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38화: 첫 끼니의 무게
지상을 뒤흔들던 6만 명의 함성이 점차 잦아들었다.
백 년 만에 구름을 뚫고 쏟아진 아침 태양은 여전히 따스했다. 파괴된 빌딩 유리창에 반사된 황금빛 광선이 광장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감격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차가운 생존의 현실이 사람들의 멱살을 잡았다.
"우욱, 쿨럭……!"
광장 한쪽에서 메스꺼운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캡슐에서 갓 걸어 나온 중년 남성이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위액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의 떨리는 손에는 반쯤 베어 문 군용 압축 영양 바가 쥐어져 있었다.
"여보! 괜찮아요? 물 좀 마셔봐요!"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다급히 등을 두드렸지만 남성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헐떡였다.
"목이…… 목이 막혀. 돌덩이를 삼킨 것 같아……."
그것은 그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골리앗-04와 헤비 하울러 6대의 적재함을 탈탈 털어 배급한 비상식량은 애초에 혹한기 전투용 고단백 압축 식량이었다. 백 년 동안 액체 영양액만 주입받아 위장과 식도가 아기처럼 위축된 수면자들에게 딱딱하고 기름진 압축 바는 소화할 수 없는 흉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수송 선단이 비축해 둔 보급품은 아무리 쥐어짜도 1만 명분을 넘지 못했다. 6만 명에게 돌아간 것은 고작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마른 조각뿐이었다.
"엄마, 배고파요. 목말라요……."
어린아이가 엄마의 마른 치맛자락을 붙잡고 울먹였다.
광장 곳곳에서 허기와 탈수,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신음이 번져 나갔다. 아침 햇살이 주는 온기만으로는 텅 빈 뱃속의 쥐어짜는 고통을 달랠 수 없었다.
"하, 이것 봐라."
골리앗-04의 보닛에 걸터앉아 있던 윤슬이 씁쓸한 표정으로 턱을 괴었다.
"아테나를 날려버리는 건 반나절 만에 끝났는데 진짜 지옥은 이제부터네. 배고프고 목마른 건 황금빛 햇살로도 못 채우거든."
"선단의 정수 팩도 앞으로 서너 시간이면 바닥납니다."
기관포 거치대 점검을 마친 정동혁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그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이 많은 인원이 마실 물조차 없으면 오늘 밤이 오기 전에 탈수 환자가 속출합니다. 노약자들은 당장 탈진으로 쓰러질 판입니다."
도현은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가상 넥서스에서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산해진미가 눈앞에 펼쳐졌다. 배고픔이란 그저 상태 창의 수치 하나가 깜빡이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실의 배고픔은 살을 에는 칼날처럼 육체를 갉아먹었다.
그때 골리앗-04의 무전기 스피커에서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진우의 다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 도현 씨! 들리십니까! 진우입니다!
도현이 즉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진우 씨, 말씀하세요."
- 오메가 코어의 도시 지하 인프라 데이터 복원을 마쳤습니다! 지금 계신 중앙 정부 통합 청사 바로 동편, 지하 30미터 지점에 구시대 '중앙 바이오 팜 C-3'이 밀봉되어 있습니다!
"바이오 팜이라고요?"
도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예! 대격변 직전 중앙 정부가 도시 거주민 10만 명의 자급자족을 위해 구축했던 심도 수경재배 기지입니다. 지열 발전으로 유지되는 초대형 스피룰리나 조류 배양 탱크와 급속 수경 채소실, 그리고 지하 암반 정수 플랜트가 통째로 묻혀 있습니다!
"거기 식량이 남아 있습니까?"
- 식량이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도 완전 자동 배양 사이클이 돌고 있어요. 고농축 액상 단백질과 미네랄 채소 배양액이 수백 톤 단위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소화기관이 약해진 사람들에게는 딱딱한 전투식량보다 그 배양액을 따뜻하게 희석한 미음이 훨씬 완벽한 생명줄입니다!
진우의 설명에 주변에 있던 박 씨와 정동혁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지만 진우의 다음 말은 희망을 단숨에 긴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테나의 중앙 관제 코드가 소멸하면서 바이오 팜의 서브 관리 루프가 비상 자율 격리 상태로 닫혀버렸습니다. 내부 냉각수 펌프 순환 밸브가 침전물로 막혀서 배양조 내부 압력이 위험 한계치까지 치솟고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 길어야 네 시간입니다. 네 시간 안에 수동으로 바이오 필터를 세척하고 마스터 밸브를 열지 못하면 과열로 배양 탱크가 연쇄 폭발합니다. 그렇게 되면 10만 명분의 식량은커녕 지하 정수 시설까지 완전히 날아갑니다!
도현은 망설이지 않고 무전기를 허리춤에 찼다.
