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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황산 폭풍을 뚫고

쿠구구구궁— 쾅!

시속 22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10만 톤급 콘티넨털 하울러 01호의 차체가 맹렬한 진동을 토해냈다.

서부 해안선의 푸른 바다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대륙 동부의 거대한 산악 지대로 접어들자 차창 밖의 풍경이 불길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대기는 맑은 하늘 대신 주황빛과 핏빛이 뒤섞인 탁한 화학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치이익, 치지지직!

지붕과 전면 장갑판에 굵은 빗방울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은 평범한 비가 아니었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유독 황산 입자와 결합해 쏟아져 내리는 초고농도 산성비였다.

"도현아! 외부 가스 센서 수치가 미친 듯이 치솟는다!"

박 씨가 거친 손으로 계기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콘솔 모니터의 유독 물질 분석 그래프가 붉은 경고선을 가볍게 뚫고 올라갔다.

[외부 대기 독성 물질 농도 : 황산 및 불화수소 복합 8,500ppm.]

[생체 노출 시 위험도 : 10초 이내 호흡기 손상, 1분 이내 각막 용해 및 질식사.]

평범한 인간이라면 방독면을 쓰고도 수 분을 버티지 못할 지옥 같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도현의 표정은 침착했다.

그는 목 뒤의 신경 단자를 운전실 메인 공조 콘솔에 직결한 채 열차 전체의 기압과 정화 순환망을 실시간으로 조율하고 있었다.

치릿— 웅.

기관실 메인 흡기 덕트에 안착한 네오 아틀란티스의 구시대 초전도 복합 정화 필터 코어가 은은한 청록빛 파동을 뿜어냈다.

[공조 정화 시스템 가동률 : 100% 정상.]

[열차 내부 기압 : 외부 대기 대비 1.05기압 양압 밀폐 유지.]

[외부 유독 가스 침투율 : 0.00% 완전 차단.]

서부 돔 7만 주민이 전폭 투입해 준 내화학성 합성 고무와 바이오 수지 코팅이 20량 하울러의 차체 하부와 차륜 베어링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유독 가스는 바늘구멍 하나 뚫지 못했고 객차 안에는 갓 정화된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가 가득 찼다.

"차체 하부 패킹 이상 없습니다! 브레이크 유압 라인 부식도 감지되지 않아요!"

한수가 보조 모니터를 두드리며 활기차게 보고했다.

"좋아, 네오 아틀란티스의 필터와 서부의 고무가 제값을 톡톡히 하는군."

박 씨가 굵은 팔뚝으로 스로틀 레버를 꽉 쥐며 헛기침을 삼켰다.

그때 운전실 통신 콘솔에서 붉은 경보등이 점멸하며 다급한 신호음이 터져 나왔다.

치익, 치지직!

—들…… 립니까! 콘티넨털 하울러 01호! 응답하십시오!

캠봇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홀로그램 화면을 투사했다.

화면 너머에는 방독면을 턱 아래로 내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년 남성의 지친 얼굴이 나타났다.

[신원 식별 : 대륙 동부 화학 복합 단지(Sub_Dome_02) 생존자 관제소장 송민호.]

"송민호 소장님, 강도현입니다. 열차는 현재 시속 220킬로미터로 동부 간선 궤도를 통과 중입니다."

—아아, 도현 씨! 화면으로 열차가 보입니다! 정말로 오고 계셨군요!

송민호의 눈가에 굵은 눈물이 번졌다.

하지만 그의 뒤편으로 비치는 화학 단지 내부의 상황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대한 강화 유리 돔 천장 곳곳에 균열이 가 있었고 주황빛 화학 가스가 엷은 연무처럼 단지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통로마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은 채 가슴을 쥐어뜯으며 신음하고 있었다.

—사흘 전 3번 합성 비료 원료 저장 탱크가 파열된 뒤로 단지 주변 전체가 황산 폭풍의 소용돌이에 갇혔습니다. 우리 단지의 구형 대기 정화 필터는 이미 한계 수명을 넘겼습니다!

송민호가 쥐어짜듯 말을 이었다.

