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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대륙을 잇는 철길
지상에서 맞이하는 둘째 날 아침이 밝아왔다.
제1 주거 복합단지 12개 타워의 창문 너머로 맑고 투명한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열 난방수가 온열 배관을 타고 쉼 없이 순환한 덕분에 수만 개의 방 안은 봄날처럼 훈훈했다. 백 년 동안 비좁은 캡슐 속에서 웅크리고 잠들었던 6만 명의 인간들이 난생처음으로 포근한 방바닥에서 기지개를 켜며 눈을 떴다.
"엄마, 창밖 좀 봐! 하늘이 파란색이야!"
"여보, 춥지 않아. 온몸이 따뜻해……."
아파트 단지 복도와 발코니마다 사람들의 경이로운 탄성이 번져 나갔다. 어젯밤 어둠과 한파에 떨며 동사의 공포에 짓눌렸던 표정들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감동적인 아침의 평온함 아래로 또 다른 생존의 난제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주거 단지 중앙 잔디광장 벤치에 앉아 있던 윤슬이 마른세수를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광장 통로에는 환자복 차림의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오가고 있었다.
"저 얇은 환자복 한 벌로 지상의 아침을 버티는 건 무리야. 방 안이야 난방이 돈다지만 밖으로 나오면 당장 찬 바람에 무릎이 시릴 테니까."
"의류뿐만이 아닙니다."
대형 배전반 점검을 마치고 걸어온 정동혁이 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발도 캡슐용 실내화가 전부라 거친 콘크리트 바닥을 조금만 걸어도 밑창이 뜯겨 나갑니다. 모포도, 옷가지도, 건물을 보수할 기본적인 수공구도 전무합니다. 6만 명이 맨몸으로 방 안에만 갇혀 살 수는 없습니다."
가상 넥서스에서는 인벤토리 버튼 하나만 누르면 원하는 옷과 도구가 즉시 실체화되었다.
하지만 현실의 물리 세계는 달랐다. 바늘 하나, 실 한 가닥, 단단한 가죽 장화 한 켤레마저도 인간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거나 어디선가 날라 와야 했다.
그때 도현의 어깨 위에서 조용히 호버링하던 캠봇이 맑은 전자음을 울렸다.
치직, 치지직.
144.120MHz 무선 백본 모니터 상단에 선명한 황금빛 숫자가 타올랐다.
1,000,000
밤새 단 한 명도 줄어들지 않은 백만 명의 진짜 인간 시청자들.
그들의 통신 단말에서 타전된 수백 통의 긴급 전문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Worker_419 : 도현아! 날이 밝았다! 우리 남부 광산 중공업 벙커는 지금 환장할 지경이다! 창고마다 두꺼운 방한 작업복이랑 강철 부츠, 건설용 철강재가 산더미처럼 썩어 넘치는데 먹을 게 없다! 캡슐에서 나온 8만 명이 흙을 파먹을 판이다!
Terminal_99 : 서부 해안 물류 돔 보고입니다! 바닷물에서 추출한 소금과 산업용 합성 고무, 건조 수산물 자원은 수만 톤이 비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발전기 변압기 코일과 초전도 케이블이 타버려 도시 절반이 정전입니다! 전력 부품과 의료 키트가 절실합니다!
Sub_Dome_02 : 동부 화학 단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독약과 정수 약품은 넘쳐나지만 단백질 배양 균주가 없어 굶주리고 있습니다!
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륙 전역의 거점들이 극심한 자원 불균형과 단절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곳은 옷과 철강이 넘쳐나는데 굶주리고 있었고 어느 곳은 약품이 썩어가는데 전기가 끊겨 얼어붙고 있었다. 중앙 도시는 바이오 팜 C-3의 풍부한 단백질 수프와 타워 01의 막대한 전력을 쥐고 있었지만 6만 명을 위한 의류와 철강재, 공구가 턱없이 부족했다.
"각 거점들이 거대한 섬처럼 고립되어 있어……."
도현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치직!
그때 골리앗-04의 메인 트랜시버에서 진우의 다급하면서도 흥분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도현 씨! 들리십니까! 진우입니다!
"진우 씨, 말씀하세요."
- 오메가 코어의 구시대 국가 교통망 아카이브를 전수 분석했습니다! 지금 계신 중앙 정부 청사 남쪽 2킬로미터 지점에 구시대 '중앙 자기부상 철도 터미널'이 존재합니다!
"철도 터미널이요?"
