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하나로 천하를 쥐락펴락

1화: 붉은 재와 첫 번째 현
귀를 찢을 듯 울리던 앰프의 하울링이 일순간에 끊어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차가운 아스팔트의 냄새가 아니었다. 목구멍을 짓누르는 매캐한 그을음과 코끝을 찌르는 역한 피비린내였다.
“커헉……!”
서하진은 거친 기침을 터뜨리며 바닥을 짚었다. 바닥에 닿은 손바닥 사이로 검붉은 핏덩이가 왈칵 쏟아져 내렸다.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살을 파고드는 지독한 한기가 치밀어 올랐다. 얼어붙은 쇳조각을 통째로 삼킨 것처럼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날카로운 칼날에 난도질당하는 격통이 번졌다.
‘뭐야…… 이게 대체 무슨 꼴이지?’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홍대 골목의 서늘한 밤공기 속에 서 있었다. 낡은 일렉트릭 기타의 볼륨 노브를 끝까지 올리고 마지막 앙코르곡의 강렬한 스트로크를 내리치던 순간이었다. 공간 전체를 짓누르던 정체불명의 저음이 귓전을 강타했고 그대로 시야가 암전되었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런데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완전히 달랐다.
익숙한 보도블록이 아니라 바스러진 기와 조각과 시뻘겋게 타오르는 숯덩이였다. 떨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길쭉한 손가락은 낯익었지만 그 위를 덮은 소매는 가죽 재킷이 아니었다. 피와 재로 엉망이 된 헐렁한 회색 삼베 도포였다.
“쿨럭, 컥!”
하진은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붉게 타오르는 화염의 생지옥이었다. 거대한 목조 전각의 들보가 굉음을 내며 부러져 내리고 있었다. 사방에 널브러진 것은 무너진 잔해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한 옷을 입은 수십 구의 시신들이 피웅덩이 속에 식어가고 있었다.
‘꿈이 아니야. 진짜 살점이고 피잖아.’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냉기는 단순한 타박상이나 외상이 아니었다. 독이었다. 뼈마디를 갉아먹는 차가운 독기가 심장 쪽으로 서서히 기어오르고 있었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소년은 이미 이 지독한 독에 당해 숨을 거두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하진의 손끝에 묵직하고 차가운 목재가 닿았다.
칠흑처럼 검은 오동나무로 깎아 만든 악기였다. 표면에는 거친 칼자국과 불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기묘할 정도로 서늘한 광택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섯 개의 명주실이 팽팽하게 얹힌 흑목 거문고였다.
하진의 손바닥이 목판에 닿자마자 손끝을 타고 찌릿한 진동이 흘러들어왔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맥박처럼 웅웅거리며 울리는 규칙적인 떨림이었다.
동시에 기이한 감각이 하진의 귓가를 흔들었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불길의 소리가 단순한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불꽃이 공기를 집어삼키는 파열음이 주황색의 거친 진동 파형으로 눈앞에 일렁였다. 무너지는 기와 소리는 둔탁한 회색의 압력으로 귓바퀴를 때렸다.
‘소리가…… 결을 타고 눈에 보여?’
소리의 파동이 압력과 색채를 띤 채 전신의 감각을 두드리고 있었다. 밴드 생활을 하며 믹싱 콘솔과 이펙터 앞에서 수천 시간을 보냈던 그조차 경험해 본 적 없는 비정상적인 청각이었다.
하지만 기이한 감각에 빠져 있을 여유는 없었다.
와장창!
깨진 기와를 짓밟는 무거운 발소리가 연무당 입구의 자욱한 연막을 가르고 다가왔다.
“샅샅이 뒤져라. 사부 놈은 놓쳤으나 중독된 잔당들은 멀리 가지 못했을 터다.”
낮게 깔린 음산한 목소리가 불길 너머에서 울렸다.
하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반쯤 무너진 채 검게 그을린 굵은 기둥 뒤로 거문고를 끌어당기며 숨을 죽였다.
“연적운이 남긴 신물은 찾았는가?”
“연무당 안쪽을 살피는 중입니다. 그 노괴가 마지막 제자 놈에게 넘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흔적도 남기지 마라. 숨이 붙은 놈은 모조리 목을 베고 현월을 수거한다.”
사박, 사박.
검은 야행복을 입고 얼굴을 가린 두 명의 괴한이 칼을 비껴 쥔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내딛는 걸음마다 바닥의 잿가루가 희뿌옇게 피어올랐다.
하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타고 흘렀다.
‘현월? 연적운? 문파 멸문……?’
머릿속에서 낯선 단어들이 쪼개진 파편처럼 맴돌았다. 앞뒤 맥락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였다. 저들은 이곳에 있는 모든 숨결을 끊어버리고 이 검은 거문고를 빼앗으러 온 살인귀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괴한 중 한 명이 하진이 숨어 있는 기둥 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틀었다.
스릉.
칼집에서 뽑혀 나온 강철 도검이 붉은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번뜩였다.
“이쪽에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 있군.”
괴한의 눈이 기둥 틈새로 삐져나온 하진의 회색 옷자락을 포착했다.
