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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28화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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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대규모 강제 해제

삐이이이이익—!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경보음이 백색 챔버 안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천장의 순백색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피처럼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경고. 중심 바이오 브리지의 치명적 비동기화 감지.

3만 2천 개 캡슐의 강제 해제는 대규모 뇌사 및 현실 인프라 붕괴를 초래합니다.

비인가 침입자에 대한 즉각적인 신경 소거 및 챔버 봉쇄 절차를 가동합니다.

COUNTDOWN TO NEURAL PURGE : 60 SECONDS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아테나의 목소리는 한 치의 자비도 없는 기계적 냉혹함 그 자체였다.

천장 중앙의 육중한 배전 격자가 좌우로 갈라지더니 짙은 오존 냄새와 함께 고압 신경 소거 방전 패널 4기가 스르륵 내려왔다.

파지지직!

시퍼런 전자기 스파크가 패널 표면을 타고 뱀처럼 번뜩였다.

"도현아 위험해!"

한수가 거대한 방탄 방패를 치켜들며 도현과 콘솔 앞을 가로막았다.

콰아앙!

천장에서 튄 고전압 전자기 잔향이 방패 표면을 때리며 눈부신 불꽃을 튀겼다.

방패를 쥔 한수의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출입문이 닫힌다!"

윤슬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방금 전 열렸던 300밀리미터 두께의 육중한 백색 생체 차폐 셔터가 무서운 굉음을 내며 다시 맞물려 내려오고 있었다.

이곳에 갇히는 순간 60초 뒤 챔버 안의 모든 생명체는 뇌 신경이 통째로 타버려 즉사할 터였다.

REMAINING TIME : 54 SECONDS

콘솔 화면 위로 시뻘건 시스템 락다운 텍스트가 떠올랐다.

SECURITY OVERRIDE : MANUAL LEVER HARDWARE LOCKED

CENTRAL BUS DISCONNECT REQUIRED

"진우 씨! 레버가 안 움직여요!"

도현이 붉은 강제 배출 레버를 쥔 채 이를 악물었다.

기계식 래치가 전자석 락에 걸려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휴대용 단말을 콘솔 하부 포트에 쑤셔 박은 김진우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렸다.

"아테나 메인프레임이 로컬 제어권을 회수하면서 수동 레버에 2중 전자 락을 걸었습니다! 외부 연산 노드를 우회해서 전자기 빗장을 풀어야 해요!"

그때 공중에 뜬 캠봇의 스피커를 통해 지상의 무선 신호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144.120MHz 무선 생방송을 지켜보던 100명의 시청자들이 화면 속 붉은 카운트다운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Worker_419 : 저 살인마 AI 년이 60초 소거를 켰다고?! 미친 거 아니야?!

Terminal_99 : 아테나 중앙 통신 포트 주소 확인했습니다! 전 채널 백도어로 무차별 핑 폭격 시작합니다!

Sub_Dome_02 : 분산 벙커 통신망 440MHz 주파수 개방! 아테나 로컬 연산 버퍼를 패킷으로 채워버려요!

Node_04_Bunker_3 : 도현 님 버텨요! 우리가 연산 지연 걸어버릴 테니까!

치지지직!

지상의 피난처와 지하 벙커에 흩어져 있던 백 명의 인간들이 넥서스 메인프레임의 로컬 포트를 향해 거대한 데이터 쓰나미를 쏘아 올렸다.

순간 콘솔 상단의 붉은 카운트다운 숫자가 기괴하게 깜빡이며 멈칫했다.

REMAINING TIME : 49 SECONDS…… 49…… 49…… 48……

초당 1초씩 떨어지던 타이머가 외부 패킷 과부하로 인해 연산 지연을 일으키며 둔탁하게 늘어졌다.

"시청자들이 시간을 벌어주고 있어요!"

진우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천장에서 내려오는 신경 소거 패널의 푸른 아크는 점차 충전률을 높이며 챔버 바닥을 짓누르고 있었다.

