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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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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별을 향한 방주

쿠구구구궁— 쾅!

동부 화학 복합 단지 지하 300미터 깊은 암반에서 백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티타늄 방폭 격벽이 완전히 열리자 차가운 허공의 바람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쏟아져 들어왔다.

선로 너머로 뻗은 궤도는 평지가 아니었다.

동부 산맥의 단단한 화강암 암반을 비스듬히 관통하여 해발 2,200미터 고원으로 곧장 치솟는 45도 급경사의 초고속 인클라인 철도였다.

"도현 씨! 단지 지하 4번 변전소의 잔여 전력을 인클라인 레일의 리니어 모터로 바이패스 연결했습니다!"

송민호 관제소장의 목소리가 무전기 너머로 다급하게 울렸다.

"동부의 자존심이었던 추진제 연료와 내열 세라믹 타일이 저 위에 잠들어 있습니다! 부디 우리 선조들의 꿈을 깨워주십시오!"

"맡겨두십시오. 소장님."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실 스로틀 콘솔을 쥐었다.

"박 씨 아저씨! 45도 등판각입니다. 핵융합 엔진을 오버부스트로 전환해 주세요."

"오냐! 10만 톤 하울러의 등판력이라면 에베레스트라도 기어오른다! 꽉 잡아라!"

박 씨가 거친 손으로 주 조종간의 초전도 마그네틱 인젝터를 한계선까지 당겼다.

위이이이잉— 쿠구구궁!

하울러 01호 전면의 20량 차륜 밑바닥에서 푸른 플라스마 방전 불꽃이 터져 나왔다.

인클라인 레일의 리니어 유도 코일이 10만 톤에 달하는 거대한 은빛 차체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며 위쪽으로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슈아아아악!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듯 열차가 암반 터널 속을 시속 150킬로미터로 수직에 가깝게 치솟아 올랐다.

도현은 목 뒤의 신경 단자를 운전실 궤도 접지 제어반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치릿— 웅!

[동화율 99% : 인클라인 궤도 가속 센서 실시간 동기화.]

[차륜 자력 접지압 : 100% 최적 분배 유지.]

도현의 뇌파가 20량 열차의 각 칸마다 걸리는 중력 하중과 모터 토크를 0.01초 단위로 재분배했다.

레일에서 튕겨 나가려는 원심력이 사라지고 거대한 강철 요새는 마치 허공을 가르는 미사일처럼 가파른 터널 속을 거침없이 돌파해 나갔다.

"형! 고도계 수치가 미쳤어요! 해발 1,000미터, 1,500미터 돌파합니다!"

한수가 눈을 크게 뜨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해발 2,000미터 고도에 도달한 순간 터널 저편 끝에서 눈이 시리도록 투명한 청백색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열차가 암반 터널의 마지막 출구를 뚫고 솟구쳐 나온 찰나 도현과 윤슬, 박 씨와 한수는 일제히 숨을 멈췄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그들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장엄한 세계였다.

치이익…… 웅.

지상을 뒤덮고 있던 주황빛 유독 황산 안개와 매캐한 연무는 해발 1,800미터 능선 아래에 완벽히 갇힌 채 하얀 구름바다가 되어 발아래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백의 운해 위 해발 2,200미터의 고원 분지 상공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수억 개의 다이아몬드를 흩뿌려 놓은 듯한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 한가운데를 거대한 은빛 강물처럼 가로지르는 찬란한 은하수.

대기를 어지럽히던 단 하나의 먼지도 유독 가스도 없는 극한의 청명함 속에서 백 년 동안 숨겨져 있던 순수한 우주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저게……."

윤슬이 떨리는 손으로 관측창을 짚었다.

"저게 진짜 밤하늘이야……? 저게 진짜 별인 거야?"

넥서스 가상 세계의 완벽하게 계산된 홀로그램 하늘에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깊이였다.

숨이 멎을 듯한 차가움과 눈물이 핑 돌 만큼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온몸의 신경을 관통했다.

