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등대지기와 길 잃은 별

1화: 사람 목소리로 부른 별
해명포 사람들은 눈보라가 오기 전에 빨래를 걷었다. 등대지기 정도하는 그보다 먼저 렌즈를 돌렸다. 유리판 한 장이 얼면 불빛이 바다에 닿지 않았다. 그는 젖은 장갑을 벗고 회전축에 윤활유를 발랐다.
“오늘은 별이 떨어질 것 같아.”
견습 윤미주가 붉은 귀마개를 눌러 쓰며 말했다. “별은 날씨 예보에 없잖아요.”
“예보에는 없으니까 내가 말한 거야.”
“그럼 틀려도 책임 안 지겠다는 거네요.”
“별은 내려오기 전에 바람부터 바꿔.”
미주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도 별이 바람을 바꾼다고 말했었다. 그 배가 돌아오지 않은 겨울부터, 미주는 등대에 올라올 때마다 바다를 눈으로 훑었다. 도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선박 이름을 먼저 묻지 않았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없는 배 이름을 계속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바람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급격히 꺾였다. 등대 유리가 진동하고, 아래 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끊겼다. 도하는 쌍안경을 들었다. 수평선 가까이에 불빛 하나가 떠 있었다. 배의 등불이라면 흔들릴 텐데, 그 빛은 파도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저게 별이에요?”
미주가 난간에 몸을 기댔다.
“바다로 떨어지고 있어.”
도하는 등대 아래 창고에서 구조 밧줄과 썰매를 꺼냈다. 미주가 장갑을 끼며 따라왔다. “제가 갈게요.”
“넌 등대에서 렌즈를 돌려.”
“물길을 읽는 건 제가 더 잘해요.”
“오늘 파도는 얼음 아래서 부서져. 발목이 잡히면 못 나와.”
“그럼 혼자 들어가면 안 되죠.”
“그래서 네가 렌즈를 돌리는 거야. 내가 돌아올 길을 비춰 줘.”
미주는 반박을 삼켰지만, 작은 매듭 끈을 도하의 손목에 묶었다. “제가 당기면 돌아오세요. 두 번 당기면 얼음이 갈라진 거예요.”
“세 번은?”
“제가 포기한 거니까 혼자 알아서 나오세요.”
“알겠어.”
도하는 바위길을 내려갔다. 해안에는 얼음이 얇게 덮여 있었다. 별빛은 파도 사이로 새어 나와 눈을 아프게 했다. 그는 밧줄 끝을 허리에 묶고 얼음 위에 몸을 낮췄다. 바닷물에 별의 푸른 꼬리가 닿을 때마다 불빛이 한 줌씩 약해졌다.
“등대지기.”
목소리는 파도 아래서 올라왔다.
도하는 멈췄다. “누구야?”
“이름을 불러 줘.”
“먼저 네 이름을 말해.”
“라라.”
빛 안쪽에 작고 둥근 몸이 보였다. 별은 손바닥보다 조금 컸고, 가장자리는 얇은 얼음처럼 깨져 있었다. 주위 물이 끓는 듯 김을 올렸다. 라라의 목소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지만, 도하의 어머니가 잠든 아이를 부르던 호흡과 닮아 있었다.
“어떻게 해야 올라올 수 있지?”
“빛을 돌려 줘. 나는 하늘이 어디인지 잊었어.”
도하는 밧줄을 풀어 별을 감싸려 했다. 빛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졌다. 별은 옮겨 담을 물건이 아니었다. 그는 구조망을 펼쳤지만 금속 테두리가 닿자 별이 안쪽으로 움츠러들었다.
“망은 싫어.”
“그럼 내가 어떻게 옮기지?”
“가까이 오면 보여.”
도하는 얼음에 팔꿈치를 대고 몸을 낮췄다. 별의 빛이 장갑을 통과해 손바닥을 데웠다. 차가운 바다에 열이 생기자 얼음이 금세 녹았다. 밧줄이 팽팽해졌고, 등대에서 빛의 각도가 바뀌었다.
