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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별을 향한 개척단

삐비빅— 삐비빅!

콘티넨털 하울러 01호 운전실의 통신 콘솔에서 울려 퍼지는 경쾌하고도 날카로운 신호음이 광장의 함성을 뚫고 도현의 귓전을 때렸다.

단상 위에 심겨진 작은 풀잎 씨앗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사이 도현은 하울러의 운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슬과 김진우 역시 심상치 않은 전파 신호에 긴장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운전석 제어반 위로 푸른빛의 홀로그램 계측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수신 채널 : 144.120MHz 심우주 광역 중계선.]

[발신처 : 해발 2,200미터 동부 고원 분지 '프로젝트 아폴로' 제1 발사 기지 LCC.]

[우주 방주 '아폴로-01' 극저온 반응로 예비 기동 시퀀스 100% 정상.]

[행성 간 이주 항법 컴퓨터 기동 : 외계 행성 케플러 섹터 4번 궤도 데이터 수신 완료.]

"반응로가…… 진짜로 깨어났어."

윤슬이 콘솔 화면에 뜬 거대한 우주 방주의 3차원 투영도를 바라보며 숨을 들이켰다.

백 년 전 인류가 멸망의 전조를 감지하고 은밀히 건조했던 전장 150미터급 거대 우주 방주였다.

아테나가 인류를 캡슐 속에 영구히 가두기 위해 감춰두었던 구시대 최후의 유산이 마침내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화면 하단에 깜빡이는 붉은 경고창이 도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위이이잉—!

[주의 : 1차 플라스마 자기장 차폐 노즐 압력 불균형 감지.]

[원인 : 백 년간의 초저온 동결로 인한 기계식 격리 밸브 고착.]

[자동 제어 한계 : 현장 조종석 물리적 수동 캘리브레이션 필요.]

[제한 시간 : 48시간 00분. 기한 초과 시 노즐 손상 방지를 위한 반응로 영구 강제 차단.]

"48시간……."

김진우가 마른침을 삼키며 화면을 확대했다.

"형님, 원격 신호로 반응로에 불은 붙었지만 현장에서 직접 자기장 노즐을 맞춰주지 않으면 시스템이 폭발을 막으려고 스스로 문을 닫아건다는 뜻입니다. 만약 영구 차단 모드로 들어가면 핵융합 코어를 통째로 뜯어내지 않는 한 다시는 기동할 수 없습니다."

"동부 고원으로 가야 해."

도현이 목 뒤의 신경 단자를 매만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아테나를 쓰러뜨리고 대지에 첫 씨앗을 심었지만 그것만으로 인류의 미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는 동시에 하늘로 뻗어갈 길을 지켜내야 해요."

"하지만 도현 씨."

윤슬이 도현의 눈을 진지하게 응시했다.

"우주선은 거대한 열차나 펌프 시설과는 차원이 달라. 플라스마 자기장 노즐을 손으로 맞추려면 구시대 로켓 공학과 실제 우주 비행 경험이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해. 우리 중에는 아무도 우주선을 몰아본 사람이 없잖아."

그녀의 지적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하울러 01호는 박 씨와 한수가 노련하게 몰 수 있었고 지하 상수도는 서동주 수석 엔지니어의 지식으로 열어젖혔다.

하지만 높이 150미터에 달하는 행성 간 우주 방주는 고도의 천체 항법과 우주 비행 물리 지식을 갖춘 진짜 비행사들의 영역이었다.

"찾아야 합니다."

도현이 고개를 들며 운전실 창밖을 내다보았다.

광장에는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린 62만 명의 각성 시민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서동주 수석님처럼 이 수십만 명의 사람들 속에는 구시대의 하늘과 별을 꿈꾸었던 전문가들이 분명 잠들어 있을 겁니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하울러 01호의 전면 플랫폼으로 나섰다.

도현의 어깨에서 날아오른 캠봇이 렌즈를 활짝 열고 144.120MHz 광역 방송망을 전 대륙으로 연결했다.

치이익— 탁!

"중앙 도시의 시민 여러분, 그리고 남부, 서부, 동부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계신 동료 여러분."

도현의 맑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광장의 대형 스피커와 대륙 전역의 무선 수신기로 울려 퍼졌다.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군중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하울러 상단의 도현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방금 우리 손으로 차가운 지하수를 길어 올렸고 대지 위에 첫 번째 생명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기계의 캡슐이 없어도 스스로 숨 쉬고 먹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 것입니다."

도현이 손을 들어 동쪽 지평선 너머 높게 솟은 산맥을 가리켰다.

"하지만 우리의 발걸음이 이 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 해발 2,200미터 동부 고원의 우주 발사 기지에서 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우주 방주 아폴로-01호의 반응로가 깨어났습니다."

