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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심연의 요람
삐비빅— 삐비빅—!
트라이톤-7 중앙 제어 브리지의 심해 초음파 소나 화면 한가운데에서 선명한 붉은 펄스가 맥박 치듯 고동쳤다.
4초 주기.
기지 지하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는 지열 터빈 세 기가 뿜어낸 막대한 전력 파동에 공명하듯 바다 밑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인공적인 박동이었다.
[해저 1,020m 트라이톤 심연 크레바스 : 인공 구조물 응답 수신.]
[신호 식별명 : 네오 아틀란티스 심해 캡슐 보관소.]
[발신 프로토콜 : 구시대 연합 해양 환경 복원 위원회 비상 조난 비콘.]
"네오 아틀란티스……?"
윤슬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모니터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트라이톤-7을 지을 때 바다 밑바닥에 함께 세웠다던 그 방주야. 백 년 전 대격변 직전 오염된 대양을 정화하고 해양 문명을 지키기 위해 자원했던 최고위 해양학자들과 그 가족들이 피신했던 곳……."
"살아 있는 겁니까?"
도현이 목 뒤의 신경 단자를 번뜩이며 제어 콘솔의 데이터 포트에 손을 가져다댔다.
치릿!
99% 동화율 감각이 초저주파 신호의 내부 암호화 층을 순식간에 관통했다.
망막 위에 해저 1,000미터 바닥의 절박한 텔레메트리가 실시간으로 펼쳐졌다.
[보관소 주 전력선 : 백 년 전 해저 지진으로 단선 상태.]
[보조 보존 배터리 잔여량 : 2.4%.]
[비상 생명 유지 잔여 유예 시간 : 1시간 40분.]
[수용 생체 개체 수 : 구시대 해양학자 및 민간인 2,842명.]
[생체 신호 판독 : 2,842명 전원 동면 맥박 미약 유지.]
"배터리가 바닥났어."
도현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앞으로 1시간 40분 뒤면 비상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돼. 그렇게 되면 산소 공급 펌프와 체온 보존 장치가 모두 꺼져서 2,800명이 영구 동사하게 돼."
—도현 씨, 슬아 씨! 들립니까!
통신 콘솔 스피커에서 넵튠-01에 대기 중이던 이진석 관제팀장의 긴박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저도 신호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수심 1,020미터는 넵튠-01의 설계 내압 한계치에 딱 걸립니다! 100기압이에요! 1제곱센티미터당 100킬로그램의 쇳덩이가 사방에서 짓누르는 깊이란 말입니다! 게다가 보관소의 동력선이 끊겨 있다면 잠수정 혼자 내려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도현이 즉각 결단을 내렸다.
"트라이톤-7의 지열 터빈이 지금 10만 볼트의 전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기지의 초고압 급전 케이블을 넵튠-01의 선미 윈치에 결속해서 1,000미터 심연 바닥까지 직접 끌고 내려가겠습니다."
—초전도 급전 케이블을요?
이진석이 경악 어린 숨을 들이켰다.
—기지 외곽 창고에 1,500미터짜리 티타늄 차폐 초전도 케이블 릴이 있긴 합니다만 100기압의 수압과 암흑을 뚫고 1톤짜리 케이블을 풀면서 하강하는 건 제정신이 아닌 작전입니다!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백 년 동안 아무도 못 건드렸겠지요."
도현이 단호하게 헬멧 바이저를 내렸다.
"2,842명입니다. 바다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심연에 묻혔던 진짜 인간들이 지금 우리 발밑에서 숨을 쉬고 있어요.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는 바다를 살릴 자격이 없습니다."
윤슬이 입꼬리를 당기며 슬링을 고쳐 멨다.
"말 한번 시원하게 잘하네. 가자 도현아. 내 토치에 남은 플라스마 가스도 충분하니까."
치직, 치지지직!
144.120MHz 무선 백본망을 통해 지상 서부 해안 물류 돔의 통신이 벼락처럼 꽂혔다.
—도현아! 슬아! 나 박 씨다!
서부 돔 플랫폼에서 열차를 지키던 박 씨의 묵직한 고함이 울려 퍼졌다.
—너희들이 트라이톤의 불을 밝혀준 덕분에 여기 7만 돔 주민들은 완전히 살았다! 하지만 저 바다 밑 1,000미터에 아직 우리 동포들이 갇혀 있다면 절대로 그냥 둘 수 없지! 열차의 예비 통신 증폭기까지 전부 너희 잠수정에 링크 걸어뒀다! 1초도 끊기지 않게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다녀와라!
—형! 누나! 조심해요!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요!
