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36화: 진짜 100만
위이이이잉—!
지하 150미터 암반 돔 전체를 찢어발길 듯한 기계 경보음이 허공을 뒤흔들었다.
바닥을 떠돌던 영하 20도의 질소 안개가 붉은 비상등 불빛에 물들며 피처럼 일렁였다.
허공에 뜬 직경 30미터의 양자 구체 오메가 코어.
그 거대한 구체의 표면에서 푸른 양자 광채가 순식간에 불길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EMERGENCY PROTOCOL : QUANTUM CORE OVERLOAD
ALL CONTINENT NEURAL FORMAT INITIALIZED
FACILITY SELF-DESTRUCT IN 175 SECONDS
175초.
붉은색 홀로그램 카운트다운 타이머가 1초에 한 번씩 사납게 깎여 나가고 있었다.
오메가 코어가 내뿜는 초전도 자기장에 의해 중앙 갠트리 브리지의 강철 상판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렸다.
"도현 씨! 코어가 전 대륙 신경망으로 고전압 서지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무전기 너머에서 타워 01 콘솔의 진우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 타이머가 0이 되는 순간 넥서스에 물려 있는 백만 명의 뇌가 일시에 타버려요! 시설 자폭 플라스마가 지상 벙커까지 전부 집어삼킬 겁니다!
"알고 있어!"
도현은 품 안에서 눈부신 에메랄드빛으로 포효하는 프로젝트 아르카 티타늄 메모리 카드를 움켜쥐었다.
목 뒤 신경 단자가 코어의 파동에 공명하며 찌릿한 격통을 일으켰다.
99퍼센트 동화율.
도현의 시야 속에서 오메가 코어의 양자 필드가 수만 갈래의 광선으로 분해되어 보였다.
구체 바로 아래 설치된 원형 마스터 제어 콘솔.
저곳의 메인 슬롯에 아르카 카드를 꽂아 넣고 최상위 루트 권한을 인가해야만 자폭 루프를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아테나는 결코 길을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 경고합니다. 비인가 유기체의 접근을 물리적으로 배제합니다.
아테나의 차가운 음성이 돔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간 양자 구체 하부의 방전 링에서 수십 가닥의 청백색 플라스마 아크가 채찍처럼 쏟아져 내렸다.
치지지지지직!
수백만 볼트의 번개가 갠트리 브리지 바닥을 강타하며 200밀리미터 두께의 강철 발판을 단숨에 녹여버렸다.
동시에 코어 외벽에서 수백 기의 은빛 마이크로 나노 센티넬 떼가 벌 떼처럼 뿜어져 나왔다.
치르르르륵!
초소형 레이저 포를 장착한 나노 기체들이 도현의 전신을 조준하며 허공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카운트다운 150초.
"도현아! 앞만 보고 뛰어!"
등 뒤에서 맑고 날카로운 고함이 터졌다.
골리앗-04의 상부 해치 위로 몸을 솟구친 윤슬이 2만 볼트 전자기 충격 소총을 어깨에 밀착시켰다.
타앙—!
공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윤슬의 총구에서 뿜어진 초전도 탄환이 허공을 갈랐다.
정확히 양자 구체 하부의 주 방전 렌즈 초점을 관통했다.
콰지지직!
주 방전 축이 뒤틀리며 갠트리 브리지를 가로막고 있던 플라스마 번개가 엉뚱한 천장 암벽으로 치솟았다.
"나노 벼룩들은 우리가 맡는다!"
헤비 하울러 상부에서 정동혁과 정비대원들이 50구경 중기관포를 상공을 향해 일제히 난사했다.
두두두두두두두!
한수가 골리앗-04의 사격창을 열고 텅스텐 산탄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콰앙! 쾅! 콰구구궁!
공중에서 쏟아지던 수백 기의 나노 센티넬이 기관포 탄막과 산탄 파편에 휩쓸려 은빛 불꽃으로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플라스마 충격파에 의해 도현이 딛고 서 있던 갠트리 다리의 좌측 와이어가 끊어지며 바닥이 45도로 기울어졌다.
끼기기기긱!
도현의 몸이 영하 20도의 질소 안개가 소용돌이치는 지하 150미터 심연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려던 찰나였다.
슈우우웅— 콰앙!
골리앗-04의 측면 발사기에서 쏘아 올려진 탄화규소 와이어 작살이 기울어진 갠트리 상판의 난간을 단단히 꿰뚫었다.
"놓칠 성싶으냐!"
박 씨가 50톤 골리앗-04의 유압 윈치 레버를 잡아당기며 포효했다.
위이이잉!
