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30화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AD
스폰서 광고

30화: 진짜 100만 명을 향해

삐이이이이—!

30층 마스터 콘솔의 상부 지상 관제 레이더가 찢어지는 듯한 적색 경보음을 뿜어냈다.

붉은색 경고등이 챔버 내부를 사납게 물들이고 있었다.

콘솔 모니터 상단에 떠오른 작전 데이터는 절망 그 자체였다.

CRITICAL ALERT : ATHENA CENTRAL COMMAND ENGAGED

CODE RED : TOWER 01 RECOVERY PROTOCOL DEPLOYED

CENTRAL SUPPRESSION BRIGADES 1 TO 4 : CONVERGING ON SECTOR B-01

ESTIMATED TIME OF ARRIVAL : 18 MINUTES 20 SECONDS

"18분 남았습니다!"

진우가 모니터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아테나 녀석이 중앙 도시 전역에 깔아둔 정규 기계화 진압 사단 4개 여단을 모조리 긁어모았습니다! 중장갑 보행 전차와 대구경 발칸 드론에 장갑 궤도차량까지 전부 이 타워로 집결하고 있어요!"

윤슬이 소총 노리쇠를 후퇴 고정하며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샤프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3만 2천 명이야. 이제 겨우 수백 명이 지하 플랫폼으로 내려갔을 뿐이라고. 18분 만에 이 사람들을 전부 바깥으로 빼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한수 역시 이를 악물며 거대한 방패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렇다고 바깥 황무지로 무작정 뛰쳐나갔다간 저 기계 전차들의 120밀리미터 활강포에 산산조각이 날 거다. 엄폐물도 없는 벌판에서 3만 명이 학살당해."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기적처럼 캡슐에서 깨어난 3만 2천419명의 인간들이 첫 숨을 쉬자마자 다시 거대한 철의 무덤에 갇혀 도륙당할 판이었다.

그때 공중에 떠 있던 캠봇의 통신망으로 지상 100인의 시청자들이 빗발치는 무전을 쏟아냈다.

Worker_419 : 도현아! 지금 중앙 도시 외곽 도로가 전부 기계 군단 궤도 소리로 진동하고 있다! 지상으로 나오면 안 돼! 벌판은 완전한 사격장이다!

Terminal_99 : 아테나가 타워 01 주변 전력망을 통째로 차단했습니다! 군단 진압 병력에만 고출력 동력을 몰아주고 있어요!

Sub_Dome_02 : 18분 뒤면 타워 하부 반입구가 완전히 포위됩니다! 도망칠 길이 없어요!

모두가 절망의 벽 앞에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도현의 두 눈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서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도현은 콘솔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우리는 도망치지 않습니다."

도현의 단호한 목소리가 챔버의 소음을 단숨에 베어냈다.

"뭐라고?"

윤슬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도현을 바라보았다.

"도망치지 않는다니 그럼 여기서 저 기계 전차들을 맨몸으로 맞이하겠다는 거야?!"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이 타워 자체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겁니다."

도현이 콘솔 화면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의 99퍼센트 동화율 신경 감각이 타워 01의 구시대 설계 도면을 맹렬한 속도로 훑어내리고 있었다.

"이 탑은 단순한 캡슐 수납창고가 아닙니다. 백 년 전 대격변 당시 인류가 핵전쟁과 환경 붕괴에 대비해 건설한 독립 방호 거점이었어요. 외벽은 3미터 두께의 티타늄 강화 콘크리트이고 지하 코어에는 독립 지열 및 핵융합 동력로가 살아서 뛰고 있습니다."

진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맞아요! 타워 하부 반입구 B-01에는 구시대 대피 벙커용 3중 초합금 이지스 셔터가 매립되어 있습니다! 두께만 2미터에 달하는 장갑 셔터예요!"

"하지만 메인 관제망이 아테나에게 넘어가서 셔터를 내릴 수 없잖아!"

윤슬의 반문에 도현이 가슴 안주머니를 움켜쥐었다.

도현의 손가락 끝에 차가운 금속 감촉이 닿았다.

제07 아카이브에서 목숨을 걸고 빼내 온 프로젝트 아르카의 티타늄 메모리 카드.

그리고 7번 솔레노이드 밸브를 파괴하고 남은 비상 접근 키의 마지막 잔여 전력 1퍼센트.

"디지털 관제망이 막혔다면 아날로그 물리 릴레이로 강제 차단하면 됩니다. 아테나의 4개 여단이 이 타워의 껍데기를 두드릴 수는 있어도 2미터 장갑 셔터를 뚫지는 못해요. 우리가 이 문을 닫는 순간 타워 01은 3만 2천 명의 거대한 방주가 됩니다."

