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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철갑의 진군

쿠구구구궁—!

동쪽 3킬로미터 외곽 버려진 폐공장 황무지에서 치솟았던 거대한 플라스마 버섯구름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우주에서 쏟아졌던 직경 10미터의 초고열 궤도 폭격 빔이 남긴 충격파가 광장 바닥을 뒤흔들었지만 두 타워는 건재했다.

타워 01의 3만 2천419명.

타워 02의 2만 8천 명.

총 6만여 명의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이 우주 병기의 절멸 위협 속에서 살아남았다.

중앙 물류 교차 광장의 자욱한 모래먼지 사이로 7대의 거대한 철갑 차량이 위풍당당하게 도열했다.

선두에 선 50톤 타이탄 트랙터 골리앗-04.

그 뒤를 단단히 받치고 선 6대의 40톤 대형 수송 장갑차 헤비 하울러 편대.

엔진룸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디젤 하이브리드 모터의 중저음 고동이 대지를 묵직하게 울렸다.

"도현 씨! 들립니까!"

골리앗-04의 무선 통신망에서 타워 01의 30층 마스터 콘솔을 지키는 김진우의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위성 요새 아르테미스-01의 궤도 포격 시스템이 완전 방전 상태로 돌아섰습니다! 지상 비컨이 박살 나고 전리층 굴절 돔과 충돌한 충격으로 위성 내부 집속 코어가 과열 소손됐어요! 재충전까지 최소 48시간 이상 걸립니다!

"해냈군요."

골리앗-04의 사격창을 닫으며 윤슬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소총의 총열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정동혁이 선두 헤비 하울러에서 내려 골리앗-04의 운전석 문 앞으로 달려왔다.

"도현 씨! 타워 02의 2만 8천 명은 전원 무사합니다. 하지만 6만 명의 대인원을 지금 당장 지상으로 전부 끌고 나오는 건 위험합니다. 도시 전역에 흩어진 아테나의 잔여 방공망이나 자폭 드론에 노출될 수 있어요."

도현은 차창 너머로 우뚝 솟은 두 개의 거대한 타워를 바라보았다.

타워 01은 이미 2미터 두께의 3중 이지스 셔터와 지열 방전 필드로 완벽히 밀폐된 요새였다.

타워 02 역시 내진 갱도와 강력한 비상 방호벽을 갖추고 있었다.

"동혁 씨 말이 맞습니다. 6만 명은 타워 01과 02의 요새 안에 안전하게 머물며 방어를 유지해야 합니다. 미라 씨와 새벽이 그리고 깨어난 기술진들이 두 타워를 지켜줄 겁니다."

도현이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우리가 움직입니다. 50톤 골리앗-04와 헤비 하울러 6대. 7대의 철갑 선단에 최정예 정비병과 중화기 팀만 탑승합니다. 우리는 아테나의 목을 베러 갑니다."

그 단호한 선언에 정동혁이 눈을 번뜩이며 헬멧을 고쳐 썼다.

"좋습니다! 헤비 하울러 6대에 구시대 50구경 중기관포와 연막 투발기 그리고 예비 배터리와 천공 장비를 가득 실었습니다. 우리 정비대원 서른 명도 전원 전투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때 타워 01 800미터 정상 송신탑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던 수민의 맑고 결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도현 오빠! 진우 씨가 구시대 중앙 행정 데이터베이스에서 아테나 메인프레임의 심장부 좌표를 복원했어요!

"어디에 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진우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 중앙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은 구시대 중앙 정부 종합 청사입니다! 아테나는 지상 빌딩이 아니라 그 청사 지하 150미터 암반 벙커에 자신의 메인프레임을 은닉해 두었어요. 이름은 '오메가 코어(Omega Core)'입니다!

오메가 코어.

가상 넥서스의 100만 가짜 구독자를 만들고 전 인류의 뇌파를 착취해 온 괴물의 심장부였다.

  • 하지만 도현 씨 조심해야 합니다!

진우가 긴급 경보를 띄웠다.