- 예! 대격변 이전 전 대륙의 지하 돔과 캡슐 타워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던 '대륙 간 초전도 고속 화물 철도망'의 심장부입니다! 지하 터널과 고가 방폭 레일로 연결되어 있어서 지상의 혹한이나 지형 붕괴와 상관없이 남부 광산 단지와 서부 해안까지 단 3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습니다!
진우의 음성이 한층 고조되었다.
- 그리고 위성 스캔 결과 터미널 야적장에 10만 톤급 대륙 횡단 초중량 화물 열차인 '콘티넨털 하울러 01호'가 완벽하게 밀봉 보존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10만 톤급 대륙 횡단 화물 열차.
그 단어가 도현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
- 그 열차를 기동하면 중앙 도시의 영양액 수만 톤과 정수 필터를 남부로 보내고 남부의 두꺼운 방한복 수만 벌과 철강재를 즉시 실어 올 수 있습니다! 전 대륙 100만 명의 혈관을 뚫는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하지만 그냥 열리지는 않겠지요?"
도현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우가 헛기침을 삼켰다.
- 맞습니다. 아테나가 철수한 직후 터미널 전체가 비상 자율 궤도 봉쇄 모드로 잠겼습니다. 선로를 순찰하는 무인 레일 센티넬들이 선로를 장악하고 있고 관제탑의 중앙 전철기가 동결되어 수동 해제가 필요합니다.
도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에 거침없는 결의가 타올랐다.
"박 씨 아저씨! 골리앗 시동 거세요!"
"오냐! 안 그래도 온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트랙터 정비를 마친 박 씨가 호탕하게 웃으며 운전석으로 뛰어올랐다.
도현이 정동혁과 윤슬, 한수를 향해 외쳤다.
"헤비 하울러 2대에 대형 견인 와이어와 절단 토치를 실어주십시오. 전 대륙을 잇는 철길을 뚫으러 갑니다!"
쿠구구궁!
50톤 골리앗-04와 헤비 하울러 2대로 구성된 철갑 선단이 중앙 대로 남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밤새 얼어붙었던 아스팔트 위로 황금빛 태양 빛이 부서져 내렸다.
2킬로미터를 내달려 도착한 중앙 자기부상 철도 터미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거대했다.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은빛 자기부상 레일과 중궤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그 위를 돔 형태의 거대한 강화 합금 캐노피가 요새처럼 덮고 있었다.
하지만 선로 진입로에 들어선 순간 날카로운 경보음이 허공을 갈랐다.
삐이이이익—!
[경고 : 비인가 지상 차량 접근 감지. 궤도 보안 프로토콜 7단계 작동.]
[선로 무단 침입체를 배제합니다.]
치지지직!
터미널 야적장 선로 위에서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붉은 서치라이트 두 개가 번뜩였다.
무한궤도 대신 4중 강철 휠을 레일에 물린 채 시속 60킬로미터로 질주해 오는 두 대의 거대한 장갑 기계.
AUTONOMOUS RAIL SENTINEL : UNIT 01, 02
20톤급 레일 센티넬이었다.
기체 상부의 다연장 터렛에는 40밀리미터 고속 유탄 발사기와 고전압 펄스 쇼크 암이 흉흉하게 거치되어 있었다. 그 상공으로는 6기의 고속 요격 드론이 날카로운 비행음을 내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센티넬의 포구에서 뿜어져 나온 고속 유탄들이 선로 주변에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파편과 흙먼지가 폭풍처럼 치솟으며 골리앗-04의 전면 장갑을 두들겼다.
"이 빌어먹을 고철 덩어리들이 손님맞이를 요란하게도 하는군!"
박 씨가 이를 악물며 50톤 차체의 운전대를 틀었다.
전면 200밀리미터 복합 블레이드가 선로 위에 널브러져 있던 폐열차 프레임을 굉음과 함께 들이받아 날려버렸다.
"정동혁 씨! 2시 방향 차폐 연막 투발!"
도현의 외침에 뒤따르던 헤비 하울러가 전면 연막탄 발사기를 격발했다.
펑! 퍼엉!
짙은 백색 차폐 연막이 선로 일대를 하얗게 집어삼켰다.
센티넬의 열영상 조준선이 연막 속에서 갈피를 잃고 허공으로 유탄을 흩뿌렸다.
그 찰나 도현의 머릿속에서 99% 동화율 감각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연막 너머로 맹렬하게 회전하는 센티넬의 포탑 구동 모터 소리와 레일 마찰음이 투명한 3차원 데이터로 분해되었다.