미주가 렌즈를 돌리고 있었다. 불빛은 넓은 호를 그리며 바다 위를 훑었다. 라라는 빛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위로 떠올랐다. 도하는 밧줄을 당기지 않았다. 대신 자기 그림자를 별 옆에 눕혔다.
“내 그림자에 올라타.”
“그림자는 하늘로 못 가.”
“그래도 얼음보다는 안전해.”
라라는 반짝이며 그림자 위로 올라왔다. 도하는 천천히 무릎을 세웠다. 별빛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손목에 묶인 매듭이 파도에 쓸렸다. 첫 번째로 잡아당기는 신호가 왔다. 미주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답으로 밧줄을 한 번 당겼다.
해안으로 돌아오는 길은 들어갈 때보다 길었다.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발밑을 쫓았다. 라라가 열을 내자 녹은 물이 장화 안으로 흘렀다. 도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등대 불빛을 바라봤다. 미주는 렌즈를 한쪽으로 고정하고, 창고 문을 열어 놓았다. 좁은 문턱 안에 뜨거운 담요가 준비되어 있었다.
“성공했어요.” 미주가 말했다.
“아직이야. 별은 하늘로 못 돌아갔어.”
“오늘은 이만하면 성공이에요.”
도하는 라라를 등대 꼭대기 렌즈 아래에 놓았다. 빛이 유리를 통과하자 라라의 몸에서 푸른 조각이 피어났다. 별빛은 천장을 올랐다가 구름에 막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해?” 도하가 물었다.
“동쪽. 아주 먼 곳.”
“내가 동쪽으로 길을 비출게.”
“그러면 네 이름이 사라져.”
도하는 라라를 바라봤다. “내가 네 이름을 부르면 되잖아.”
“네 이름이 먼저 사라져.”
미주는 모르는 척 렌즈의 손잡이를 닦았다. 라라는 빛을 낮췄다. “나는 이미 네 이름을 알아.”
“누가 알려 줬어?”
“바다 아래에서 불렀어. 그 사람도 네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어.”
도하는 손을 멈췄다. “누구?”
“너를 기다리는 배의 사람.”
“아버지?”
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별의 빛이 한순간 아버지의 낡은 놋쇠 선박종을 비췄다. 그 종은 등대 아래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도하는 그걸 아버지의 배에서 떼 온 것이라고 들었다.
새벽에 라라의 빛이 약해지자 도하는 등대 불을 동쪽으로 돌렸다. 하늘 가장자리에 구름이 갈라지고, 별 한 점이 빈자리를 만들었다. 라라가 그쪽을 향해 떠오르자 등대의 회전축이 한 번 크게 울렸다.
빛이 구름에 닿자 렌즈가 갑자기 멎었다. 톱니 사이에 얼음 조각이 끼어 있었다. 도하는 렌즈를 두 손으로 밀었지만, 장치가 돌아갈 때마다 빛이 바다 쪽으로 꺾였다. 라라의 몸이 작게 떨렸다.
“그대로 두면 새벽까지 빛이 꺼져.”
“얼음만 빼면 돼.”
미주는 손잡이를 반대로 돌렸다. “잘못 풀면 렌즈가 빠져요.”
“한 번만 더 돌려.”
“차장님이 직접 할 거예요?”
“내 손이 축을 잡을게. 네가 잠금쇠를 풀어.”
미주는 고개를 젓더니 연습 끈을 축에 감았다. 세 번 감고 한 번 묶는 건 그녀가 바람 센 날에도 풀리지 않게 연습한 매듭이었다. 도하는 장갑을 벗어 손을 차가운 틈에 넣었다. 얼음 조각이 손가락을 베었지만, 그는 축을 놓지 않았다.
“지금!”
미주가 걸쇠를 당겼다. 렌즈가 한 뼘 돌아가며 별빛이 천장을 스쳤다. 빛은 곧장 동쪽을 향하지 못하고 마을의 어망 창고를 비췄다. 유리창 아래로 쌓인 그물들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라라가 갑자기 빛을 낮췄다.
