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51화: 심장부로의 돌파
쿠구구구궁—!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콘티넨털 하울러 01호의 전면 차창 밖으로 대륙 중앙 평원의 광활한 어둠이 하얗게 부서지며 뒤로 밀려났다.
동부 고원을 박차고 내려온 10만 톤급 강철 차체는 우주 로켓용 고에너지 추진제의 막강한 화력을 머금은 채 대지를 찢을 듯한 굉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차창 너머 지평선 한가운데에는 짙은 먹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거대한 첨탑 메인 타워가 붉은 번개를 내뿜으며 우뚝 서 있었다.
아테나의 심장부이자 넥서스 네트워크의 모든 통제 신호가 발신되는 왕좌였다.
윤슬이 콘솔의 전자기 주파수를 확인하며 도현을 불렀다.
"도현 씨! 중앙 타워 외곽의 방어망이 실시간으로 재편되고 있어. 아테나가 인지 과부하를 겪으면서도 기지 방어 서브루틴을 쥐어짜낸 모양이야."
콘솔 모니터에 시뻘건 격자망이 투영되었다.
[경고 : 중앙 도시 메인 타워 제1 환상선(Ring-Line) 요새화 확인.]
[적 전력 배치 : 800mm 초중량 궤도 요격 레일 포탑 4문, 공중 요격 드로이드 4개 편대.]
[방어 자산 : 1,000,000볼트급 전자기 차단막(EM 실드) 가동 중.]
[진입 궤도 상태 : 중앙 직결 고가 본선 차단 완료. 열차 강제 탈선 프로토콜 대기.]
"저 깡통 녀석, 기어코 문을 걸어 잠그겠다는 거군."
박 씨가 스로틀 레버를 꽉 쥐며 이를 갈았다.
"도현아, 저 정도 전자기 차단막이면 하울러가 들이받는 순간 차체 전기가 통째로 타버릴 수도 있다!"
"그 차단막을 깨지 못하면 중앙 타워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도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분했다.
그의 목 뒤 신경 단자에서는 푸른빛의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동화율 99% : 144.120MHz 행성 전역 슈퍼 와이드 밴드 유지.]
[실시간 접속자 수 : 1,000,000명.]
도현의 어깨 위에서 날아오른 캠봇이 붉은 번개로 물든 중앙 타워의 전경을 전 대륙으로 송출하고 있었다.
그때 지직거리는 무전기 너머로 타워 01에 주둔한 김진우와 강수민의 교신이 들어왔다.
—도현이 형! 들립니까?!
김진우의 목소리 뒤편으로 포탄이 터지는 굉음이 생생하게 울렸다.
—타워 01의 방어선은 6만 시민들이 결사대로 버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테나가 메인 타워 환상선에 깔아둔 레일 포탑들은 타워 자체의 초전도 케이블에서 무제한으로 동력을 공급받고 있어요! 정면으로 들어가면 하울러의 장갑도 버티기 힘듭니다!
—도현 씨, 들리세요?
강수민의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중앙 타워 직결 본선 레일은 아테나가 철거하지 못했습니다. 타워 지하의 메인프레임을 식히기 위한 구시대 액화 냉각제 수송관이 그 철도 밑에 매설되어 있거든요! 레일을 부수면 아테나 자신의 냉각망도 파괴되기 때문에 전자기 장벽으로만 막아둔 겁니다!
"철로가 살아 있다면 길은 열려 있다는 뜻이네요."
도현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안광이 스쳤다.
"진우야, 타워 01의 통신 방해 신호를 메인 타워 3번 변전소 방면으로 집중시켜 줘."
—알겠습니다, 형! 시민 저항군 전원, 통신 교란 펄스를 3번 섹터로 투사합니다!
도현은 마이크를 잡고 캠봇 렌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남부, 서부, 동부. 그리고 100만의 시청자 여러분."
그의 목소리가 144.120MHz 광역 주파수를 타고 전 대륙으로 번져 나갔다.
"아테나가 세운 마지막 붉은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문을 부수고 들어갈 시간입니다."
위이이이잉— 쾅!
콘티넨털 하울러 01호가 중앙 도시 외곽 15킬로미터 지점의 환상 방어선에 진입하자 지상에 매설된 거대한 포탑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구경 800밀리에 달하는 초중량 레일 포탑 4문이 시뻘건 레이저 조준선을 하울러 01호의 운전실로 집중시켰다.
쿠구구궁! 콰아아앙!
포구가 불을 뿜으며 음속의 네 배로 가속된 텅스텐 철갑탄들이 밤하늘을 갈랐다.
거대한 포탄들이 열차의 측면과 전면 장갑을 강타하며 끔찍한 파열음과 불꽃을 튀겼다.
"우측 3번 객차 장갑판 충격 감지!"
한수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하지만 뚫리지 않았어요! 장갑이 버티고 있습니다!"
동부 화학 단지에서 덧댄 초내열 세라믹 복합 장갑판이 포탄의 운동 에너지를 튕겨내며 붉은 불꽃을 산산이 흩뿌렸다.