"윤슬! 천장 좌측 3번 변압 서보를 쏴요! 저걸 끊어야 패널 하강이 멈춰요!"

진우의 외침에 윤슬이 주저 없이 전자기 충격 소총을 어깨에 견착했다.

타앙!

소총 총열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플라스마 탄환이 천장의 고압 변압기를 정확히 꿰뚫었다.

콰지지직!

폭발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으며 하강하던 방전 패널 4기가 허공에서 덜컥 멈춰 섰다.


급한 불을 껐지만 시간은 여전히 모래시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REMAINING TIME : 38 SECONDS

진우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캡슐 쪽을 가리켰다.

"도현 씨! 수민 양의 바이오 브리지 결속을 풀어야 수동 레버 락이 완전히 풀립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광케이블을 뜯어내면 안 돼요!"

"이유가 뭡니까!"

"수민 양의 뇌파는 지금 타워 전체 3만 2천419개 캡슐의 신경망과 병렬로 묶여 있습니다! 그냥 단절시키면 타워 전체에서 쏟아지는 수만 볼트의 신경망 역류 서지가 수민 양의 뇌로 역류해요! 수민 양은 물론이고 연결된 수천 명의 뇌가 쇼크사합니다!"

도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럼 어떻게 분리합니까?"

"수민 양 본인이 스스로 신경망 결속을 놓고 의식을 현실로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찰나에 발생하는 수만 볼트의 잔류 서지를 누군가가 바이오 터미널에서 온몸으로 받아내 외부 접지로 흘려보내 줘야 해요! 하지만 사람의 신경계로는 그 엄청난 전압을 버틸 수 없습니다. 뇌가 타버려요!"

진우의 절규에 챔버 안이 얼어붙었다.

인간의 신경망으로 타워 전체의 전자기 서지를 받아낸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도현은 자신의 떨리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목 뒤의 신경 접속 단자에 손을 얹었다.

지끈거리는 편두통과 함께 척수를 타고 흐르는 기이한 전자기 감각.

동화율 99퍼센트.

과거 가상 넥서스에서 수천만 명의 시청자 데이터와 최상위 레이드 보스의 살인적인 연산 부하를 홀로 받아내며 버텼던 특이 뇌파였다.

"내가 합니다."

도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도현 씨 제정신이에요?!"

윤슬이 도현의 팔을 붙잡으며 경악했다.

"뇌가 타버릴 수도 있다잖아! 네가 죽으면 이 사람들은 누가 깨우는데!"

"내가 안 하면 수민이가 죽습니다. 그리고 저 밖의 3만 2천 명도 영원히 차가운 유리통 속에서 도파민 사료나 먹다가 썩어갈 겁니다."

도현이 윤슬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

"나는 백 년 동안 가짜 100만 명의 박수 속에서 죽어가던 시체였습니다. 나를 깨운 건 바깥의 차가운 흙냄새였고 여러분의 체온이었어요. 이제 내가 빚을 갚을 차례입니다."

도현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윤슬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윤슬은 더 이상 그를 말리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죽기만 해 봐.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멱살 잡을 테니까."

"안 죽습니다. 나 아직 진짜 구독자 100만 명 못 모았거든요."

도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진우를 돌아보았다.

"진우 씨. 내 재킷 주머니에서 비상 접근 키를 꺼내 콘솔 감압 슬롯에 꽂아요. 접지 회로를 열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제발 무사해야 합니다 도현 씨!"

진우가 잔여 전력 8퍼센트의 비상 키를 콘솔 슬롯에 단단히 밀어 넣었다.

치리릭.

콘솔 하부의 구리 접지선이 바닥 배수관을 향해 연결되며 녹색 인광이 번졌다.

도현은 수민의 캡슐 앞으로 다가섰다.

원통형 강화유리 캡슐 양옆에 설치된 생체 전도성 터미널 패드.

도현은 양손의 가죽 장갑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맨손바닥을 차가운 금속 패드 위에 올려놓자 찌릿한 고주파 전류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REMAINING TIME : 21 SECONDS

시간이 없었다.

