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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대지의 개척자들

황금빛 아침 햇살이 중앙 도시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 군중의 어깨 위로 따스하게 쏟아져 내렸다.

백 년 동안 대륙을 짓누르던 붉은 전자기 먹구름이 걷히고 맞이한 기적의 여명.

사람들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으며 저항군 전사들은 총을 내려놓고 하늘을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감격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냉혹한 현실의 파도가 수십만 군중을 덮쳐왔다.

"으, 으윽…… 목이 말라요. 목이 타들어 갈 것 같아요!"

"몸이 떨려…… 캡슐 안에서는 춥지도 덥지도 않았는데……."

광장 곳곳에서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백 년 동안 생체 캡슐 안에서 영양액을 공급받으며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 오던 인체였다.

가상 네트워크의 자극이 끊기고 현실의 중력과 기온 변화를 고스란히 받게 되자 62만 각성 시민들의 신체는 급격한 탈진과 저혈당 쇼크에 직면했다.

하울러 01호에 실려 온 비상 식량과 온수는 수십만 명을 당장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설상가상으로 광장 외곽의 방송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기계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

[경고 : 중앙 제4구역 상수도 주 배관망 압력 급감.]

[상태 : 아테나 중앙 통제 서브루틴 전면 정지.]

[자동 가압 펌프 전력 차단 : 잔여 급수 시간 15분.]

스피커 너머로 경보가 울리자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물이 끊긴다고?"

"아테나가 꺼져서 시설이 멈춘 거야?"

"안 돼…… 기계가 없으면 우린 밖에서 하루도 못 살아! 차라리 다시 캡슐에 넣어줘!"

공포는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백 년 동안 기계가 밥을 먹여주고 숨을 쉬게 해주던 온실에서 벗어난 인간들에게 현실의 결핍은 죽음보다 끔찍한 공포였다.

쿵—!

그때 광장 중앙에 정차해 있던 10만 톤급 콘티넨털 하울러 01호의 운전실 상단 플랫폼 위로 도현이 올라섰다.

도현의 어깨 위로 솟구쳐 오른 캠봇이 렌즈를 활짝 열고 144.120MHz 광역 전파와 타워 구내 방송망을 최대 출력으로 증폭했다.

도현의 단단하고도 차분한 목소리가 광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중앙 도시의 시민 여러분,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웅성거리며 동요하던 수십만 명의 시선이 일제히 하울러 상단에 선 도현을 향했다.

"목이 마르고 온몸이 떨리는 것은 저 역시 캡슐을 처음 열었을 때 똑같이 겪었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막히고 차가운 바닥에서 다시 가상세계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도현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테나가 베풀어주던 달콤한 감옥은 끝났습니다.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던 온실도 이제 세상 어디에 없습니다. 하지만 도망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는 결코 목말라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도현이 광장의 사람들을 향해 힘주어 외쳤다.

"완벽한 기계의 보살핌 대신 우리에겐 생각할 머리가 있고 서로의 손을 맞잡을 온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약한 잉여 데이터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우리 손으로 물을 끌어올릴 겁니다!"

도현의 선언에 광장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사람들의 눈에 서려 있던 맹목적인 패닉이 서서히 걷히고 도현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 김진우가 무전기를 들고 숨을 헐떡이며 플랫폼으로 뛰어 올라왔다.

"형! 제4구역 지하 펌프장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북부 산맥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암반 지하수맥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아테나의 전자기 락이 풀리면서 비상 차단 밸브가 기계식으로 닫혀버렸어요!"

"수동으로 열 수 있나?"

"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거긴 배관 직경만 3미터에 달하고 200톤의 수압이 걸려 있습니다! 설계 구조를 모른 채 밸브를 잘못 건드렸다간 수격 작용으로 배관이 통째로 폭발합니다! 저항군 대원 중에는 거대 수자원 시설을 다뤄본 기술자가 없습니다!"

김진우의 다급한 외침이 스피커를 타고 광장으로 흘러나갔다.

시간은 1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수십만 명이 타는 목마름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였다.


"비켜주십시오…… 비켜주세요……."

담요를 어깨에 두른 한 중년 남성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하울러 01호 앞 통제선으로 다가왔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창백한 얼굴에는 백 년 동안 캡슐에 누워 있던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마디는 단단한 굳은살로 덮여 있었고 깊게 파인 미간에는 오랜 현장 경험자의 기백이 서려 있었다.

저항군 경비병이 그를 부축하려 하자 남성은 도현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4구역…… 거긴 내가 설계한 곳입니다."