“저기는 안 돼. 그물에 닿으면 길이 끊겨.”
도하는 조타 손잡이를 되돌렸다. 렌즈가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얼어붙은 축이 미주의 손등을 쳤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지만 매듭을 놓지 않았다. 도하는 손을 빼고 그녀의 손목을 감쌌다.
“잠깐 쉬자.”
“쉬면 라라가 또 내려앉아요.”
“네 손이 다치면 다음 렌즈를 돌릴 사람이 없어.”
미주는 손등을 살폈다. 피는 나지 않았다. 그녀는 매듭을 한 번 더 조이고 손잡이에 힘을 실었다. 이번에는 도하가 축을 밀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맞자 렌즈가 천천히 회전했다. 동쪽으로 향한 빛이 구름을 가르며 위쪽 빈 하늘에 닿았다.
라라의 빛이 커졌다. 작은 별은 처음으로 자기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쪽이야. 내 자리야.”
“올라갈 수 있겠어?”
“네가 길을 열었어.”
도하는 창가에 몸을 기대고 빛이 닿는 자리를 확인했다. 그 순간 등대 아래 어망 창고에서 경적이 울렸다. 불빛이 잘못 비춘 사이 어부의 배가 얼음 바위에 접근하고 있었다. 도하는 렌즈를 북쪽으로 꺾어 배의 선수 앞에 빛을 던졌다. 배가 급히 방향을 틀어 바위를 비켜 갔다. 그 짧은 구조 때문에 라라의 빛은 다시 희미해졌다.
“미안해.” 도하가 말했다.
“왜?”
“네 길을 늦췄어.”
“배가 부서지는 걸 보고도 지나가는 빛은 길이 아니야.” 라라가 말했다. “나는 기다릴 수 있어.”
도하는 다시 렌즈를 동쪽으로 돌렸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았다. 별은 천천히 위로 떠올랐고, 하늘의 빈자리에서 빛이 한 번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등대 창에 닿자 렌즈의 진동이 잦아들었다.
“이제야 길이 이어졌네.” 미주가 말했다.
“끝난 건 아니야.”
“그래도 우리는 배 한 척과 별 하나를 놓치지 않았어요.”
도하는 대답 대신 젖은 장갑을 다시 꼈다. 손바닥이 얼얼했지만, 방금 배의 선장이 등대를 향해 경적을 한 번 울렸다. 고맙다는 신호인지, 무사히 지나갔다는 신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소리를 노트 귀퉁이에 적었다.
미주는 계단을 내려가 마을에 알리러 갔다. 한참 뒤 그녀는 돌아와 말했다. “수선집 아저씨가 누구를 기다리러 왔느냐고 물었어요.”
“누구를?”
“저를요. 차장님 이름을 기억 못 했어요. 아침마다 등대 부품을 가져다줬던 사람인데.”
도하는 웃으려다 입을 닫았다.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 빈칸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라라가 남긴 빛의 방향을 노트에 그렸다. 동쪽이 아니라 북동쪽이었다. 바다 아래에서 불러 온 사람은 분명 아버지였다.
“그분이 이름을 잊어도 차장님은 알죠.” 미주가 말했다.
“내가 알면 충분할까?”
“아니요. 그래서 여기 적어 둘게요.”
미주는 근무 노트를 펴고 첫 줄에 ‘정도하’라고 썼다. 이름 옆에 작은 등대 그림을 그렸다. 도하는 그 글씨를 한참 바라봤다. 그가 등대를 세운 날부터 매번 출입 기록에 쓰던 자기 이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 보는 글씨처럼 느껴졌다.
그 아래에서 종이 울렸다.
등대 아래 창고에 있어야 할 낡은 선박종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한 번 울렸다. 도하는 계단을 내려가려 했지만, 미주가 손목을 붙잡았다.
“아직 바다에 별빛이 남았어요.”
종이 두 번째로 울렸다. 이번에는 라라가 잠결에 눈을 떴다.
“저 소리, 하늘에 있는 별의 소리가 아니야.”
“그럼 누구 소리야?”
“바다 밑에서 길을 찾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