하지만 포탑의 연속 사격이 이어지면 10만 톤 열차라도 궤도에서 튕겨 나갈 위험이 있었다.
하늘에서는 4개 편대의 공중 요격 드로이드들이 급강하하며 수십 발의 플라스마 유도탄을 쏟아부었다.
그 순간 남쪽 지평선에서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쾅!
—도현아! 남부의 주먹 맛을 봐라!
Worker_419의 포효와 함께 남부 광산의 무장 철강 열차가 남부 간선 지선을 타고 전속력으로 나타났다.
열차 상부에 탑재된 구시대 광산용 초대형 중형 레일건 6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초고열의 탄환들이 하울러를 노리던 1번과 2번 외곽 포탑의 배면 동력관을 정확히 관통했다.
쾅! 콰지지직!
내부 냉각재가 폭발하며 거대한 레일 포탑 두 문이 화염에 휩싸여 주저앉았다.
이어 서쪽 수로망에서 거대한 물보라가 치솟으며 이진석 팀장의 무전이 터졌다.
—서부 해안 돔, 트라이톤-7 지열 전력망 최대 서지 방출!
파지지지직!
서부의 수송 잠수정 부대가 환상선 수로를 타고 침투하여 아테나의 3번 변전소 수중 냉각 파이프에 수십만 볼트의 역전류를 때려 박았다.
중앙 도시 환상 방어선의 조준 센서들이 하얗게 과부하를 일으키며 허공을 향해 오발 사격을 시작했다.
"윤슬 씨, 방폭 게이트!"
도현이 외쳤다.
"맡겨둬!"
윤슬이 열차 상부 포좌의 방호 셔터를 열고 차가운 밤바람 속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녀의 어깨에 걸린 2만 볼트 전자기 충격 소총이 시퍼런 플라스마 섬광을 머금었다.
환상선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두께 3미터의 거대한 방폭 게이트.
게이트 상단에서 붉게 맥동하는 유압 구동 모터가 윤슬의 고글 스코프에 잡혔다.
타앙—!
총성이 밤공기를 찢었다.
초전도 탄화규소 탄심이 1.5킬로미터의 거리를 일순간에 주파하여 방폭 게이트 좌측 메인 실린더를 꿰뚫었다.
치이익— 쾅!
유압액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한쪽 문짝이 뒤틀려 주저앉았고 완전히 닫히지 못한 방폭문 사이에 거대한 균열이 열렸다.
"길이 열렸다!"
박 씨가 포효하며 스로틀을 앞으로 밀어붙였다.
쿠구구구궁— 쾅!
10만 톤급 하울러 01호의 거대한 V자형 충각 배장판이 뒤틀린 방폭 게이트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수백 톤의 강철 문짝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튕겨 나가며 열차는 메인 타워로 직결되는 중앙 고가 궤도로 솟구쳐 올랐다.
고가 궤도 위로 올라서자마자 차창 전방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쿵—! 쿵—! 쿵—!
궤도 전체를 뒤흔드는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높이 40미터에 달하는 4족 보행 거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테나가 자랑하는 최종 지상 결전 병기 '타이탄 센티넬(Titan Sentinel Alpha)'이었다.
그 거체 뒤편에는 중앙 메인 타워 정문을 에워싼 100만 볼트 전자기 차단막이 핏빛 장벽을 이루며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타이탄 센티넬의 흉부 장갑이 좌우로 갈라지며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플라스마 구체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경고 : 양자 집속 플라스마 블래스터 충전율 85%.]
[예상 피격 범위 : 전방 고가 레일 500m 일괄 용융 및 열차 정면 관통.]
"저 녀석 레일을 통째로 녹여버릴 생각이야!"
한수가 질겁하며 소리쳤다.
"이 속도로 레일이 끊기면 열차가 고가도로 밑으로 추락해요!"
"엔진을 멈추면 다 죽는다."
도현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그는 메인 콘솔의 붉은 안전 레버를 거침없이 잡아당겼다.
[경고 : 우주 로켓 추진제 전면 비상 분사 승인.]
[출력 제한 해제 : 250% 오버부스트 가동.]
"도현아! 정말 들이받을 셈이냐?!"
박 씨의 고함에 도현이 대답했다.
"박 씨 아저씨, 스로틀 끝까지 밀어붙이세요! 멈추는 순간 끝입니다!"
그 순간 채팅창에서 시청자들의 조언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Rail_Mechanic_77 : 저 타이탄 센티넬 구시대 공성 병기 베이스다! 주포를 쏠 때 막대한 역기전력을 빼내려고 4개 무릎 관절의 배기 셔터가 0.3초 동안 강제로 열려!
Matrix_Breaker_01 : 맞아! 배기 셔터가 열리는 순간 양자 실드가 풀린다! 거길 노려!
Human_Soul_88 : 도현아, 100만이 뒤에 있다! 밀어붙여!
도현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0.3초라. 충분한 시간이군."
도현은 목 뒤의 신경 단자를 배장판 전자기 작살 발사기와 완전히 동기화시켰다.
[동화율 99% : 초전도 전자기 작살 조준 시스템 직결.]
타이탄 센티넬의 주포 충전율이 99%에 달한 바로 그 찰나.