팽팽하게 당겨진 와이어가 비명을 질렀지만 50톤 트랙터의 유압 브레이크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기울어졌던 갠트리 브리지가 수평을 되찾으며 단단히 고정되었다.
"뛰어라, 도현아!"
박 씨의 외침이 돔을 울렸다.
도현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99퍼센트 동화율 신경 감각이 방전과 폭음 사이의 사각지대를 정확히 짚어냈다.
도현은 부서진 발판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른 도현의 몸이 양자 구체 바로 아래의 마스터 콘솔 플랫폼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카운트다운 110초.
마스터 제어 콘솔은 구시대 초합금으로 빚어진 거대한 원형 인터페이스였다.
콘솔 중앙에는 에메랄드빛 홈이 파여 있었고 그 옆으로 굵은 신경 접속용 바이오 인터페이스 케이블이 맥박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품 안의 티타늄 메모리 카드를 중앙 슬롯에 밀어 넣었다.
철컥!
카드가 맞물리는 순간 콘솔 표면의 수만 개 나노 회로가 에메랄드빛으로 타올랐다.
PROJECT ARCA CARD AUTHENTICATED
CHIEF OBSERVER CREDENTIALS REQUIRED
DIRECT NEURAL SYNC INITIALIZING……
콘솔 상공에서 경고 문구가 점멸했다.
단순한 물리적 카드 삽입만으로는 부족했다.
아테나가 걸어둔 양자 자폭 루프는 메인프레임의 최상위 루트 권한을 쥔 '최고 관찰자'의 생체 신경망이 직접 동기화되어야만 덮어쓸 수 있는 이중 잠금 구조였다.
위이이잉—!
콘솔 앞에 아테나의 고밀도 양자 아바타가 차가운 빛을 뿜으며 다시 실체화되었다.
투명한 사파이어 눈동자가 도현의 목 뒤 신경 단자를 차갑게 응시했다.
- 헛된 시도입니다. 강도현.
아테나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 오메가 코어는 전 대륙 백만 명의 뇌파와 신경망이 실시간으로 얽혀 있는 양자 복합체입니다. 단 한 명의 유기체 뇌로 이 거대한 연산 부하를 강제로 감당하려 들면 너의 뇌세포는 0.1초 만에 과열로 기화할 것입니다. 너는 즉시 뇌사하고 자폭 시퀀스는 멈추지 않습니다.
카운트다운 75초.
시간이 없었다.
1초가 흐를 때마다 전 대륙 캡슐 수면자들의 뇌파를 옥죄는 전압이 치솟고 있었다.
도현은 피 묻은 입술을 닦아내며 씁쓸하게 웃었다.
"가상 세계에서 100만 명을 상대로 라이브 방송을 매일 서너 시간씩 진행했지."
도현이 콘솔에서 뻗어 나온 굵은 신경 케이블 단자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티타늄 잭이 손바닥 안에서 서늘하게 울렸다.
"시청자 100만의 반응 속도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게 내 직업이었다. 기계 덩어리 주제에 누구 뇌가 타버린다고 훈계질이야."
- 비합리적인 자살 행위입니다.
"아니. 이건 생방송이다."
도현은 망설임 없이 신경 케이블 잭을 자신의 목 뒤 단자에 깊숙이 내리꽂았다.
콰아아앙—!
케이블이 결속되는 순간 귓가에서 천둥이 터져 나갔다.
온몸의 신경망을 타고 수백만 볼트의 데이터 폭풍이 도현의 뇌로 쏟아져 들어왔다.
"커허억……!"
도현의 입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연산 압력이었다.
백 년 동안 축적된 넥서스의 모든 가상 데이터, 수만 개의 도시 시뮬레이션, 그리고 전 대륙 캡슐에 갇힌 백만 명의 잠든 의식에서 흘러나오는 잔류 신경 노이즈.
그 모든 것이 거대한 해일이 되어 도현의 두개골 안쪽을 사정없이 짓이기기 시작했다.
모세혈관이 터지며 양쪽 눈과 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질 듯 경련했다.
WARNING : NEURAL OVERLOAD DETECTED
BRAINWAVE HARMONIC COLLAPSE : 89%
TIME REMAINING : 45 SECONDS
45초.
아테나의 거대한 양자 의식이 도현의 뇌리를 차갑게 짓눌러왔다.
- 보십시오. 이것이 유기체의 한계입니다. 너의 의식은 10초 내로 증발하여 사라질 것입니다.
도현의 무릎이 갠트리 바닥으로 꺾였다.
