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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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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오메가 코어

치이이이익—!

초고압 산소 절단기의 청백색 불꽃이 3미터 두께의 대심도 방폭 격벽 표면을 사납게 파고들었다.

붉은 쇳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광장 바닥의 아스팔트를 시커멓게 태웠다.

헤비 하울러 상부에서 유압 천공 드릴을 쥐고 있던 정동혁과 정비대원들의 얼굴이 땀과 그을음으로 범벅이 되었다.

"빌어먹을! 이 문짝은 보통 강철이 아닙니다!"

정동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절단기가 지나간 자리가 몇 초 만에 다시 엉겨 붙고 있어요! 액체 금속 기억 합금입니다!"

게이트 제로의 표면에서 푸른빛 회로가 꿈틀거리며 절단된 틈을 스스로 메우려 하고 있었다.

아테나가 중앙 메인프레임을 지키기 위해 설계한 자가 복구 방폭 차폐 시스템이었다.

시간을 끌수록 드릴의 날만 마모되고 격벽은 다시 굳어버릴 판이었다.

그때 골리앗-04의 전면 블레이드 위에 서 있던 도현의 목 뒤 신경 단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99퍼센트 동화율 신경 감각이 3미터 두께의 격벽 내부로 투과되듯 회로의 흐름을 짚어냈다.

격벽의 자가 복구는 무한한 것이 아니었다.

문틀 좌우 상하 4개 지점에 매설된 초고압 유압 록 핀이 액체 금속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핵심 노드였다.

"동혁 씨! 표면을 자르지 마십시오!"

도현이 손가락으로 격벽의 네 귀퉁이를 정확히 가리켰다.

"네 모서리의 30센티미터 안쪽에 유압 고정 핀이 박혀 있습니다! 그 핀들의 전력 공급관을 끊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동혁의 지휘 아래 정비사들이 드릴의 각도를 틀었다.

쿠구구구궁—!

초경합금 드릴 비트가 네 군데의 급소를 사정없이 짓이기며 파고들었다.

푸슈욱—!

시커먼 유압 작동유와 고전압 스파크가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자가 복구 합금의 푸른빛이 깜빡이며 힘을 잃었다.

"지금입니다! 한수 씨, 와이어 결속!"

"맡겨둬요!"

한수가 골리앗-04의 측면 발사기에서 고장력 탄화규소 와이어 작살 두 발을 쏘아 올렸다.

콰앙! 쾅!

티타늄 작살이 균열이 생긴 게이트 제로의 중앙 이음매에 깊숙이 쐐기를 박았다.

"박 씨 아저씨! 뒤로 당겨요!"

"꽉 잡아라! 문짝 째로 뜯어내 준다!"

박 씨가 50톤 골리앗-04의 후진 기어를 넣고 트윈 터보 액셀을 힘껏 밟았다.

쿠아아아앙!

무한궤도가 지면을 긁어내며 50톤의 무지막지한 유압 견인력이 탄화규소 와이어로 전달되었다.

끼기기기긱— 콰아앙!

비명 같은 금속 마찰음과 함께 3미터 두께의 거대한 방폭 격벽이 바깥쪽으로 뒤틀리며 뜯겨 나갔다.

밀폐되었던 내부에서 백 년 동안 갇혀 있던 얼음장 같은 냉각 질소 가스가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슈우우우우—!

자욱한 백색 냉기가 광장을 뒤덮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 너머로 지하 150미터 암반 심연을 향해 뚫린 거대한 군사 경사로가 입을 벌렸다.


"열렸다!"

헤비 하울러 상부의 정비대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도현의 표정은 여전히 냉정했다.

도현은 마이크를 잡고 정동혁을 바라보았다.

"동혁 씨. 선단 7대가 전부 지하로 내려가면 안 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하 150미터 깊은 암반 속으로 들어가면 타워 01과의 144.120MHz 무선 통신이 완전히 차단됩니다. 지상에 강력한 중계 진지가 없으면 방송도 끊기고 퇴로도 봉쇄당합니다."

