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한 꽃으로 전설의 포션을 만든다

1화: 주인을 기억한 꽃
약방 온실의 온도계가 32도를 가리켰다.
오다온은 씨앗 주머니를 열지 않았다. 온실 문 밖의 흙은 차갑고 축축했지만, 유리 지붕 안쪽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복원 대상인 청광화는 고산 바위 틈에서 자라던 꽃이었다. 이 온도에서 주머니를 열면 씨앗이 눈을 뜨기도 전에 썩을 수 있었다.
“백련 선생님, 환자분이 도착했어요.”
고해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에는 어린 소년이 한쪽 손을 붕대로 감은 채 서 있었다. 손바닥에 작은 유리 파편이 박혀 있었다.
“병원으로 보내야 해요.” 백련이 말했다.
“보호자가 약방에서 치료받고 싶대요. 가까운 의원은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우리 약은 상처를 꿰매지 못해.”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손이 아픈 게 아니라, 밤에 빛이 안 보여요. 사고 나기 전부터 그랬어요.”
해랑은 소년의 눈동자를 살폈다. “고가 밑에서 야간 작업을 했다고 했죠?”
“네. 철거팀이 식물 덩굴을 걷어 내는데, 빛이 없어서 손을 베었어요.”
“그 덩굴은 보호구역 표식이 붙은 곳이에요. 누가 철거를 지시했죠?”
소년은 답을 피했다. “저는 일당 받으러 간 것뿐이에요.”
백련은 다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씨앗.”
“지금 열면 안 돼요. 온도가 너무 높아요.”
“환자는 기다릴 수 있어도, 꽃은 이 환경을 기다려 주지 않아.”
“그 뜻이 아니잖아요.”
“그럼 온도를 낮춰. 네 판단을 증명해.”
다온은 온실 천장 쪽의 차광막을 내렸다. 해랑이 창문을 열어 습기를 빼냈다. 백련은 약재 선반에서 은빛 가루가 든 병을 가져왔다. 다온은 씨앗 주머니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에 차가운 바람과 젖은 돌의 감각이 지나갔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좁은 틈, 새벽에만 깨어나는 작은 곤충의 날갯소리.
“고가 밑 북쪽 기둥 사이예요.” 다온이 말했다. “빛은 오후 네 시에 한 번 들어오고, 물은 벽에서 스며들어요.”
해랑은 접이식 표본 틀을 펼쳤다. “그곳은 철거 구역이에요. 아직 덩굴 뿌리가 남아 있을 수 있어.”
“약방 안에서는 자랄 수 없어요.”
“그럼 약방 밖으로 옮기자는 거야?” 백련이 물었다.
“씨앗을 심으러 가야 해요. 뿌리가 붙은 곳을 바꾸면 청광화가 살아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환자 손은요?” 해랑이 소년에게 물었다.
“불이 꺼지면 작업팀이 다시 들어가요. 오늘 밤까지 길을 비워야 한다고 했어요.”
다온은 씨앗 주머니를 허리 가방에 넣었다. 백련이 막지 않았다. 해랑은 조사관 조끼를 걸쳤다. “보호구역 안에서 채취는 못 해요. 현장에 있는 꽃을 옮기지 말고, 씨앗 하나만 떨어진 자리에서 확인하죠.”
“씨앗을 심어야 포션을 만들 수 있어요.”
“그 꽃은 멸종했다고 등록돼 있어요. 씨앗을 갖고 나오면 종자상에 걸립니다.”
“꽃을 그대로 두면 철거팀이 뿌리째 뽑을 거예요.”
해랑은 소년을 바라봤다. “네가 덩굴을 걷어 낸다고 했지. 그럼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작업을 멈출 수 있어?”
“제가 말하면 해고당해요.”
“그럼 네가 멈추는 게 아니라, 내가 보호구역 조사 중이라고 지시할게.”
소년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팀장님한테 연락할게요. 하지만 오래는 못 버텨요.”
그들은 고가 밑으로 향했다. 도시는 저녁을 앞두고 있었고, 차량 소리가 콘크리트 기둥 사이에서 울렸다. 철거팀의 작은 굴착기가 덩굴 근처에 서 있었다. 작업자들은 장비를 껐지만, 팀장은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보호구역 표식은 지난달에 떨어졌습니다.” 팀장이 말했다. “철거 동의서가 있어요.”
해랑은 표본 틀을 들어 보였다. “표식이 떨어진 것과 보호 대상이 사라진 건 다른 문제예요. 여기서 멸종종 청광화의 잎이 확인됐습니다.”
“등록상 멸종종이면 지금 여기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확인하러 온 겁니다.”
