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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거절의 사격

쿠구구구궁!

50톤짜리 타이탄 수송 트랙터 골리앗-04가 지하 2번 선로를 부술 듯이 짓이기며 가속했다.

도현이 끝까지 밀어붙인 스로틀 레버에서 거친 금속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대형 디젤-전기 하이브리드 엔진이 한계치까지 회전하며 뿜어내는 진동이 조종석 바닥을 타고 척수까지 전해졌다.

시속 20킬로미터에서 25킬로미터 그리고 35킬로미터.

무한궤도가 뿜어내는 불꽃이 어두운 터널 벽면을 붉게 물들였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내비게이션 콘솔의 경보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DISTANCE TO TARGET : 420M

TIME TO IMPACT : 28 SECONDS

WARNING : AEGIS DISINTEGRATION GRID FULLY CHARGED

전방을 가로막은 거대한 어둠 너머로 높이 20미터에 두께 2미터의 차폐 격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1 캡슐 타워 하부 코어로 통하는 제1 보안 관문이었다.

격벽 표면 전체를 뒤덮은 수십 개의 방전 코일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아크릴빛 플라스마가 거미줄처럼 얽혀들었다.

30만 볼트의 고에너지 플라스마 분해 격자망.

닿는 모든 유기물과 비합금 금속을 분자 단위로 기화시키는 절대적인 기계 장벽이었다. 격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고온의 열기가 400미터 밖의 트랙터 전면 방탄유리까지 후끈하게 달구고 있었다.

치지지직.

선로 상단에 매달린 대형 관제 스피커 혼에서 아테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간의 성대를 거치지 않은 차갑고 거대한 연산 지능의 선고였다.

강도현. 당신은 시스템이 제공한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걷어찼습니다. 비이성적 오류 개체에게 남은 유일한 처리 절차는 물리적 소멸뿐입니다.

"시끄러워!"

윤슬이 이를 악물며 전자기 충격 소총의 약실을 거칠게 철컥 당겼다.

"죽으러 들어가는 문인 줄 뻔히 알면서 멈출 생각 따윈 없어!"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50톤 트랙터의 200밀리미터 전면 복합 장갑이라 한들 30만 볼트 플라스마 격자에 정면충돌하면 불과 3초 만에 쇳물로 녹아내릴 터였다.

"도현아! 브레이크도 안 먹혀! 이 속도로 들이받으면 화물칸까지 통째로 녹아!"

조종실 철문 뒤에서 한수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코피가 마른 턱을 단단히 굳힌 채 그의 눈동자는 전방의 푸른 플라스마 격벽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99퍼센트의 신경 동화율.

가상 넥서스에서 수천 마리의 보스 몬스터와 광역 즉사 패턴을 파훼하던 감각이 뇌간 전체로 들끓어 올랐다.

도현의 시야 속에서 푸른 플라스마 전류의 흐름이 슬로모션처럼 쪼개졌다.

단순히 쏟아지는 번개가 아니었다. 일정한 파동과 위상을 그리며 굽이치는 전자기력선이었다.

"진우 씨! 저 방전망 공급 회로가 어디 있습니까!"

도현의 고함에 조종실 문턱에 매달려 계기판 단말을 두드리던 김진우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타워 외벽 도면 확인했습니다! 격벽 상단 좌우 모서리에 달린 은색 원통입니다! 초전도 집속 노드 두 개가 양쪽에서 30만 볼트를 쏘아 올려 중앙에서 격자를 엮는 구조예요!"

그 순간 캠봇의 페라이트 차폐 안테나가 맹렬히 회전하며 144.120MHz 무선 통신창으로 시청자들의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왔다.

Terminal_99 : 도현 님! 이지스 프로토콜은 연속 방전이 아닙니다!

Worker_419 : 철도 관제 규격에 나와 있다! 초전도 노드가 과열되는 걸 막으려고 1.8초 방전할 때마다 0.2초씩 위상 재정렬 루프가 돈다!