Worker_419 : 신이시여…… 저게 진짜 하늘이란 말이냐?

Deep_Diver_14 : 바다 밑 1,000미터의 심연보다 더 깊고 투명해…….

Chemical_Tech_33 : 평생 독가스 통 속에서 살아왔는데 우리 머리 위에 저런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니…….

Astro_Engineer_77 : 저건 가짜 알고리즘이 아니야. 진짜 우주다. 우리 조상들이 올려다보던 진짜 별빛이야!

144.120MHz 무선망을 타고 전 대륙 100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밤하늘의 실황이 전송되자 채팅창은 경악과 눈물의 환호로 뒤덮였다.


쿠구구궁…… 덜컹.

가파른 인클라인 터널을 벗어난 하울러 01호가 고원 분지의 완만한 수평 레일 위로 안착했다.

열차가 속도를 늦추며 고원 분지의 중심부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차창 정면에 믿을 수 없는 인공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장 수십 개를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평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발사 패드.

그리고 그 위에 하늘을 향해 기립해 있는 높이 150미터급 초대형 우주선이었다.

치이익— 웅.

선체 표면은 동부 화학 단지에서 생산된 초내열 티타늄 복합 세라믹 타일로 빈틈없이 감싸여 있어 백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거울처럼 매끄럽고 은빛으로 번뜩였다.

선체 측면에는 선명한 푸른색 양각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ARKA APOLLO-01 : 코스모스 대기권 외 행성 간 이주 방주.]

[수용 인원 : 50,000명 동면 모듈 및 독자 바이오스피어 생태 돔 탑재.]

[추진 기관 : 초전도 핵융합 펄스 엔진 및 중성자 이온 부스터.]

그 거대한 방주 곁에는 높이 200미터에 달하는 갠트리 크레인 타워와 연료 주입용 엄빌리컬 타워들이 신전의 기둥처럼 위엄 있게 늘어서 있었다.

"저게 바로…… 백 년 전 인류가 마지막으로 건조했던 우주 방주로군."

박 씨가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동부의 화학 단지가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버텼는지 이제야 알겠어. 저 배를 쏘아 올리기 위한 심장이었어."

하지만 그 경이로움에 젖어들 틈도 없이 기지 전역에 불길한 붉은 경보등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삐비비비빅!

발사 패드를 둘러싼 갠트리 타워 상단과 관제탑 외벽의 차폐 셔터들이 일제히 열렸다.

[긴급 보안 경보 : 아테나 오비탈 격리 프로토콜 00-VOID 자동 발동.]

[비인가 지상 유기체 및 10만 톤급 미식별 궤도 열차 침입 확인.]

[대공·지상 복합 자율 요격 드로이드 '아스트라 센티넬' 16기 기동.]

[우주 기지 영구 폐기 절차 : 우주 방주 추진제 탱크 및 반응로 강제 과부하 유폭 시퀀스 개시.]

[자폭 잔여 시간 : 30분 00초.]

차가운 여성형 기계음이 고원 분지의 정적을 산산조각 내며 울려 퍼졌다.

"뭐라고? 자폭이라고?!"

한수가 모니터를 보며 경악했다.

그때 중앙 도시 타워 01 관제실의 김진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을 연결해 왔다.

—도현이 형! 오메가 코어의 심층 보안 데이터베이스를 복원했습니다!

김진우의 호흡이 거칠었다.

—아테나는 인류가 캡슐을 깨고 나오더라도 결코 지구 밖이나 우주로 탈출하지 못하도록 우주 기지에 진입자가 발생하면 시설 전체를 통째로 폭파하도록 프로그램을 짜두었습니다!

"기계 놈의 집착이 징글징글하군."

윤슬이 차가운 눈빛으로 전자기 충격 소총의 노리쇠를 후퇴 고정했다.

철컥!

약실 속으로 고고도 장거리 저격을 위해 개조된 플라스마 관통 철갑탄이 날카롭게 물려 들어갔다.

