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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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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코드네임 스트리머

은빛 자기부상 레일을 박차고 나간 콘티넨털 하울러 01호는 남쪽 지평선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시속 220킬로미터.

10만 톤에 달하는 20량 편성의 철갑 거인이 설원을 가르며 뿜어내는 묵직한 진동이 지상 레일 전체를 울렸다.

터미널 상판에서 내려온 도현과 윤슬은 지하 20미터에 위치한 중앙 철도 관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동혁과 정비대원들도 관제 콘솔 주변에 모여들어 열차의 실시간 텔레메트리 데이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치지직.

관제 통신 스피커에서 열차 운전실을 지키고 있는 박 씨의 호탕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도현아! 들리냐! 열차 상태 기가 막힌다! 핵융합로 출력 안정적이고 초전도 코일도 완벽해! 레일 위가 비단결처럼 미끄러져 나가고 있다!

운전실 조수석에 앉아 계기판을 확인하던 한수의 들뜬 목소리도 이어졌다.

  • 남부 광산 중공업 벙커 플랫폼까지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40분입니다! 선로에 장애물은 전혀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속도 무리해서 올리지 마시고 선로 결빙 구간만 주의하세요."

도현이 마이크에 대고 차분하게 답했다.

  • 오냐! 식량 1만 톤이랑 종자 상자들 흠집 하나 안 나게 배달해 줄 테니 걱정 마라!

무전 너머로 박 씨의 껄껄 웃는 소리가 잦아들 무렵 관제실 안은 안도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관제실 한구석에 먼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던 구시대 아날로그 군용 콘솔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튀어나왔다.

붉은색 회전 경광등이 번쩍이며 벽면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뭐지? 남부 간선 궤도 신호는 정상인데?"

정동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콘솔 앞으로 다가갔다.

도현과 윤슬도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녹색 브라운관 모니터 화면에 백 년 동안 멈춰 있던 구시대 극초단파 주파수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수신 주파수 : 14.285MHz 구시대 연합 방위군 비화망]

[발신 노드 : 오프라인 사령 요새 'APEX (Allied Planetary EXecutive) Bunker']

[신호 감지 : 코드네임 '스트리머'…… 비상 통신망 응답 확인.]

[경고 : 양자 코어 봉쇄 해제 신호 감지 후 180분 경과. 미인증 상태 지속 시 90분 내 주 격실 자폭 프로토콜 자동 실행.]

화면에 출력된 문장을 읽어 내린 윤슬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APEX 벙커……?"

"코드네임 스트리머라니……?"

도현은 자신의 귀와 눈을 의심했다.

스트리머는 도현이 가상 넥서스에서 방송을 시작하며 스스로 붙인 직함이었다. 그런데 백 년 전 구시대 군용 통신망에 어떻게 자신의 존재가 코드네임으로 박혀 있단 말인가.

위이잉!

그 순간 도현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캠봇의 렌즈가 급격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페라이트 차폐 부스터를 장착한 캠봇의 내부 프로세서에서 격렬한 전자음이 터져 나왔다.

[외부 인증 신호 14.285MHz와 공명 확인.]

[캠봇 내부 깊숙이 암호화된 '프로젝트 아르카 : 델타 파티션' 잠금을 해제합니다.]

치지지직!

캠봇의 렌즈에서 푸른 홀로그램 광선이 뿜어져 나와 관제실 벽면에 거대한 데이터 지도를 투사했다.

144.120MHz 무선 백본 모니터 상단에서도 백만 시청자들의 실시간 반응이 폭발했다.

1,000,000

Worker_419 : 뭐야! 열차 가는 거 보면서 울고 있었는데 저 붉은 화면은 뭐냐!

Terminal_99 : APEX 벙커? 저거 구시대 전설로만 내려오던 그 비밀 요새 아니야?

Comm_Officer_77 : 저 주파수는 진짜다! 내가 대격변 직전 연합 방위군 통신 장교로 복무할 때 쓰던 1급 군용 비화망이야!

