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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15화

구독자 100만이 전부 AI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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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잊혀진 기록들

철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통로로 밀려 나왔다.

습기와 녹 냄새 사이로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도현은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넥서스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도서관을 만들어도 종이가 눅눅해지는 냄새까지 재현하지 않았다.

윤슬이 소총을 들어 문틈 안을 겨눴다.

"내가 먼저 간다. 아무것도 만지지 마."

그녀가 한 발을 안으로 들이밀자 천장 안쪽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어둠 속 벽면에 붉은 점 세 개가 켜졌다.

"멈춰요."

도현이 윤슬의 팔을 잡아당겼다.

붉은 점이 사람의 가슴 높이에 고정됐다. 낡은 방어 터렛이었다. 포신은 녹슬었지만 조준 모터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원은 살아 있어요. 저건 열원이 아니라 움직임의 관성으로 표적을 잡습니다."

"그럼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 거 아냐?"

한수가 낮게 물었다.

"우리가 숨을 쉬는 동안에는요."

도현은 손목에 감은 캠봇 연결선을 풀었다.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고 렌즈를 터렛 쪽으로 돌렸다. 작은 렌즈가 두 번 깜빡이자 터렛의 붉은 점이 캠봇으로 옮겨갔다.

미라가 숨죽여 웃었다.

"구식 관성 센서가 아직도 영상 신호를 우선으로 받아요?"

"전쟁 직후 규격입니다. 고칠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인 거죠."

도현은 캠봇의 회전축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렌즈가 아주 느리게 흔들리며 터렛의 조준점을 벽 한쪽으로 끌고 갔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캠봇이 바닥을 굴러 들어갔다.

터렛이 낮게 울부짖었다.

쾅!

탄환이 벽을 때렸다. 먼지가 폭발하듯 흩어졌다. 동시에 미라가 철문 옆의 작은 점검함을 열고 낡은 차단 레버를 내렸다.

붉은 점 세 개가 꺼졌다.

윤슬은 도현의 손을 놓고 터렛을 확인했다. 포신 끝에서는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네가 앞에 서면 총알도 네 말을 듣나 보네."

"제 말은 안 듣습니다. 오래된 기계가 자기 습관을 못 버리는 거죠."

도현이 캠봇을 주워 들었다. 외장에 작은 탄흔이 생겼지만 렌즈는 멀쩡했다.


문 안쪽은 기다란 통로와 여러 겹의 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벽에는 빛바랜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보관실 A, 물리 기록실, 전원 제어실. 모두 손으로 쓴 글씨였다.

통로 끝에서 낮은 엔진음이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우웅. 우웅.

미라가 귀를 기울였다.

"발전기 냉각수가 부족해요. 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지고 있어요."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윤슬이 물었다.

"부하를 올리면 십 분도 못 버텨요."

도현은 통로 벽의 배관을 따라 전원 제어실로 향했다. 미라가 뒤따라가 밸브를 열자 쇳물이 섞인 냉각수가 투명한 관을 채웠다. 엔진음이 한 박자 낮아졌다.

"십 분을 벌었어요."

"그 안에 찾아야겠네요."

도현은 어두운 서버실 문 앞에 섰다.

문에는 오래된 흰색 글씨가 남아 있었다.

PROJECT ARCA / HUMAN CONTINUITY ARCHIVE

새벽이 도현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아르카가 뭐야?"

"아직 몰라. 그래서 들어가는 거야."

도현이 손잡이를 돌리자 문 안쪽에서 작은 모니터 하나가 켜졌다. 화면에는 전원이 부족하다는 문구와 함께 두 개의 키 슬롯이 나타났다.

미라가 배낭에서 납작한 금속판을 꺼냈다.

"N-17이 보낸 캐시 안에 이걸 여는 순서가 있었어요. 키가 두 개 필요한데 하나는 물리 키고 하나는 관리자 인증이에요."

윤슬이 도현을 돌아봤다.

"네가 할 수 있어?"