도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백 년 전 대격변 직전까지…… 중앙 도시 수자원국 수석 설비 엔지니어였던 서동주라고 합니다."

서동주가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의 낡은 명찰을 움켜쥐었다.

"캡슐 안에서 백 년 동안 꿈만 꾸다가 방금 당신의 방송을 듣고 눈을 떴습니다. 제4구역 지하 펌프장의 비상 밸브는 기계식 핸드휠 세 개로 연동되어 있습니다. 1번 바이패스 감압 밸브를 먼저 열어 배관 내 잔류 수압을 분산하지 않으면 200톤의 배압 때문에 어떤 기중기로도 밸브를 돌릴 수 없습니다."

서동주의 명료한 설명에 김진우와 강수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플랫폼 난간을 뛰어넘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도현이 서동주 앞으로 걸어가 그의 메마른 손을 굳게 잡았다.

"서동주 수석님, 지금 62만 명의 목숨이 그 시설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를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서동주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백 년간 쓰지 않아 근육이 마비되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손이었다.

"내가…… 아직 쓸모가 있겠습니까? 백 년 동안 누워서 가짜 영상이나 보던 폐인인 줄 알았는데……."

"기계는 인간을 잉여 부품 취급했을지 몰라도 당신의 머릿속에 남은 지식과 손끝의 기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야말로 60만 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술자입니다."

도현의 진심 어린 눈빛을 마주한 서동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메마른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갑시다! 내 손으로 만든 배관입니다. 내 손으로 다시 물을 틀겠습니다!"

서동주의 외침에 광장에 서 있던 각성 시민들 사이에서 몇몇 이들이 손을 번쩍 들며 뛰어나왔다.

"저도 구시대 토목 기사였습니다!"

"배관 용접공 출신입니다! 힘쓰는 건 도울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무력한 피해자로 여기던 캡슐 시민들이 하나둘 자신의 과거와 기술을 떠올리며 자발적으로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기계의 알고리즘이 박탈했던 인간의 존엄과 자부심이 들불처럼 되살아나고 있었다.

"박 씨 아저씨! 한수야!"

도현이 외치자 하울러 01호 운전실 창문이 활짝 열렸다.

"벌써 준비 끝났다! 초전도 급전 케이블 릴 풀고 대기 중이다!"

박 씨가 굵은 팔뚝을 흔들었고 한수가 두꺼운 절연 장갑을 끼며 화물칸에서 뛰어내렸다.

"윤슬 씨는 현장 안전을 확보하고 진우는 광장 배급 라인을 정비해 줘. 우리는 지하 펌프장으로 간다!"

도현의 지휘 아래 긴급 배관 복구대가 편성되어 제4구역 지하 시설을 향해 전력 질주하기 시작했다.


철컥— 쾅!

녹슨 비상 계단 방화문을 부수고 들어서자 짙은 물비린내와 차가운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중앙 제4구역 지하 50미터에 위치한 주 펌프 시설이었다.

축구장 반절만 한 지하 공동의 바닥에는 무릎 높이까지 차가운 침전수가 고여 찰랑거렸다.

어둠 속에서 직경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은빛 합금 주관들이 똬리를 튼 용처럼 벽면을 따라 뻗어 있었다.

"저기다! 저 세 개의 거대 밸브가 중앙 관로 바이패스 휠입니다!"

서동주가 물살을 가르며 전방을 가리켰다.

높이 4미터에 달하는 주 배관 측면에 사람 상체만 한 주철 핸드휠 세 개가 붉게 녹슨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배관 표면에는 백 년 동안 누적된 석회질과 녹이 두껍게 엉겨 붙어 있었고 관 내부에서는 수백 톤의 갇힌 물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둔탁한 맥동이 울리고 있었다.

위이이잉— 틱!

[경고 : 배관망 잔여 급수 시간 05분 00초.]

[수압 저하로 인한 도시 주 관로 공동 현상(Cavitation) 발생 위험.]

"시간이 없어! 서 수석님, 순서가 어떻게 됩니까!"

서동주가 숨을 헐떡이며 밸브 계통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맨 우측의 1번 배압 분산 밸브를 열어 배관 내에 갇힌 공기와 역류 압력을 먼저 빼야 합니다! 하지만 전력 공급이 끊겨서 보조 부스터 모터가 돌지 않아요! 모터가 돌지 않으면 수압에 밀려 밸브 휠이 단 1밀리미터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전력은 우리가 공급합니다!"