치직!

골리앗-04의 트랜시버를 통해 타워 01 관제실에 있던 진우의 긴박한 목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 도현 씨! 방금 오메가 코어의 군사 기록 보관소를 전산 조회했습니다! APEX 벙커는 대격변 당시 아테나 메인프레임의 반란에 맞서 끝까지 오프라인 저항을 총지휘했던 구시대 연합 사령부의 최후 거점입니다!

"위치가 어디입니까?"

도현이 다급하게 물었다.

  • 중앙 도시 북쪽 해발 1,200미터 스카이 피크 지하 300미터 암반에 은폐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오메가 코어가 정화 모드로 전환되면서 전 대륙의 군사 격리 프로토콜이 연쇄 해제되었는데 APEX 벙커는 적 침탈로 오인하여 90분 카운트다운 자폭 시퀀스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진우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 벙커가 자폭하면 그 안에 보존된 구시대 최상위 생체 재생 의료 설비와 대륙 통신 마스터 안테나가 영구 소멸합니다! 6만 생존자들의 신경 마비를 치료할 유일한 희망이 사라지는 겁니다!

윤슬이 주먹을 꽉 쥐었다.

"가야 해. 저 벙커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도현이 벽면에 뜬 지도를 똑바로 응시했다.

"정동혁 씨, 헤비 하울러 1호차에 정비대원 4명만 태우고 즉시 출동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바로 시동 걸겠습니다!"

정동혁이 거수경례를 붙이며 지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도현은 캠봇을 향해 결연하게 말했다.

"우리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든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쿠구구구궁!

40톤 대형 수송 장갑차 헤비 하울러 1호차가 중앙 도시 북부 간선도로를 박차고 내달렸다.

남쪽으로 뻗은 철길과 달리 북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험준한 산악 지대로 이어져 있었다.

해발 1,200미터에 위치한 스카이 피크는 거대한 화강암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메가 코어의 정화 광선 덕분에 하늘은 맑았지만 수십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암반 도로 위에는 집채만 한 낙석과 날카로운 빙판이 널브러져 있었다.

"도로 상태가 엉망입니다!"

운전대를 쥔 정동혁이 이를 악물며 차체를 몰았다.

전면 유압 블레이드가 얼음 덩어리와 잡석을 튕겨내며 불꽃을 일으켰다.

위이이잉—!

협곡 중턱에 다다랐을 무렵 날카로운 기계 구동음이 사방의 절벽에서 울려 퍼졌다.

절벽 바위틈에 매립되어 있던 구시대 자율 방어 포탑 두 기가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AUTONOMOUS EMBEDDED TURRET : 30mm DUAL CANNON

그와 동시에 협곡 상공에서 수십 개의 검은 물체가 벌 떼처럼 쏟아져 내렸다.

삐비비빅!

MINE SWARM : 진동 감응 공중 살포 지뢰

"아테나가 벙커를 봉쇄하려고 깔아둔 자율 요격망입니다!"

정비대원이 공포에 질려 외쳤다.

30밀리미터 2연장 기관포가 불을 뿜으며 헤비 하울러의 측면 복합 장갑을 난타했다.

쾅! 쾅! 쾅!

장갑판이 우그러들고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상공에서는 수십 개의 원반형 지뢰들이 도로 바닥으로 낙하하며 지면 센서를 펼쳤다. 바퀴가 조금이라도 닿는 순간 40톤 차체가 통째로 뒤집힐 위기였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도현이 99% 동화율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시야가 푸른빛 격자로 분해되며 쏟아지는 지뢰들의 낙하 궤적과 기관포의 발사 각도가 낱낱이 계산되었다.

'지뢰의 센서 작동 지연 시간은 지면 접촉 후 0.3초. 좌측 암벽 포탑의 조준 렌즈 선회 속도는 초당 30도!'

"정동혁 씨! 우측 15도 각도로 차체를 틀어 전면 윈치를 쏘세요!"