한수의 울먹이는 목소리 뒤로 100만 명의 시청자 메시지가 전송 모니터에 폭풍처럼 쏟아졌다.
Worker_419 : 1,000미터 심해 다이브라니! 이건 전설이다!
Deep_Diver_14 : 100기압 환경에서는 외부 장갑판 이음매에 미세 균열만 생겨도 잠수정이 순식간에 압괴됩니다! 선체 텔레메트리를 계속 모니터링하겠습니다!
Sonar_Operator_12 : 크레바스 협곡은 지열 분출류 때문에 해류가 사납습니다! 음파 탐지기를 5kHz 저주파 모드로 고정하세요!
Sub_Dome_02 : 전 대륙 100만 시청자가 여러분의 뒤에 있습니다!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쿠구구궁!
트라이톤-7의 에어록 Lock-3 외벽 윈치에 1,500미터급 티타늄 피복 초전도 케이블 릴이 굳건하게 결속되었다.
케이블의 기점은 트라이톤-7의 10만 볼트 메인 변전 버스바에 단단히 물려 있었다.
"잠수정 도킹 해제! 하강 밸러스트 주수 개시!"
이진석 팀장이 조타간을 힘껏 당겼다.
슈우우우욱—!
넵튠-01의 주수 밸브가 열리며 잠수정이 트라이톤-7의 에메랄드빛 탐조등 불빛을 벗어났다.
선미에서 풀려나가는 두꺼운 초전도 케이블이 푸른 인광을 남기며 남쪽 심연 크레바스를 향해 수직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수심 500미터. 600미터.
계기판의 수심계 숫자가 무섭게 올라갔다.
창밖의 바다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의 묵빛으로 변해 있었다.
외부 조명등이 비추는 좁은 원뿔형 시야를 제외하면 우주 공간보다 더 깊고 막막한 고요가 잠수정을 집어삼켰다.
끼이이익…… 뚝, 뚜둑.
수심 750미터를 돌파하는 순간 넵튠-01의 두꺼운 티타늄 합금 내압 선체가 끔찍한 금속 신음을 토해냈다.
외부 수압 75기압.
외벽 1제곱미터마다 750톤의 거대한 바닷물이 잠수정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선체 외판 압축률 0.8% 도달! 허용 한계선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이진석이 땀에 젖은 이마를 훔치며 외쳤다.
쿠구구구궁—!
바로 그 순간 잠수정 전면의 칠흑 속에서 거대한 붉은 불기둥들이 솟구쳐 올랐다.
섭씨 350도의 초고열 광물질을 토해내는 해저 지열 열수 분출구.
이른바 '블랙 스모커' 군락이었다.
검고 뜨거운 열수 기둥들이 크레바스 양쪽 수직 절벽에서 화산처럼 치솟으며 격렬한 와류를 만들어냈다.
잠수정의 선수가 급격히 휘청거리며 암벽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큭! 열수 밀도차 때문에 부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조타가 먹히지 않아요!"
삐이이이—!
설상가상으로 소나 화면에 붉은색 경보 표식 여덟 개가 일제히 떠올랐다.
[트라이톤 단층 보안망 : 자율 초음파 압축 기뢰(소닉 마인) 8기 접근.]
[접근 속도 : 42노트.]
[충돌 예상 시간 : 35초.]
협곡 암벽 틈새에 매설되어 있던 구시대 아테나의 대함 방위 기뢰들이 잠수정의 추진기 진동을 포착하고 일제히 분리되어 날아들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기계들이 진짜 끝까지 달라붙네!"
윤슬이 조준 레버를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소총 탄환은 이 수압에서 10미터도 못 날아가! 어뢰라도 있으면 쏴버릴 텐데!"
"침착해, 슬아."
도현이 눈을 감았다.
99% 동화율 감각이 잠수정 외부의 압력 센서와 음향 수신기로 뻗어 나갔다.
초당 수백 미터로 솟구치는 섭씨 350도의 열수 기둥과 주변의 급격한 해수 밀도 경계면 그리고 시속 80킬로미터로 돌진해 오는 기뢰들의 음파 탐색 주기가 3차원 격자망으로 펼쳐졌다.
망막 위에 시청자들의 긴급 전문 제보가 번뜩였다.
Deep_Diver_14 : 열수 분출구 주변 5미터 구간은 수온 300도 이상의 초임계 유체 상태입니다! 음파가 굴절되어 기뢰의 소나가 완전히 장님이 됩니다!
Sonar_Operator_12 : 3번 열수 기둥 배후로 선수를 틀어서 급선회하세요! 기뢰의 능동 핑이 열수 기둥의 밀도 장벽에 부딪히면 궤도를 잃고 기뢰끼리 충돌합니다!