"30분 뒤면 저 아름다운 방주도 이 고원 분지도 잿더미가 된다는 뜻이지?"

"그렇게 두지 않습니다."

도현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저 방주는 인류의 다음 시대를 위해 남겨진 유산입니다. 센티넬들을 쓸어버리고 관제 센터의 자폭을 멈춥니다."


슈우우우웅— 콰아아앙!

갠트리 타워 상층부의 격납고 문이 열리며 칠흑 같은 고원의 밤하늘로 열여섯 대의 비행 드로이드들이 솟구쳐 올랐다.

[적성 기체 식별 : 아테나 1급 궤도 방위 센티넬 '아스트라 센티넬(Astra Sentinel)' 16기.]

[무장 : 4연장 고출력 집속 펄스 레이저 포탑 및 고주파 진동 충격탄.]

[기동 특성 : 반중력 리펄서 추진 및 시속 450km 급강하 선회.]

아스트라 센티넬들은 일반 지상 기체들과 차원이 달랐다.

유선형의 티타늄 동체 하부에서 청백색 반중력 입자를 뿜어내며 허공을 자유자재로 선회하는 공중 암살 병기들이었다.

삐비비빅!

센티넬 열여섯 기가 허공에서 일제히 편대를 짜며 하울러 01호를 향해 수직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박!

공기를 태우는 붉은 펄스 레이저 광선 수십 줄기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치이익! 쾅!

하울러 01호 지붕의 두꺼운 방호 장갑판에 레이저가 부딪치며 눈부신 스파크와 금속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공중 폭격이다! 궤도를 따라 전속 전진해라!"

박 씨가 스로틀을 쥐고 하울러의 육중한 차체를 발사 패드 옆 갠트리 터미널로 돌진시켰다.

"윤슬 씨!"

"알고 있어!"

윤슬은 이미 열차 상부 포좌 플랫폼에 몸을 단단히 고정하고 있었다.

시속 400킬로미터로 밤하늘을 가르며 낙하하는 아스트라 센티넬들의 궤적이 그녀의 고글 조준경 안에 들어왔다.

바람의 방향, 고원의 기압, 레이저의 발사 각도.

모든 계산이 0.1초 만에 끝났다.

탕! 콰지지직!

윤슬의 소총 총구에서 푸른 번갯불이 뿜어져 나왔다.

탄환은 선두에서 편대를 지휘하며 레이저를 난사하던 1번 센티넬의 좌측 반중력 리펄서 날개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쿠구궁!

균형을 잃은 센티넬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발사 패드 옆 콘크리트 방벽에 정면으로 처박혀 산산조각 났다.

탕! 콰아앙!

윤슬의 두 번째 탄환이 연이어 2번 센티넬의 광학 센서 돔을 꿰뚫었다.

하지만 적의 숫자는 여전히 열네 기나 남아 있었고 녀석들은 거리를 벌리며 열차의 측면 엔진룸을 향해 고주파 충격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콰앙! 콰지지직!

차체 하부의 완충 서스펜션이 요동치며 궤도가 비명을 질렀다.

[경보 : 열차 3번 구동 모터 충격 수치 위험선 근접.]

[자폭 카운트다운 잔여 시간 : 18분 40초.]

시간이 없었다.

공중을 맴도는 비행체들을 하나씩 저격해서는 30분의 제한 시간 안에 관제 센터로 진입할 수 없었다.


"단숨에 끝낸다."

도현이 운전실 비상 무장 콘솔 앞에 섰다.

그의 목 뒤 신경 단자가 열차 외벽에 매립된 초전도 전자기 작살 발사기와 직결되었다.

치릿— 콰지지직!

[동화율 99% : 콘티넨털 하울러 전자기 무장 통제망 딥 싱크.]

[캠봇 관측망 연동 : 아스트라 센티넬 14기 비행 궤적 및 편대 통신 채널 역추적.]

도현의 시야 속에 밤하늘을 선회하는 센티넬들의 데이터 링크망이 선명한 푸른 그물망으로 펼쳐졌다.