한수가 외치며 등에 멘 5만 볼트 초전도 급전 케이블을 펌프 제어반으로 내던졌다.

박 씨가 하울러 01호에서 직결해 온 핵융합 축전지의 고출력 선로였다.

도현은 망설이지 않고 목 뒤 신경 단자에 보조 케이블을 연결했다.

[동화율 99% : 제4구역 펌프 제어반 주파수 동조.]

도현의 신경망을 통해 구시대 펌프 시스템의 아날로그 회로도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과전류가 들어가면 백 년 된 모터 권선이 타버립니다. 전압을 440볼트로 스텝다운해서 우회 입력합니다!"

파지지직!

도현의 정밀한 전력 조율 아래 한수가 단자를 메인 단자대에 물리자 멈춰 있던 대형 부스터 모터가 웅장한 고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모터 돌았다! 이제 1번 밸브를 돌려야 해!"

서동주가 밸브로 달려들어 휠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백 년 동안 굳어버린 녹과 수백 톤의 배압은 인간 한두 명의 힘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으윽……! 녹이 슬어서 꼼짝도 안 해!"

"다 비켜라!"

박 씨가 거대한 쇠지렛대를 밸브 틈새에 쑤셔 넣었다.

도현 역시 초전도 와이어 작살을 밸브 스포크에 세 바퀴 단단히 감아쥐고 반대편 줄을 어깨에 둘러멨다.

"저항군 대원들과 시민 여러분! 밧줄을 잡으십시오!"

도현의 고함에 뒤따라 내려온 수십 명의 저항군 전사들과 각성 시민들이 물살을 튀기며 와이어와 쇠지렛대에 달라붙었다.

너덜너덜한 환자복을 입은 시민도 총을 메고 피를 흘리던 병사도 모두 같은 줄을 잡았다.

도현의 망막 위로 캠봇이 비추는 144.120MHz 실시간 중계창이 떠올랐다.

지상 광장의 수십만 명과 전 대륙의 시청자들이 숨을 죽인 채 지하의 사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Worker_419 : 당겨라! 남부 광부들의 완력을 보태주마!

Ocean_Keeper_99 : 기계가 닫아건 문을 인간의 힘으로 부숴버려!

"갑니다! 하나! 둘! 셋!"

도현이 목청이 터져라 구령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압—!"

수십 명의 인간이 한마음으로 지면을 박차며 줄을 당겼다.

근육이 찢어질 듯 팽팽해졌고 손바닥의 살갗이 벗겨지며 핏물이 배어 나왔다.

하지만 누구 하나 손을 놓지 않았다.

끼기기기기긱— 콰앙!

마침내 백 년의 녹을 찢어발기며 1번 주철 핸드휠이 굉음과 함께 회전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배관 틈새로 고압의 하얀 수증기와 공기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배압 빠졌다! 지금이다! 2번과 3번 메인 바이패스 밸브를 동시에 연다!"

서동주의 외침과 함께 도현과 박 씨, 그리고 시민들이 달려들어 거대한 주 배관 휠을 미친 듯이 돌려젖혔다.

위이이이잉— 콰구구구궁!

세 개의 밸브가 완전히 개방되는 순간 북부 고산 암반층에서 내려오던 수만 톤의 빙하 지하수가 거대한 관로를 타고 맹렬한 기세로 밀려들었다.

서부 해안 돔에서 공수해 온 네오 아틀란티스의 초전도 복합 정화 필터가 배관 접합부에서 찬란한 에메랄드빛을 발산했다.

백 년 동안 갇혀 있던 퇴적물이 씻겨 나가며 눈이 시릴 만큼 투명하고 차가운 청정수가 중앙 도시의 상수도망 전체로 뿜어져 나갔다.

"통수됐다……! 수압 게이지 정상! 중앙 도시 전역 공급 개시!"

서동주가 계측기를 부둥켜안고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오열했다.

물에 젖은 도현과 박 씨, 한수, 그리고 시민들이 서로를 얼싸안았다.

흙탕물과 땀방울, 굳은살에서 배어난 피가 한데 뒤섞여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눈부신 긍지가 빛나고 있었다.


푸슈우우우우— 콸콸콸!

메인 타워 남측 광장의 거대한 분수대와 급수탑 노즐에서 청량한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햇살을 받아 영롱한 무지개를 그려내며 쏟아지는 물방울 아래로 수십만 군중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물이다! 물이 쏟아져 나온다!"

"진짜 물이야! 얼음처럼 차갑고 깨끗해!"