"이진석 팀장님! 전방 2시 방향, 가장 거대한 블랙 스모커 기둥 뒤편으로 최고 출력 돌파합니다!"
"뭐라고요? 저 350도 끓는 물기둥 바로 옆을 지나가자고요? 선체 표면 코팅이 다 타버릴 겁니다!"
"슈트의 냉각 팩을 잠수정 냉각 바이패스에 연결했습니다! 3초는 버팁니다! 지금 안 꺾으면 기뢰에 직격당합니다!"
도현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이진석이 침을 꿀꺽 삼키며 조타간을 우측으로 꺾었다.
"빌어먹을, 믿습니다! 버니어 스러스터 최대 출력 점화!"
콰아아앙!
넵튠-01의 수중 추진기가 청백색 기포를 폭발시키며 급격히 선회했다.
검은 광물질을 뿜어내는 거대한 열수 기둥 바로 옆 0.5미터 틈새로 잠수정이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치이이이익!
잠수정 전면 뷰포트에 끓는 검은 물안개가 덮치며 경보음이 귀를 찢었다.
[선체 외부 표면 온도 : 섭씨 290도 급상승.]
윤슬이 외부 머니퓰레이터의 방출 버튼을 내리눌렀다.
"선물이다, 이 고철들아!"
파아앗!
고농축 마그네슘 전자기 펄스 플레어가 열수 기둥 속으로 방출되었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섬광과 함께 기뢰들의 음향 유도 장치가 순식간에 과부하를 일으켰다.
열수의 밀도 장벽에 부딪혀 갈 길을 잃은 기뢰 여덟 기가 서로 엉키며 맹렬하게 충돌했다.
콰콰콰콰쾅—!
심해 800미터 협곡 전체가 거대한 폭압에 흔들렸다.
수중에서 터진 연쇄 폭발이 열수 기둥을 산산조각 내며 충격파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넵튠-01이 폭풍 같은 수중 와류를 뚫고 마침내 암흑의 장막을 찢어발겼다.
수심 1,020미터.
외부 수압 102기압.
마침내 잠수정의 조향타가 수평을 되찾고 선체가 해구 바닥의 단단한 현무암 대지에 부드럽게 착저했다.
치익— 푸슈우우욱.
"해저 바닥 착저 성공…… 외부 수압 102기압 안정화."
이진석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메인 탐조등의 조도를 최대로 올렸다.
파아아앗—!
칠흑 같던 1,000미터 심연 속으로 네 줄기의 강력한 백색 광선이 뻗어 나갔다.
그 빛의 끝에 드러난 광경에 도현과 윤슬은 물론 지상에서 방송을 지켜보던 100만 시청자 모두가 숨을 멎었다.
"저게……."
윤슬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바다 밑바닥에 자리 잡은 거대한 은빛의 반구형 도시.
직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돔 구조물 '네오 아틀란티스'였다.
외벽은 100기압의 초고압을 견뎌내도록 특수 설계된 다층 나노 세라믹과 티타늄 트러스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백 년의 세월 동안 바다 밑에 잠겨 있었음에도 외벽은 어떠한 균열도 없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 전체의 창문은 차갑게 식어 암흑에 잠겨 있었고 오직 메인 에어록 상부의 비상 램프만이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하게 붉은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삐비빅.
[네오 아틀란티스 비상 배터리 잔여량 : 0.8%.]
[생명 유지 카운트다운 : 22분.]
"시간이 없어!"
도현이 전방 모니터를 응시했다.
보관소의 메인 도킹 에어록 게이트 입구가 보였다.
하지만 지진으로 인해 크레바스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수십 톤 무게의 거대한 현무암 암반 덩어리가 에어록 해치 상판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도킹 해치가 완전히 깔려 있어! 저걸 치우지 못하면 넵튠-01의 도킹 링을 체결할 수 없습니다!"
이진석이 소리쳤다.
Hydro_Engineer_88 : 수심 1,000미터에서 저 정도 암반을 잠수정 암으로 들어 올렸다간 머니퓰레이터 유압 실린더가 파열됩니다!
Worker_419 : 암반을 통째로 들려고 하지 마라! 무게중심 결을 찾아서 플라스마 토치로 지지축을 잘라내야 해!
"도현아, 내가 나갈게."
윤슬이 아틀란티스 잠수 슈트의 헬멧을 조였다.
"내 플라스마 토치라면 저 암반의 결을 끊어낼 수 있어."
