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이름이 바뀌는 기사와 약초상

3화: 돌아온 이름
명부를 든 니아의 손이 떨렸다. “17번, 로안. 열다섯 살에 풍차 아래 계곡에서 실종. 보호자는 수호기사 사일.”
사일은 명부를 낚아채지 않았다.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키지 못한 사람을 찾고 싶다고 했죠.” 베른이 말했다. “이 명부는 당신 기억을 대신하지 못해요.”
니아는 페이지를 넘겼다. 로안의 이름 옆에는 ‘찾음’이라고 적혔다가, 누군가 검은 잉크로 덧칠한 흔적이 있었다. “이 명부는 풍차가 멈출 때마다 바뀌었어요. 저는 이름을 베끼는 서기라 생각했는데, 사실 누군가 기록을 수정하고 있었어요.”
“누구죠?”
“호른 아저씨가 아닐까 싶었어요. 풍차지기니까.”
호른은 지팡이를 짚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내가 쓴 글씨라면 숨기지 않았을 거요.”
니아는 그의 손을 보았다. 손톱 밑에 검은 잉크가 끼어 있었다. “그럼 왜 잉크가 묻어 있죠?”
호른은 잠시 침묵했다. “이름을 지우려던 건 아니오. 기억을 붙잡으려고 명부에 기록을 보탰소. 하지만 내가 쓰지 않은 글씨도 있다.”
사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로안을 만났습니까?”
“네가 그 아이를 데리고 계곡을 떠난 뒤, 돌아온 건 너 혼자였소.”
“제가 그 아이를 두고 왔다는 말입니까?”
“아니오. 너는 그 아이를 찾으려고 다시 들어갔지. 그 후 풍차가 멈췄고, 네 기억이 사라졌소.”
사일은 손바닥의 이름을 바라봤다. ‘로안’이라는 잉크가 땀에 번졌다. “그럼 그 아이는 죽었습니까?”
호른은 답을 하지 못했다. 베른은 그들의 침묵을 서둘러 채우지 않았다. 그녀는 사일의 손에 물수건을 건넸다. 그는 닦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풍차에 보관된 기억을 풀면 로안을 찾을 수 있습니까?”
“모르겠소. 기억을 풀면 마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어.”
“계속 감춰 두면요?”
“잊는 사람이 늘겠지.”
니아가 말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야 해요. 자기 기억을 풍차에 맡겼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결정해야 합니다.” 호른이 답했다. “날개가 완전히 고장 나면 회복할 수 없소.”
그들은 광장으로 내려갔다. 주민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지난주에 죽은 아버지의 이름을 잊었다고 했고, 다른 이는 바람잠 이후 자기 집 문을 못 찾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들 중 누구도 기억을 풍차에 맡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기억을 풀면 잊어버린 일들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베른이 말했다. “하지만 서로의 기억이 섞일 위험도 있어요. 풍차를 고치면 당분간 잊는 일이 줄겠지만, 기억을 누가 보관하는지는 그대로예요.”
한 여인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답을 정할 수는 없어요. 각자 맡긴 기억을 돌려받을지, 풍차를 멈출지, 보관 규칙을 새로 만들지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뭘 맡겼는지도 모르는데요.”
“그래서 먼저 목록을 공개하겠습니다. 이름과 날짜, 기억을 맡긴 사람의 동의 기록을 확인해요.”
호른은 고개를 숙였다. “동의 기록은 없소. 오래전엔 마을 사람들이 풍차를 공동으로 쓰기로 했지만, 기억을 저장한다고 설명하진 않았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니아는 그들 앞에서 명부를 들었다. “저는 기록을 베꼈습니다. 누가 이름을 바꿨는지 몰랐다고 말했지만, 바뀐 이름표를 받은 사람이 매번 같은 방향의 바람을 가리킨다는 걸 알았어요. 겁이 나서 모른 척했습니다.”
“누가 바꿨지?” 주민 한 명이 물었다.
“저예요.” 니아는 눈을 감았다. “사일이 기억을 잃고 깨어날 때마다 제가 이름표를 바꿨어요. 예전엔 그가 사일이라고 불렸고, 그 이름으로 로안을 찾으러 다녔어요. 제가 다른 이름을 적으면 그가 어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일은 한참 그녀를 바라봤다. “당신은 내게 이름을 준 게 아니라, 기억을 숨겼군요.”
“미안해요.”
“그 말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용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베른은 주민들에게 풍차를 열기로 했다면 자신이 약초와 침상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기억이 돌아올 때 불안이나 구토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몸을 돌보는 일뿐입니다. 기억을 설명하거나 대신 결정할 수는 없어요.”
마을 사람들은 한 명씩 손을 들었다. 일부는 기억을 돌려받고 싶다고 했고, 일부는 지금의 평온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날개를 멈추지 않고 기억판을 하나씩 꺼내 각자의 이름과 대조하기로 했다. 동의한 사람만 자기 기억을 받아들이고, 원하지 않는 사람의 판은 봉인해 따로 보관하기로 했다.