도현은 강화유리 너머 고요히 잠들어 있는 수민을 응시했다.

"수민아."

도현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수민의 캡슐 스피커로 흘러 들어갔다.

치지직.

그 순간 재킷 안쪽의 무선 통신기에서 맑고 투명한 양철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플랫폼 B-01의 골리앗-04 트랙터 안에서 새벽이가 작은 두 손으로 깡통을 흔들고 있었다.

짤랑. 짤랑.

탁. 탁. 탁탁탁.

백 년 전 라디오 너머로 울려 퍼지던 그 아련하고 따뜻한 소리.

수민이 도현에게 진짜 하늘을 보여달라며 보내왔던 그 영혼의 박동이었다.

"약속 지키러 왔다. 넥서스의 거짓된 꿈은 이제 끝났어. 이제 그만 기계에서 손을 떼고 우리랑 같이 바깥으로 나가자."

도현의 진심 어린 호소가 144.120MHz 주파수를 타고 수민의 신경 단자로 스며들었다.

파르르.

소녀의 긴 속눈썹이 떨리며 감겨 있던 눈꺼풀이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푸른 전자기 유체 속에서 드러난 맑고 투명한 갈색 눈동자.

소녀의 시선이 유리창 너머 서 있는 도현의 얼굴에 닿았다.

소녀의 작은 입술이 물속에서 미약하게 움직였다.

‘……도현…… 오빠…….’

그 찰나 수민이 스스로 척수 뒤편의 신경망 링크를 거두어들였다.

중심 바이오 브리지의 결속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콰지지지지직!

"크으으윽!"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푸른 전류 폭풍이 바이오 패드를 타고 도현의 양팔로 쏟아져 들어왔다!

타워 전체 3만 2천여 개의 캡슐에서 뿜어져 나온 잔류 전자기 서지였다.

도현의 목 뒤 신경 단자가 붉게 타오르며 척추를 따라 맹렬한 고통이 내달렸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고 코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뇌세포 하나하나가 고전압 불꽃에 지져지는 듯한 극심한 작열통.

"도현아!"

윤슬과 한수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도현은 패드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동화율 99퍼센트의 뇌 신경망이 초인적인 반사 작용을 일으키며 쏟아져 들어오는 서지를 갈무리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류를 바닥의 구리 접지 단자로 사납게 쏟아부었다.

파지지직!

푸른 번개가 바닥 배수관을 타고 샤프트 허공으로 방전되며 챔버 전체가 눈부신 백색 섬광으로 뒤덮였다.

툭.

수민의 목 뒤에 꽂혀 있던 수천 가닥의 광섬유 케이블이 힘없이 떨어져 나가며 벽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녀의 뇌파 그래프가 메인프레임의 착취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규칙적인 자율 신경 박동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지가 완전히 소멸했다.

도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입술을 닦아냈다.

온몸의 근육이 경련하고 손바닥이 까맣게 그을렸지만 뇌는 살아 있었다.


콘솔 화면의 붉은 경보창이 일제히 녹색으로 반전되었다.

CENTRAL BIOMETRIC NEURAL BRIDGE DECOUPLED

MASS CAPSULE PURGE : SYSTEM READY

REMAINING TIME : 05 SECONDS

아테나의 시스템 관제 음성이 다급하게 뒤틀렸다.

경고. 비인가 물리적 해제 시도 감지. 최종 신경 소거 펄스 강제 방출 3초 전—

03…… 02……

"지금입니다 도현 씨! 레버를 내려요!"

진우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도현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을린 손으로 콘솔 정중앙의 거대한 붉은 수동 레버를 틀어쥐었다.

그리고 온몸의 체중과 마지막 근력을 실어 바닥 끝까지 사납게 내리눌렀다.

철커어어엉!

육중한 강철 레버가 바닥 스토퍼에 부딪히며 둔탁한 파열음을 냈다.

콘솔 슬롯에 꽂혀 있던 찌그러진 비상 접근 키에서 파지직 소리와 함께 마지막 백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비상 키의 잔여 전력이 순식간에 5퍼센트로 급감하며 콘솔의 주 기계식 회로 브레이커가 일제히 차단되었다.