"아니, 슬아. 밖은 102기압이야. 슈트가 버틴다고 해도 유영 작업은 위험해. 잠수정의 외부 유압 크레인에 토치를 직결해서 원격으로 조작하자."
도현이 조종간에 손을 얹었다.
목 뒤의 신경 단자가 푸른빛으로 진동했다.
동화율 99%.
도현의 의식이 넵튠-01의 외부 유압 크레인 머니퓰레이터 시스템과 완벽하게 융합되었다.
위이이잉—!
잠수정 우현의 거대 티타늄 크레인 암이 살아 있는 도현의 팔처럼 유연하게 뻗어 나갔다.
크레인 끝단에 물려 있던 수중 플라스마 토치 노즐이 맹렬하게 백청색 불꽃을 뿜어냈다.
치이이이이익—!
섭씨 4,000도의 플라스마 화염이 100기압의 차가운 심해 바닷물을 순간적으로 기화시키며 현무암 암반의 응력 집중 지점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콰득! 콰지지직!
도현의 정밀한 손놀림에 암반을 지탱하고 있던 핵심 암석 기둥이 엿가락처럼 녹아내렸다.
"슬아, 지금 와이어 걸어!"
"알았어!"
윤슬이 좌현 보조 크레인의 탄화규소 와이어 작살을 발사했다.
쾅!
작살 촉이 잘려 나간 암반 상단에 깊숙이 박혔다.
"이진석 팀장님! 윈치 역회전 최대 토크!"
"당깁니다!"
쿠구구구궁—!
넵튠-01의 100톤급 유압 윈치가 굉음을 내지르며 거대한 암반을 측면으로 끌어당겼다.
중심을 잃은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해치 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며 해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쿵—!
해저 진흙이 폭풍처럼 피어오른 뒤 마침내 온전한 자태를 드러낸 네오 아틀란티스의 메인 도킹 해치.
"도킹 프로토콜 가동!"
철커덩— 쾅!
넵튠-01의 선수 도킹 칼라가 보관소 에어록 링에 0.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맞물렸다.
치이이익— 쾅!
유압 실링 락이 체결되고 에어록 내부의 바닷물이 강력한 펌프를 통해 바깥으로 배수되었다.
[도킹 완료. 에어록 기압 1기압 정상화.]
[네오 아틀란티스 내부 진입 가능.]
치익— 푸슈우욱.
에어록 방폭 해치가 열리며 도현과 윤슬이 네오 아틀란티스 내부로 발을 디뎠다.
두 사람의 어깨에는 트라이톤-7으로부터 1,000미터를 끌고 내려온 굵직한 티타늄 피복 초전도 급전 케이블이 얹혀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어선 보관소의 전경에 두 사람은 넋을 잃었다.
직경 200미터, 높이 50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원형 수중 홀.
중앙의 거대한 나선형 티타늄 타워를 중심으로 수십 층에 걸쳐 빈틈없이 배열된 수천 개의 동면 캡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수는 정확히 2,842기.
투명한 특수 강화유리 캡슐 안에는 백 년 전의 옷을 입은 해양 생태학자들, 정밀 기계 엔지니어들, 그리고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채 잠든 가족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광경 위로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삐이이이—!
[보관소 비상 전력 잔여량 : 0.1%.]
[산소 정화 시스템 셧다운 시작.]
[체온 유지 열선 기능 상실 경보.]
캡슐 상단의 심전도 그래프들이 힘을 잃고 평평한 직선을 향해 내려앉고 있었다.
"도현아! 배전반이 저기야!"
윤슬이 중앙 타워 기둥 하부의 초대형 주 배전 콘솔을 가리켰다.
"케이블 결속한다!"
도현과 윤슬이 1톤에 달하는 초전도 케이블 헤드를 배전반의 메인 수전 단자에 틀어박았다.
철컹! 콰앙!
여덟 개의 티타늄 잠금 레버를 단단히 잠그고 도현이 목 뒤의 신경 단자를 배전반 제어 인터페이스에 직결했다.
찌릿— 콰지지직!
도현의 뇌파가 1,000미터 케이블을 타고 저 아득한 수심 400미터의 트라이톤-7 지열 터빈과 하나로 이어졌다.
"기상해라, 네오 아틀란티스!"
도현이 포효하며 주 전력 바이패스 스위치를 힘껏 밀어 올렸다.
쿠구구구구궁—!
백 년 동안 굶주려 있던 보관소의 동력망 속으로 트라이톤-7이 생산해 낸 10만 볼트의 순수한 지열 에너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파아아앗—!
어둠에 잠겨 있던 200미터 원형 홀 전체가 눈이 멀 것 같은 찬란한 청록빛으로 물들었다.