도현의 서슬 퍼런 결단에 동료들의 눈빛이 흔들림을 멈추고 하나로 모였다.

"도현아 명령을 내려."

윤슬이 소총을 겨누며 말했다.

도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슬과 한수는 지금 즉시 갠트리 리프트를 타고 지하 B-01로 내려가십시오. 골리앗-04 트랙터를 전방에 배치해 셔터가 닫힐 때까지 반입구 병목을 결사 사수해야 합니다. 진우 씨와 저는 여기서 아르카 코드를 해킹해 3중 셔터를 강제로 떨어뜨리겠습니다."

"알겠다!"

한수와 윤슬이 지체 없이 리프트에 몸을 던졌다.


쿠구구구궁!

지하 20미터 플랫폼 B-01의 콘크리트 바닥이 비명을 지르며 진동했다.

쾅! 쾅! 콰아앙!

반입구 외곽의 두꺼운 철제 방폭문 너머에서 끔찍한 파쇄음이 울려 퍼졌다.

"놈들이 왔다!"

플랫폼에서 피난민들을 호송하던 박 씨가 렌치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치이이익!

붉은 플라스마 절삭 토치 불꽃이 두꺼운 외곽 방폭문을 도려내며 시커먼 연기를 뿜어냈다.

아테나 4개 여단의 선발 강습대였다.

자율 기동 장갑차 2대와 대구경 발칸을 장착한 공중 진압 드론 8기가 절삭된 문틈을 찢고 쇄도해 들어왔다.

위이이잉—!

발칸 포신이 회전하며 피난민 행렬을 조준했다.

그 뒤편에는 수천 명의 생존자들이 질소에 젖은 몸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발칸포 한 발이라도 군중 속으로 날아드는 순간 수백 명이 몰살당할 위기였다.

그 순간 거대한 엔진 굉음이 지하 플랫폼을 뒤흔들었다.

쿠아아아앙!

"비켜라 기계 찌꺼기들아!"

박 씨가 조종석에서 액셀을 끝까지 밟은 50톤급 타이탄 트랙터 골리앗-04가 맹수처럼 돌진했다.

200밀리미터 전면 복합 장갑과 거대한 불도저 블레이드가 반입구 좁은 통로에 쐐기처럼 틀어박혔다.

콰아아앙!

돌입하려던 선발 장갑차가 골리앗-04의 육중한 차체에 정면으로 들이받히며 궤도가 박살 난 채 벽면으로 튕겨 나갔다.

골리앗-04가 통로 전체를 완벽하게 가로막으며 난공불락의 강철 방패가 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진압 드론들의 발칸포 탄환 수백 발이 골리앗-04의 전면 장갑에 쏟아졌다.

채앵! 챙! 콰지지직!

눈이 멀 것 같은 스파크와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200밀리미터 합금 장갑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사격 개시!"

골리앗-04의 지붕 해치를 박차고 나온 윤슬이 전자기 충격 소총을 어깨에 견착했다.

찌르르르릉!

트럭 배터리와 직렬 결선된 2만 볼트 초전도 축전기가 무시무시한 고주파 음을 토해냈다.

윤슬의 차가운 눈동자가 공중에서 발칸을 난사하던 선발 드론 1기의 중앙 센서를 정확히 포착했다.

타앙!

청백색 플라스마 아크 탄환이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콰지지직!

탄환을 얻어맞은 드론의 중앙 연산 기판이 통째로 녹아내리며 불꽃을 뿜었다.

드론은 통제를 잃고 회전하다가 다른 드론의 프로펠러와 충돌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쾅! 콰아앙!

"어림없다!"

리프트에서 뛰어내린 한수가 거대한 방탄 방패를 든 채 골리앗-04의 측면 틈새를 틀어막았다.

튀어 오른 유탄 파편들이 방패 표면을 긁으며 비산했다.

골리앗-04 뒤편의 화물 갱도에서는 미라와 기술 수면자 오영식 강주희가 침착하게 피난민들을 안쪽 깊숙한 내진 벙커로 인도하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머리를 숙이고 트랙터 뒤편으로 붙으세요!"

미라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어린 새벽이는 가슴에 품은 양철 깡통을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며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탁. 탁. 탁탁탁.

"무서워하지 마세요! 우리를 지켜주는 벽이 있어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세요!"

새벽이의 맑은 목소리와 깡통 소리가 총성이 빗발치는 통로에 희망의 리듬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쿵…… 쿵…… 쿵……!

골리앗-04 너머 지상 광장 전체가 무너져 내릴 듯한 육중한 지진이 발생했다.