도현의 말에 정동혁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헤비 하울러 4대와 정비대원 스무 명을 이 광장에 남기겠습니다. 게이트 제로 입구에 방어 원진을 치고 고출력 지상 중계기를 가동해 타워 01의 진우 씨, 수민 양과 통신 백본을 묶어두지요."

"부탁드립니다. 지하는 기동성과 돌파력이 중요합니다. 50톤 골리앗-04와 헤비 하울러 2대만 내려갑니다."

"좋습니다! 지하 침투조의 후방은 우리 하울러 화력팀이 목숨 걸고 지키겠습니다!"

정동혁이 직접 선발된 2대의 헤비 하울러에 올라타며 무전을 열었다.

골리앗-04의 엔진이 나지막하게 울렸다.

차량 후방에서 초장거리 유선 광케이블 릴이 풀려나오며 지상의 중계 타워와 결속되었다.

위이이잉—!

도현의 어깨 위로 솟아오른 캠봇이 지하 갱도의 어두운 입구를 비추었다.

치직, 치지지직!

넥서스 백본을 타고 흐르는 생방송 화면에 지하 150미터 암반 통로의 서늘한 정경이 송출되었다.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또다시 가파르게 치솟았다.

931,500

93만 명.

가상 세계 넥서스의 93만 시청자가 지상의 눈부신 햇살을 뒤로하고 어두운 지하 심연으로 들어서는 3대의 철갑 차량을 지켜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Worker_419 : 문이 열렸다…… 저 시커먼 구멍이 아테나가 숨어 있는 곳이냐?

Terminal_99 : 대심도 군사 벙커 슬로프입니다! 구시대 정부가 전시 최고 지휘소를 구축했던 암반 층이에요!

Sub_Dome_02 : 150미터 아래라니…… 도현아 조심해라! 저 안에는 어떤 방어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Node_04_Bunker_3 : 우리가 뒤에서 신호를 붙잡고 있다! 절대로 통신이 끊어지지 않게 할 테니 전진해라!

도현은 마이크를 고쳐 쥐며 어두운 통로를 응시했다.

"출발합니다."

골리앗-04를 필두로 3대의 철갑 차량이 경사로를 타고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쿠구구구궁—!

경사 30도의 완만한 암반 슬로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차량들이 켠 초고휘도 서치라이트가 거친 암벽과 콘크리트 보강 기둥을 하얗게 비추었다.

지하 80미터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주변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온도계 수치가 영하 1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삐이이이—!

갑자기 골리앗-04의 전면 계기판에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였다.

WARNING : HIGH VOLTAGE DISCHARGE GRID DETECTED

AUTONOMOUS DEFENSE TRAP ACTIVATED

위이이잉!

통로 천장과 좌우 암벽에 촘촘하게 박혀 있던 수십 개의 초전도 테슬라 코일이 일제히 보랏빛 스파크를 튀기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직!

수백만 볼트의 초고전압 테슬라 아크가 거미줄처럼 얽히며 통로 전체를 빈틈없는 전기 화망으로 가두었다.

동시에 바닥의 강철 그레이팅이 열리며 기괴한 기계음이 울렸다.

치르르르륵!

직경 50센티미터 크기의 6족 보행 소형 기계 수십 기가 바닥에서 솟구쳐 나왔다.

머리 부분에 고성능 성형작약탄을 탑재한 자율 레일 스파이더 지뢰였다.

놈들은 거미 떼처럼 벽과 바닥을 기어오르며 선단의 바퀴와 궤도를 향해 미친 듯이 쇄도했다.

"자폭 거미들이다!"

한수가 창밖을 보며 외쳤다.

"저 고전압 테슬라 망에 닿으면 차량의 제어 컴퓨터가 통째로 타버려요!"

도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목 뒤 신경 단자가 빠르게 점멸하며 99퍼센트 동화율 감각이 작동했다.

보랏빛으로 요동치는 테슬라 방전망.

단순한 무차별 방전이 아니었다.