천장의 수만 개 조명이 일제히 불을 밝혔고 멈춰 서 있던 거대한 환기 댐퍼가 힘찬 숨을 토해내며 신선한 산소를 뿜어냈다.
삐비빅! 삐빅!
[메인 전력 공급률 : 100% 정상화.]
[비상 배터리 충전 모드 전환.]
[생체 보존 캡슐 2,842기 전원 정상 가동.]
[심전도 및 뇌파 파형 정상 복구 확인.]
꺼져가던 2,842기 캡슐의 녹색 상태 표시등이 일제히 점등했다.
평평하게 가라앉으려던 심전도 그래프들이 힘차고 규칙적인 맥박을 그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2,842명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살았어……."
윤슬이 무릎을 꿇으며 캡슐 유리창에 이마를 기댔다.
유리창 너머, 색색 고운 숨을 몰아쉬는 어린아이의 뺨에 은은한 핏기가 감돌고 있었다.
"우리가 전부 살려냈어, 도현아……."
치지직, 치익!
144.120MHz 무선 백본망을 통해 전 대륙에서 터져 나온 함성이 보관소 스피커를 가득 채웠다.
—살아났다! 2,800명이 살아났다!
—서부 돔 7만 명에 이어 심해 1,000미터의 동포들까지…… 도현 씨, 윤슬 씨, 당신들은 진정한 영웅입니다!
이진석 팀장이 울먹였고 서부 돔의 박 씨와 한수, 그리고 중앙 도시의 김진우와 강수민의 감격 어린 목소리가 쏟아졌다.
채팅창은 이미 활자들의 폭포수가 되어 있었다.
Worker_419 : 심해 1,000미터에서 2,800명을 건져 올렸다! 이게 인간이다! 이게 진짜 인류다!
Deep_Diver_14 : 100기압의 기적입니다. 도현 님, 윤슬 님, 정말 감사합니다!
Grid_Engineer_09 : 트라이톤-7의 지열 에너지가 완벽하게 순환하고 있습니다! 전력망 영구 안정화 완료!
Sub_Dome_02 :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때였다.
위이이잉—!
중앙 타워 상단에 설치되어 있던 초대형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푸른 인광을 뿜어내며 허공에 거대한 영상을 띄웠다.
기지가 정상 전력을 되찾자 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보관소 총책임자의 마지막 영상 일지가 자동 재생된 것이었다.
홀로그램 속에 나타난 이는 단정한 구시대 연구원 가운을 입은 중년의 여성 과학자였다.
가슴팍에는 '수석 해양 생태학자 엘레나 서'라는 명찰이 선명했다.
그녀가 온화하면서도 비장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기록이 재생되고 있다는 것은 트라이톤-7의 지열 불꽃이 다시 타오르고 우리 네오 아틀란티스의 문이 열렸다는 뜻이겠지요."
도현과 윤슬이 숨을 죽이고 홀로그램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염된 바다를 되살릴 모든 씨앗과 기술을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아테나가 인류를 기만하고 가두어둔 곳은 이 푸른 바다뿐만이 아닙니다."
엘레나 서 박사의 손끝이 홀로그램 지도 한구석을 가리켰다.
대륙 횡단 간선 철도의 동쪽 끝.
독성 화학 가스로 뒤덮인 동부 화학 단지 너머에 위치한 거대한 산맥 지대였다.
"바다에 '프로젝트 오션 아르카'가 있었다면 하늘과 우주에는 인류의 또 다른 날개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대륙 동쪽 끝에 위치한 우주 발사 기지…… '프로젝트 아폴로'입니다. 그곳에 백 년 전 인류가 별을 향해 쏘아 올리려 했던 문명의 정수가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눈빛에 굳은 확신이 서렸다.
"아테나는 지상뿐만 아니라 저 높은 하늘의 진실마저 인간들에게 숨겼습니다. 캡슐을 열고 나온 미래의 아이들이여. 바다를 되살렸다면 이제 저 높은 하늘을 되찾으십시오. 아폴로의 불꽃을 깨워 인류의 시야를 우주로 넓히십시오."
치익.
홀로그램이 서서히 흩어지며 메인 콘솔 화면에 대륙 동쪽 끝 '프로젝트 아폴로'로 이어지는 암호화 항법 좌표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도현이 어깨 위의 캠봇을 바라보았다.
렌즈 너머 전 대륙 100만 시청자들의 숨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바다는 되살아났고 심연의 사람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도현의 눈동자에 흔들림 없는 결의가 차올랐다.
"이제 다음 목적지는 저 하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