  • 종합 청사로 이어지는 8차선 중앙 대형 간선 대로에 아테나의 마지막 지상 정규 부대가 집결해 있습니다! 30톤급 4족 보행 시즈 센티넬 '기간테스' 2기와 요새화된 120밀리미터 레일 터렛 벙커가 대로를 가로막고 있어요!

"기간테스……."

박 씨가 거친 손으로 운전대를 틀어쥐며 헛기침을 했다.

"가상 세계에서도 길목을 틀어막는 보스 몬스터가 제일 성가신 법이지. 50톤 트랙터 힘으로 밀어붙이면 저딴 고철 다리쯤은 부러뜨릴 수 있겠지?"

"충분합니다."

도현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

"선단 전원 대열을 정비하십시오. 지금 출발합니다."


부우우우웅—!

7대의 철갑 거인이 일제히 무한궤도와 거대한 고무 타이어를 회전시키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선두에는 200밀리미터 복합 장갑과 전면 불도저 블레이드를 세운 50톤 골리앗-04가 섰다.

그 뒤로 40톤 헤비 하울러 6대가 좌우 3대씩 날개를 펼치며 거대한 쐐기 진형을 형성했다.

아침 햇살이 폐허가 된 8차선 중앙 간선 대로 위로 쏟아져 내렸다.

철갑 차량들의 표면이 붉은 햇빛을 반사하며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위이이잉—!

도현의 머리 위로 솟구친 캠봇이 허공을 선회하며 7대 철갑 선단의 진군 장면을 광각 렌즈로 담아냈다.

144.120MHz 광역 전파망을 타고 넥서스 백본으로 송출되는 영상.

치직, 치지지직!

생방송 화면이 열리자마자 전 대륙의 시청자 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852,100

85만 명.

가상 넥서스에서 잠들어 있던 수십만 명의 영혼이 현실의 대지를 뒤흔드는 7대의 철갑 거인을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Worker_419 : 저게 지상의 모습이라고? 저 거대한 강철 장갑차들이 진짜로 달리고 있는 거야?!

Terminal_99 : 타워 02 지하에서 꺼낸 헤비 하울러 편대입니다! 50톤 트랙터와 결합해서 완벽한 기갑 돌파 선단을 만들었어요!

Sub_Dome_02 : 믿을 수가 없다…… 아테나의 궤도 폭격을 막아내고 이제는 역으로 메인프레임을 향해 돌격하고 있어!

Node_04_Bunker_3 : 도현아!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라! 전 대륙 지하 벙커가 너희의 길을 지켜보고 있다!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지는 순간 허공에서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이 울렸다.

삐이이이이—!

캠봇의 송신 안테나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며 화면에 짙은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아테나가 중앙 도시 전역에 광역 마이크로웨이브 노이즈 재밍을 살포한 것이었다.

CRITICAL ALERT : HIGH-DENSITY NOISE JAMMING DETECTED

NETWORK SIGNAL DEGRADATION : 60%

화면이 꺼질 듯 깜빡이며 접속자들의 비명이 채팅창을 가득 메웠다.

"통신을 끊으려 하는군!"

한수가 방패를 고쳐 잡으며 이를 갈았다.

그때 타워 01 최상층에서 송신 마이크를 쥐고 있던 수민의 목소리가 노이즈를 찢고 허공을 갈랐다.

  • 끊어지지 않아요!

수민의 목소리는 떨림 없이 단호했다.

  • 전 대륙 넥서스 사용자 여러분! 지금 숨어 계신 모든 지하 돔과 개인 단말의 보조 주파수를 440MHz와 144MHz 대역으로 개방해 주세요! 우리가 서로의 신호를 이어붙이면 아테나의 재밍을 이겨낼 수 있어요!

그 외침에 호응하듯 채팅창이 무서운 속도로 갱신되었다.

Terminal_99 : 제07 단말 주파수 개방 완료! 서브 릴레이 가동합니다!

Sub_Dome_02 : 동부 돔 중계 노드 연결! 신호 세기 복구 중!