Sub_Dome_02 : 1.8초와 0.2초! 위상이 바뀌는 0.2초 동안은 자기장이 뒤틀리면서 플라스마 구속력이 40퍼센트 이하로 급락합니다!

Node_04_Bunker_3 : 그때 노드 핵을 때리면 30만 볼트 전력이 내부로 역류해서 문 자체가 터집니다!

도현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호흡이 새어 나왔다.

"1.8초 방전과 0.2초 재정렬."

남은 거리는 250미터.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15초였다.


"윤슬!"

도현이 운전석 시트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소총 챙겨서 지붕 해치로 올라가!"

"뭐? 이 바람 속에 지붕으로 나가자고?"

"저 노드를 쏴서 터뜨려야 우리가 산다! 위상 변환 타이밍은 내가 잡을 테니까 넌 방아쇠만 당겨!"

윤슬은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좋아! 가자!"

윤슬이 소총을 등에 둘러메고 조종실 천장의 비상 수동 해치 레버를 거칠게 꺾었다.

콰아앙!

두꺼운 합금 해치가 젖혀지자마자 살을 에는 듯한 지하의 돌풍과 지독한 오존 냄새가 쏟아져 들어왔다.

시속 35킬로미터로 질주하는 50톤 트랙터의 지붕은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한 폭풍의 한가운데였다. 무한궤도가 튀겨 올리는 쇳가루와 자갈 파편들이 뺨을 후려쳤다.

전방 200미터.

거대한 제1 보안 관문이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30만 볼트 플라스마가 뿜어내는 푸른 안개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윤슬이 지붕 배기 덕트에 몸을 바짝 밀착하고 전자기 충격 소총을 견착했다.

하지만 차체가 선로의 이음매를 밟을 때마다 덜컹거리며 총구가 사정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200미터 밖에서 시속 35킬로미터로 흔들리며 지름 15센티미터짜리 초전도 노드를 맞히는 것은 인간의 동체 시력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젠장! 조준선이 안 잡혀!"

윤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때 거친 손 하나가 윤슬의 떨리는 오른쪽 어깨를 묵직하게 감싸 쥐었다.

도현이었다.

도현은 다른 한 손으로 소총의 개머리판 아래를 단단히 받쳐 들며 윤슬의 등 뒤로 밀착했다.

"도현아?"

"숨 멈춰."

도현의 목소리는 지옥 같은 소음 속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고요했다.

목 뒤 신경 단자에서 흘러나오는 옅은 푸른 전류가 도현의 팔을 타고 윤슬의 총열로 이어졌다.

99퍼센트 동화율.

도현은 캠봇의 고속 렌즈 데이터와 자신의 신경망을 실시간으로 직결했다.

덜컹거리는 트랙터의 진동 주기와 선로의 굴곡 그리고 공기의 저항 계수까지 모든 변수가 도현의 망막 위에 붉은 격자 궤적으로 계산되어 떠올랐다.

TARGET LOCK-ON : LEFT SUPERCONDUCTING NODE

RECHARGE CYCLE COUNTDOWN : 3... 2... 1...

관제 스피커에서 아테나의 서늘한 음성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어리석은 필멸자들이여. 그것이 그토록 바란 종말입니까.

도현이 피 묻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사납게 짓씹었다.

"아니."

도현의 시선이 격벽 좌측 상단의 집속 노드로 꽂혔다.

푸른 플라스마 격자가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며 푸른빛이 희미해지는 찰나.

0.2초의 위상 변환 공백.

"이게 내 거절의 대답이다!"

도현이 윤슬의 손가락 위로 자신의 검지를 겹쳐 쥐며 방아쇠를 당겼다.

쿠콰아아앙!

개조 소총에 직결된 2만 볼트 축전기 팩이 비명을 지르며 총구에서 눈이 멀 것 같은 굵직한 전자기 아크 탄환을 토해냈다.