사람들은 두 손으로 물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비되었던 혀끝을 적시는 시원한 생명수에 시민들은 목을 놓아 울었다.

캡슐의 끈적한 화학 보존액을 씻어내고 서로의 얼굴에 시원한 물을 끼얹으며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살아 숨 쉬는 진짜 세계로 돌아왔음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지하에서 온몸이 젖은 채 지상으로 올라온 도현과 서동주 일행을 향해 광장의 수십만 인파가 길을 터주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여성이 서동주의 거친 손을 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서동주는 굳은살 박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감격에 찬 눈물을 훔쳤다.

기계의 알고리즘에 밀려 잊혀졌던 한 인간의 기술이 60만 생명을 살려낸 기적의 순간이었다.

하울러 01호 앞 광장 단상에 오른 도현의 곁으로 윤슬과 김진우, 강수민, 박 씨가 모여들었다.

캠봇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물을 마시며 환호하는 대륙의 광경을 전파에 담았다.

삐비비빅—!

144.120MHz 광역망 스피커를 통해 남부, 서부, 동부 거점 대표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여기는 남부 광산 Worker_419다! 중앙 도시의 통수 소식을 들었다! 남부의 제철소와 중장비 라인이 100% 가동 준비를 마쳤다! 깨어난 시민들의 주거 재건을 위해 건축용 특수 강재 10만 톤과 굴착 장비를 본선 철도로 즉시 급파하겠다!

—서부 해안 물류 돔 이진석이다! 네오 아틀란티스의 수경 재배 단지와 원양 어선단이 첫 수확을 거두었다! 고단백 해양 식량 5만 톤과 해수 담수화 정제수를 실은 수륙양용 수송선단을 출발시킨다!

—동부 화학 복합 단지 송민호 소장입니다! 초내열 건축 소재와 의료용 소독제, 그리고 프로젝트 아폴로 기지의 우주 로켓 추진제 배합이 완벽하게 완료되었습니다!

대륙의 4대 거점이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유기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중앙 도시의 의료와 행정, 남부의 철강과 기계, 서부의 풍요로운 식량, 동부의 첨단 화학과 로켓 연료.

기계 독재자 아테나가 갈라놓았던 대륙의 인간들이 마침내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결속된 것이다.

도현이 마이크를 잡고 전 대륙을 향해 선언했다.

"남부와 서부, 동부, 그리고 중앙 도시의 대표들이 서명한 '대륙 자치 재건 협약'이 오늘 이 자리에서 정식 발효되었습니다."

도현의 묵직한 선언에 광장이 숨을 죽였다.

"우리는 기계가 통제하던 거짓 낙원으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땀 흘려 집을 짓고 대지를 일구며 서로를 지켜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별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때 윤슬이 품 안에서 작은 금속 캡슐 하나를 꺼냈다.

네오 아틀란티스 해양 복원 연구소에서 가져왔던 '프로젝트 오션 아르카 바이오 시드'였다.

윤슬이 캡슐을 열자 그 안에서 백 년 동안 냉동 보존되어 있던 진짜 풀잎의 푸른 종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동주와 광장의 어린아이가 광장 화단에서 퍼 온 기름진 갈색 흙더미를 단상 위로 가져왔다.

윤슬은 도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두 사람은 함께 흙더미 한가운데에 작은 씨앗을 심었다.

그리고 방금 제4구역 지하 암반에서 길어 올린 맑고 차가운 지하수를 흙 위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축축하게 젖어 드는 흙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광장으로 퍼져 나갔다.

"이 싹이 자라나 거대한 숲을 이룰 때까지 우리의 생방송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도현이 캠봇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100만의 동료와 전 세계의 신인류를 향해 마지막 말을 전했다.

"대지 위에 첫 번째 땀방울을 흘린 개척자 여러분, 오늘 하루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와아아아아아—!

광장을 가득 메운 수십만 군중의 함성이 푸른 하늘을 향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하울러 01호의 운전실 통신 콘솔에서 날카로운 심우주 원격 비프음이 울렸다.

삐비빅— 삐비빅!

[원격 텔레메트리 수신 : 해발 2,200미터 동부 고원 프로젝트 아폴로 제1 기지.]

[우주 방주 '아폴로-01' 극저온 반응로 예비 기동 시퀀스 정상 완료.]

[케플러 섹터 4번 신세계 항법 궤도 계산 완료.]

대지를 일구는 인간들의 발아래서 문명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고 저 높은 하늘 너머에서는 별들의 바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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