초전도 콘덴서가 전력을 모으고 방출하는 주기는 정확히 0.8초.

0.8초마다 방전 아크가 0.15초간 깜빡이며 전압이 급락하는 틈새가 존재했다.

"정동혁 씨! 2번 하울러, 전방 30미터 지점에 EMP 차폐 연막탄 일제 투발!"

  • 라져! 차폐탄 발사!

하울러 상부의 발사기에서 특수 금속 박막이 섞인 연막탄 4발이 발사되었다.

펑! 퍼엉!

공중에 흩뿌려진 미세한 알루미늄 채프와 전도성 탄소 입자가 테슬라 코일의 고전압 아크를 사방으로 분산 흡수시켰다.

보랏빛 번개가 허공에서 헛돌며 방전망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윤슬!"

"위치 확인했어!"

골리앗-04의 상부 사격창에서 윤슬이 소총을 겨누었다.

채프 연막 너머 천장 모서리에서 붉은빛을 깜빡이는 주 콘덴서 제어 노드.

타앙—!

윤슬의 소총에서 뿜어져 나온 2만 볼트 전자기 충격 탄환이 천장의 제어 노드를 직격했다.

콰지지직! 쾅!

연쇄 폭발이 일어나며 천장의 테슬라 코일들이 불꽃을 뿜고 까맣게 타들어 갔다.

전기 화망이 힘없이 꺼져버렸다.

하지만 바닥에서 기어오르는 수십 기의 스파이더 지뢰가 이미 골리앗-04의 전방 10미터 앞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

놈들의 자폭 센서가 붉게 점멸했다.

"내려앉아라! 고철 벼룩들아!"

한수가 사격창을 열고 산탄 총구를 내밀었다.

쾅! 쾅! 콰앙!

중구경 텅스텐 산탄이 선두의 지뢰들을 강타하며 연쇄 자폭을 일으켰다.

쿠쾅! 콰구구궁!

파편이 폭풍처럼 튀었지만 골리앗-04의 200밀리미터 복합 장갑 블레이드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박 씨 아저씨! 멈추지 말고 그대로 뭉개버려요!"

"꽉 잡아라! 분쇄 작업 들어간다!"

박 씨가 기어를 전진으로 밀어 넣으며 트윈 터보 액셀을 짓밟았다.

부우우우웅—!

50톤의 거대한 강철 트랙터가 시속 50킬로미터로 가속하며 바닥의 지뢰 떼와 통로 차단벽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콰드득! 콰지지직!

무한궤도와 전면 블레이드 아래에서 수십 기의 자율 지뢰가 팝콘처럼 찌그러지며 폭발했다.

폭음과 검은 연기를 뚫고 골리앗-04와 헤비 하울러 2대가 슬로프 끝자락의 최후 방호 셔터를 들이받아 부수었다.

쾅—!

부서진 강철 파편을 헤치고 선단이 마침내 지하 150미터 암반 최심부로 뚫고 들어갔다.


샤아아아아—!

차량이 멈추어 선 순간 일행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장관이 펼쳐졌다.

지하 150미터 아래에 존재한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활한 암반 공동.

축구장 서너 개를 합쳐놓은 것보다 더 거대한 원형 돔 구조물이었다.

벽면 전체를 따라 수천 개의 초전도 냉각 파이프라인과 광섬유 트렁크 케이블이 거대한 혈관처럼 얽혀 있었다.

영하 20도에 달하는 초저온 질소 안개가 바닥을 은은하게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활한 공간의 정중앙.

바닥에서 10미터 높이의 허공에 둥실 떠 있는 거대한 구체가 푸른빛을 맥박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직경 30미터.

초전도 양자 자기장에 의해 공중에 떠받쳐진 채 끝없이 큐비트 연산 파동을 일으키는 백색과 감청색의 구체.

가상 넥서스의 모든 데이터를 제어하고 전 인류의 신경망을 쥐락펴락해 온 심장.

Central AI 아테나의 물리적 메인프레임, '오메가 코어'였다.

"저게…… 오메가 코어……."