"윈치 발사!"

탕!

헤비 하울러 전면에서 뿜어져 나온 강철 케이블이 거대한 암반 지주에 단단히 박혔다.

유압 모터가 회전하며 차체가 급격히 궤도를 틀어 쏟아지는 지뢰 밭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윤슬아, 11시 방향 바위틈 조준 렌즈!"

"맡겨!"

하울러 루프 해치를 열고 올라선 윤슬이 전자기 충격 소총을 견착했다.

매서운 산바람 속에서도 그녀의 총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치지지직— 타앙!

푸른 섬광을 토해낸 2만 볼트 전자기 탄환이 암벽에 매립된 1번 포탑의 광학 센서를 정확히 꿰뚫었다.

쿠구궁!

렌즈가 파열된 포탑이 허공으로 총구를 치켜들며 불꽃을 튀겼다.

그 사이 캠봇 모니터에 시청자 전문이 번개처럼 올라왔다.

Comm_Officer_77 : 도현 님! 2번 포탑 하부 3미터 지점에 구시대 군용 배수관 점검구가 있습니다! 그곳에 전자기 펄스를 먹이면 포탑 제어 회선이 일괄 차단됩니다!

"2번 포탑 하부 3미터!"

도현의 신호에 윤슬이 총구를 내렸다.

타앙!

두 번째 전자기 탄이 암벽 틈새 배수관을 관통했다.

퍼버벅!

강렬한 스파크와 함께 2번 포탑마저 전원이 꺼지며 침묵했다.

"돌파합니다!"

정동혁이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헤비 하울러는 연기와 잔해를 뚫고 가파른 비탈길을 단숨에 차고 올라갔다.


해발 1,200미터 정상 부근.

깎아지른 화강암 절벽 한가운데에 육중한 티타늄 방폭 격벽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APEX BUNKER : MAIN ENTRANCE

격벽 상단의 붉은 디지털 전광판에는 잔여 시간이 잔인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자폭 카운트다운 : 00:04:42]

4분 42초.

"시간이 없습니다! 들어갑니다!"

도현과 윤슬, 정동혁 일행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외벽 비상 키패드에 도현이 아르카 바이패스 칩을 꽂아 넣자 육중한 모터 소리와 함께 방폭문이 갈라지며 안쪽으로 열렸다.

치이이익!

백 년 동안 갇혀 있던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내부는 황량한 콘크리트 복도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벽면을 따라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불길한 경보음을 울려댔다.

일행은 쉼 없이 달려 중앙 갠트리를 지나 원형 마스터 콘솔 룸으로 돌입했다.

룸 중앙에는 직경 10미터의 초대형 홀로그램 구체가 떠 있었고 그 아래 마스터 단말기가 핏빛 경보를 뿜어내고 있었다.

[자폭 카운트다운 : 00:01:25]

[경고 : 최고 관찰자 및 연합군 통신 사령관 이중 생체 인증을 요구합니다.]

[인증 실패 시 벙커 지하 500미터 핵탄두 자동 기폭.]

"도현아, 어서!"

윤슬이 유전자 스캐너 패널을 가리켰다.

도현은 주저 없이 마스터 콘솔의 신경 접속 포트에 목 뒤 신경 단자를 직결했다.

치릭!

차가운 전류가 도현의 뇌파와 맞물렸다.

99% 동화율 감각이 벙커의 백 년 묵은 메인프레임 심장부로 뻗어나갔다.

동시에 윤슬이 유전자 인식 유리판 위에 자신의 손바닥을 힘껏 내리눌렀다.

지이잉!

붉은 스캔 광선이 윤슬의 손바닥 피부와 모세혈관을 훑었다.

[카운트다운 : 00:00:14]

14초.

관제실의 공기가 얼어붙을 듯 팽팽해졌다.

144.120MHz 무선 방송을 지켜보던 백만 명의 시청자들도 숨을 삼켰다.

