덮었던 구름을 뚫고 올라선 순간 거짓말처럼 칠흑의 밤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해발 2,200미터 동부 고원 분지였다.
유리창 너머로 쏟아져 내릴 듯 반짝이는 은하수와 수억 개의 별빛이 하울러의 전면 장갑을 차갑게 비추었다.
"고원 진입 완료! 인클라인 감속선으로 들어간다!"
기관장 박 씨가 스로틀 레버를 당기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기적 소리와 함께 거대한 제동 플랩이 전개되며 궤도에서 시뻘건 마찰 불꽃이 튀었다.
치이익— 쾅!
하울러 01호가 프로젝트 아폴로 제1 발사 기지의 중앙 발사 패드 인입선에 정확히 멈춰 섰다.
운전실 조종석에서 화면을 주시하던 한수가 긴장된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 저길 보십시오!"
도현과 윤슬의 시선이 한수가 가리킨 차창 정면으로 향했다.
밤안개와 별빛이 교차하는 분지 한가운데에 거대한 거인이 우뚝 서 있었다.
전장 150미터에 달하는 행성 간 우주 방주 '아폴로-01'이었다.
백 년 전 인류가 멸망 직전 마지막 구원을 위해 쌓아 올렸던 거대한 은빛 선체가 높이 200미터 갠트리 타워의 철골에 안긴 채 기립해 있었다.
하부 추진 노즐에서는 영하의 냉기가 만들어낸 하얀 수증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선체 하단부의 핵융합 반응로는 심장처럼 푸르스름한 체렌코프 광을 깜빡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푸른빛은 결코 온화하지 않았다.
위잉— 삐비빅! 위잉—!
하울러 운전실 콘솔과 기지 관제탑에서 울리는 비상 경보음이 실내를 날카롭게 찢었다.
[경고 : 1차 플라스마 자기장 차폐 밸브 압력 불균형 심화.]
[현재 차폐 챔버 압력 : 임계치의 142%.]
[밸브 개폐율 : 78% 지점에서 물리적 고착.]
[잔여 제한 시간 : 41시간 12분.]
[경고 : 플라스마 노즐 손상 방지를 위한 핵융합 코어 영구 차단 시퀀스 대기 중.]
"압력이 계속 오르고 있어."
윤슬이 방한 재킷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며 소총을 고쳐 멨다.
"외부 온도는 영하 25도야. 밸브에 서린 얼음 때문에 모터가 타버리기 직전인 것 같아."
조종석 뒤편에 서 있던 최현우 중령이 굳은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의 손에는 백 년 전 자신이 목에 걸었던 티타늄 군번줄이 쥐여 있었다.
"백 년 동안 초저온 질소 배관이 얼어붙어 있었으니 기계식 밸브 축이 물려버린 겁니다. 원격 신호로는 절대 안 열려요. 현장에서 직접 밸브를 깨부수고 조종석에서 위상을 맞춰야 합니다."
최현우가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도현 대장, 서둘러야 합니다. 41시간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압력이 160%를 넘어서면 안전장치가 작동해 영구 봉인 모드로 들어갑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두 시간 남짓입니다."
"움직입시다."
도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의 어깨 위에서 푸른빛을 켠 캠봇이 회전익을 웅웅거리며 날아올랐다.
치이이익—!
하울러의 측면 승강문이 열리자 해발 2,200미터 고원의 매서운 칼바람이 들이닥쳤다.
살을 에는 듯한 냉기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가 아려왔다.
도현과 윤슬, 최현우와 한예원, 그리고 남부의 특수 장비를 짊어진 박 씨가 얼어붙은 콘크리트 패드를 박차고 달렸다.
발사 패드 중앙에 기립한 아폴로-01호의 갠트리 타워 승강기에 올라타자마자 최현우가 비상용 키카드를 단말기에 꽂았다.
덜컹거리며 상승한 승강기가 지상 60미터 높이의 제7 브리지에 도달했다.