하진은 이를 악물었다. 온몸의 혈관을 죄어오는 독기 탓에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칼을 쥐고 맞서 싸울 기운도 없었고 밖으로 도망칠 체력도 바닥난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몇 초 뒤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젠장, 이렇게 허무하게 끝난다고? 간신히 눈을 떴는데?’
괴한이 기둥을 돌아 나오며 거침없이 칼을 치켜들었다. 눈가에 비릿한 살의가 맺혔다.
“운 좋게 독을 버텼나 보지만 여기까지다. 현금악문의 마지막 명줄도 오늘로 끝이다!”
번쩍이는 칼날이 하진의 정수리를 향해 사정없이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던 하진의 손이 바닥에 놓인 검은 거문고 현월의 몸체로 내리꽂혔다.
그의 손가락은 무협의 정통 음공법이나 궁중 악사의 단아한 술대 쥐기 따위는 알지 못했다. 대신 지난 십여 년간 어두운 지하 합주실과 길거리에서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를 쥐어뜯으며 단련된 거친 손놀림이 본능을 지배했다.
하진은 손가락 끝을 거문고의 가장 굵은 줄, 대현(大絃)의 밑바닥에 깊숙이 걸었다.
기타 줄을 강하게 뜯어 튕기는 록의 슬랩 주법.
줄을 당기는 순간 하진의 청각에 괴한이 내뿜는 거친 숨결과 도검의 파공음이 불협화음의 주파수로 정확히 꽂혀 들어왔다.
‘맞물려 있어. 놈의 호흡이 아래로 떨어지는 바로 그 박자!’
하진은 망설이지 않고 엄지와 검지에 남은 모든 악력을 실어 줄을 허공으로 팽팽하게 튕겨 올렸다.
콰아아앙—!
단 한 줄의 명주실에서 뿜어져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터졌다.
그것은 우아한 정악의 가락이 아니었다. 거대한 앰프에 오버드라이브를 최대로 걸고 베이스를 바닥에 내리꽂을 때 터져 나오는 날카롭고 왜곡된 파열음이었다.
검은 거문고의 울림통에서 시작된 충격파가 허공의 연기를 원형으로 찢어발기며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크아악?!”
내리치던 칼날이 허공에서 거짓말처럼 뚝 멈췄다.
괴한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양쪽 귓구멍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하진이 터뜨린 거친 불협의 파동이 괴한의 몸속 기혈을 정면으로 역류시키며 뇌수를 뒤흔든 것이었다.
괴한은 눈과 코에서도 피를 쏟아내며 손에 쥐었던 칼을 떨어뜨렸다.
“이, 이 요망한 소리가…… 커헉!”
우지끈!
음파의 여파가 천장을 떠받치던 굵은 대들보의 균열을 강타했다. 타오르던 거대한 목재가 불꽃을 뿜으며 무너져 내렸고 그대로 바닥에서 버둥거리던 괴한의 상체를 덮쳤다.
쿠콰콰쾅!
화염과 먼지 구름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콜록, 쿨럭……!”
하진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거문고 줄을 튕겨낸 순간 그 강력한 반동이 고스란히 자신의 팔과 가슴팍으로 되돌아왔다. 뼛속에 깃들어 있던 차가운 독기가 요동치며 식도를 시뻘겋게 태웠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격렬한 충격 덕분에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한 독의 울혈이 일시적으로 터져 나가며 숨통이 트였다.
‘지금이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
바깥에서 다른 괴한들의 다급한 고함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냐!”
“연무당 안쪽이다! 당장 진입해라!”
하진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거칠게 닦아냈다.
바닥에 쓰러진 거문고 현월을 단단히 붙잡았다. 옻칠된 흑목의 표면은 여전히 미세하게 진동하며 그의 손바닥에 알싸한 열기를 전하고 있었다.
도포 자락을 찢어 거문고를 등 뒤에 단단히 둘러멨다. 묵직한 무게가 등줄기를 짓눌렀지만 악기를 버릴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이 지옥 같은 화염 속에서 자신을 지켜준 유일한 무기이자 구명줄이었다.
하진은 무너진 전각 뒤편의 깨진 벽 틈으로 몸을 던졌다.
싸늘한 밤공기와 함께 세찬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타오르는 불길을 뒤로한 채 하진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대나무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둑.
빗방울이 거문고의 줄과 대나무 잎사귀를 두드리는 소리가 숲 전체에 낮게 깔렸다.
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깊은 바위 절벽 틈새로 몸을 숨겼다.
다리가 풀리며 진흙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온몸은 긁힌 상처투성이였고 입술은 독기로 인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등 뒤에서 내려놓은 거문고를 조심스레 무릎 위에 얹었다.
손가락 끝을 살며시 줄 위에 얹자 어둠 속에서 거문고가 희미한 잔향을 웅웅거리며 토해냈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심장처럼 그의 불규칙한 맥박에 호응하듯 떨리는 소리였다.
하진은 타오르는 문파의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은 바뀌었고 자신의 손에는 낯선 악기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하진은 굳은살 박인 손가락으로 거문고의 줄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새로운 무대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