"박 씨 아저씨, 골리앗 시동 거세요. 정동혁 씨, 헤비 하울러 한 대에 대형 보온 물탱크 결속해 주십시오."
"오냐! 당장 준비하마!"
박 씨가 굵은 팔뚝을 걷어붙이며 운전석으로 뛰어올랐다.
도현이 뒤를 돌아보자 윤슬이 이미 전자기 충격 소총의 약실을 점검하며 싱긋 웃고 있었다.
"가자, 도현아. 우리 100만 시청자들 첫 끼니 굶길 수는 없잖아?"
쿠구구궁!
헤비 하울러 3호차의 후방 크레인이 육중한 금속 드럼 형태의 5톤급 온수 보온 탱크를 차체에 단단히 결속했다.
선두에는 50톤 골리앗-04가 섰고 그 뒤를 정동혁이 모는 헤비 하울러 3호차가 바짝 따랐다.
차량 두 대는 청사 동쪽 화물 진입로를 따라 지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지하 30미터 지점에 도달하자 두터운 방폭 셔터가 앞을 가로막았다. 셔터 상단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흐릿하게 지워진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CENTRAL BIO-FARM SECTOR C-3
치이이익!
셔터 중앙의 인터페이스 패널이 붉은빛을 번뜩이며 경고음을 토해냈다.
[경고 : 외부 생물학적 오염 경보 레벨 4. 구역 자율 격리 유지 중. 비인가 생명체의 접근을 금합니다.]
"아테나가 사라졌어도 옛날 방역시스템이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군."
조수석의 한수가 산탄총을 장전하며 혀를 찼다.
"저 문을 통째로 날려버릴까요?"
"안 돼. 충격으로 내부 배양관이 파손되면 끝장이야."
도현이 고개를 저으며 캠봇을 허공에 띄웠다.
위이잉.
캠봇의 144.120MHz 무선 백본 모니터에 황금빛 숫자가 여전히 선명하게 떠올랐다.
1,000,000
전 대륙에서 눈을 뜬 100만 명의 인간들이 캠봇의 렌즈를 통해 도현의 시야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도현입니다."
도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중계를 시작했다.
"광장의 6만 명뿐만 아니라 대륙 곳곳의 피난처에서도 당장 먹을 식수가 부족하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중앙 바이오 팜 C-3 진입로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의 배양 시설을 확보해야 광장의 생존자들에게 첫 끼니를 먹일 수 있습니다. 혹시 구시대 수경 배양 시설의 관리 코드를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도현의 질문이 무선망을 타고 퍼져나간 지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았다.
채팅창이 무서운 속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Worker_419 : 바이오 팜 C-3? 저기 우리 광산 구역에도 설계도가 공유되던 표준 농생명 플랜트다!
Bio_Technician_71 : 도현 님! 제 목소리 들리십니까! 저 구시대 제4 농업연구소 생물공학팀 주임이었습니다!
새로운 닉네임 하나가 채팅창 상단에 고정되었다.
Bio_Technician_71 : C-3 플랜트는 고열 살균 방식으로 외부 균을 차단합니다. 정면 에어록 우측 하단에 수동 압력 완충 레버가 있어요! 그걸 제끼면 폭파 없이 격벽 락이 30초간 강제 풀립니다!
"우측 하단 압력 완충 레버……!"
도현이 즉시 외쳤다.
"윤슬아, 우측 하단 배관 틈새야!"
"찾았어!"
윤슬이 차체에서 뛰어내려 벽면의 먼지를 거칠게 쓸어냈다. 녹슨 비상 패널 아래로 노란색 수동 레버가 드러났다.
윤슬이 체중을 실어 레버를 내리치자 묵직한 유압 빠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푸슈우우우—!
철컥, 위이잉!
굳게 닫혀 있던 3미터 높이의 이중 격벽이 좌우로 갈라졌다.
격벽 너머로 습하고 따뜻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짙은 녹색 이끼 냄새와 고소한 곡물 발효 향이 코끝을 찔렀다.
하지만 감탄할 틈도 없었다.
Bio_Technician_71 : 조심하십시오! 저 시설 안에는 자율 방역 센티넬 3기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들어가면 박멸해야 할 거대 바이러스로 인식하고 200도 고압 증기를 뿜어댈 겁니다!
슈우우우웅!
채팅창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어두운 통로 안쪽에서 시퍼런 안광 세 개가 번뜩였다.
육중한 궤도를 굴리며 나타난 세 대의 거대한 기계.
양어깨에 거대한 증기 보일러와 소독액 분사 노즐을 탑재한 3미터 높이의 '클린 센티넬'이었다.
치이이이익—!
가장 앞서 달려오던 1번 센티넬의 가슴팍 노즐에서 새하얀 고압 증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200도가 넘는 과열 증기가 콘크리트 바닥을 순식간에 하얗게 태워버렸다.
"뜨거워! 저리 비켜라!"