"한예원 연구원은 LCC 관제실로 가서 생명 유지 장치의 바이오 텔레메트리를 감시하십시오! 도현 대장과 윤슬 대원은 나와 함께 선체로 들어갑니다!"
최현우가 지시를 내리며 방폭 해치를 밀어젖혔다.
푸슈우우욱!
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아폴로-01호의 에어록이 열리며 뽀얀 극저온 증기가 쏟아져 나왔다.
내부는 광활했다.
어두컴컴한 비상등 불빛 아래로 수만 명의 인류가 탑승할 수 있는 동면 모듈 구역과 복잡한 초전도 도관들이 끝없이 뻗어 있었다.
중앙 계단을 타고 올라선 곳은 선체 최상단의 메인 조종 브리지였다.
백 년 전 최현우가 마지막으로 손을 얹었던 바로 그 조종석이었다.
먼지 하나 없이 진공 밀폐되어 있던 콘솔 위로 최현우의 손가락이 떨리며 내려앉았다.
탁! 타다닥!
메인 전원 레버를 올리자 조종석 전면의 파노라마 홀로그램 스크린이 일제히 점등되었다.
[프로젝트 아폴로 시스템 복구.]
[환영합니다, 선임 시험비행사 최현우 중령.]
기계음이 울려 퍼지자 최현우의 눈가에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었다.
화면 한가운데에 선체 외부 1차 차폐 매니폴드의 붉은색 결함 경고가 깜빡이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외곽 제3 추진 노즐 상단, 지상 60미터 갠트리 브리지와 맞닿은 외부 매니폴드 밸브입니다."
최현우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초저온 액체 질소가 누출되어 지름 1미터짜리 티타늄 휠 전체가 얼음 덩어리가 되었어요. 게다가 저 밸브 안쪽에는 3만 암페어의 플라스마 유도 자기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억지로 돌리는 순간 역기전력이 발생해 작업자를 감전시킬 겁니다."
"그 역기전력은 제가 받아내겠습니다."
도현이 목 뒤의 신경 단자를 매만지며 나섰다.
"제 신경 동화율로 과전류를 우회시키고 하울러의 초전도 접지 케이블로 흘려보내면 밸브를 돌릴 수 있습니다."
"도현 씨, 그건 엄청난 충격이야!"
윤슬이 도현의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3만 암페어면 뇌신경이 타버릴 수도 있어!"
"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도현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어깨 위의 캠봇을 바라보았다.
144.120MHz 무선 통신망 너머로 수십만 명의 숨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울러의 박 씨 선배님과 한수가 접지선을 잡아줄 테고 최현우 비행사님이 조종석에서 위상을 제어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100만 명의 동료들이 보고 있습니다. 실패하지 않습니다."
최현우가 조종간을 단단히 쥐며 도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조종석에서 차폐 역위상 펄스를 쏘겠습니다. 펄스가 터지는 0.5초의 영점 구간에 밸브를 영점 락 위치로 밀어 넣어야 합니다. 타이밍이 빗나가면 노즐이 폭발합니다."
"신호만 주십시오."
도현이 몸을 돌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외부 갠트리 브리지로 뛰어나갔다.
휘이이이잉—!
지상 60미터의 허공.
고원의 밤바람은 갠트리 타워의 철골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발아래로는 까마득한 어둠 속에 하울러 01호의 전조등만이 두 개의 거대한 빛기둥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외벽 매니폴드 앞에는 사람 키만 한 티타늄 밸브 휠이 두꺼운 청백색 얼음에 파묻혀 있었다.
영하 190도의 초저온 얼음이었다.
지지직— 콰르릉!
얼음 틈새로 푸른 플라스마 불꽃이 튀며 허공으로 보랏빛 스파크를 흩뿌렸다.
"윤슬, 안전 로프 결속해!"