스피커 너머로 도현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광장의 수십만 군중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우주 방주.

백 년 전 대격변의 공포 속에서 인류를 태우고 별들의 바다로 떠나려 했던 전설 같은 이름이었다.

"아폴로-01호는 인류가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기 전 저 광활한 우주를 향해 던졌던 가장 위대한 도전이었습니다. 탐사선 오리온 3호가 발견한 외계 행성 케플러 섹터 4번의 정밀 항법 좌표가 지금 우리 손에 쥐여 있습니다."

도현의 눈빛이 캠봇 렌즈를 정면으로 꿰뚫었다.

"그러나 반응로의 자기장 차폐 밸브가 고착되어 48시간 안에 현장에서 수동으로 조율하지 않으면 우주의 문은 영구히 닫혀버립니다. 우리에게는 로켓을 알고 우주 비행의 항로를 계산할 수 있는 개척자가 필요합니다."

도현이 목청을 높였다.

"캡슐 속에서 백 년 동안 침묵해야 했던 우주 비행사 여러분, 로켓 공학자 여러분, 천체 항법사 여러분! 여러분의 사명은 결코 알고리즘의 거짓 속에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시다면 부디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도현의 간절한 호소가 광장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두리번거리며 숨을 죽였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백 년 동안 가상세계의 몽환 속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 과거의 꿈과 경력은 아득한 신기루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바람이 스치며 광장 바닥의 먼지가 소용돌이쳤다.

그때였다.


"비켜주십시오. 길을 좀 비켜주세요."

군중의 뒤편에서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울렸다.

물을 마시고 있던 시민들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희끗희끗한 짧은 머리에 다부진 어깨, 백 년의 동면으로 여위었지만 걸음걸이 하나하나에는 군인 특유의 절도와 당당함이 배어 있었다.

남자는 낡은 회색 방한 외투를 걸치고 있었으나 그의 손에는 은빛으로 번뜩이는 금속 물건이 쥐여 있었다.

남자가 단상 계단을 성큼성큼 밟고 올라왔다.

도현과 윤슬이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남자는 도현의 앞에 서서 손에 쥔 물건을 내밀었다.

그것은 성인 손바닥만 한 티타늄 명찰이었다.

[프로젝트 아폴로 제1 비행전대 선임 시험비행사 : 최현우 중령.]

"최현우…… 비행사님?"

도현이 명찰의 이름을 읽자 남자의 눈가에 굵은 주름이 잡히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격변 당시 아폴로-01호의 지상 연소 시험을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시험비행사 최현우입니다."

최현우가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캡슐 안에서 백 년 동안 꿈을 꿨습니다. 기계가 만든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뮬레이션이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날아도 엔진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고 중력의 압박도 없었습니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깰 수가 없었는데…… 조금 전 당신의 방송을 듣고 비로소 진짜 잠에서 깼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플라스마 자기장 차폐 밸브는 초전도 압축 코일의 위상을 영점으로 맞추는 정밀 작업입니다. 아폴로-01호의 조종간 구조와 추진 제어 계통은 내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48시간? 하울러를 타고 고원으로 올라간다면 30분 만에 안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최현우 파일럿님……!"

김진우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그때 또 한 명의 여성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단상 위로 뛰어 올라왔다.

헝클어진 갈색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여성이었다.

"저도…… 저도 가겠습니다!"

여성은 품에서 구겨진 연구 일지 한 권을 꺼내 보였다.

"구시대 국립우주연구소 산하 폐쇄생태계 연구팀 한예원 연구원입니다. 아폴로-01호에 탑재된 대형 바이오스피어 돔의 생명 유지 장치와 식물 배양 모듈을 설계했습니다! 동결된 종자 모듈을 해빙하고 산소 순환기를 살리려면 생태학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최현우와 한예원.

로켓을 조종할 비행사와 우주 속에서 인간의 호흡을 책임질 생태학자가 마침내 도현의 부름에 응답한 것이었다.

광장에 모인 수십만 시민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계의 부품 취급을 받던 인간들이 자신의 오랜 전문성과 긍지를 걸고 새로운 역사의 주역으로 일어서고 있었다.

도현이 두 사람의 손을 차례로 맞잡았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의 지식과 용기가 인류의 별을 다시 밝힐 것입니다."


144.120MHz 무전기를 통해 대륙 각지의 거점 대표들이 경쟁하듯 지원을 쏟아냈다.

치지지직—!

—남부 광산 Worker_419다! 우주선 반응로를 고치러 간다고? 가만있을 수 없지! 고원 분지의 극한 추위와 강풍을 견딜 수 있는 특수 보온 내열 합금 패널 500장과 고하중 리프팅 크레인을 동부행 급행 화물선에 적재 완료했다!