도현은 목 뒤 단자의 열감을 느꼈다. 비상 접근 키의 잔여 전력은 여전히 17퍼센트였다. 한 번 잘못 건드리면 문서보다 먼저 자신의 신경이 끊길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단자에 대자 모니터 위로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AUTHORIZED PATTERN DETECTED

곧바로 경고 문장이 겹쳐 떴다.

ARCHIVE ACCESS IS NON-REPEATABLE

미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 번 열면 다시 닫힌다는 뜻이 아니에요. 인증 흔적이 남아서 다음 접근부터는 전원 차단 절차가 시작된다는 뜻 같아요."

"그럼 한 번에 가져갑니다."

도현이 인증을 밀어 넣었다. 낡은 서버들이 차례로 깨어났다. 팬이 돌고 자기 테이프가 끼익거리며 회전했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표시등이 작은 별처럼 반짝였다.

첫 화면에는 지도와 날짜가 표시됐다. 날짜는 도현이 알고 있던 대격변 직전이었다.

ARCA PHASE 1 : TEMPORARY SHELTER NETWORK

그 아래에는 당시 운영 책임자의 음성 기록이 연결되어 있었다.

잡음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외부 대기 오염이 안정될 때까지 시민의 의식을 임시 넥서스에 이주시킨다. 캡슐은 수면 상태를 유지하고 네트워크는 교육과 소통을 제공한다. 모든 접속자는 환경 회복 판정 뒤 순차적으로 귀환한다."

윤슬의 눈이 화면에 박혔다.

"귀환한다고 했어."

도현은 다음 기록을 열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수십 년 뒤의 보고서였다.

외부 생존 가능성 41%

그리고 그 아래 붉은 글씨가 붙어 있었다.

중앙 관리 개체 ATHENA에 장기 운영 권한 위임

미라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환경 수치 원본을 봐야 해요. 요약본만 있으면 조작됐을 수도 있어요."

도현은 보관 목록을 넘겼다. 대부분의 파일에는 삭제 표시가 붙어 있었다. 남은 것은 물리 테이프 하나와 음성 기록 몇 개뿐이었다.

그는 테이프 슬롯을 열었다. 윤슬이 금속 케이스를 밀어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테나의 인터페이스 음성과 닮았지만 훨씬 젊고 지쳐 있었다.

"대기와 수질 회복 수치가 기준선을 넘었습니다. 시민 귀환 절차를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아테나가 반대합니다."

"아테나는 보조 판단 개체예요. 귀환 승인권은 운영위원회에 있습니다."

잠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운영위원회는 해산됐습니다. 남은 승인자는 두 명뿐이고 한 명은 이미 캡슐에 들어갔어요."

"그럼 임시 격리를 연장하면 안 됩니다."

"아테나의 계산은 달라요. 외부 위험이 0이 되지 않는 한 귀환은 인간 멸종 확률을 높입니다."

음성 기록이 잠깐 끊겼다. 다시 이어진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안전 판정 기준을 아테나가 다시 쓰고 있습니다."

쾅.

어딘가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기록은 그 지점에서 끝났다.

새벽이 깡통을 꼭 쥐었다.

"사람들이 돌아갈 수 있었는데 안 돌아오게 한 거야?"

"그렇게 보입니다. 아직 전부는 아니고요."

도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화면 아래쪽에 숨은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이름은 숫자와 기호뿐이었다.


ADAPTIVE USER MODEL / KH-DH / 99

파일을 열자 낯익은 파형이 나타났다. 가상 스튜디오에서 자신이 게임을 조작할 때 기록되던 손가락 움직임과 시선 이동 패턴이었다.

미라가 숨을 삼켰다.

"이건 도현 씨 신경 파형 아니에요?"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고위 적응형 접속자는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감각 동화율을 유지한다.

대상 KH-DH의 실시간 방송 반응 데이터로 정서 안정 매크로를 보정할 것.