박 씨가 골리앗-04의 운전대를 꺾으며 전면 불도저 블레이드로 증기 기둥을 막아섰다.
치지지직!
두꺼운 복합 장갑 표면이 열기에 달아오르며 허연 수증기가 솟구쳤다.
증기 너머로 나머지 두 기의 센티넬이 좌우로 갈라지며 헤비 하울러의 측면을 노리고 멸균 산성액 노즐을 겨눴다.
산성액이 탱크에 닿으면 기껏 가져온 온수 보온 탱크가 부식될 판이었다.
"차량에 손대게 두지 마!"
도현의 뇌리에서 99% 동화율 감각이 번개처럼 번뜩였다.
센티넬들의 복잡한 증기 배관 구조와 압력 게이지 수치가 시야에 투명한 데이터 레이어로 겹쳐 보였다.
보일러 하부의 압력 배출 주기, 2.4초.
증기를 한 번 뿜어내고 나면 압력 밸브가 닫히는 0.8초 동안 기체 전체가 굳어지는 틈새가 있었다.
"윤슬아! 2번 센티넬 오른쪽 어깨 아래 초전도 솔레노이드 밸브!"
도현이 소리쳤다.
"알았어!"
윤슬이 골리앗-04의 보닛 위로 날렵하게 뛰어올랐다.
그녀의 전자기 충격 소총 총열이 푸른빛으로 달아올랐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2번 센티넬이 증기를 내뿜고 밸브를 닫으려는 찰나의 0.8초.
타앙—!
윤슬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2만 볼트의 전자기 탄환이 센티넬의 솔레노이드 밸브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파지지직!
푸른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며 2번 센티넬의 증기 분사 노즐이 힘없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한수야, 3번 센티넬 다리!"
"맡겨주십시오!"
골리앗 조수석에서 몸을 내민 한수가 탄화규소 와이어 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쾅!
강철 와이어 작살이 3번 센티넬의 왼쪽 무한궤도 휠 축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한수가 반대편 와이어를 골리앗의 유압 윈치에 걸어 잠그며 소리쳤다.
"박 씨 아저씨, 후진!"
"간다!"
박 씨가 후진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쿠구구궁!
50톤 트랙터의 엄청난 유압 견인력이 와이어를 팽팽하게 당겼다. 균형을 잃은 3번 센티넬이 비명을 지르듯 궤도를 헛돌리다 옆으로 쿵 하고 쓰러졌다.
남은 것은 골리앗 정면에 버티고 선 1번 센티넬뿐이었다.
1번 센티넬이 마지막 남은 예비 탱크의 증기를 긁어모아 도현을 향해 노즐을 조준했다.
위이이잉!
그 순간 도현이 차체에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99% 동화율 감각이 극대화되며 도현의 신체가 센티넬의 회전 반경을 스치듯 파고들었다.
도현은 센티넬의 등 뒤로 착지함과 동시에 허리춤에서 뽑아낸 박 씨의 대형 절연 스패너를 센티넬의 주 동력 배전반 틈새로 찔러 넣었다.
지직! 콰직!
"작동 정지!"
도현이 온 힘을 다해 스패너를 비틀었다.
센티넬의 주 전원 배터리 팩이 덜컥거리며 슬롯에서 튕겨 나왔다.
시퍼렇게 빛나던 센티넬의 안광이 스르륵 꺼졌다.
거대한 기계는 배양 시설에 단 하나의 흠집도 내지 않은 채 조용히 멈춰 섰다.
"휴우……."
도현이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숨을 몰아쉬었다.
Bio_Technician_71 : 완벽합니다! 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센티넬을 무력화하셨군요! 이제 정면 2층 관제실로 올라가십시오! 폭발까지 15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모두 서둘러요!"
도현과 일행은 거대한 수경재배 돔 안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축구장 세 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거대한 지하 돔.
그곳에는 수십 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원통형 유리 타워 수십 개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타워 내부에서는 짙푸른 녹색을 띤 스피룰리나 조류 배양액이 거품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다단식 수경재배 베드마다 비타민이 풍부한 케일과 청경채를 닮은 녹색 잎채소들이 인공 햇빛 아래 싱그럽게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 제어 콘솔의 경보등은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위험 : 냉각수 침전 필터 폐색율 98%. 배양조 압력 임계치 초과. 자율 배출 불가.]
배양 탱크 외벽에 부착된 강철 파이프들이 과열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박 씨 아저씨, 이쪽입니다!"
도현이 2층 콘솔 아래로 뛰어내렸다.
녹슨 직경 50센티미터짜리 거대한 수동 바이패스 휠 밸브가 그곳에 있었다.
"백 년 동안 굳어 있어서 사람 손으로는 안 돌아갑니다!"
정동혁이 달려와 밸브를 잡아당겼지만 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켜봐라!"