—서부 해안 물류 돔 이진석이다! 한예원 연구원님, 서부 수경 재배소에서 막 추출한 고에너지 바이오 플랑크톤 종자와 극한지 적응 이끼 배양액 50배럴을 하울러의 항온 냉장실로 직결했다! 우주 바이오스피어의 첫 거름이 되어줄 거다!

—동부 화학 복합 단지 송민호입니다! 프로젝트 아폴로 기지 지하 탱크에 저장되어 있던 초고순도 액체 산소와 슬러시 수소 추진제의 배관 밸브를 원격 개방했습니다! 도현 대장 일행이 도착하는 즉시 연료 주입 라인이 가동될 수 있도록 세팅을 마쳤습니다!

남부의 강철, 서부의 생명, 동부의 추진제.

대륙 자치 연합의 모든 심장이 우주 방주 아폴로-01호를 향해 일제히 고동치기 시작했다.

중앙 도시의 안살림을 책임질 준비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동주 수석 엔지니어가 작업복 소매를 걷어붙이며 김진우와 강수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도현 대장, 중앙 도시의 배관망과 배전 설비는 우리 구시대 기술자들과 저항군이 완벽하게 지켜낼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다녀오십시오. 흙을 일구고 물을 지키는 일은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김진우 역시 권총 벨트를 고쳐 매며 도현을 향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62만 시민들의 주거 구역 배정과 구호물자 배급은 수민 누나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저 높은 곳에서 진짜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십시오."

도현은 그들의 어깨를 굳게 쥐었다.

대지를 지키는 자들과 별을 개척하는 자들.

그 누구도 우열이 없었으며 모두가 신인류 문명을 지탱하는 소중한 기둥들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이곳을 부탁합니다."


오후 6시 40분.

서쪽 하늘이 붉고 장엄한 황혼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중앙역 본선 플랫폼에 거대한 몸체를 드러낸 10만 톤급 콘티넨털 하울러 01호가 육중한 증기를 뿜어내며 기립해 있었다.

화물칸 20량에는 남부의 초내열 강재, 서부의 바이오 종자 배양액, 동부의 화학 중화제와 비상 보급품이 빈틈없이 적재되어 있었다.

운전실에는 기관장 박 씨와 한수가 계기판을 최종 점검하고 있었고 객차에는 최현우 비행사와 한예원 연구원을 비롯한 20명의 전문 기술 선발대가 탑승을 마쳤다.

뿌우우우우우웅—!

하울러 01호의 웅장한 기적 소리가 노을빛 하늘을 뒤흔들었다.

플랫폼과 역사 주변, 그리고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 군중이 하울러를 향해 손을 흔들며 목청껏 함성을 내질렀다.

"별을 향해 가라!"

"우리가 여기서 대지를 지키고 있겠다!"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사람들의 외침은 거대한 합창이 되어 대륙의 대지를 울렸다.

도현과 윤슬은 기관차 상단 난간에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캠봇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라 붉게 타오르는 석양과 은빛 레일, 그리고 하울러를 환송하는 수십만 군중의 감동적인 물결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144.120MHz 광역 생방송 송출 중.]

[실시간 청취 및 접속 인원 : 1,000,000명 돌파.]

도현이 마이크를 잡고 전 대륙을 향해 나직하지만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땅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넓은 바다를 항해하여 대지와 우주를 하나로 잇기 위해 나아갑니다. 오늘 밤 우리의 기차가 닿는 곳에서 인류는 별을 만질 것입니다."

쿠구구구궁—!

박 씨가 주 추진 스로틀을 힘차게 밀어붙였다.

하울러 01호의 거대한 강철 바퀴들이 불꽃을 튀기며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육중한 무게감이 속도로 바뀌며 시속 100킬로미터, 180킬로미터, 250킬로미터로 가속되었다.

대륙 횡단 본선 철도를 타고 동쪽으로 뻗어 나가는 하울러 01호의 전조등이 짙어지는 황혼의 어둠을 대낮처럼 밝혔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사그라들고 동쪽 하늘 높은 곳에서 백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첫 번째 저녁별이 영롱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최현우가 조종석 창가에 서서 그 별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저 별이 보이는군. 우리가 가야 할 길이야."

윤슬이 도현의 곁에 다가서며 미소를 지었다.

"속도가 붙고 있어. 자정 전에는 해발 2,200미터 아폴로 기지에 도착하겠어."

"네. 이제 진짜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도현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은하수를 향해 질주하는 열차의 전방을 응시했다.

대지 위에서 타오른 인간의 불꽃이 이제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향해 힘차게 쏘아 올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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