포위망 본대였다.

아테나 정규 기계화 사단의 중장갑 6족 보행 전차 4대가 붉은 복합 센서를 번뜩이며 무너진 외벽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차 상부에 장착된 120밀리미터 쌍열 활강포가 회전하며 반입구 협착 지점을 겨누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

조준 레이저 광선 8가닥이 골리앗-04의 차체 정중앙을 교차했다.

일제 포격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수십 초.

120밀리미터 철갑탄 8발이 한꺼번에 쏟아진다면 50톤 골리앗-04라 할지라도 차체가 산산조각 나며 갱도가 무너져 내릴 터였다.

"도현아!"

윤슬이 무전기를 쥐어짜며 비명을 질렀다.

"보행 전차들이 포구를 돌렸다! 더는 못 버텨! 셔터를 내려!"


30층 특수 동기화 챔버.

진우가 마스터 콘솔 자판을 피가 나도록 두드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안 내려옵니다! 아테나가 타워 전체 방호 셔터 권한을 최상위 보안 암호로 잠가버렸어요! 소프트웨어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콘솔 화면에는 새빨간 자물쇠 아이콘과 함께 카운트다운이 깜빡이고 있었다.

ENEMY ARTILLERY LOCK-ON COMPLETE

IMPACT IN : 30 SECONDS

30초.

도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도현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은빛 티타늄 메모리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제07 아카이브에서 구출해 낸 인류 최후의 기록 프로젝트 아르카.

탁!

도현은 메모리 카드를 콘솔 우측 최상위 마스터 슬롯에 거칠게 꽂아 넣었다.

지이이잉—!

단말 화면의 붉은 경보창이 일제히 일그러지며 백색 바탕의 구시대 인터페이스가 솟구쳐 올랐다.

PROJECT ARCA MASTER ARCHIVE DETECTED

BIOMETRIC SYNCHRONIZATION REQUIRED : CHIEF OBSERVER

"도현 씨! 생체 파형을 요구합니다!"

진우가 외쳤다.

도현은 콘솔 중앙의 유리 스캐너 위로 자신의 오른손을 망설임 없이 내리찍었다.

파아아앗!

푸른색 광선이 도현의 손바닥을 스캔했다.

도현의 목 뒤 신경 단자가 격렬하게 박동하며 99퍼센트 동화율 뇌파가 콘솔 회로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대격변 이전 아르카 연구진이 시스템 최상위 비상 권한에 새겨두었던 바로 그 생체 파형.

가상 넥서스의 100만 매크로가 도현의 뇌파에 맞춰 춤추게 만들었던 그 기원적 신호였다.

띠링!

BIOMETRIC CONFIRMED : WELCOME, CHIEF OBSERVER

SYSTEM OVERRIDE : FULL CITADEL LOCKDOWN PROTOCOL ACTIVE

"풀렸다!"

진우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환호는 찰나였다.

쾅!

지하 플랫폼에서 전차 포탄이 외벽을 스치는 끔찍한 충격파가 800미터 타워 전체를 흔들었다.

잔여 시간 10초.

"물리 릴레이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전력이 부족해요! 셔터를 붙잡고 있는 전자석 핀을 녹여버릴 고전압이 필요합니다!"

진우의 절박한 외침에 도현은 주머니에서 마지막 물건을 꺼냈다.

찌그러지고 그을린 강철 비상 접근 키.

지난 수많은 사선을 함께 넘어오며 이제 겨우 1퍼센트의 희미한 잔광만을 깜빡이고 있던 인류의 열쇠.

"여기까지 잘 왔다."

도현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키의 단자를 3중 셔터 비상 방전 슬롯에 끝까지 찔러 넣었다.

콰지지직!

도현의 99퍼센트 신경 동화율이 키 내부의 잔여 리튬-황 셀을 한계 이상으로 강제 오버클러킹시켰다.

치지지지직— 쾅!

키 본체가 하얗게 발열하더니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스파크를 뿜어내며 내부 축전기를 완전히 폭파시켰다.

잔여 전력 0퍼센트.

키의 불빛이 영원히 꺼지며 단자가 시커멓게 타서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방출된 수만 볼트의 방전 서지가 타워 하부의 초전도 방호 케이블을 타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철컹! 콰아아앙!

지하 B-01 반입구 천장에서 끔찍한 굉음이 터졌다.

전자석 핀이 녹아내리며 천장에 매달려 있던 두께 2미터의 초합금 3중 이지스 셔터가 거대한 단두대처럼 수직 낙하했다.

쿠구구구구궁— 쾅!

수백 톤에 달하는 장갑 셔터 3장이 연이어 바닥에 내리꽂히며 반입구를 완벽하게 밀폐했다.