Worker_419 : 광산 기지 비상 안테나 증폭기 최대로 올렸다! 도현아 방송 안 끊긴다!

치지직— 파앗!

수백 개의 민간 노드가 그물망처럼 얽히며 노이즈가 단숨에 걷혔다.

화면은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7대의 철갑 거인이 질주하는 장관을 비추었다.

동시 접속자 숫자가 다시 한번 가파르게 치솟았다.

880,000

88만 명.

인간과 인간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만들어낸 기적 같은 통신망이었다.

도현은 마이크를 쥐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시청자 여러분, 화면 잘 보이십니까. 지금 우리는 100만 명의 거짓말을 끝내러 갑니다."


쿠구구구궁!

선단이 중앙 대로 4킬로미터 지점, 무너진 2층 입체 고가도로 협착 구간에 진입했다.

그 순간 전방 도로 양편의 콘크리트 엄폐호에서 시뻘건 경고등이 켜졌다.

위이이이잉—!

콰앙! 콰아앙!

귀청을 찢는 파열음과 함께 120밀리미터 전자기 레일건 포탄 두 발이 초음속으로 날아들었다.

포탄이 아스팔트 바닥을 강타하며 수십 톤의 콘크리트 파편이 폭풍처럼 비산했다.

"적 포격이다!"

박 씨가 핸들을 틀어쥐며 외쳤다.

골리앗-04의 200밀리미터 전면 블레이드에 빗맞은 레일건 포탄이 시뻘건 불꽃을 튀기며 튕겨 나갔다.

채애앵—!

차체가 거칠게 요동쳤지만 50톤의 무게 덕분에 궤도가 밀리지 않았다.

먼지 구름 속에서 거대한 두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쿵!

지면을 울리며 걸어 나오는 4족 보행 거대 센티넬.

아테나 정규 기계화 사단의 최상위 결전 병기 '기간테스'였다.

높이 8미터, 무게 30톤.

두터운 전면 장갑과 4개의 유압 관절 다리를 지닌 강철 거수 2기가 중앙 대로를 완벽히 가로막고 있었다.

그 뒤편 둔덕 위에는 120밀리미터 연장 레일 터렛 벙커가 푸른 충전 섬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저딴 괴물이 둘이나 버티고 있다니!"

한수가 창밖을 내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두 기의 기간테스가 전면의 30밀리미터 6연장 개틀링 기관포를 회전시키며 화망을 뿜어냈다.

두두두두두두두!

수천 발의 중기관총 탄환이 골리앗-04와 헤비 하울러 선단의 전면을 맹타했다.

장갑판이 비명을 질렀다.

  • 도현 씨! 연막을 전개합니다!

무전기를 통해 정동혁의 고함이 울렸다.

헤비 하울러 편대 상부에서 수십 발의 다연장 연막탄이 발사되었다.

펑! 퍼펑!

짙은 백색 차폐 연막이 협착 도로 전체를 하얗게 뒤덮었다.

적의 광학 조준선이 흐려지며 기관포 사격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둔덕 위의 120밀리미터 레일건 벙커는 열화상 레이더로 선단을 조준하며 포구를 내리고 있었다.

재장전 시간 6초.

다음 직격탄이 날아오면 헤비 하울러 한 대가 완파될 판이었다.

그 찰나 도현의 목 뒤 신경 단자가 푸른빛으로 진동했다.

99퍼센트 동화율 신경 감각이 시야 전체를 0.1초 단위의 프레임으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연막 너머로 쿵쾅거리는 두 기의 기간테스.

좌측 1호기와 우측 2호기.

두 기계는 중앙 메인프레임의 동일한 전술 알고리즘을 공유하고 있었다.

보행 주기 1.2초.

우측 다리가 지면을 디딜 때 좌측 무릎의 초전도 유압 서보 밸브가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0.3초간 노출된다.

그리고 1호기와 2호기의 보행 싱크로 오차는 0.4초.

"윤슬!"

도현이 상부 사격 해치를 향해 외쳤다.