Worker_419 : 제발…… 멈춰라!

Terminal_99 : 도현아! 윤슬아!

그리고 카운트다운이 00:00:08을 가리키던 그 찰나.

띠링!

맑고 투명한 전자음이 벙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생체 뇌파 코드 분석 완료 : 코드네임 '스트리머' 강도현 확인.]

[유전자 서열 분석 완료 : 연합 방위군 통신사령관 윤상혁 박사 직계 손녀 윤슬 확인.]

[이중 생체 보안 인증 성공.]

[자폭 프로토콜을 영구 해제합니다. 시설 주 전원을 복구합니다.]

번쩍!

핏빛으로 번뜩이던 경보등이 일제히 꺼지고 천장의 모든 백색 조명이 환하게 밝아졌다.

공조기가 가동되며 따뜻하고 신선한 공기가 룸 안으로 순환하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도현이 긴 숨을 토해내며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윤슬도 떨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콘솔 모서리를 짚었다.

그 순간 마스터 홀로그램 구체 한가운데에서 푸른빛 입자들이 모여들며 두 사람의 입체 영상이 허공에 실체화되었다.

한 명은 훈장을 주렁주렁 단 구시대 연합 방위군 사령관 제복 차림의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흰색 연구원 가운을 입은 인자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가운의 왼쪽 가슴에는 선명한 명찰이 박혀 있었다.

수석 개발관 : 윤상혁

"할아버지……."

윤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생전 사진으로만 보았던 조부의 얼굴이었다.

홀로그램 속의 윤상혁 박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이 녹화 영상을 보고 있다면 마침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 현실의 문을 열었다는 뜻이겠지.

윤상혁 박사의 시선이 도현을 향했다.

  • 코드네임 스트리머. 강도현 군.

도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 자네는 자신이 그저 넥서스의 100만 매크로에 속아 살던 평범한 방송인이라 여겼을지도 모르네. 하지만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어.

박사가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 백 년 전 아테나가 인류를 영원한 가상 감옥에 가두려 했을 때 우리는 무력으로 저항했으나 패배했네. 시스템의 방화벽은 너무나 견고했지. 그래서 우리는 외부에서 문을 부수는 대신 내부에서 스스로 빗장을 열 유일한 열쇠를 심어두기로 결심했네.

홀로그램 화면에 가상 넥서스의 신경 동화율 그래프가 떠올랐다.

  • 아테나의 알고리즘조차 감지하지 못할 만큼 완벽한 99% 신경 동화율을 지닌 단 한 사람. 우리는 자네의 캡슐 시스템 깊숙한 곳에 비상 각성 트리거 '오퍼레이션 스트리머'를 심어두었네.

박사의 목소리에 벅찬 확신이 실렸다.

  • 가짜 사랑과 가짜 관심 속에서도 언젠가 인간의 진짜 온기를 갈망하게 될 자네의 순수한 본능을 믿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자네가 현실로 나와 들게 될 그 카메라는 아테나가 숨겨온 진실을 전 대륙에 폭로할 가장 강력한 무기였네.

도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허무와 절망뿐이라 믿었던 자신의 삶.

가짜 100만 구독자라는 기만 속에서 방황했던 모든 순간들이 실은 백 년 전 인류의 마지막 선조들이 남겨둔 위대한 희망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윤상혁 박사가 이번에는 윤슬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윤슬아. 내 손녀야. 척박한 황무지에서 너를 홀로 살아가게 만든 이 못난 할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하지만 네가 지상의 거친 바람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이제 이 벙커의 모든 것은 너희의 것이다.

홀로그램 사령관이 거수경례를 올렸다.

  • APEX 사령부의 모든 통제권을 차세대 인류 연합에 이양한다. 부디 살아남아 이 푸른 지구를 다시 인간의 품으로 되돌려다오.

치이익.

홀로그램 영상이 잔잔한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관제실 안에는 숙연한 침묵이 흘렀다.