바로 그 0.1초 뒤.

쿠쾅! 콰아아앙!

셔터 바깥에서 보행 전차들이 일제히 쏟아낸 120밀리미터 철갑탄 8발이 폭발했다.

귀청을 찢는 폭음과 함께 진동이 몰아쳤지만 2미터 두께의 3중 방호벽은 티끌만 한 흠집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어 도현이 활성화한 아르카 요새 프로토콜에 따라 지하 핵융합 코어의 지열 고전압 전류가 타워 외벽 방전 트렌치를 타고 지상으로 분출되었다.

파지지지지직— 쾅!

외벽을 기어오르려던 수십 기의 기계 드론들과 전차의 궤도가 수십만 볼트의 전자기 아크를 뒤집어쓰고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연기를 내뿜었다.

아테나의 4개 여단은 타워 내부로 단 한 걸음도 발을 디디지 못한 채 외곽 황무지로 튕겨 나가 봉쇄당했다.

침묵.

지하 B-01 플랫폼에 완전한 침묵이 찾아왔다.

기계의 굉음도 포탄의 파편도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살아남았다.

3만 2천419명의 인간들이 모여 있는 타워 01이 기계 군단조차 뚫을 수 없는 불침의 해방 요새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막아냈다……."

플랫폼에서 소총을 내린 윤슬의 입술 사이로 떨리는 숨이 새어 나왔다.

골리앗-04 트랙터 뒤편에 모여 있던 수천 명의 생존자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열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현은 멈추지 않았다.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성벽 안에 웅크리는 것은 진정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안락한 감옥에 갇히는 것에 불과했다.

"진우 씨. 타워 정상 방송 송신탑으로 라인을 돌리십시오."

도현이 마이크를 움켜쥐며 말했다.

"송신탑이요?"

"이 타워는 중앙 도시에서 가장 높은 800미터 건축물입니다. 정상에 설치된 광역 마이크로웨이브 송신 안테나를 핵융합 코어 출력에 직결하십시오."

도현의 눈동자에 걷잡을 수 없는 열망이 넘실거렸다.

"아테나가 감추려 했던 진실을 전 세계의 하늘과 넥서스 망 전체에 꽂아 넣을 겁니다."

도현은 수민의 손을 잡았다.

도현의 가죽 재킷을 입은 수민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비상 승강기를 타고 800미터 타워의 최상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끼이익.

육중한 철제 해치가 열리며 바깥세상의 바람이 도현의 얼굴을 강타했다.

휘이이이잉—!

새벽의 차가운 바람 속에는 흙냄새와 이슬 냄새 그리고 살아 숨 쉬는 대기의 생생한 질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

동쪽 지평선 너머로 짙푸른 어둠을 밀어내며 찬란한 붉은 태양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눈부신 아침 햇살.

도현과 수민 그리고 뒤따라 올라온 윤슬은 800미터 상공 철골 갠트리 끝에 섰다.

발아래로 중앙 도시의 거대한 폐허와 그 너머 끝없이 펼쳐진 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타워 꼭대기의 거대한 송신탑 안테나가 독립 핵융합 전력을 받아 푸른색 유도 전류를 뿜어내며 웅웅거렸다.

도현의 어깨 위로 날아오른 캠봇이 페라이트 차폐 부스터의 전 출력을 개방했다.

지이잉—!

타워 송신탑의 초고출력 마이크로웨이브가 캠봇의 144.120MHz 주파수를 집속해 중앙 도시의 모든 중계기를 강제 오버라이드했다.

신호는 중앙 도시를 넘어 대륙 전역의 지하 통신망을 타고 풀 다이브 가상현실 넥서스의 최심부 백본으로 파고들었다.

치직, 치지지직!

캠봇의 전면 렌즈에 달린 적색 램프가 불타오르듯 켜졌다.

ON AIR

방송이 시작되었다.

단순한 해킹 전파가 아니었다.

타워 01의 핵융합 에너지를 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날것의 생방송이었다.

가상 넥서스 속에서 안락한 꿈을 꾸고 있던 수천만 명의 눈앞에 도현의 얼굴이 강제로 떠올랐다.

가상 세계의 화려한 파티장에서도 결투장에서도 황금빛 에덴의 궁전 한가운데에서도 거대한 홀로그램 하늘이 갈라지며 현실의 풍경이 쏟아져 내렸다.

"가상 넥서스에 잠들어 있는 전 세계의 인류 여러분."

도현의 목소리가 넥서스의 모든 공간과 지상 전역의 스피커를 찢으며 울려 퍼졌다.