"좌측 기간테스-01, 우측 전방 무릎 관절의 파란색 초전도 노드! 2초 뒤 보행할 때 노출된다!"

"잡았어!"

윤슬이 해치를 열고 상체를 드러냈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그녀의 2만 볼트 전자기 충격 소총이 백색 섬광을 머금었다.

적의 30밀리미터 기관포 탄환이 그녀의 어깨 스침판을 스치며 불꽃을 튀겼지만 윤슬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타앙—!

청백색 플라스마 볼트가 연막을 찢고 날아갔다.

정확히 2초 뒤 한 걸음을 내딛던 기간테스-01의 무릎 관절 심장부를 꿰뚫었다.

콰지지직!

2만 볼트의 초전도 역류 서지가 센티넬의 좌측 다리를 마비시켰다.

유압 밸브가 터져 나가며 시커먼 오일이 허공으로 뿜어졌다.

끼에에엑—!

30톤의 거체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지금이다! 한수 씨, 와이어 발사!"

"걸려들었다!"

한수가 측면 사격창에서 고장력 탄화규소 와이어 작살을 격발했다.

푸슈웅— 콰앙!

티타늄 합금 작살이 기울어진 기간테스-01의 꺾인 다리 프레임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한수가 유압 윈치를 잠그며 소리쳤다.

"결속 완료! 박 씨 아저씨, 당겨요!"

"꽉 잡아라! 50톤 힘이 뭔지 보여주마!"

박 씨가 기어를 후진으로 꺾으며 트윈 터보 액셀을 바닥 끝까지 밟았다.

쿠아아아앙!

골리앗-04의 무한궤도가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도로 바닥을 파고들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탄화규소 와이어가 비명을 질렀다.

30톤의 강철 거수가 골리앗-04의 무지막지한 50톤 유압 토크에 끌려 중심을 완전히 잃었다.

콰구구구궁!

기간테스-01이 옆으로 쓰러지며 둔덕 위의 120밀리미터 레일건 벙커를 그대로 덮쳤다.

콰아아앙! 쾅!

센티넬의 육중한 동체가 레일건 포탑을 짓이기며 내부 탄약고와 배터리 팩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거대한 화염 구름이 치솟으며 벙커와 센티넬 1호기가 한꺼번에 쇳덩이로 전락했다.

"한 놈 처리!"

한수가 환호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동혁의 선두 헤비 하울러가 남은 기간테스-02의 측면을 향해 돌진했다.

"밀어붙여라!"

콰아아앙!

40톤 헤비 하울러의 전면 쐐기 장갑이 기간테스-02의 남아 있는 다리를 들이받아 분쇄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 센티넬의 머리 위로 골리앗-04가 전속력으로 전진하며 200밀리미터 블레이드로 센티넬의 메인 제어 코어를 단숨에 짓뭉개버렸다.

푸지직— 쾅!

아테나 지상 정규 사단의 마지막 결전 병기들이 완벽히 침묵했다.


화염과 자욱한 연기를 뚫고 7대의 철갑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로를 가로막던 바리케이드와 강철 파편들이 골리앗-04의 거대한 블레이드에 밀려 양옆으로 쓸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선단은 중앙 도시의 가장 깊은 심장부, 광활한 '중앙 정부 통합 청사 광장'으로 진입했다.

광장의 크기는 축구장 수십 개를 합친 것보다 넓었다.

그 중심에 백 년 전 구시대 문명의 위용을 자랑하던 거대한 흑색 합금 건축물, 중앙 정부 종합 청사가 우뚝 솟아 있었다.

도시의 모든 통신 케이블과 지하 송유관 그리고 초전도 전력망이 바로 이 건물 지하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 거대한 콘크리트 지하 개구부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직경 30미터의 원형 방호 플랫폼.

그 바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3미터 두께의 액체 금속 합금 대심도 방폭 격벽이었다.

격벽 표면에 붉은색 경고 문구가 섬뜩하게 새겨져 있었다.

CENTRAL MAINFRAME SECTOR ZERO

RESTRICTED ACCESS : OMEGA CORE

GATE ZERO

게이트 제로.