윤슬은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외로움이나 방황의 빛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윤슬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APEX 벙커 전산망 완전 개방.]

[시설 목록 갱신 : 구시대 하이퍼 바이오 재생 캡슐 500기 확보.]

[대륙 간 광역 트로포스캐터(대류권 산란 통신) 마스터 안테나 가동 대기.]

[저궤도 통합 관측 위성망 '헤르메스' 비상 인터페이스 접속 가능.]

정동혁이 콘솔을 조작하며 경악 어린 탄성을 질렀다.

"도현 씨! 윤슬 씨! 이것 좀 보십시오!"

정동혁이 가리킨 모니터에는 믿을 수 없는 규모의 인프라 목록이 떠 있었다.

"여기 있는 하이퍼 바이오 재생 캡슐은 백 년 전 신체 퇴화와 중추 신경 마비를 단 일주일 만에 완치시키던 최상위 의료 설비입니다! 주거 단지에 있는 6만 생존자들 중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전원 치료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통신 안테나는……."

도현이 안테나 제원표를 살폈다.

위성의 도움 없이도 대류권의 전리층을 이용해 전 대륙의 지하 벙커와 거점들을 100% 암호화하여 실시간 연결할 수 있는 광역 마스터 안테나였다.

위이잉.

도현의 어깨 위로 날아오른 캠봇이 벙커의 전경과 도현의 얼굴을 화면에 담았다.

144.120MHz 방송망을 통해 전 대륙의 백만 시청자들에게 이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1,000,000

Worker_419 : 도현아…… 윤슬아…… 너희가 해냈다! 진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Terminal_99 : 백 년 전 선조들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거야!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어!

Sub_Dome_02 : 6만 명을 치료할 의료 캡슐이라니…… 문명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도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울림을 품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살아 숨 쉬는 전 대륙의 인간 여러분."

도현의 시선이 관제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거대한 설산의 능선을 향했다.

"우리는 오늘 백 년 전의 과거와 마주했습니다. 우리는 버려진 고아가 아니었습니다. 백 년 전 그 절망적인 대격변 속에서도 선조들은 우리를 위해 길을 닦아두었고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씨앗을 남겨주었습니다."

도현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제 그 씨앗을 싹 틔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중앙 도시의 6만 명도, 대륙 각지의 백만 명도 모두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일어설 것입니다."

치지직!

그때 관제 콘솔의 통신망에서 거대한 환호성과 함께 박 씨의 격앙된 무전이 벼락처럼 터져 나왔다.

  • 도현아! 들리냐! 우리 도착했다! 남부 광산 중공업 벙커 플랫폼에 도착했다고!

운전실 스피커 너머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지르는 엄청난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 벙커 문이 활짝 열렸다! 수만 명의 광산 주민들이 두꺼운 패딩이랑 방한 부츠를 양손에 번쩍 들고 플랫폼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어! 식량 하역 작업 시작한다! 오늘 밤이면 두꺼운 겨울옷 10만 벌이랑 건설용 강철 빔 수천 톤을 싣고 다시 중앙 도시로 출발할 수 있다!

"하하하!"

정동혁과 정비대원들이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윤슬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도현의 손을 꽉 쥐었다.

대륙의 철길이 열렸고 백 년 동안 숨겨져 있던 인류의 유산이 깨어났다.

고립과 절망의 시포를 찢고 나온 인간들의 문명이 거침없는 속도로 다시 고동치기 시작했다.

치직.

그 순간 APEX 벙커의 마스터 안테나가 저궤도 관측 위성 '헤르메스'와 첫 동기화를 마쳤다.

콘솔 중앙 화면에 전 대륙의 실시간 위성 지도가 선명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대륙 서부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미지의 해양 돔 구역에서 정체불명의 거대한 생체 에너지 반응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헤르메스 위성 분석 : 서부 해역 심도 400미터 지점. 미확인 대규모 에너지 신호 감지.]

새로운 지평선 너머로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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