'포탑 선회 속도 초당 45도. 유탄 재장전 주기 1.4초. 궤도 전환 지점에서 방향을 틀 때 0.6초의 조향 사각이 생긴다!'
"윤슬아! 1번 센티넬 좌측 전방 드라이브 스프로킷!"
"확인!"
골리앗의 루프 해치를 박차고 나온 윤슬이 전자기 충격 소총을 어깨에 견착했다.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가 연막을 뚫고 나오는 센티넬의 휠 베어링을 포착했다.
타앙—!
푸른 섬광을 내뿜은 2만 볼트의 전자기 탄환이 1번 센티넬의 강철 바퀴 구동축을 정밀하게 관통했다.
콰지지직!
초전도 모터가 쇼트되며 1번 센티넬이 궤도 위에서 비명을 지르듯 불꽃을 튀겼다. 한쪽 바퀴가 잠긴 기체는 선로를 이탈하며 측면 방음벽을 들이받고 처박혔다.
"한수야, 2번 센티넬 포탑!"
"갑니다!"
조수석에서 상체를 내민 한수가 탄화규소 와이어 작살을 발사했다.
슈우우웅— 쾅!
강철 와이어가 2번 센티넬의 40밀리미터 유탄 포신 틈새에 깊숙이 쐐기를 박았다.
한수가 반대편 와이어를 골리앗의 유압 윈치에 물리는 순간 박 씨가 급제동과 함께 역회전 토크를 가했다.
끼기기긱!
강철 와이어가 팽팽하게 조여지며 2번 센티넬의 포탑이 강제로 비틀려 뽑혀 나갔다.
"지금이다!"
도현이 달리는 트랙터 위에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99% 동화율로 계산된 완벽한 궤적.
도현은 허공에서 쇄도하던 요격 드론 한 기의 프레임을 발판 삼아 밟고 도약하여 2번 센티넬의 상부 해치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이어 품 안에서 프로젝트 아르카 마스터 바이패스 칩을 꺼내 센티넬의 비상 단자 슬롯에 거칠게 내리꽂았다.
치지지직!
[프로젝트 아르카 최고 관찰자 권한 감지.]
[자율 전투 모드를 강제 종료합니다. 잔여 호위 드론 신호를 비활성화합니다.]
위이잉 소리와 함께 허공을 맴돌던 드론들이 일제히 프로펠러를 멈추고 선로 위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센티넬의 붉은 안광이 차분한 녹색으로 바뀌며 침묵에 잠겼다.
"휴우……."
도현이 거친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선로 정리 끝났습니다! 기관고로 진입합니다!"
터미널 중앙 기관고의 거대한 방폭 셔터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그 안쪽 깊숙한 어둠 속에서 마침내 그 웅장한 실체를 드러낸 거인.
도현과 일행은 일제히 숨을 삼켰다.
"세상에…… 저게 열차라고?"
박 씨가 넋을 잃고 턱을 벌렸다.
그곳에는 전장 800미터, 20량 편성의 초중량 화물 열차가 레일 위에 묵직하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무광 흑색의 두터운 티타늄 합금 장갑으로 뒤덮인 유선형 기관차의 전면에는 거대한 강철 제설 블레이드가 흉흉하게 솟아 있었고 차체 측면에는 구시대 대륙 수송국의 문장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CONTINENTAL HAULER : FREIGHT-01
100만 톤급이 아닌 10만 톤급의 대륙 횡단 화물 열차.
핵융합로와 고출력 디젤 터빈, 그리고 초전도 자기부상 코일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한 인류 문명의 걸작이었다.
하지만 감탄도 잠시였다.
기관고 바닥 선로를 점검하던 정동혁이 심각한 표정으로 외쳤다.
"도현 씨! 남부 간선 궤도로 나가는 1번 메인 전철기(선로 전환기)가 완전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도현이 선로로 뛰어내렸다.
수백 톤의 하중을 지탱해야 하는 거대한 전철기 레버와 유압 실린더가 두꺼운 영구 동토층 얼음과 녹에 뒤덮여 있었다.
"이걸 억지로 꺾으면 유압 밸브가 박살 나서 영영 선로를 못 바꿉니다. 그리고 기관실 점화 시퀀스도 비상 셧다운 코드로 잠겨 있어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때 도현의 어깨 위에서 캠봇이 황금빛 통신 파동을 일으켰다.