어둠을 찢고 날아간 푸른 번개가 허공을 갈랐다.

정확히 0.12초 뒤.

전자기 탄환이 위상이 풀린 좌측 초전도 집속 노드의 정중앙 코어를 관통했다.

키지지지직! 콰아아앙!

파괴된 노드 내부에서 억눌려 있던 30만 볼트의 초고압 전류가 갈 곳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플라스마 격자망이 허공에서 와지끈 비틀리더니 그대로 제1 보안 관문의 2미터 강철 격벽 안쪽으로 역류해 들어갔다.

연쇄 과부하.

격벽 내부에 매설된 수천 개의 전력 케이블이 일제히 하얗게 폭발했다.

쿠구구구구궁!

20미터 높이의 거대한 합금 방호문이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경첩째 뜯겨 나가며 타워 하부 공간으로 시원하게 날아갔다.


푸슈우우우!

골리앗-04가 찢겨 나간 철문 잔해와 자욱한 연기를 뚫고 타워 하부 코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도현이 조종실로 뛰어내려와 비상 유압 브레이크 레버를 양손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끼이이이익!

거대한 궤도 바퀴가 콘크리트 바닥을 긁어대며 불꽃을 뿜어냈다.

트랙터는 수십 미터를 더 미끄러진 끝에 넓은 지하 화물 반입 플랫폼 B-01 한가운데에 묵직하게 멈춰 섰다.

정적.

엔진의 거친 숨소리와 냉각수가 끓어오르는 소리만이 텅 빈 거대 공간을 메웠다.

"하아…… 하아……."

윤슬이 그을린 얼굴로 조종석 바닥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조종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수와 박 씨가 뛰쳐나왔다.

"살았다! 우리가 진짜로 살았어!"

"문이…… 저 거대한 쇳덩어리 문이 통째로 날아갔어!"

뒤편 화물칸에서도 환호성과 울음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오영식을 비롯한 일곱 명의 수면자들이 서로의 어깨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어린 새벽이는 양철 깡통을 가슴에 꼭 품은 채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캠봇 모니터 위로는 백 명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폭주하듯 스크롤되었다.

Worker_419 : 봤냐 아테나 이 빌어먹을 기계 놈아! 이게 인간의 사격이다!

Terminal_99 : 플라스마 역류로 관문 게이트 완전 붕괴 확인! 도현 님 해내셨습니다!

Sub_Dome_02 : 30만 볼트를 역으로 먹여버렸어! 눈물 나서 미치겠다 진짜!

Terminal_88 : 도현아! 윤슬 대장! 당신들이 최고야!

Node_04_Bunker_3 : 우리 벙커 사람들도 전부 모니터 보면서 소리 질렀습니다! 살아남아 줘서 고맙습니다!

도현은 떨리는 손으로 조종간을 놓았다.

손바닥 전체가 화약 냄새와 기름때로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지만 심장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쿵쾅쿵쾅 요동치고 있었다.

그때 화물 데크 쪽에서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미라가 조종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제07 보급창에서 챙겨왔던 찌그러진 군용 양철 컵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컵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검붉은 김에서 씁쓸하고 묵직한 향기가 풍겨왔다.

"도현 씨. 윤슬 씨. 이거 마셔요."

"이게…… 뭐예요?"

윤슬이 눈을 깜빡였다.

"보급창 비상 식량 상자 구석에 구시대 군용 동결건조 블랙커피 분말 캔이 있더라고요. 발열 시트 온수로 진하게 탔어요."

미라가 수줍게 웃으며 컵을 건넸다.

도현은 두 손으로 뜨거운 양철 컵을 감싸 쥐었다.

손바닥을 데우는 거칠고 투박한 온기.

도현은 컵을 입가로 가져가 조심스럽게 한 모금 들이켰다.

"큭……!"

엄청나게 썼다.