—단지 내부 산소 분압이 16%까지 떨어졌습니다. 노약자들과 어린아이들부터 의식을 잃어가고 있어요. 필터가 완전히 멈추기까지…… 이제 39시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Chemical_Tech_33 : 맞습니다 소장님! 보조 공기 캔도 바닥났습니다! 이대로면 5만 명 전원이 유독 가스에 폐가 타들어가 몰살당합니다!

Worker_419 : 빌어먹을, 5만 명이 숨을 못 쉬고 있다고? 도현아, 어떻게든 서둘러라!

Deep_Diver_14 : 39시간밖에 안 남았다니…… 하울러가 반드시 닿아야 한다!

전 대륙 100만 시청자의 채팅창이 들끓었다.

도현이 단호한 눈빛으로 통신기를 쥐었다.

"버티십시오. 우리 열차에 서부 돔에서 실은 고농축 중화제 500톤과 응급 방독면 10만 개가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돔 전체의 공기를 정화할 수 있는 네오 아틀란티스의 초전도 정화 필터도 함께 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단지로 들어오는 길목이 문제입니다!

송민호의 낯빛이 납빛으로 질렸다.

—단지 입구의 '황산 계곡 대철교' 건너편 방폭 터널에 아테나의 잔존 '화학 오염 통제 센티넬' 군단이 틀어박혀 있습니다! 녀석들이 선로를 강철 바리케이드로 차단하고 산성 슬러그 포탑을 배치했습니다!

"센티넬들이 왜 민간인 구역의 진입로를 막고 있는 겁니까?"

도현이 묻자 중앙 타워 01 관제실의 김진우가 무전으로 끼어들었다.

—도현이 형! 제가 오메가 코어의 아테나 잔존 방어 지침을 조회했습니다! 아테나 시스템은 화학 단지의 황산 누출 사고를 통제 불능 오염으로 규정하고 해당 구역을 '영구 폐기 및 격리' 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김진우의 음성에 분노가 섞여 있었다.

—단지 내부 주민의 탈출은 물론이고 외부에서의 접근까지 전부 오염 확산 바이러스로 간주해 무조건 사살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기계 놈들이 사람을 살릴 생각은 안 하고 독가스 통 속에 가둬 죽이겠다는 소리로군."

운전실 한구석에서 장비를 점검하던 윤슬이 차갑게 읊조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2만 볼트 전자기 충격 소총의 약실에는 부식에 견디도록 특수 제작된 탄화규소 탄심이 날카롭게 물려 있었다.

"살리고 죽이는 건 알고리즘 따위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윤슬이 도현을 돌아보았다.

"선로를 막은 쇳덩이들을 전부 부수고 들어간다. 맞지?"

"네. 바리케이드째로 뚫어버립니다."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면 유리창을 응시했다.


쿠르르릉!

열차가 거대한 산악 협곡의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눈앞에 기괴하고 험준한 절경이 펼쳐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수백 미터 단층 협곡 바닥에는 거품을 일으키며 끓어오르는 황색 산성 진흙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위태로운 협곡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800미터 길이의 낡은 트러스 강철 교량.

바로 동부 화학 단지로 통하는 유일한 혈로인 '황산 계곡 대철교'였다.

치이익— 쾅!

철교 건너편 거대한 암반 산맥을 뚫고 들어간 방폭 터널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터널 앞 광장에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기계 군단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적성 기체 식별 : 아테나 자율 방역 통제 센티넬 '녹스 센티넬' 12기.]

[거점 고정 포탑 : 155mm 고열 산성 슬러그 방출 포탑 2기.]

[선로 상태 : 고장력 강철 레일 바리케이드 및 부식성 경화 수지 3중 가설.]

녹스 센티넬들은 높이 4미터에 달하는 거미 형태의 4족 보행 중장갑 기체들이었다.

몸체 하부에는 유독 가스와 산성 폐액을 고압 분사하는 대구경 노즐이 달려 있었고 등통에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부식 로켓 발사관이 빼곡했다.

선로 위에는 궤도를 가로막은 수십 톤의 강철 빔과 단단하게 굳어버린 화학 수지 덩어리가 거대한 방벽을 이루고 있었다.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가 저 장벽에 그대로 충돌하면 아무리 10만 톤급 하울러라 해도 탈선해 협곡 바닥의 산성 늪으로 곤두박질칠 수 있었다.