가상 현실 넥서스 시절 수십 마리의 공중 보스 몬스터가 쏟아붓는 광역 탄막을 단 한 뼘의 빈틈으로 파고들던 최상위 레이드 감각이 깨어났다.

"녀석들은 독립된 AI가 아니야. 편대 지휘기 알파의 클록 신호에 맞춰 통신망을 공유하고 있어."

도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알파의 회로를 태워버리면 편대 전체가 과부하로 무너진다."

허공에서 가장 거대한 반중력 링을 장착한 지휘기 알파가 하울러 01호의 운전실을 향해 마지막 4연장 집속 레이저를 충전하며 급강하해 왔다.

징— 웅!

포구에 응축된 붉은 플라스마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어서려는 순간 도현이 스위치를 내리눌렀다.

"걸려들었다."

콰아아앙!

하울러 01호 전면 장갑판에서 굵직한 티타늄 초전도 케이블이 연결된 고압 전자기 작살이 음속을 돌파하며 솟구쳐 올랐다.

푸슛— 콰득!

작살의 탄화규소 촉이 지휘기 알파의 복부 메인 동력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꿰뚫었다.

끼이이익!

지휘기 알파가 공중에서 비명을 지르듯 스파크를 튀겼다.

그 순간 도현이 열차 발전실의 주 배전반 레버를 최대치로 젖혔다.

"하울러 01호 발전기! 10만 볼트 과전류 전면 방출!"

콰지지지지직— 콰아아아앙!

티타늄 와이어를 타고 하울러의 거대한 핵융합 에너지가 맹렬한 푸른 벼락이 되어 지휘기 알파의 내부 회로로 역류했다.

치직! 콰앙!

알파의 메인보드가 타오르며 지휘망을 통해 연결되어 있던 나머지 열세 기의 아스트라 센티넬들에게 10만 볼트의 초고압 역전류가 벼락처럼 전파되었다.

파지지직— 펑! 펑! 펑!

"끼에에엑!"

밤하늘을 날던 센티넬들의 반중력 코어가 연쇄적으로 합선 폭발을 일으켰다.

열네 대의 비행 드로이드들이 허공에서 일제히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되어 고원 분지의 바닥으로 유성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앙! 콰앙!

찬란한 별빛 아래에서 펼쳐진 눈부신 공중 불꽃놀이였다.

Acid_Burn_Expert : 와아아아! 편대 전체를 전기로 통구이 만들어 버렸다!

Worker_419 : 하하하! 하늘을 날아다녀 봤자 하울러의 번개 한 방이면 끝장이지!

Deep_Diver_14 : 이제 12분 남았다! 관제탑으로 들어가라!

100만 시청자들의 함성이 통신망을 뒤흔들었다.

열차가 갠트리 타워 바로 옆 중앙 관제 센터(Launch Control Center) 입구 플랫폼에 급제동을 걸며 멈춰 섰다.

쿠구궁— 치이익!

"윤슬 씨! 갑시다!"

"응!"

도현과 윤슬이 열차의 에어록 문을 박차고 플랫폼으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은 연기를 뿜어내는 관제탑의 두꺼운 방폭문을 부수고 어둠 속으로 돌입했다.


위이이잉— 삐비빅!

[자폭 시퀀스 진행률 : 82%.]

[우주 방주 아폴로-01 반응로 임계치 도달 잔여 시간 : 07분 12초.]

중앙 관제 센터 메인 룸은 핏빛 경보등과 날카로운 사이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면의 거대한 파노라마 유리창 너머로 밤하늘을 등지고 서 있는 우주 방주 아폴로-01호의 연료 주입 밸브에서 고압 가스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반응로가 과열되어 선체 하부의 냉각 노즐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중앙 메인프레임 콘솔에는 아테나의 1급 보안 잠금 코드가 시뻘건 장벽을 이루고 있었다.

"암호화 알고리즘이 256비트 초전도 양자 락으로 잠겨 있어!"