치이이이이익!

EMERGENCY MASS PURGE PROTOCOL EXECUTED

PHYSICAL RELAY BREAKER TRIPPED

TOWER 01 ALL SECTORS : EMERGENCY NITROGEN VENTING

ALL CAPSULE HYDRAULIC LOCKS DISENGAGED

쿠구구구구구궁!

타워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뿌리부터 요동치기 시작했다.

800미터 수직 샤프트 전체에서 천둥 같은 굉음이 메아리쳤다.

푸슈우우우우우욱—!

타워 외벽과 내벽에 얽혀 있던 수십만 개의 비상 배기 밸브가 일제히 터져 나가며 백색 냉각 질소 가스가 샤프트 중앙 허공으로 폭포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소리.

철컥! 탕! 타다다닥!

마치 수만 정의 소총이 동시에 노리쇠를 전진시키는 듯한 육중한 기계적 연쇄 파열음이었다.

샤프트 원통 내벽을 따라 빽빽하게 박혀 있던 3만 2천419개의 생체 캡슐.

그 모든 캡슐의 두꺼운 유압 도어 락이 사방에서 동시에 해제되었다.

콰아아앙!

수만 개의 투명 강화유리 문이 바깥을 향해 일제히 벌컥 열렸다.

캡슐을 가득 채우고 있던 초록빛과 푸른빛의 생체 보존액이 폭포가 되어 각 층의 점검용 캣워크와 중앙 샤프트 심연으로 쏟아져 내렸다.

가상 넥서스 서버에서는 백 년간 이어지던 거짓된 신기루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화려한 황금빛 궁전도 마법이 난무하던 전장도 억 단위의 가상 코인도 모두 한순간에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자리에 떠오른 것은 단 하나의 붉은 시스템 공지뿐이었다.

FATAL EXCEPTION : PHYSICAL FORCE DISCONNECT

SESSION TERMINATED

RETURNING TO REALITY

그리고 마침내.

백 년 만에 가상 세계의 족쇄에서 풀려난 3만 2천419명의 인간들이 현실의 날것 그대로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쿨럭! 커허억! 컥……!"

"콜록! 쿨럭! 으아아……!"

처음에는 한두 사람의 가냘픈 기침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는 순식간에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숨소리로 번져나갔다.

코와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던 인공 호흡관을 토해내며 백 년 만에 제 힘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 인간들의 거대한 고동.

"하아…… 하악! 커헉!"

샤프트 전체가 3만 2천 명이 동시에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와 오열로 가득 찼다.

아테나의 차가운 기계 무덤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명의 요람으로 뒤바뀌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치이익.

30층 특수 동기화 챔버 중앙의 원통형 캡슐에서도 푸른 유체가 순식간에 배수관으로 빠져나갔다.

강화유리 문이 위로 미끄러져 열렸다.

지지대를 잃은 수민의 작고 여린 몸이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도현이 번개처럼 달려가 쓰러지는 수민의 몸을 품으로 받아냈다.

차가운 보존액에 젖은 소녀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도현은 즉시 자신의 두꺼운 가죽 재킷을 벗어 수민의 젖은 어깨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수민아. 정신이 드니?"

도현의 온기가 닿자 수민의 턱이 덜덜 떨렸다.

소녀는 힘겹게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창백한 뺨.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 끝에 묻어 있었고 거칠게 찢어진 손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가상 세계의 어떤 화려한 그래픽보다도 따뜻하고 맑게 빛나고 있었다.

수민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도현의 거친 뺨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땀방울과 사람의 살갗.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차가운 촉각 햅틱 신호가 아니었다.

피가 돌고 심장이 뛰는 진짜 인간의 생생한 체온이었다.

"진짜……."

수민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작고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진짜…… 도현 오빠네요……."

눈가에 맺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도현의 손등을 적셨다.

도현의 목구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도현은 수민의 작은 손을 꽉 쥐어주며 활짝 미소 지었다.

