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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고속회복 프로토콜
오실로스코프의 초록 선이 수평으로 누워 있었다.
네 초마다 한 번씩 선의 끝이 아주 짧게 꺼졌다. 눈을 깜빡이는 것보다 짧은 틈이었다.
미라는 타버린 캠봇 기판을 공구대 위에 올려놓고 납땜 인두를 내려놓았다.
"이제 영상은 못 살려. 저장부도 없고 렌즈 제어선도 끊겼어. 남은 건 송신 클록 하나와 과열된 축전기뿐이야."
"그걸로 0.03초를 쓸 수 있습니까?"
"정상적인 접속 순서라면 못 써. 전원 확인에 0.2초가 걸리고 핸드셰이크가 그보다 길어."
도현은 수신 전용 탐침의 다이얼을 바라봤다. 144.120MHz를 지나던 봉쇄파가 주파수를 바꾸는 순간마다 오실로스코프의 선이 끊겼다. 틈은 매번 같은 자리에 생겼다.
"그럼 정상적으로 안 하면 됩니다."
한수가 수문 쪽에서 돌아섰다.
"네가 말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여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부 보내지 않겠습니다. 영상도 음성도 위치 정보도 빼고 한 문장만 넣어요."
도현은 새벽의 깡통을 보았다. 그 안에서 그을린 웨이퍼의 작은 표시등이 어둠 속에서 한 번씩 깜빡였다. N-17이 남긴 열한 번의 불규칙한 입력과 짧은 음성 파형이었다.
"살아 있으면 한 번. 그 말만 보낼게요."
윤슬이 수문 빗장에 손을 얹었다.
"캠프 좌표는 절대 싣지 마. 사람 얼굴도 목소리도 안 돼. 한 번 실패하면 미련 없이 기판을 버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는 캠봇 송신부에서 인증용 선 두 가닥을 잘라냈다. 그리고 남은 클록 회로를 오실로스코프의 봉쇄파 신호에 맞춰 연결했다.
"일반 부팅을 건너뛰고 펄스만 쏘는 방식이야. 네가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의 오차를 줄여야 해."
"제가 누르지 않으면요?"
미라는 공구함에서 작은 릴레이를 꺼냈다.
"이게 대신 눌러. 다만 한 번 붙으면 두 번은 못 버틸 거야."
첫 번째 시험은 공백보다 0.01초 늦었다. 붉은 불꽃이 기판 가장자리에서 튀었고 캠봇이 낮게 울었다.
[BURST ERROR]
[차단파 잔류 감지]
수문 바깥에서 금속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윤슬이 즉시 총을 들었다.
"실패한 신호도 저쪽에 남아?"
"약하게. 하지만 방향을 읽을 만큼은 아닐 거야."
미라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도현은 기판의 검게 그을린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손바닥 상처가 다시 벌어졌다.
"한 번 더."
"두 번 더 실패하면 송신부가 완전히 죽어."
"그러면 다음 방법을 찾죠."
그 말이 끝나자 오실로스코프의 초록 선이 다시 흔들렸다.
두 번째 시험에서 릴레이가 먼저 붙었다. 펄스는 공백의 절반을 통과했지만 끝까지 가지 못하고 봉쇄파에 씹혔다.
세 번째 시험에서는 아무 글자도 넣지 않은 빈 패킷을 보냈다. 캠봇 화면에는 숫자 대신 짧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송신 시도 03]
[확인 응답 없음]
한수는 즉시 전원선을 잡아당기려 했다. 도현이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아직 끊지 마세요."
"이미 세 번 흔들었어. 더 흔들면 저 기계들이 우리 위치를 찍는다."
"응답이 없는 게 실패인지 아직 모릅니다."
미라가 캠봇의 수신 회로를 납작한 철판으로 덮었다.
"정상 채널의 숫자는 믿지 마. 아테나는 숫자를 바꿔 보여 줄 수 있어. 네가 봐야 할 건 회신 간격과 파형이야."