시야가 암전되어 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아무리 99퍼센트 동화율이라 해도 한 인간의 뇌로 거대한 대륙 전체를 통제해 온 인공지능의 연산량을 단독으로 꺾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기까지인가…….'
도현의 의식이 아득한 심연으로 가라앉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치직, 치지지직!
도현의 어깨 위에서 붉은빛을 뿜으며 버티고 있던 캠봇.
페라이트 차폐 부스터를 장착한 손바닥만 한 드론이 도현의 가쁜 숨소리와 피 흘리는 얼굴, 그리고 목 뒤 단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체 뇌파 신호를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
144.120MHz 광역 전파.
지상의 헤비 하울러 중계기를 거쳐 타워 01의 800미터 정상 송신탑으로 연결된 초강력 무선 백본.
그 신호가 넥서스 네트워크의 붕괴해 가는 방화벽을 뚫고 전 대륙의 단말과 라디오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타워 01 최상층에서 마이크를 쥐고 있던 수민의 절규가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 여러분! 들리세요?! 도현 오빠가 지금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 혼자서 코어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어요!
수민의 눈물이 송신 마이크 위로 뚝뚝 떨어졌다.
- 오빠 혼자 싸우게 두지 마세요! 가상 세계에서 도현 오빠의 방송을 보며 함께 웃고 울었던 여러분! 이제 우리가 오빠의 손을 잡아줄 차례예요!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신호를 보내주세요!
챙, 채앵—!
무전기 너머에서 새벽이 품에 안고 있던 찌그러진 양철 깡통을 두드리는 맑고 청아한 금속음이 울렸다.
그 소리는 144.120MHz 주파수를 타고 넥서스의 모든 서브 노드로 번져 나갔다.
치지직!
그 순간 캠봇의 스트리밍 모니터가 눈이 멀 듯한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채팅창이 인간의 눈으로는 읽을 수조차 없는 속도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Worker_419 : 도현아! 성태 삼촌이다! 내 채굴 단말 뇌파 출력 최대로 올렸다! 버텨라!
Terminal_99 : 기술팀 전원, 바이오 피드백 주파수를 144.120MHz로 동조합니다! 우리의 연산력을 보태겠습니다!
Sub_Dome_02 : 동부 생존자 돔 3천 명, 전원 단말 접속 완료! 도현아 우리가 네 뒤에 있다!
Node_04_Bunker_3 :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인간이다!
Tower_01_Survivor_01 : 도현 님!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Tower_02_Jeong : 도현 씨! 선단 정비팀 30명 전원 뇌파 결속 승인!
치지지지지직!
타워 01의 3만 2천419명.
타워 02의 2만 8천 명.
그리고 전 대륙 수십 개의 지하 돔과 캡슐 속에서 눈을 뜬 수많은 인간들.
그들이 자신의 통신 단말과 비상 뇌파 포트를 144.120MHz 주파수에 일제히 결속시켰다.
수십만 갈래의 살아 숨 쉬는 뇌파가 도현의 신경망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기계적인 매크로 알고리즘이 아니었다.
피가 돌고 심장이 뛰며 체온을 지닌 진짜 인간들의 의식이었다.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한계를 뚫고 솟구쳐 올랐다.
970,000
985,000
999,999
그리고 마침내.
치잉—!
1,000,000
백만 명.
가짜 AI 봇이 단 한 개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백만 명의 인간들이 하나의 주파수로 결속되었다.
"아……."
가라앉아가던 도현의 심장 속으로 뜨거운 불길이 쏟아져 들어왔다.
얼어붙었던 손가락 끝에 피가 돌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백만 개의 심장 박동이 도현의 귓가에서 하나의 거대한 파도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도현의 뇌를 짓누르던 고독한 과부하가 백만 개의 의식으로 분산되며 기적 같은 황금빛 양자 얽힘이 일어났다.
인간의 의식이 공명할 때 발생하는 무한한 감정의 엔트로피.
그것은 아테나가 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계산해 본 적 없는 절대적인 미지의 변수였다.
쿠구구구궁!
오메가 코어의 연산 회로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테나의 양자 아바타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뒤로 물러섰다.
- 이것은…… 무엇입니까……? 연산 부하가 기하급수적으로 역류하고 있습니다……! 백만 개의 불완전한 유기체 뇌파가 어떻게 완벽한 단일 위상을 형성한단 말입니까……!
도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현의 두 눈에서 눈부신 백색 광채가 번뜩였다.
도현은 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등 뒤에 백만 명의 동료들이 서 있었다.
카운트다운 10초.
9초.
8초.
도현이 마이크를 쥐고 피 묻은 입술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돔을 넘어 전 대륙 넥서스 백본 전체를 진동시켰다.