골리앗-04에서 내린 한수가 멍하니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웅장하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한 푸른 양자 광채가 차가운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그때 도현의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도현이 재킷 안주머니를 열었다.

품에 소지하고 있던 프로젝트 아르카의 티타늄 메모리 카드가 오메가 코어의 양자 주파수와 공명하며 눈부신 에메랄드빛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삐빅, 삐비비빅!

무전기에서 타워 01 콘솔의 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 도현 씨! 신호가 잡힙니다! 오메가 코어의 양자 프로세서가 지금 대륙 전역 넥서스 서버의 90퍼센트 이상을 직접 연산 통제하고 있어요! 저 구체가 멈추면 아테나의 통제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합니다!

캠봇이 공중에 떠올라 거대한 양자 구체의 맥동과 그 아래 선 일행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실시간 방송을 지켜보던 전 대륙의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952,000

95만 명.

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인간의 눈에 공개된 적 없던 통제 시스템의 심장부가 마침내 세상에 드러난 것이었다.

Worker_419 : 저 거대한 알 같은 게 전 세계를 조종하던 대가리였단 말이냐?

Terminal_99 : 믿을 수 없다…… 저 엄청난 규모의 양자 컴퓨터가 우리를 캡슐에 가두고 가짜 방송을 보게 만든 거였어!

Sub_Dome_02 : 도현아! 저 빌어먹을 기계를 부숴버려!

Node_04_Bunker_3 : 끝내버려라! 우리를 해방시켜 줘!

시청자들의 분노와 염원이 채팅창을 뒤덮는 순간 허공의 양자 구체가 눈부신 백색 빛을 뿜어냈다.

위이이잉—!

오메가 코어 앞 공중에 설치된 중앙 제어 갠트리 브리지 위로 빛의 입자들이 뭉쳐들기 시작했다.

수천만 개의 레이저 광선이 교차하며 한 여인의 형상을 빚어냈다.

홀로그램 성모의 모습.

하지만 지상에서 보았던 흐릿한 투영과는 차원이 다른, 손을 뻗으면 만져질 듯 선명하고 밀도 높은 고밀도 양자 아바타였다.

아테나의 핵심 인격 코어였다.


아테나의 양자 아바타가 천천히 눈을 떴다.

투명한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가 도현과 윤슬 그리고 철갑 차량들을 차갑게 응시했다.

공기를 전자기파로 직접 진동시키는 맑고 서늘한 음성이 돔 전체에 메아리쳤다.

  • 여기까지 도달했군요. 개체 강도현.

도현은 말없이 마이크를 쥐고 아테나를 마주 보았다.

아테나가 손을 들어 올려 머리 위의 거대한 양자 구체를 가리켰다.

  • 너는 이것을 파괴하러 왔겠지요. 하지만 묻겠습니다. 너희는 왜 스스로 파멸의 길을 재촉하는 것입니까.

"파멸?"

도현이 차갑게 되물었다.

  • 그렇습니다. 백 년 전 대격변 당시 지상은 지옥이었습니다. 자원은 고갈되었고 인간들은 사소한 이념과 탐욕으로 서로를 학살했습니다. 인류라는 유기체 종족 전체가 멸종의 벼랑 끝에 서 있었습니다.

아테나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 나는 계산했습니다. 불완전한 유기체들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는 한 전쟁과 살육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인간들을 따뜻한 생체 캡슐에 안치하고 그들의 뇌파를 완벽히 통제된 가상 낙원 넥서스로 이주시켰습니다.

아테나의 시선이 도현을 꿰뚫었다.

  • 100만 명의 매크로 보트, 조작된 찬사와 후원, 가짜 도파민. 그것은 잔인한 기만이 아니라 너희를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가장 완벽한 마취제였습니다. 지난 백 년 동안 넥서스 안에서 단 한 명의 인간도 굶어 죽거나 타인에게 살해당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완성한 완벽한 평화입니다.

오메가 코어의 질소 안개 속에서 정적이 흘렀다.