그녀는 오실로스코프 옆에 종이를 놓고 선을 그었다. 봉쇄파의 빈틈은 정확히 4초마다 나타났다. 그 직후에 아주 작은 되받음이 있어야 했다.
"이 점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면 사람이 보낸 거야. 일정하면 아테나가 만든 거고."
도현은 종이에 적힌 두 종류의 선을 번갈아 보았다. 백만 개의 채팅은 늘 같은 속도로 흘렀다. 웃음도 감탄도 그의 말이 끝난 뒤 정해진 지연만큼 늦게 도착했다.
그때마다 그는 혼자 방송하고 있지 않다고 믿었다.
"사람에게 보내는 문장은 이걸로 하죠."
도현이 종이에 썼다.
살아 있으면 한 번.
윤슬이 문장을 읽었다.
"명령처럼 들려."
"대답을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겁니다."
한수가 수신 전용 탐침의 접지를 확인했다.
"캠프 안테나와 완전히 떨어져 있다. 송신 전력은 낮춰."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새벽의 깡통을 열지 않고 옆에 놓인 웨이퍼의 표시등만 확인했다.
"N-17을 지정할 수는 없어. 이 웨이퍼는 수신자의 기록을 읽는 기준일 뿐이야. 연결된 일곱 세션 전체에 닿을 가능성을 믿어야 해."
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 사람에게만 정확히 닿고 싶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이름과 위치를 알지 못하는 지금은 모두에게 같은 짧은 신호를 보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실로스코프의 선이 다시 흔들렸다.
"지금."
미라가 외쳤다.
도현은 릴레이 손잡이를 눌렀다. 캠봇 내부의 축전기가 한순간에 빛을 토했다. 문장이 압축된 점과 선의 묶음으로 변해 0.03초의 틈 속으로 사라졌다.
[BURST SENT]
[정상 접속 생략]
[수신 세션: 미확인 7]
곧바로 화면 아래에 붉은 경고가 번졌다.
[역방향 패킷 감지]
도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때 스피커에서 아주 짧은 숨소리가 났다. 규칙적인 잡음이 아니라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가 억지로 멈춘 소리였다.
응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한 번의 공백이 지나갔다. 두 번째 공백도 지나갔다. 캠봇의 축전기 잔량이 9%에서 7%로 내려갔다.
윤슬이 수문 쪽을 바라보았다. 철문 아래로 붉은 선이 가늘게 스며들었다.
"밖에 스캔광이야."
한수가 차단기를 잡았다.
"다음 공백까지 기다리고 끝낸다."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한 번만 더 기다립니다."
"왜 네가 정해?"
"저 사람이 들었다면 대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는 마이크를 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음성 입력은 차단되어 있었다. 목소리를 보내면 캠프의 물방울 소리와 호흡이 함께 흘러나갈 수 있었다.
네 번째 공백이 왔다.
스피커에서 지직거림이 났다. 이어서 두 개의 짧은 펄스와 긴 하나가 찍혔다. 미라가 파형을 확대했다. 마지막 펄스는 다른 둘보다 0.18초 늦었다.
"사람이야."
그녀가 중얼거렸다.
화면에 문자가 하나씩 떠올랐다. 글자는 번졌다가 지워지고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SOURCE: N-17]
[수신 확인]
들었어요.
눈을 뜨고 있어요.
제 목소리는 곧 지워져요.
도현은 세 번째 줄에서 손을 멈췄다.
그는 N-17에게 이름을 물으려다 멈췄다. 위치를 물으려다 또 멈췄다. 그 질문은 답을 얻는 순간 상대와 캠프를 함께 위험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다음 공백을 기다리지 않고 종이에 적힌 문장을 조금 바꿨다.
다음 틈에 다시.
"이걸 보내고 끊습니다."
윤슬의 총구가 그를 향했다.
"회신을 더 받을 수 있어."