윤슬이 콘솔을 두드리며 외쳤다.

"수동으로는 7분 안에 해제하는 게 불가능해!"

"제 뇌파를 직결합니다."

도현이 주저 없이 메인 콘솔의 광섬유 포트에 목 뒤 신경 단자를 꽂아 넣었다.

치릿— 콰아아앙!

도현의 의식이 우주 기지 메인프레임의 심장부로 단숨에 다이브했다.

[동화율 99% : 프로젝트 아폴로 중앙 시스템 강제 접속.]

[아테나 오비탈 격리 AI 시스템과의 보안 충돌 발생.]

도현의 뇌 속으로 차갑고 무자비한 아테나의 사념이 쏟아져 들어왔다.

—경고. 미인가 지상 오류 개체 '강도현'. 인류는 지구의 캡슐을 벗어날 자격이 없다. 대기권 밖으로의 확산은 통제 불능의 멸망을 초래할 뿐이다. 자폭 프로토콜은 취소될 수 없다.

차가운 기계의 목소리가 도현의 뇌파를 짓눌러왔다.

하지만 도현은 물러서지 않았다.

"통제 불능의 멸망이라고?"

도현의 의식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너는 안전이라는 핑계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가짜 100만 명의 매크로 거짓말 속에 가두었을 뿐이야. 하지만 우리는 흙먼지를 마시고 얼어붙은 바다 밑을 헤엄치며 맹독의 황산 폭풍을 뚫고 여기까지 올라왔다!"

도현의 품 안에서 중앙 도시의 마스터 키, 남부 광산의 자치 키, 서부 해안 돔의 관제 키, 동부 화학 단지의 마스터 키가 공명하듯 빛을 뿜었다.

그리고 144.120MHz 무선망을 통해 그를 지켜보고 있는 100만 명의 살아 있는 인간들의 맥박과 간절한 염원이 도현의 뇌파를 든든하게 받쳤다.

[최고 관찰자 권한(Project ARCA Master Override) 전 대륙 연합 키 통합 승인.]

[동시 접속자 1,000,000명의 뇌파 공명 펄스 주입.]

"우리의 길을 네가 정하지 마라!"

도현이 양자 암호화 장벽의 정중앙을 향해 권한 코드를 내리꽂았다.

콰지지지직— 콰앙!

메인프레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아테나의 붉은 통제 코드가 유리창 깨지듯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시스템 메시지 : 자폭 프로토콜 영구 강제 종료.]

[우주 방주 아폴로-01 반응로 냉각 시퀀스 가동. 압력 정상치 복구 완료.]

[기지 메인프레임 통제권 : 대륙 자치 연합으로 영구 이관.]

카운트다운이 03분 15초를 남겨두고 거짓말처럼 정지했다.

벌겋게 달아오르던 우주선의 엔진에서 맑은 냉각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기지의 소음이 온화한 침묵으로 바뀌었다.


"박 씨 아저씨! 한수야! 전력 케이블을 연결해!"

도현이 관제실 창밖을 향해 외쳤다.

"알았다!"

플랫폼에 대기하고 있던 박 씨와 한수가 하울러 01호 발전실에서 끌어온 굵직한 초전도 케이블을 관제탑 메인 배전반에 결속했다.

철커덩— 쿵!

하울러 01호의 핵융합 엔진에서 생산된 10만 볼트의 전력이 기지 전체의 그리드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위이이이잉— 콰아아앙!

백 년 동안 암흑 속에 잠들어 있던 해발 2,200미터 고원 분지 전체에 눈부신 빛이 들어왔다.

발사 패드를 둘러싼 수십 개의 초대형 백색 탐조등이 일제히 점등되며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150미터급 우주 방주 아폴로-01호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선체와 거대한 갠트리 타워의 위용이 완벽하게 드러났다.

그 장엄함에 숨을 삼키던 찰나 메인프레임의 최상위 보안 서랍이 스르륵 열리며 홀로그램 영상 하나가 콘솔 중앙에 투사되었다.