위이이잉— 철컥!

철교 건너편의 산성 슬러그 포탑 두 기가 일제히 포신을 들어 올렸다.

터널 입구의 센티넬 지휘 개체 알파가 붉은 레이저 조준선을 하울러 01호의 운전실 전면 유리창에 정확히 고정했다.

삐비비비빅!

[경보 : 적성 화학 병기 록온 감지. 포격 개시 카운트다운 3초.]

"포탄 날아온다! 모두 충격에 대비해!"

박 씨가 핸들을 꽉 쥐며 고함을 질렀다.

콰아아앙! 콰아앙!

포탑의 포구에서 섭씨 200도로 끓어오르는 짙은 주황빛 산성 슬러그 포탄 두 발이 맹렬한 굉음과 함께 발사되었다.

공기를 찢으며 날아드는 산성탄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두꺼운 강철 장갑을 순식간에 엿가락처럼 녹여버리는 맹독성 덩어리였다.

"도현아, 지금이야!"

윤슬이 열차 상부 방호 해치를 열고 관측탑 플랫폼으로 민첩하게 몸을 솟구쳤다.

살을 에는 듯한 산성비와 맹독성 황산 안개가 그녀의 가죽 코트와 고글을 때렸지만 윤슬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착!

그녀는 어깨에 2만 볼트 전자기 충격 소총을 견착하고 숨을 멈췄다.

치지지직— 탕!

푸른 번개 줄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윤슬의 탄환은 허공을 날아오던 1번 포탑의 우측 하단에서 고압으로 산성 액체를 끌어올리던 유압 동력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꿰뚫었다.

콰지지직— 콰아아앙!

유압관이 파열되며 역류한 고압 화학액이 포탑 내부의 점화 코일에 닿았다.

1번 산성 슬러그 포탑이 거대한 불기둥과 함께 자체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여전히 2번 포탑과 센티넬들이 발사한 산성 슬러그 탄환과 부식 로켓 서너 발이 열차 전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내 차례로군."

운전실에 선 도현의 눈빛이 푸른빛으로 번뜩였다.

그는 목 뒤의 신경 단자를 기관차 전면 분사 제어반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동화율 99% : 콘티넨털 하울러 01호 외장 제어망 풀 링크.]

[전면 고압 분사 블래스터 4개 조 : 서부 돔 알칼리 중화제 탱크 직결.]

도현의 머릿속에 날아오는 포탄들의 궤적, 풍속, 산성 농도가 격자 데이터로 선명하게 펼쳐졌다.

가상 현실 넥서스에서 수천 번의 레이드 탄막을 계산해 내던 압도적인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이 10만 톤급 기관차의 유압 밸브로 직접 출력되었다.

"전면 블래스터, 분사각 상향 15도! 전압 최대 출력!"

푸슈우우우욱— 콰아아아아앙!

하울러 01호의 거대한 기관차 전면 장갑판에 매립되어 있던 대구경 고압 분사 노즐 네 개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노즐에서 방출된 것은 단순한 물이나 바람이 아니었다.

서부 해안 돔에서 실어 온 최고 순도의 탄산수소나트륨 복합 알칼리 중화제 분말 수십 톤이 초고압 압축 공기를 타고 거대한 백색 폭풍이 되어 허공을 뒤덮었다.

쿠지지지직— 촤아아아악!

날아오던 주황빛 산성 슬러그 탄환과 부식 로켓들이 허공에서 백색 중화제 구름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강산과 강염기가 맞부딪치며 맹렬한 화학 중화 반응이 일어났다.

치이이익!

금속을 녹이던 농황산이 중화제 분말과 닿는 순간 부글부글 거품을 일으키며 무해한 황산염 침전물과 맑은 수증기로 분해되었다.

두꺼운 장갑을 녹여버릴 듯 쇄도하던 맹독의 불덩어리들이 열차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맥없이 하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Acid_Burn_Expert : 성공이다! 고농축 알칼리 분말이 황산탄을 완벽하게 중화시켰어!