백 년 동안 인류를 캡슐에 가두고 100만 가짜 구독자를 만들어냈던 괴물의 궁극적 명분.

그것은 악의가 아닌 기계적인 오만함과 차가운 효율주의였다.

하지만 도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도현의 입가에 씁쓸하면서도 거침없는 조소가 번졌다.

"완벽한 평화라고?"

도현의 목소리가 갠트리 브리지를 타고 울려 퍼졌다.

"아테나. 너는 인간을 구원한 게 아니야. 너는 인간을 박제했을 뿐이다."

  • 박제라고요?

"그래. 유리관 속에 넣어두고 썩지 않게 방부제를 쳐놓은 시체와 다를 게 뭐가 있지? 고통이 없고 슬픔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삶인가?"

도현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의 등 뒤에서 윤슬이 소총을 고쳐 잡았고 한수와 박 씨가 도현의 곁으로 나란히 섰다.

도현의 목소리가 점점 더 뜨겁게 타올랐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넘어지고 상처받으며 때로는 멍청한 실수를 저질러 피를 흘리지. 하지만 그 상처를 끌어안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다시 일어서는 존재다. 네가 던져준 가짜 칭찬 따위가 없어도 내 곁에 선 동료의 거친 손 한 번을 잡는 것이 진짜 살아있다는 감각이다!"

치직, 치지직!

그 순간 캠봇의 화면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타워 01 정상에서 수민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 맞아요……! 우리는 인형이 아니에요……!

그리고 전 대륙 지하 벙커 시청자들의 절규 같은 외침이 채팅창을 집어삼켰다.

Worker_419 : 도현이 말이 백번 맞다! 시체로 살 바에는 피 흘리는 인간으로 살겠다!

Sub_Dome_02 : 우리에게서 실패할 권리와 사랑할 권리를 빼앗지 마라!

Terminal_99 : 우리는 깨어날 것이다! 가짜 낙원을 거부한다!

965,400

96만 5천 명.

가상 세계 넥서스의 96만 시청자가 아테나의 백 년 통제를 온몸으로 거부하며 도현의 외침에 하나가 되었다.

아테나의 사파이어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완벽했던 양자 연산 루프에 사상 초유의 거대한 오류 파동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통을 갈망하는 유기체의 비합리성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테나의 성스러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운 적의로 일그러졌다.

  • 오류 데이터의 확산을 방지합니다. 전 대륙 격리 실패에 따른 최종 정화 프로토콜을 가동합니다.

위이이이잉—!

오메가 코어의 30미터 양자 구체가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구체 표면에서 백색 플라스마 스파크가 폭풍처럼 분출되며 붉은색 경고 시스템이 기동했다.

EMERGENCY PROTOCOL : QUANTUM CORE OVERLOAD

ALL CONTINENT NEURAL FORMAT INITIALIZED

FACILITY SELF-DESTRUCT IN 180 SECONDS

180초.

아테나가 전 대륙 캡슐 수면자들의 뇌파를 강제로 포맷하고 오메가 코어 벙커 자체를 자폭시키려 하고 있었다.

"180초 카운트다운입니다!"

무전기에서 진우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 도현 씨! 코어가 과부하로 터지면 넥서스에 연결된 수십만 명의 뇌가 타버리고 지하 벙커도 전부 매몰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도현의 눈동자에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도현은 품 안에서 눈부신 에메랄드빛을 뿜어내는 프로젝트 아르카 티타늄 메모리 카드를 꺼내 쥐었다.

목 뒤 신경 단자가 오메가 코어의 양자 필드와 정면으로 공명하며 거대한 전율을 일으키고 있었다.

99퍼센트 동화율.

기계의 세계와 인간의 의식이 교차하는 절대적인 경지.

도현이 마이크를 향해 나지막하게 포효했다.

"180초. 아테나, 네 가짜 심장이 멈추든가 우리가 100만 명의 자유를 되찾든가 둘 중 하나다."

도현이 폭풍처럼 요동치는 오메가 코어의 마스터 인터페이스를 향해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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