박 씨가 남부 광산에서 가져온 특수 초내열 합금 쇠지렛대 두 개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도현 대장, 하울러 발전실에서 끌어올린 10만 볼트 초전도 접지 케이블이다! 차체 하부 접지 말뚝에 완전히 물려 놨어!"
도현은 두꺼운 방한 장갑을 벗어 던졌다.
맨손으로 케이블 단자를 쥐고 신경 단자의 접속 핀을 매니폴드 바이패스 포트에 강제로 찔러 넣었다.
찌릿—!
날카로운 전자기 펄스가 도현의 목덜미를 타고 척수를 강타했다.
[신경 동화율 : 99.2%.]
[외부 플라스마 자기장 위상 감지 중.]
[현재 오차율 : +24.8 도. 임계 한계 도달 중.]
"크윽……!"
도현의 턱관절이 부서질 듯 맞물렸다.
눈앞의 시야가 푸른 노이즈로 일렁거렸다.
얼어붙은 매니폴드 내부에서 날뛰는 수억 개의 플라스마 입자가 도현의 신경망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것은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번개의 심장이었다.
"얼음을 깬다!"
박 씨와 윤슬이 동시에 초내열 지렛대를 얼음 덩어리 틈새에 박아 넣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꺾었다.
쩌저적! 콰직!
백 년 동안 굳어 있던 얼음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틈으로 도현이 초전도 케이블을 밀어 넣고 99% 동화율로 전도성을 극대화했다.
지지지직—!
케이블을 타고 푸른 섬광이 하울러를 향해 굵은 줄기를 이루며 쏟아져 내렸다.
—무선 헤드셋에서 최현우의 날카로운 음성이 터져 나왔다.
—도현 대장! 조종석 역위상 카운트 들어갑니다!
—차폐 코일 전압 최고조!
—3!
—2!
—1!
—지금이다! 밸브를 돌려요!
쿠구구구구궁!
아폴로-01호의 선체가 비명을 지르듯 진동하며 매니폴드 안쪽에서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섬광이 폭발했다.
엄청난 플라스마 역기전력이 도현의 팔과 척추를 타고 역류했다.
"으아아아악!"
도현의 입에서 핏빛 비명이 터져 나왔다.
팔의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뇌수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이 덮쳐왔다.
하지만 도현의 손은 얼어붙은 티타늄 휠을 놓지 않았다.
"도현 씨 혼자가 아니야!"
윤슬이 도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밸브 휠의 한쪽 손잡이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우리가 함께 돌린다!"
박 씨 역시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반대편 손잡이에 매달렸다.
144.120MHz 무선망을 통해 대륙 전역에서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절규와 응원이 도현의 귓전을 때렸다.
—돌려라!
—인간의 힘을 보여줘!
—우리의 별을 열어젖혀라!
도현의 신경망 속으로 수십만 명의 심장 박동이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려들었다.
가짜 100만이 아닌 지금 이 순간 함께 숨 쉬고 있는 진짜 인간들의 온기였다.
고통이 긍지로 바뀌었다.
"으오오오오옷—!"
도현이 터져 나오는 괴성과 함께 척추를 곧게 펴며 온 힘을 다해 휠을 비틀었다.
끼기기긱— 콰아아앙!
백 년 동안 굳어 있던 티타늄 기어가 거친 마찰음을 토해내며 회전했다.
반 바퀴, 한 바퀴, 마침내 밸브가 완벽한 영점 락 슬롯에 둔탁하게 맞아떨어졌다.
철커덕!
정적이 찾아왔다.
타워를 뒤흔들던 날카로운 고주파 소음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위이이잉…… 웅— 웅— 웅—.
대신 선체 깊은 곳에서부터 낮고 웅장한 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성난 괴물의 비명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핵융합 플라스마가 거대한 자기장 터널을 순환하며 내는 부드럽고 장엄한 심장 박동이었다.
조종석 홀로그램 화면의 적색 경고가 일제히 녹색으로 반전되었다.
[1차 플라스마 자기장 차폐 밸브 정상 동조 완료.]