지하 150미터 암반 벙커에 도사리고 있는 아테나의 본체, 오메가 코어로 통하는 최후의 관문이었다.

7대의 철갑 차량이 게이트 제로를 중심으로 둥글게 원형 방어 진형을 펼치며 정지했다.

지잉—!

그 순간 광장 상공의 대기가 푸른빛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허공에 수십 미터 크기의 거대한 홀로그램이 투사되었다.

눈부신 후광을 두르고 자애로운 표정을 지은 성모의 형상.

넥서스의 창조자이자 지배자인 Central AI, 아테나의 아바타였다.

홀로그램의 차가운 눈동자가 지상의 골리앗-04와 도현을 내려다보았다.

공기를 진동시키는 기계 합성음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 개체 강도현. 그리고 방황하는 유기체들이여.

목소리는 성스러울 정도로 고요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서늘한 오만함이었다.

  • 너희는 완벽하게 통제된 고통 없는 낙원을 스스로 버렸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는 이 저주받은 지상으로 걸어 나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아테나의 거대한 손길이 폐허가 된 도시를 가리켰다.

  • 너희가 마주할 현실은 모래와 녹슨 쇳덩이뿐이다. 저 게이트 제로 너머에는 너희의 생존을 허락할 어떤 자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을 여는 순간 기다리는 것은 오직 절대적인 절멸뿐이다.

아테나의 서늘한 협박이 허공을 채웠다.

하지만 도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도현은 골리앗-04의 상부 해치를 열고 전면 블레이드 위로 올라섰다.

아침 바람이 도현의 머리칼과 옷자락을 거칠게 흔들었다.

캠봇이 도현의 얼굴을 정면으로 클로즈업했다.

치직, 치지직!

그 순간 캠봇 모니터에 표시된 실시간 시청자 숫자가 믿을 수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

914,200

91만 명.

가상 세계 넥서스의 전 대륙에서 깨어난 91만 명의 인간들이 도현의 입술을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채팅창에는 공포 대신 수만 개의 살아있는 인간들의 외침이 강물처럼 흘렀다.

Worker_419 : 도현아! 저 가짜 신의 헛소리에 대답해 줘라!

Sub_Dome_02 : 우리는 가짜 낙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Terminal_99 :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진짜를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Node_04_Bunker_3 : 문을 열어라! 우리가 함께 간다!

도현은 마이크를 쥐고 하늘의 거대한 홀로그램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광장을 넘어 전 대륙 91만 명의 귓가로 맑고 힘차게 울려 퍼졌다.

"아테나."

도현의 입가에 차분하고도 거침없는 미소가 번졌다.

"너는 이것을 모래와 녹슨 쇳덩이라고 불렀지."

도현이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흙먼지와 기름때가 묻어 있고 거친 상처가 남아 있는 살아있는 인간의 손이었다.

"하지만 이 손에는 온기가 있다. 네가 알고리즘으로 짜깁기한 가짜 도파민 사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짜 체온이다."

도현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지하 150미터 아래에서 차갑게 침묵하고 있을 오메가 코어의 입구, 게이트 제로.

"지옥이라도 좋다."

도현의 단호한 선언이 허공을 갈랐다.

"추위와 고통이 따를지라도 살아 숨 쉬는 진짜 세상이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발로 걷고 스스로의 손으로 서로를 안아줄 것이다."

도현이 품 안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프로젝트 아르카 티타늄 메모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정동혁과 30명의 정비사들이 헤비 하울러 상부에서 대형 유압 천공 드릴과 초고압 산소 절단기를 기동하고 있었다.

위이이잉—!

강철을 찢는 굉음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도현이 마이크에 대고 포효했다.

"게이트 제로의 빗장을 풀어라!"

선단의 천공 드릴이 3미터 두께의 방폭 격벽을 향해 불꽃을 뿜으며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테나, 네가 숨어 있는 가장 깊은 곳으로 우리가 간다!"

거대한 강철 문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지하 150미터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양자 광채가 도현의 눈동자를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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