“그걸로 풍차를 수리할 수 있을까요?” 호른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선택한 위험입니다.”
결정은 생각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광장에 있던 소년이 자신은 기억을 돌려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죽은 형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소년은 풍차에 들어 있는 형의 마지막 말이 사고를 막지 못한 자기 탓이라고 믿게 만들 거라 두려워했다.
“그 기억을 열면 네 형이 마지막에 무엇을 말했는지 알 수도 있어.”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내가 매일 그 말을 듣길 바라겠죠.”
“그런 뜻은 아니야.”
“아버지는 형을 기억하고 싶고, 나는 형을 보내고 싶어요. 둘 다 같은 기억을 가져도 원하는 건 달라요.”
베른은 아버지에게 소년의 말을 되풀이하게 하지 않았다. “지금 결정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하지만 오늘은 보관된 판을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선택할 수 있게 따로 봉인하죠.”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눈물을 훔치고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지만, 소년은 바로 기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가까이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듯했다.
호른이 그들을 바라보다가 베른에게 말했다. “내 아내의 목소리도 봉인해 두겠소. 내가 원한다고 해서 지금 풀지는 않겠어.”
“당신의 선택도 기록하겠습니다.”
“그 기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바뀌면?”
“다시 서약하면 됩니다.”
호른은 웃지 않았지만, 어깨에 올려 둔 긴장을 조금 풀었다. 사일은 베른의 손을 잡았다. “제가 기억을 되찾고 싶다고 한 것도, 당신이 그걸 도와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알아요.”
“그래도 당신이 곁에 있으면 좋겠어요.”
베른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건 제가 선택할 수 있어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도 자신이 왜 남고 싶은지 설명하지 않았다. 떠나는 환자를 붙잡으려는 마음과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은 다를 수 있었다. 둘은 아직 그 차이를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풍차로 올라갔다. 판을 빼는 동안 베른은 호흡이 빠른 주민에게 허브차를 나눠 주었다. 사일은 회전축을 받치고, 호른은 기어를 고정했다. 니아는 명부를 읽으며 이름 하나씩 판을 넘겼다.
기억판 열여섯이 지나도 로안은 없었다. 사일은 다친 손으로 축을 잡고 버텼다. 그의 팔이 떨리자 베른이 다가갔다.
“놓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이 받칠게요.”
“이걸 놓으면 날개가 꺾입니다.”
“셋이서 잡으면 돼요.”
호른과 니아가 함께 축을 받았다. 사일은 손을 놓고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베른은 그의 손에 따뜻한 잔을 쥐어 줬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다 말끝을 흐렸다.
“베….”
“괜찮아요.”
“당신 이름은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걸 치료 목표로 삼지 마세요.”
“그럼 제 선택으로 삼겠습니다.”
그녀는 잠시 그의 손을 감싸 쥐었다. “당신이 떠나기로 해도 그 선택을 존중할게요.”
“아직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판은 축의 안쪽에 깊이 끼어 있었다. 니아가 칼끝을 넣어 빼내자, 얇은 금속판에 작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로안. 사일은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무릎을 꿇었다.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오지 않도록 베른은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의 눈앞에 소년의 얼굴이 스쳤다. 붉은 망토, 젖은 머리, 장난스럽게 웃는 입. 소년은 풍차 아래에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형, 바람이 돌아오면 꼭 찾으러 와.”
사일은 숨을 몰아쉬었다. “로안은 살아 있었어요.”
“지금도요?” 베른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끝나는 곳에서 그 아이는 국경길로 달아났습니다.”
그는 기억판을 받아 들었다. “저는 그곳에 가야 합니다.”
베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자기 이름을 선택했고, 무엇을 찾으려는지 알고 있었다.
풍차 날개가 부드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람은 계곡으로 내려왔고, 마을의 기억은 즉시 돌아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저마다 받은 기억을 천천히 읽고, 받아들일지 결정하기로 했다.
사일은 약초상으로 돌아와 빈 이름표를 탁자 위에 놓았다. “다음엔 이 이름을 쓰겠습니다.”
베른은 그가 떠날 짐을 챙기는 동안 약초의 양을 계산했다. 길에서 상처가 다시 벌어지면 먹을 수 있도록 진통잎과 붕대를 두 배로 넣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돌아오라는 뜻입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베른도 “꼭 돌아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결정을 빚으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사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로안을 찾으면 제게 남은 기억을 더 확인할 겁니다.”
“그럼 제가 약을 챙겨 줄게요.”
“같이 가겠다는 뜻입니까?”
“당신을 소유하려는 뜻은 아니에요. 길을 함께 걷고 싶다는 뜻입니다.”
사일은 빈 이름표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베른은 그가 떠날 날짜를 정할 때까지 그것을 약초상 문에 걸어 두기로 했다. 이름은 바람에 흔들렸지만, 잉크는 번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