144.120MHz 무선망을 통해 전 대륙의 100만 시청자들이 열차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Worker_419 : 저게 전설의 콘티넨털 하울러냐! 저것만 오면 우리 벙커 8만 명은 산다!
Terminal_99 : 제발 시동을 걸어줘! 선로만 열리면 우리가 고무 패킹이랑 소금 가득 싣고 갈게!
그때 채팅창 한가운데에 붉은색 마크가 달린 닉네임 하나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Train_Master_55 : 도현 님! 제 말 들리십니까! 저 구시대 대륙 철도청 남부 간선 기관사였습니다!
새로운 전문가의 등장이었다.
Train_Master_55 : 콘티넨털 하울러의 전철기는 유압 실린더에 내장된 '동결 방지 바이패스 히터 코일'이 있습니다! 억지로 당기지 마시고 골리앗의 가열 토치로 실린더 좌측 3번 밸브를 30초간 집중 가열하십시오!
Train_Master_55 : 그리고 기관실 콘솔 2번 계기판 아래 수동 플라스마 인젝터 프라이밍 레버가 있습니다! 그걸 신경 인터페이스와 동조시킨 상태에서 당겨야 아테나의 락을 우회하고 핵융합로가 점화됩니다!
"정확한 매뉴얼입니다!"
도현이 즉시 외쳤다.
"박 씨 아저씨! 골리앗 가열 토치 연결해 주세요! 좌측 3번 밸브입니다!"
"맡겨둬라!"
박 씨와 정동혁이 골리앗의 작업 암에서 고열 플라스마 토치를 뽑아내 전철기 실린더를 달구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시퍼런 불꽃이 닿자 두껍게 얼어붙어 있던 얼음과 구리스 슬러지가 수증기를 뿜으며 녹아내렸다.
한수가 대형 지렛대를 레일 틈새에 밀어 넣고 온 체중을 실었다.
"하나, 둘, 셋…… 움직여라!"
철커어엉—!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수십 톤의 선로가 육중하게 이동하며 남부 간선 궤도와 빈틈없이 맞물렸다.
"선로 정렬 완료!"
한수가 땀을 닦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와 동시에 도현은 5미터 높이의 하울러 기관차 사다리를 타고 운전실로 뛰어올랐다.
운전실 내부는 수백 개의 아날로그 계기판과 홀로그램 콘솔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도현은 2번 계기판 하부의 붉은색 수동 플라스마 인젝터 레버를 잡았다.
그리고 목 뒤의 신경 단자를 운전석 인터페이스 포트에 접속했다.
치릭!
99% 동화율 감각이 거대한 열차의 내부 배관과 반응로 코어로 단숨에 뻗어나갔다.
수만 개의 부품이 내뿜는 진동과 저항이 도현의 신경망으로 직접 전해졌다.
'플라스마 압력 80%…… 예열 완료…… 지금이다!'
도현이 온 힘을 다해 레버를 당겼다.
쿠구구구구궁—!
순간 기관차 하부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잠들어 있던 10만 톤급 괴물의 핵융합로가 백 년 만에 푸른 플라스마 불꽃을 토해내며 깨어났다.
위이이이이잉—!
초전도 코일이 충전되며 800미터에 달하는 열차 전체가 은빛 자기부상 레일 위로 10센티미터 사뿐히 떠올랐다.
기관차 전면의 대형 헤드라이트 네 개가 칠흑 같은 터널 안쪽을 대낮처럼 밝히며 웅장한 백색 광채를 뿜어냈다.
[콘티넨털 하울러 01호 엔진 가동 성공.]
[남부 간선 궤도 전 구간 신호 개통 완료.]
"해냈다……! 엔진이 돌았다!"
운전실 창밖에서 박 씨와 정동혁, 윤슬과 한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정오 무렵.
중앙 철도 터미널 야적장 플랫홈은 활기로 가득 찼다.
지상 광장에서 달려온 헤비 하울러 6대가 쉼 없이 물자를 날랐다.
바이오 팜 C-3에서 밤새 농축한 고단백 스피룰리나 배양액 수만 통과 지하 암반수 정수 팩 수십 톤, 그리고 구시대 농업 연구소가 밀봉해 두었던 내한성 보리와 밀, 귀리 종자 수천 상자가 열차의 밀폐 화물칸으로 차곡차곡 적재되었다.
그리고 열차의 맨 앞쪽, 거대한 장갑 기관차의 상판 위.