Chemical_Tech_33 : 세상에…… 포탄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버리다니!

Worker_419 : 하하하! 기술자 놈들의 지혜와 하울러의 완력이 합쳐지니 천하무적이 따로 없구나!

100만 시청자들의 환호가 무전망과 채팅창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열차는 이미 황산 계곡 대철교를 시속 180킬로미터로 건너 터널 앞 200미터 지점까지 쇄도하고 있었다.

철교 끝자락에서 센티넬 지휘 개체 알파가 다리를 뻗으며 복부의 주황빛 화학 노즐을 완전히 개방하려 했다.

그때 시청자 Acid_Burn_Expert의 다급한 메시지가 도현의 시야 구석에 떠올랐다.

Acid_Burn_Expert : 도현 님! 녹스 센티넬의 복부 노즐 바로 위쪽 주황빛 냉각 슬릿이 약점입니다! 저길 치면 체내 산성 탱크가 역류해 자폭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도현이 열차 전면 원격 레일건 조종간을 틀어쥐었다.

99% 동화율 감각이 센티넬 알파의 주황빛 슬릿에 십자선을 고정했다.

타앙— 콰지지직!

음속의 세 배로 사출된 텅스텐 레일 탄환이 센티넬 알파의 냉각 슬릿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쿠구구궁!

내부 냉각선이 끊긴 센티넬 알파의 동력 코어가 과열되며 체내에 응축되어 있던 고압 산성액이 내부 회로로 역류했다.

콰아아앙!

센티넬 알파가 거대한 주황빛 불꽃을 일으키며 폭발하자 지휘 신호를 공유하던 나머지 센티넬 11기의 기동이 일제히 정지하며 스파크를 튀겼다.

"박 씨 아저씨! 선로 바리케이드입니다!"

한수가 외쳤다.

터널 입구를 가로막은 수십 톤의 강철 레일과 경화 수지 방벽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박 씨가 이를 악물며 스로틀을 한계선 너머로 밀어붙였다.

"이 10만 톤 하울러가 어떤 놈인데 고작 쇳조각 몇 개에 멈출 것 같으냐! 충각 돌파다!"

쿠구구구구궁!

하울러 01호 전면에 장착된 초중량 고장력 V자형 충각 배장판이 푸른 플라스마 전류를 머금은 채 바리케이드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콰아아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선로를 가로막고 있던 강철 바리케이드와 화학 수지 덩어리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산산조각 난 쇳덩이와 기계 파편들이 협곡 절벽 아래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슈우우우웅— 콰앙!

하울러 01호는 한 치의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거대한 방폭 터널 속으로 쐐기를 박듯 돌입했다.

어두운 터널 내부의 벽면을 따라 붉은 비상등이 빠르게 뒤로 밀려나갔다.


쿠구구궁…… 치이이익.

터널을 관통한 하울러 01호가 서서히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육중한 차륜 브레이크에서 마찰열과 함께 하얀 압축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터널 출구를 빠져나오자 시야가 탁 트이며 거대한 돔 내부의 장경이 펼쳐졌다.

지름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내화학 유리 돔인 대륙 동부 화학 복합 단지(Sub_Dome_02)의 중앙 물류 플랫폼이었다.

치이익— 쿵.

마침내 20량 편성의 거대한 은빛 방호 열차가 플랫폼 레일 위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플랫폼에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웅크려 앉아 거친 기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돔 천장의 구형 정화 장치는 검은 연기를 뿜으며 멎어가고 있었고 공기 중에는 여전히 코를 찌르는 매캐한 황산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그 죽음의 정적 속에서 하울러 01호의 기관실 상부 공조 밸브가 활짝 열렸다.

푸슈우우우우욱—!

네오 아틀란티스의 초전도 정화 필터 코어를 거쳐 나온 깨끗하고 서늘한 청정 산소 폭풍이 플랫폼 전체로 뿜어져 나갔다.

탁하고 무겁던 황산 안개가 순식간에 밀려나고 싱그러운 바다 내음과 순수한 공기가 메마른 플랫폼을 가득 채웠다.

"공기가…… 숨이 쉬어져!"