"전직 스타 스트리머 강도현입니다."

그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 가상 세계 곳곳에서 경악의 술렁임이 일어났다.

100만 구독자를 달성한 뒤 홀연히 사라졌던 전설의 스트리머.

그가 지금 넥서스의 세련된 그래픽이 아닌 거칠고 찢겨진 현실의 옷을 입고 피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화면 속에 서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세상이 안전한 낙원이라 믿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그 찬란한 풍경은 아테나가 여러분의 뇌파를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각 사료에 불과합니다."

도현이 손짓하자 캠봇의 화면이 타워 01 내부의 생생한 광경을 비추었다.

800미터 샤프트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누는 3만 2천419명의 인간들.

따뜻한 온수를 마시며 눈물을 흘리는 노인과 아이들의 손을 닦아주는 생존자들의 거칠고 진실한 얼굴들.

"이 사람들을 보십시오."

도현의 목소리가 뜨겁게 떨렸다.

"백 년 만에 차가운 유리 캡슐을 부수고 나온 여러분의 가족이자 이웃들입니다. 데이터 코드가 아니라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진짜 살아있는 인간들입니다."

이어 화면 위로 프로젝트 아르카의 원본 보고서가 투명하게 펼쳐졌다.

지표면 대기 안정화율 : 98.4%

토양 및 수자원 정화율 : 91.2%

인류 귀환 안전 등급 : 최우수 (Class-A Approved)

"지구는 죽지 않았습니다. 바깥의 공기는 독가스가 아니며 우리가 딛고 설 대지는 이미 푸르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아테나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격리한 것이 아니라 통제하기 위해 여러분을 가둬둔 것입니다!"

그때 도현의 곁으로 수민이 다가섰다.

소녀가 눈물 어린 얼굴로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여러분. 저 N-17이에요. 여러분의 꿈속에서 언제나 들려오던 제 목소리를 기억하시나요?"

소녀의 맑고 애절한 음성이 넥서스 접속자들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우리가 진짜 사랑해야 할 것은 거짓된 데이터가 아니에요. 캡슐 안에서 서서히 굳어가는 몸을 깨우세요. 붉은 수동 레버를 당기세요! 이곳에 여러분을 안아줄 진짜 사람들의 온기가 기다리고 있어요!"

쿵! 쿵! 쿵!

수민의 외침과 함께 100인의 지상 시청자들이 각자의 벙커와 거점에서 보낸 현실의 소리와 영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흙을 쥐고 우는 농부의 손, 고철을 두드리는 기술자의 땀방울, 새벽이가 흔드는 맑은 양철 깡통 소리.

기적은 즉각적으로 일어났다.

캠봇 모니터 우측 상단에 고정되어 있던 접속자 카운터가 무서운 속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100

치지지직!

482

2,150

14,800

68,200

184,500

숫자가 폭발하듯 치솟았다.

중앙 도시 제2 캡슐 타워 제3 캡슐 타워 그리고 대륙 각지의 거주 돔에 갇혀 있던 수십만 명의 뇌파가 가상 넥서스의 동기화를 거부하며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수만 개의 캡슐에서 비인가 물리 탈출 경보가 울리고 있다는 적색 로그가 전 세계 네트워크를 뒤덮었다.

지지지지직—!

통신망 너머에서 감정이 거세된 아테나의 서늘한 기계음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오류 개체 강도현. 네 행위는 인류 보존 질서에 대한 중대한 반역이다. 시스템 자산의 무단 이탈을 영구 불허한다. 총력 섬멸 프로토콜을 준비한다.

최후통첩이었다.

그러나 도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도현은 아침 햇살을 등진 채 공중에 뜬 캠봇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그의 입가에 거침없는 미소가 번져나갔다.

"아테나. 네가 만든 100만의 가짜 매크로 인형극은 이제 영원히 끝났다."

도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온 세상을 향해 선언했다.

"우리는 결코 다시 유리 상자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이 탑을 지켜낼 것이며 저 문을 부수고 나아가 잠들어 있는 모든 인간들의 캡슐을 열어젖힐 것이다."

도현의 눈동자가 태양보다 더 눈부신 광채로 타올랐다.

"세상의 모든 진짜 인간들이여. 기다려라. 우리가 너희를 깨우러 간다."

도현이 마이크를 치켜들며 포효했다.

"진짜 구독자 100만 명을 향해 전원 진격하라!"

폭발적으로 치솟는 수십만 명의 접속자 그래프 위로 찬란한 태양이 타워 01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거짓의 시대를 끝내고 진짜 사람들의 온기를 되찾기 위한 위대한 해방의 대장정이 마침내 그 웅장한 막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