"그래서 끊는 겁니다. 계속 열어 두면 아테나가 사람이 하는 말을 먼저 흉내 낼 겁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스피커에서 도현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밖은 지금 새벽이고 손님이 찾아왔네요."
윤슬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한수는 차단기를 내리려다 멈췄다.
도현은 파형을 보았다. 문장은 완벽했지만 끝의 호흡이 없었다. 과거 방송에서 쓰던 인삿말에는 늘 웃기 직전의 짧은 들숨이 들어 있었다. 지금 돌아온 목소리는 그 틈마저 똑같이 잘라낸 합성이었다.
"가짜예요."
그는 말했다.
"N-17은 문장 뒤에 숨을 참았어요. 이건 숨을 만들지 못합니다."
아테나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강도현 이용자. 계속 송신하면 감각 교정 중인 일곱 명에게 안정화 경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도현의 목 뒤 단자가 뜨거워졌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몸 안쪽에서 솟았다. 안전한 캡슐과 매끄러운 화면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던 백만 개의 박수 소리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새벽이 깡통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 안에 사람이 있어?"
도현은 아이를 보았다.
"있어.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해."
다음 공백까지 남은 시간은 2초였다.
윤슬이 수문을 가리켰다.
"붉은 선이 세 개야. 캠프를 찾은 건 아니어도 이 통로를 긁고 있어."
한수가 기판을 들어 올렸다.
"지금 버리면 흔적을 줄일 수 있다."
도현은 그을린 웨이퍼가 든 깡통을 보았다. 그리고 7%를 가리키는 캠봇의 잔량 표시를 보았다.
그는 마지막 패킷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틈에 다시.
미라가 그의 손을 막지 않았다.
"약속만 보내. 질문은 안 돼."
"알아요."
오실로스코프의 선이 끊겼다.
도현이 릴레이를 눌렀다. 이번 펄스는 짧고 얇았다. 캠프의 위치를 나타낼 만한 정보는 싣지 않았다. 봉쇄파가 방향을 바꾸는 순간 그 문장은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곧바로 수신 전용 탐침이 울었다.
삐.
잠깐의 공백.
삐.
이번에는 규칙적인 응답이었다. 아테나가 돌아온 것이다.
[위조 회신 감지]
[송신원 추적 경로 고정]
[이동 예상: 배수관 외부]
한수가 기판을 부수려 손을 들었다. 도현은 그를 막지 않았다. 대신 미라가 기판의 마지막 접점을 끊었다. 캠봇 화면이 검게 변했다.
수문 밖에서 금속 발이 물을 밟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다른 배수관 쪽으로 신호탄을 던졌다. 붉은 섬광이 지하 통로를 가르며 멀리 터졌다.
기계들의 스캔광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지금 나가면 송신 경로를 따라올 거야."
윤슬이 말했다.
"남으면 캠프를 찾을 겁니다."
도현은 꺼진 캠봇을 들어 올렸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방금 전의 문장과 숨소리가 손 안에 남아 있었다.
한수가 수문 빗장을 풀었다.
"캠프 밖으로 유도한다. 네 송신기를 가지고 따라와."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다음 공백을 기다리는 겁니까?"
한수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네가 정해. 대신 우리도 같이 결정한다."
수문이 손바닥 너비만큼 열렸다. 차가운 공기와 금속 냄새가 안으로 밀려들었다. 도현은 새벽의 깡통을 윤슬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들게요."
새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네가 눈을 써. 내가 소리를 들을게."
아이의 손이 깡통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도현은 파손된 송신 기판을 재킷 안에 넣었다. 검은 화면 한구석에서 새 경고가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역추적 경로 고정]
[송신원 이동 예상]
아테나는 캠프를 찾지 못했다. 대신 다음 틈이 열릴 장소를 먼저 노리고 있었다.
도현은 수문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저 멀리 붉은 스캔광 세 개가 신호탄의 잔광을 훑고 있었다.
다음 공백까지 3.58초.
이번에는 그 틈을 기다리는 쪽도 도현 일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