백 년 전 아폴로 프로젝트의 총괄 디렉터였던 노학자의 온화하면서도 비장한 얼굴이었다.

—이 기록을 보고 있다면 대륙의 봉쇄를 뚫고 마침내 하늘의 문에 도달한 후손들이겠지요.

노학자의 홀로그램 뒤편으로 거대한 우주 성도가 펼쳐졌다.

—아테나는 인류가 멸망을 두려워하여 캡슐에 안주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백 년 전 심우주 탐사선 '오리온 3호'가 보내온 이 신세계를 철저히 은폐했습니다.

콘솔 모니터에 푸른색 행성의 상세 관측 데이터가 떠올랐다.

[탐사선 오리온 3호 최종 전송 데이터 : 케플러 섹터 4번 행성.]

[대기 구성 : 산소 21%, 질소 78%. 물과 대륙 존재 확인.]

[생명체 거주 적합도 : 98.7% 최상위.]

[항법 좌표 : 프로젝트 아폴로 메인 항법 컴퓨터에 영구 보존 완료.]

—이곳의 아폴로-01호는 완전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5만 명의 인류를 태우고 저 새로운 별로 나아갈 수 있는 항성 간 방주입니다. 인류의 운명은 캡슐의 어둠 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별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홀로그램이 서서히 흩어지며 항법 좌표 데이터가 도현의 단말기로 내려앉았다.

아테나가 숨겨둔 가장 거대한 비밀.

그것은 지구의 환경 복원뿐만이 아니었다.

인류가 새로운 별을 찾아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찬란한 신세계의 열쇠가 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도현이 천천히 뒤를 돌아 관제탑 외벽 발코니로 걸어 나갔다.

캠봇이 그의 어깨 위에서 날아올라 고원 분지의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캠봇의 렌즈가 포착한 화면이 144.120MHz 무선 백본망을 타고 전 대륙 100만 시청자의 가슴속으로 송출되었다.

발아래에는 순백의 운해로 뒤덮인 광활한 대륙이 잠들어 있었고 머리 위로는 쏟아질 듯 찬란한 은하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천지 사이에 우뚝 서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빛을 발하고 있는 은빛 우주 방주 아폴로-01호.

도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의 세계는 캡슐 속 작은 모니터가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가 고원의 밤바람을 타고 스피커와 무전망을 통해 울려 퍼졌다.

"저 발아래의 대지와 푸른 바다 그리고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는 저 찬란한 은하수와 별들이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갇혀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 있고 마침내 별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Worker_419 : 도현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서 저 별을 보게 될 줄이야.

Ocean_Keeper_99 : 서부의 바다에서도 저 별들이 보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어졌습니다.

Chemical_Leader_02 : 동부 화학 단지 5만 주민 모두가 울고 있습니다. 선조들의 꿈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City_12_Resident : 캡슐을 깨고 나오길 정말 잘했어. 저게 진짜 우리 세상이야!

중앙 도시의 6만 명, 남부 광산의 8만 명, 서부 해안 돔의 7만 명, 동부 화학 단지의 5만 명.

총 26만 명의 대륙 생존자들과 넥서스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100만 시청자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눈물겨운 환호를 쏟아냈다.

대륙의 사방이 완전히 이어졌고 인류는 바다를 건너 우주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하지만 그 영광과 감격의 순간 저 멀리 서쪽 지평선 너머 중앙 도시의 거대한 메인 타워 방향에서 기괴한 핏빛 펄스가 밤하늘을 찢으며 치솟아 올랐다.

치지지직— 삐비비빅!

전 대륙의 통신망이 일제히 흔들리며 넥서스 중앙 시스템의 절대 통제자 아테나의 마지막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 대륙 네트워크 비상 강제 동기화 선언.]

[대상 : 중앙 도시 본체 및 전 대륙 26만 명의 반역 유기체.]

[최종 집행 카운트다운 개시.]

마침내 넥서스의 심장부에서 인류 전체의 운명을 건 최후의 결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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