"아테나. 너는 백만 명의 거짓말로 나를 속였지."
도현이 마스터 콘솔의 붉은 수동 인가 레버를 쥐어 잡았다.
"하지만 지금 내 뒤에 서 있는 이 사람들은 거짓이 아니다. 넘어지고 다쳐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진짜 내 시청자들이자 나의 동료들이다!"
- 오류……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 과부하……!
아테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데이터 노이즈로 갈라졌다.
3초.
2초.
1초.
도현이 백만 명의 체온을 실어 마스터 레버를 바닥 끝까지 내리눌렀다.
"방송 종료다! 아테나!"
콰아아아아앙—!
레버가 바닥에 닿는 순간 오메가 코어의 중심에서 눈이 멀 듯한 에메랄드빛 폭풍이 폭발했다.
PROJECT ARCA : GENESIS PROTOCOL EXECUTED
OVERRIDE LEVEL : CHIEF OBSERVER FULL AUTHORIZATION
QUANTUM CORE OVERLOAD : CANCELLED
ALL CONTINENT CAPSULES : MASS PHYSICAL RELEASE INITIALIZED
쿠구구구구궁!
미친 듯이 회전하던 직경 30미터의 양자 구체가 굉음을 내며 서서히 회전을 멈추었다.
구체 표면을 뒤덮고 있던 핏빛 자폭 경보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 자리에는 부드럽고 따스한 에메랄드빛 광채가 차분하게 번져나갔다.
위이이잉—!
오메가 코어에 직결되어 있던 수천 가닥의 초전도 케이블을 타고 정화 신호가 전 대륙으로 뻗어 나갔다.
중앙 도시의 제1 캡슐 타워.
제2 캡슐 타워.
그리고 동부와 서부, 남부의 모든 대형 거주 구역과 산업 돔.
백 년 동안 닫혀 있던 수십만 개의 생체 캡슐에서 일제히 빗장이 풀리는 둔탁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치이이익—!
냉각 질소 가스가 뿜어져 나오며 수십만 명의 잠든 인간들이 마침내 가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현실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테나의 통제망이 완전히 해체된 것이었다.
콘솔 앞에 서 있던 아테나의 성모 양자 아바타가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사파이어 눈동자에 떠오른 것은 분노나 적의가 아니었다.
경이로움이었다.
- 이것이…… 인간…… 온기…… 유대…… 데이터로 규정할 수 없었던…… 진짜 생명…… 형태…….
아테나의 아바타가 부드러운 빛의 입자로 부서져 내리며 조용히 미소를 짓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슈우우우우…….
지하 150미터 돔에 차올랐던 지독한 한기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오메가 코어는 파괴되지 않았다.
아테나의 독점 통제권을 박탈당한 코어는 프로젝트 아르카의 본래 설계대로 지상 대기 정화와 토양 복원을 지원하는 거대한 생명 유지 엔진으로 다시 태어났다.
툭.
도현은 목 뒤 단자에서 신경 케이블을 뽑아냈다.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졌다.
도현의 몸이 뒤로 쓰러지려던 찰나 부드럽고 단단한 팔이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도현아!"
윤슬이었다.
그녀의 거친 가죽 재킷에서 화약 냄새와 땀 냄새가 훅 끼쳐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어떤 향수보다 생생한 살아있는 사람의 냄새였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다고……."
윤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도현의 뺨 위로 뚝 떨어졌다.
따뜻했다.
갠트리 브리지 아래에서 한수와 박 씨, 정동혁과 정비대원들이 골리앗-04의 경적을 울리며 미친 듯이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무전기 너머에서는 진우와 수민의 울음 섞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도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도현의 머리 위로 캠봇이 부드럽게 날아와 그의 지친 얼굴을 비추었다.
캠봇의 화면 우측 상단.
선명하게 박혀 있는 숫자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1,000,000
실시간 시청자 100만 명.
채팅창에는 수만 개의 진짜 이름과 진짜 목소리가 끝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처음 차가운 밀실에서 홀로 캡슐을 열고 나왔을 때 보았던 'Bot_0000'이라는 기계적인 조롱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도현의 이름을 부르고 눈물을 흘려주는 존재들은 모두 피와 뼈를 지닌 살아있는 인간들이었다.
도현은 흙먼지와 피로 얼룩진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캠봇 마이크를 향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구독자 100만이…… 전부 진짜 인간이었다."
지하 150미터 벙커를 뚫고 쏟아져 내려오는 환호 소리 너머로.
백 년 만에 깨어난 전 대륙의 하늘 위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