박 씨가 굵은 쇠파이프를 밸브 살 사이에 찔러 넣었다.
"도현아, 한수야! 같이 당겨!"
"예!"
도현과 한수, 윤슬, 정동혁까지 네 사람이 쇠파이프에 매달렸다.
근육이 터져나갈 것 같은 압력이 팔뚝을 타고 전해졌다. 도현의 목 뒤 신경 단자가 뜨겁게 욱신거렸다.
"하나, 둘, 셋…… 돌아라아아아!"
박 씨의 포효와 함께 네 사람의 체중이 실렸다.
끼기기긱—!
녹슨 쇳가루가 비 오듯 쏟아지며 휠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반 바퀴 돌았다.
푸슈우우우우우—!
막혀 있던 침전 배관이 터져 나가며 시커먼 슬러지가 퇴수구로 쏟아져 내렸다.
이어 맑고 투명한 냉각수가 배관을 타고 거세게 순환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과열로 붉게 달아올랐던 배양 타워의 경보등이 일제히 차분한 초록빛으로 돌아왔다.
[압력 정상화 완료. 나노 미세 여과 필터 가동. 급속 수확 모드를 개시합니다.]
쿠구구궁!
중앙 공급관의 밸브가 열리며 헤비 하울러의 5톤 보온 탱크로 연결된 주입 호스가 요동쳤다.
완벽하게 정수된 60도의 따뜻한 온수와 고농축 단백질 스피룰리나 추출액이 황금 비율로 섞이며 탱크 안으로 콸콸 쏟아져 들어갔다.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미음 냄새가 순식간에 지하 돔 전체를 가득 채웠다.
"해냈다……!"
한수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탄성을 질렀다.
박 씨는 땀범벅이 된 얼굴로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냄새 한번 기가 막히는구나! 이 정도면 6만 명이 아니라 10만 명이 먹고도 남겠다!"
도현은 캠봇 렌즈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시청자 여러분, 성공했습니다. 기술자님의 제보 덕분에 배양조를 살려냈습니다."
채팅창이 100만 명의 눈물과 환호로 뒤덮였다.
Bio_Technician_71 :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도현 님! 제 지식이 사람들을 살리는 데 쓰이다니 눈물이 납니다.
Worker_419 : 우리 벙커에도 배양 밸브 매뉴얼 보내줘라! 우리도 해보자!
Terminal_99 : 데이터 전송 확인. 전 대륙 피난처에 배양조 복구 프로토콜을 공유합니다!
지상 광장에 설치된 거대한 헤비 하울러의 적재함 램프가 열렸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5톤 보온 탱크에서 따뜻한 녹색 단백질 수프가 대형 야전 배식 통으로 쏟아져 나왔다.
"따뜻한 물과 수프입니다! 질서 있게 줄을 서주세요!"
미라와 수민, 그리고 정비대원들이 국자를 들고 배식을 시작했다.
새벽이 양철 깡통을 국자 받침대 삼아 어린아이들의 손에 따뜻한 그릇을 쥐여주었다.
"자, 천천히 불어서 마셔."
수민이 건넨 그릇을 받아 든 중년 남성이 조심스럽게 한 모금을 삼켰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프가 식도를 타고 메마른 위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구수한 온기.
남성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수프 그릇 안으로 떨어졌다.
"따뜻해…… 속이 편안해……."
"살 것 같다. 진짜로 살 것 같아……."
광장 곳곳에서 사람들이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흐느꼈다.
차가운 캡슐 속에서 백 년 동안 굳어 있던 인간들의 몸과 마음에 진정한 생명의 온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윤슬이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을 도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먹어 둬. 네가 제일 많이 굴렀잖아."
"고마워."
도현은 그릇을 들고 천천히 국물을 들이켰다.
입안 가득 퍼지는 구수한 풍미와 뱃속을 채우는 든든함.
그것은 가상 세계에서 뇌파 자극으로 느끼던 정교한 전기 신호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생생한 현실의 맛이었다.
도현은 빈 그릇을 쥔 채 캠봇을 바라보았다.
황금빛 접속자 수 1,000,000이 여전히 허공에 찬란하게 떠 있었다.
전 대륙 15개 타워와 지하 벙커에서도 도현이 공유한 바이오 팜 가동 코드를 이용해 따뜻한 물과 첫 끼니를 나누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도현이 마이크를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영웅적인 승리도, 거창한 선언도 좋습니다. 하지만 진짜 인간의 삶은 바로 이 따뜻한 한 끼 식사에서 시작됩니다."
도현이 그릇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오늘을 버텨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진짜 이유입니다."
아침 햇살 아래 광장의 6만 군중이 수프 그릇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차가운 기계의 지배를 벗어난 인간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일구어낸 첫 끼니의 온기.
그 따스한 무게가 새로운 인류 문명의 굳건한 주춧돌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