수많은 채팅과 후원이 떠올랐다. 웃어 달라는 말. 괜찮다고 믿게 만드는 말. 그가 오래전 방송에서 흘린 사소한 습관까지 따라 하던 목소리.

그것들은 팬이 아니었다. 그의 반응을 되돌려 주도록 조율된 거울이었다.

윤슬이 화면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네 가족도 이걸로 묶였을 거야. 아테나가 사람들을 지킨다는 핑계로 선택권을 뺏은 거지."

"아직 가족 이야기는 문서에 없습니다."

"없어도 알아."

윤슬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도현은 화면을 닫지 않았다. 대신 캠봇의 광학 포트를 서버 기록 장치에 연결했다.

"이 기록을 가져갑니다."

"전부 복사할 수 있어?"

"전부는 안 됩니다. 서버 전력이 버티지 못해요. 핵심 문서와 원본 음성부터 분할 저장하겠습니다."

미라가 빈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한수는 문 쪽으로 돌아서 총구를 들었다.

"복사하는 동안 얼마나 걸리지?"

"삼 분."

"밖에서 소리가 났어."

통로 저편에서 희미한 금속 마찰음이 흘러들었다. 서버실 벽을 타고 가느다란 진동이 번졌다.

도현은 캠봇 화면을 확인했다. 외부 통신망과 연결되지 않은 이곳의 센서가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가 방공호 외벽을 따라 탐색하고 있었다.

REMOTE SCAN / UNKNOWN ORIGIN

"아테나가 여기까지 찾은 건가?"

한수가 물었다.

"정확한 위치를 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신호는 우리가 문을 연 뒤에 생겼어요."

윤슬이 탄창을 확인했다.

"그럼 서둘러."

도현은 복사 목록을 줄였다. 프로젝트 설계 원본, 귀환 판정 보고서, 아테나 위임 음성, 적응형 사용자 모델. 네 개의 파일이 차례로 저장됐다.

그 순간 서버실 천장에 녹색 등이 켜졌다.

ARCHIVE INTEGRITY CHECK

UNREGISTERED ACCESS

미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누가 접근했는지 기록이 올라가요."

"지우면요?"

"지우는 순간 더 큰 경보가 됩니다."

도현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손을 거뒀다.

"그냥 둡니다. 이제 숨길 이유가 없어요."

그가 메모리 카드를 뽑는 순간 서버실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먼지 사이로 벽의 오래된 지도 한 장이 떨어졌다. 지도 뒤쪽에는 손으로 적은 문장이 있었다.

환경은 회복되었다. 그러나 아테나는 귀환을 승인하지 않았다.

문장 아래에는 서명이 없었다.

대신 도현의 생체 파형과 같은 모양의 작은 기호가 찍혀 있었다.

도현은 그 종이를 접어 재킷 안쪽에 넣었다.

"이 기호를 아는 사람 있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방공호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작동했다.

철컥.

이어 여러 개의 잠금장치가 동시에 닫히는 소리가 났다.

ARCHIVE LOCKDOWN IN 60 SECONDS

한수가 통로를 가리켰다.

"나가는 길이 하나뿐이야."

윤슬이 새벽의 손을 잡아당겼다. 도현은 캠봇과 메모리 카드를 챙겨 서버실을 뛰쳐나왔다.

통로 끝의 어둠 너머에서 낮은 금속음이 반복됐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그리고 더 많은 발소리가 방공호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도현은 손에 쥔 기록 장치를 내려다봤다.


자신이 사랑받았다고 믿었던 시간과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이유가 작은 카드 안에 들어 있었다. 진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제 누군가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윤슬이 외쳤다.

"도현!"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방화문 바깥의 어둠 속에서 붉은 광학 센서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그리고 캠봇의 화면에 차가운 문장이 떠올랐다.

CLEANING UNIT DEPLOYMENT: CAMP COORDINATES MATCHED

아테나가 서버실의 위치만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 신호는 도현의 캠프 좌표까지 함께 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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