도현이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위이잉.
캠봇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도현의 전신과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진 800미터의 철갑 열차, 그리고 남쪽 지평선을 향해 곧게 뻗어 있는 은빛 철길을 화면에 담았다.
144.120MHz 무선 백본망을 타고 전 대륙 100만 명의 시청자들이 숨을 죽인 채 도현을 바라보았다.
도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목소리가 터미널의 확성기와 전 대륙 벙커의 스피커를 통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전 대륙의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모든 살아있는 인간 여러분."
도현의 시선이 남쪽 지평선 너머를 똑바로 응시했다.
"우리는 어젯밤 차가운 어둠을 이겨내고 도시의 첫 번째 불빛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불빛 하나만으로는 문명을 세울 수 없습니다. 남부의 여러분은 옷과 철강을 쥐고도 굶주리고 있고 서부의 여러분은 소금을 쥐고도 전기가 없어 떨고 있습니다."
도현이 열차의 차체를 힘주어 두드렸다.
"그래서 우리는 이 철길을 열었습니다. 아테나의 통제도, 기계의 배급도 없는 우리 인간들의 첫 번째 대동맥입니다."
도현의 눈빛이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빛났다.
"중앙 도시는 오늘 남부 광산 구역으로 1만 톤의 식량과 정수 팩, 그리고 우리가 직접 키워낼 곡물 종자를 보냅니다. 남부의 여러분은 우리에게 따뜻한 옷과 신발, 도시를 재건할 철강재를 실어 보내주십시오. 서부의 여러분은 소금과 고무를 보내주시면 우리는 전력 부품과 의료 키트를 보내겠습니다."
도현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것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조약이 아닙니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고 온기를 나누는 진짜 인간들의 연대입니다. 전 대륙 시청자 여러분, 이 '대륙 자치 연합 협약'에 동의하십니까?"
도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캠봇 화면 위로 거대한 실시간 투표창이 활성화되었다.
[제1차 대륙 자치 연합 협약 체결 투표]
1초 만에 투표 수가 폭발했다.
10만…… 30만…… 70만…… 90만……!
그리고 마침내 모니터에 황금빛 숫자가 찬란하게 박혔다.
1,000,000 / 1,000,000 (찬성 100%)
단 한 명의 반대도 없는 백만 명 전원의 만장일치 찬성.
채팅창이 걷잡을 수 없는 환호로 뒤덮였다.
Worker_419 : 찬성이다! 백 번 천 번 찬성이다! 작업복이랑 방한화 10만 켤레 싸 들고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Terminal_99 : 서부 해안 돔 전원 찬성! 우리도 철길에 기름 치고 기다린다!
Sub_Dome_02 : 인간들의 연합이다…… 진짜 세상이 다시 이어졌다!
도현은 가슴 벅찬 감동으로 목이 메어오는 것을 느꼈다.
가짜 매크로 100만 명이 찍어 누르던 차가운 숫자 놀음이 아니었다.
피와 땀, 그리고 온기를 지닌 백만 명의 인간들이 서로 손을 맞잡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윤슬아."
도현이 옆에 선 윤슬을 바라보았다.
윤슬은 고글을 벗은 맑은 눈으로 도현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출발시켜, 도현아. 우리의 첫 번째 기차야."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실의 한수와 박 씨를 향해 무전을 날렸다.
"출발하십시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
10만 톤급 콘티넨털 하울러 01호가 대지를 찢을 듯한 거대한 기적을 울렸다.
백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대륙의 침묵을 깨부수는 위대한 생명의 고동.
치이이이익!
초전도 자기부상 코일이 푸른빛을 발산하며 800미터의 철갑 거인이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갔다.
가속 페달이 밟히며 열차는 은빛 레일을 타고 남쪽 지평선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설원을 가르는 거대한 열차의 궤적.
고립된 점으로 흩어져 있던 인간들의 삶이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선으로, 그리고 다시 살아 숨 쉬는 대륙의 면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치지직.
그때 터미널 지하 깊숙한 관제실 콘솔 한구석에서 붉은색 비상 표시등 하나가 조용히 점멸하기 시작했다.
백 년 동안 멈춰 있던 구시대 비밀 저항군 주파수.
[발신처 : APEX 벙커]
[수신 신호 감지 : 코드네임 '스트리머'…… 응답하라.]
대륙을 잇는 철길이 열린 바로 그 순간.
아직 끝나지 않은 구시대의 또 다른 비밀이 어둠 속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