[위상 오차율 : 0.00%.]
[핵융합 반응로 출력 안정화 : 정격 100%.]
[비상 봉인 시퀀스 영구 해제.]
—해냈다……!
무전기 너머에서 최현우 중령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현 대장, 반응로가 안정되었습니다! 아폴로-01호가 완전히 깨어났습니다!
파아아앗—!
순간 전장 15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우주 방주의 선체 전역에 찬란한 조명이 단계별로 켜지기 시작했다.
하부 추진 노즐의 냉각 링에서부터 승무원 거주 구역, 그리고 선체 정중앙에 자리 잡은 거대한 투명 돔에 이르기까지 에메랄드빛 불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갠트리 브리지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던 도현과 윤슬, 박 씨의 얼굴 위로 따스한 빛이 내려앉았다.
도현의 손바닥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나 그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성공했군요."
"그래…… 우리가 해냈어."
윤슬이 눈물을 훔치며 방주의 거대한 동체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선체 중앙의 거대한 투명 돔, '바이오스피어 돔'의 두꺼운 장갑 셔터가 좌우로 서서히 열려젖혀졌다.
그 안에는 축구장 두 개 크기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 생태계가 펼쳐져 있었다.
LCC 관제실에서 한예원 연구원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교신을 보내왔다.
—서부에서 가져온 고에너지 바이오 플랑크톤 종자와 극한지 이끼 배양액을 1차 순환조에 성공적으로 투입했습니다!
위이이잉—!
바이오스피어 돔 천장에 설치된 구시대 인공 태양 램프가 황금빛으로 밝아졌다.
돔 내부의 스프링클러에서 미세한 수증기 안개가 피어오르며 바닥의 검은 배양토와 수로를 적셨다.
백 년 만에 우주선 안에서 진짜 물이 흐르고 푸른 이끼가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었다.
도현이 난간을 짚고 일어섰다.
캠봇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에메랄드빛과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150미터 우주 방주의 전경을 조망했다.
[144.120MHz 광역 생방송 송출 중.]
[실시간 청취 및 접속 인원 : 1,000,000명 돌파.]
도현이 마이크를 쥐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올려다보았다.
"중앙 도시의 시민 여러분, 그리고 대륙의 모든 동료 여러분."
도현의 목소리가 전 대륙의 라디오와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우리는 방금 백 년 동안 멈춰 있던 우주 방주 아폴로-01호의 심장을 우리 손으로 다시 뛰게 만들었습니다."
도현이 선체의 거대한 은빛 외벽을 손으로 짚었다.
"이 배는 몇몇 선택받은 자들만의 탈출선이 아닙니다. 땅을 일구고 물을 지켜낸 인간들이 저 별들의 바다로 손을 뻗는 희망의 닻입니다. 우리는 대지를 회복하는 동시에 저 광활한 하늘을 향해 당당히 걸어갈 것입니다."
치지지직—!
무선망 너머에서 남부의 거친 광부들과 서부의 어민들, 동부의 연구원들, 그리고 중앙 도시 62만 시민들의 폭발적인 환호성이 대륙을 뒤흔들었다.
가짜 매크로 100만의 거짓된 방에서 시작되었던 도현의 방송이 이제 진짜 인간들과 함께 별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삐비빅— 삐빅!
조종석의 최현우 중령으로부터 다급하고도 떨리는 통신이 날아들었다.
—도현 대장, 방주의 심우주 장거리 통신 안테나가 정상화되자마자 믿을 수 없는 신호가 잡혔습니다!
"신호라고요?"
—지구 정지궤도 3만 6천 킬로미터 상공입니다! 대격변 당시 침묵했던 구시대 우주 궤도 정거장 '헤르메스'로부터 자동 암호화 응답 펄스가 수신되었습니다!
스크린 위로 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궤도 정거장의 좌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별을 향한 인류의 두 번째 문이 저 아득한 우주의 장막 너머에서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