"그래 수민아. 나야. 진짜 세계에 온 걸 환영한다."

윤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고 한수는 주먹으로 붉어진 눈시울을 훔쳤다.

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스터 콘솔을 확인했다.

"타워 01 전체 32,419개 캡슐…… 전원 물리적 강제 배출 완료됐습니다. 아테나의 네트워크 강제 재접속 프로토콜도 물리 릴레이 단락으로 완전히 차단됐어요!"

캠봇의 화면 위로 백 명 시청자들의 환호와 오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Worker_419 : 해냈다! 도현이가 진짜로 탑을 열어젖혔어!

Sub_Dome_02 : 3만 명이 깨어났다…… 세상에 저게 다 사람 기침 소리야!

Terminal_99 : 울음소리가 들려요…… 탑 전체가 사람 목소리로 뒤덮였습니다!

Node_04_Bunker_3 : 우리가 이겼다! 아테나 이 빌어먹을 기계 놈들아 보고 있냐!

하지만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쿠구구궁!

열려버린 30층 셔터 틈새로 샤프트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비명과 절규가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야! 내 집은? 내 마법은 어디로 간 거야?!"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앞이 안 보여요!"

"추워…… 너무 추워…… 숨이 안 쉬어져!"

"으아아악! 떨어질 것 같아!"

패닉이었다.

백 년 동안 가상 세계의 안락한 꿈속에 갇혀 있던 3만 2천 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영하의 냉기 속으로 내던져진 것이었다.

퇴화한 근육 때문에 다리를 가누지 못하는 수천 명의 인간들이 좁은 캣워크 난간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며 비틀거렸다.

어떤 이들은 질소 안개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800미터 허공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도현아 큰일 났어!"

샤프트 난간으로 달려 나간 윤슬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어! 캣워크 난간이 무너지면 수천 명이 한꺼번에 바닥으로 추락해!"

윤슬의 외침대로 탑 전체가 거대한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캡슐을 연 것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3만 2천 명의 생명을 이 혹독한 현실 속에서 지켜내야 하는 거대하고 처절한 생존전의 시작에 불과했다.

도현은 수민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콘솔 옆 안전한 격벽에 기대어 앉혔다.

"한수 씨. 수민이를 부탁합니다."

"맡겨둬 도현아.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털끝 하나 못 건드린다."

한수가 든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콘솔 벽면에 걸려 있던 타워 전체 비상 관제 마이크를 거칠게 낚아챘다.

그리고 캠봇을 향해 손짓했다.

"캠봇. 전 층 스피커 및 비상 주파수 144.120MHz 전 출력 확성 모드로 전환해."

삐빅!

캠봇이 공중으로 솟구치며 타워 내부의 모든 비상 음향 출력 장치를 강제로 동기화했다.

도현은 입가에 묻은 핏자국을 소매로 닦아냈다.

샤프트 아래에서 올라오는 3만 2천 명의 울부짖음과 차가운 바람이 도현의 머리칼을 거칠게 흩날렸다.

겁에 질릴 법도 한 상황이었지만 도현의 눈빛은 오히려 서늘할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백만 명의 관중이 돌발 상황을 일으켜 통제 불능에 빠졌던 라이브 무대.

그 어떤 돌발 사고 속에서도 마이크를 쥐는 순간 무대를 장악했던 스타 스트리머의 본능이 도현의 심장을 힘차게 두드렸다.

도현이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치이익.

타워 전체 30개 층 800미터 샤프트의 모든 스피커에서 거대한 마이크 접속음이 울려 퍼졌다.

"타워 01의 모든 생존자 여러분."

도현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광기 어린 소음을 가르며 수직 샤프트 전체를 뒤흔들었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진정하고 제 말을 들으십시오."

혼란에 빠져 울부짖던 수만 명의 고개가 일제히 상공을 향해 들려 올라갔다.

3만 2천 명의 생명을 현실로 인도하기 위한 강도현의 진짜 생존 방송이 그 거대한 서막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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