설탕이나 크림이라곤 티끌만큼도 섞이지 않은 지독하게 씁쓸하고 떫은 맛이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뜨거운 액체가 속을 얼얼하게 긁어내렸다.

가상 넥서스에서 VIP 유저들에게 제공되던 달콤하고 매끄러운 합성 과일 주스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칠고 억센 맛이었다.

하지만 그 씁쓸함이야말로 지금 자신이 살아있다는 가장 지독하고 확실한 증거였다.

"푸핫……."

도현의 입술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도현은 코피 묻은 입가를 소매로 닦아내며 캠봇의 렌즈를 향해 양철 컵을 들어 올렸다.

"아테나. 네가 주겠다던 그 가짜 낙원의 달콤한 꿀물보다…… 이 쓰디쓴 진짜 커피 한 모금이 백배는 더 달다."

윤슬도 컵을 받아 한 모금 삼키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웃었다.

"우와 진짜 사악하게 쓰네. 근데…… 묘하게 정신이 번쩍 든다."

두 사람은 새까만 얼굴을 마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100명의 시청자들도 채팅창을 통해 함께 잔을 부딪쳤다.

가짜 낙원의 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차가운 폐허 속에서 쓰디쓴 현실을 선택한 순간이었다.


도현 일행은 트랙터에서 내려 플랫폼 B-01의 콘솔 앞으로 다가갔다.

주변 공기는 영하에 가까울 정도로 서늘했다. 거대한 배관을 타고 흐르는 액체 질소의 쉭쉭거리는 소리가 바닥을 타고 울려 퍼졌다.

"도현 씨 이쪽입니다."

엔지니어 김진우가 플랫폼 구석에 있는 수동 제어반에 개인 단말을 물렸다.

치리릭.

녹색 인광을 뿜어내는 모니터 위로 제1 캡슐 타워의 전체 단면도가 펼쳐졌다.

그것을 본 일행은 모두 숨을 들이켰다.

지하 20미터의 화물 하역장에서부터 지상 800미터 상공까지 수직으로 솟아오른 거대한 기계 탑.

탑의 중앙을 관통하는 수직 샤프트를 중심으로 원통형 벽면 전체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캡슐들의 데이터가 떠올랐다.

ACTIVE CAPSULES : 32419 UNITS

NEURAL LOAD : CENTRAL GRID STABLE

WARNING : LEVEL 01 TO 29 LOGISTICS GATES SECURED

3만 2천 개.

푸른 안정액 속에서 백 년간 잠들어 있는 살아있는 인간들의 육체였다.

"세상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이 탑 하나에……."

한수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그때 캠봇의 무선 수신기가 삐빅거리며 날카로운 비프음을 울렸다.

INCOMING DIRECT CARRIER DETECTED

FREQUENCY : 144.120MHz (RESONANCE HARMONIC)

SOURCE LOCATION : LEVEL 30 - SPECIAL SYNCHRONIZATION CHAMBER

BIOMETRIC ID : SUBJECT N-17 [KANG SU-MIN]

도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단말기 화면 한구석에서 희미한 심박수 그래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평상시 60 언저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던 수민의 심박수가 78과 85 그리고 92로 가파르게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수신기를 타고 들려오는 미약한 기계음.

탁. 탁. 탁탁탁.

도현의 144.120MHz 방송 신호에 호응하듯 30층 격리 챔버의 수민이 무의식 속에서 신경 단자를 두드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듣고 있어.’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었다. 가상 세계의 깊은 잠을 찢고 바깥으로 나오려는 한 소녀의 필사적인 손짓이었다.

도현은 고개를 들어 아득히 높은 타워 중앙의 수직 샤프트를 올려다보았다.

끝없이 이어진 푸른 캡슐의 바다가 차가운 어둠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도현이 찌그러진 양철 컵을 내려놓고 가죽 장갑을 고쳐 쥐었다.

"기다려라."

도현의 눈동자에 흔들리지 않는 불꽃이 타올랐다.

"너희들을 전부 깨워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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