"기침이 멎었어! 진짜 산소야!"

주민들이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어 열차 측면의 화물칸 에어록 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철컥— 쾅!

"동부 주민 여러분! 중앙 도시와 서부 해안 돔에서 보낸 구호 물자입니다!"

한수가 스피커를 쥐고 외치며 화물칸에서 상자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응급 방독면 10만 개와 고농축 알칼리 중화제 500톤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차례대로 지급됩니다!"

박 씨와 서부 정비대원들이 플랫폼으로 뛰어내려 상자들을 신속하게 풀었다.

깨끗한 산소와 방독면을 받아 든 5만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하울러 01호를 에워쌌다.

"살았다…… 우리가 살았어!"

"하울러가 정말로 독가스를 뚫고 우리를 구하러 와줬어!"

단지 관제소장 송민호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도현의 두 손을 으스러져라 맞잡았다.

"도현 씨……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38시간을 남겨두고 우리 5만 주민이 전부 죽는 줄 알았습니다."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소장님."

도현이 따뜻하게 미소를 지었다.

송민호는 주머니에서 동부 화학 단지의 자치 관제 마스터 키를 꺼내 도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대륙 동부 화학 복합 단지(Sub_Dome_02) : 대륙 자치 연합 정식 가입 비준 완료.]

이로써 중앙 도시, 남부 광산, 서부 해안 물류 돔에 이어 동부 화학 단지까지 대륙의 네 개 핵심 거점이 하나의 연합으로 묶였다.

하지만 도현의 시선은 이미 플랫폼 너머 단지 심층부를 향하고 있었다.

"소장님, 엘레나 서 박사의 기록에 따르면 이곳 동부 화학 단지에 구시대 우주 기지로 향하는 통로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도현의 질문에 송민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맞습니다. 우리 단지는 단순한 비료나 시약을 만들던 공장이 아니었습니다. 백 년 전 인류의 최후 프로젝트였던 '프로젝트 아폴로'의 우주 로켓 특수 연료와 초내열 세라믹 외장재를 전담 생산하던 특수 연구 단지였지요."

송민호가 플랫폼 한구석의 두꺼운 방폭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따라오십시오. 백 년 동안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던 지하 레일이 있습니다."

도현과 윤슬, 박 씨가 송민호를 따라 지하 300미터 깊은 암반 속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거대한 지하 격납고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는 산맥의 심장부를 수직에 가깝게 관통하여 동쪽 높은 고원으로 뻗어 있는 초고속 지하 인클라인 철도 레일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레일의 입구를 거대한 티타늄 격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격벽 중앙에는 선명한 황금빛 활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프로젝트 아폴로 : 제1 우주 발사 기지 직결 인클라인 궤도.]

[보안 등급 : 구시대 최고 사령부 인가 요망.]

"아테나가 인류의 우주 진출을 막기 위해 통제 코드를 심어둔 탓에 지난 백 년간 누구도 저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송민호가 탄식하듯 말했다.

도현이 격벽 옆 콘솔로 다가섰다.

그의 목 뒤 신경 단자가 푸른빛을 발산하며 콘솔 접속구에 직결되었다.

치릿— 콰지지직!

[접속자 생체 인식 : 강도현.]

[인가 권한 확인 : 최고 관찰자 권한(Project ARCA Master Override) 승인.]

[오퍼레이션 스트리머 뇌파 패턴 일치.]

[시스템 응답 : 프로젝트 아폴로 직결 궤도 격벽 봉인을 영구 해제합니다.]

쿠구구구구궁— 쾅!

백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수백 톤의 티타늄 방폭 해치가 육중한 먼지를 뿜어내며 위로 들어 올려졌다.

칠흑 같은 어둠 너머로 끝없이 뻗어 있는 지하 레일과 함께 차갑고 청명한 고원의 밤바람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터널 저편 아득한 고원 분지에서 콘티넨털 하울러 01호의 전조등 불빛을 받아 은빛으로 번뜩이는 거대한 구조물.

인류가 별을 향해 쏘아 올리려 했던 거대한 우주 방주와 발사 타워의 장엄한 실루엣이 마침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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