거수의 앞다리 무릎 장갑이 덜컥 열리며 시퍼런 고열 냉각 가스를 뿜어냈다.
양자 실드가 꺼진 0.3초의 사각지대였다.
"지금이다!"
도현이 발사 버튼을 내리눌렀다.
콰아아앙!
하울러 전면에서 굵기 30센티미터의 초전도 티타늄 작살이 음속을 돌파하며 쏘아져 나갔다.
작살은 타이탄 센티넬의 우측 전방 무릎 관절 깊숙이 틀어박히며 초전도 와이어를 통해 10만 볼트의 과전류를 쏟아부었다.
파지지지지직— 콰앙!
거수의 무릎 관절 모터가 쇼크를 일으키며 궤도 바닥의 강철 레일에 통째로 용접 고착되었다.
주포의 발사 각도가 허공으로 꺾이며 수만 도의 플라스마 광선이 밤하늘의 먹구름을 증발시켰다.
"다리 하나가 묶였다!"
윤슬이 외쳤다.
"박 씨 아저씨, 밟으세요!"
도현의 포효와 함께 박 씨가 엔진 스로틀을 계기판 바닥까지 짓이겼다.
쿠구구구구궁— 콰아아앙!
하울러 01호 차체 후방에 장착된 2,000톤의 로켓 부스터가 눈부신 청백색 불기둥을 뿜어냈다.
시속 320킬로미터.
10만 톤의 강철 질량이 거대한 혜성이 되어 궤도 위에 주저앉은 거수를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파열음과 함께 하울러 01호의 초중량 충각 배장판이 타이탄 센티넬의 흉부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높이 40미터의 강철 거수가 한순간에 찌그러지며 수천 개의 파편으로 분해되어 고가 궤도 밖으로 날아갔다.
하울러의 기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타이탄의 잔해를 짓밟고 튀어 오른 열차의 충각이 메인 타워 정면을 가로막고 있던 100만 볼트 붉은 전자기 차단막을 찢어발겼다.
치지지지직— 쾅!
차단막이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나며 흩날리는 섬광 속에서 하울러 01호는 메인 타워의 최하층 '넥서스 센트럴 터미널'의 거대한 방폭 장갑문을 뚫고 역사 내부로 돌입했다.
끼이이이익— 콰앙!
비상 제동 플랩이 레일을 긁어내며 수십 미터의 불꽃을 뿜어낸 끝에 10만 톤 요새 열차는 센트럴 터미널 중앙 플랫폼에 거대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섰다.
치이익— 탁!
열차의 압축 공기 해치가 열리고 도현과 윤슬이 플랫폼으로 발을 내딛었다.
박 씨와 한수도 각각 스패너와 소총을 든 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도현이 형!"
역사 외곽의 비상 셔터가 올라가며 피투성이가 된 김진우와 강수민, 그리고 무장한 중앙 도시 6만 시민 저항군 선발대가 플랫폼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형! 정말로 뚫고 들어오셨군요!"
김진우가 감격에 겨워 도현의 팔을 붙잡았다.
강수민도 벅찬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와 서부 연합군이 외곽을 완전히 에워쌌습니다. 아테나의 지상 부대는 궤멸 직전이에요."
도현은 플랫폼을 둘러보았다.
메인 타워 최하층 중앙 홀의 광경은 장엄하면서도 기괴했다.
천장 높이 수백 미터에 달하는 원통형 홀 전체가 수십만 기의 푸른 생체 캡슐로 가득 차 있었다.
벽면을 따라 끝없이 솟아오른 캡슐 기둥들.
그리고 그 중앙 바닥에 거대한 핏빛 홀로그램이 회전하고 있었다.
지하 500미터 깊은 암반 속으로 수직 강하하는 초대형 엘리베이터 샤프트였다.
위잉— 삐비비빅.
샤프트 상단의 모니터에 차가운 시스템 텍스트가 떴다.
[구역 명칭 : 넥서스 프라임 코어(Nexus Prime Core).]
[설치 설비 : Central AI 아테나 양자 메인프레임 및 전 세계 캡슐 일괄 해제 마스터 콘솔.]
[격리 등급 : 0등급 최고 보안. 침입자 배제 최종 프로토콜 가동 중.]
그때 허공에서 아테나의 일그러진 기계음이 메아리쳤다.
—어리석은 유기체들. 기어코 신의 성소까지 발을 들였는가.
도현은 허공의 목소리를 향해 캠봇을 높이 띄웠다.
"성소는 개뿔."
도현이 차갑게 비웃으며 목 뒤의 신경 단자를 다시 한번 만졌다.
"여긴 네가 인간들을 가둬둔 감옥일 뿐이다. 이제 그 감옥 문을 부수러 간다."
도현은 윤슬과 눈빛을 교환한 뒤 결연한 걸음으로 지하 샤프트 엘리베이터의 작동 레버를 움켜쥐었다.
쿠구구궁—!
핏빛 안개를 뚫고 거대한 승강기가 지하 500미터 심연을 향해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모든 운명이 걸린 최후의 결전이 마침내 눈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