팀장은 다온의 씨앗 주머니를 봤다. “그 씨앗을 팔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태조사보다 약재 개발이 빠르죠.”
“이 씨앗은 팔 물건이 아니에요.”
“주머니를 열어 보면 알겠죠.”
다온은 뒤로 물러났다. 백련이 팀장과 그녀 사이에 섰다. “견습생 물건을 허락 없이 열 권한은 없습니다.”
작업자 한 명이 덩굴에 걸린 경고 테이프를 걷어 냈다. “팀장님, 이쪽 뿌리가 살아 있어요. 기둥 틈에 꽉 붙었습니다.”
다온은 무릎을 꿇었다. 콘크리트와 흙 사이의 어두운 틈에 희미한 푸른 꽃봉오리가 있었다. 하지만 꽃잎은 열리지 않았다. 주변엔 수분매개 곤충도 보이지 않았다.
“꽃을 살리려면 곤충이 필요해요.” 다온이 말했다. “온실에서 핀 꽃은 씨앗을 못 맺을 거예요.”
해랑은 작은 유리병을 열어 손바닥에 올렸다. “이 지역에 사는 밤나방의 흔적이 있어. 날개 가루가 덩굴에 남았어.”
백련은 은빛 가루를 꺼내 꽃봉오리 옆에 놓았다. 다온은 씨앗에서 느낀 새벽 바람을 떠올렸다. 온실의 조건을 복제할 게 아니라, 이 좁은 틈의 환경을 회복해야 했다.
그녀는 떨어진 낙엽과 젖은 돌가루를 모아 뿌리 주변에 얹었다. 해랑은 조사 가방에서 수분 측정기를 꺼냈다. 백련은 약방의 작은 분무기를 내밀었다.
“물은 한 번만.” 다온이 말했다.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요.”
작업자는 굴착기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소년은 팀장에게 전화하지 못한 채 손을 꽉 쥐고 있었다.
다온은 꽃봉오리 앞에 쪼그려 앉았다. 씨앗을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고, 손바닥으로 돌의 온도를 느꼈다. 바람이 고가 아래를 지나가며 종이 조각을 흔들었다. 작은 날개 소리가 들렸다. 밤나방 한 마리가 기둥 뒤에서 나와 꽃에 내려앉았다.
꽃잎이 천천히 열렸다.
청광화의 빛은 환하지 않았다. 길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주변을 밝히는 푸른 빛이었다. 소년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보여요.”
“눈이 나은 건 아니에요. 꽃빛이 잠깐 대비를 높여 준 거예요.” 백련이 말했다.
“그럼 약으로 만들 수 있어요?”
“가능성은 있어.” 다온은 꽃의 밝기를 살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쓰면 빛에 민감해질 수 있어요.”
팀장이 다가와 꽃을 보려 했다. 해랑은 그를 막았다. “확인 전까지 이 구역 작업 중지입니다.”
“한 송이로 공사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꽃이 씨앗을 맺으면 다음 세대가 생깁니다. 오늘 없애면 다음번엔 없을 수도 있어요.”
다온은 꽃잎 가까이에 유리병을 가져갔다. 꽃의 빛이 병 안에 천천히 모였다. 백련이 낮은 목소리로 조제 순서를 불렀다. 다온은 쓴 잎 한 조각, 은빛 가루, 꽃이 머금은 새벽 이슬을 차례로 넣었다. 병 안에서 푸른 액체가 소용돌이쳤다.
“포션이 만들어졌어요.” 그녀가 말했다.
“전설의 포션은 이 정도로 간단하지 않아.” 백련이 말했다.
“전설이든 뭐든, 효과를 확인해야죠.”
다온은 소년에게 병을 건네지 않았다. 먼저 자기 손등에 한 방울을 발랐다. 어둠 속 기둥의 윤곽이 선명해졌지만 빛을 바라보자 눈이 따끔거렸다. 그녀는 즉시 눈을 감았다.
“시간은 얼마나 가요?” 해랑이 물었다.
“몇 분. 더 쓰면 빛을 본 뒤에도 잔상이 남을 거예요.”
백련은 약병에 ‘청광화 시야 포션, 4분, 광과민 주의’라고 적었다. 다온은 약방에서 포션을 완성한 첫 견습생이 됐다.
“소년에게 이걸 써도 될까요?” 해랑이 물었다.
“상처 치료약은 아니에요.” 다온이 말했다. “어두운 곳에서 물체의 윤곽을 구분하게 할 뿐이에요. 지금부터 철거 현장에 돌아가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소년은 붕대를 감은 손을 봤다. “오늘 야간 작업에 들어가야 해요. 팀장이 이 꽃을 지우라고 하면 저한테 시킬 거예요.”
“그만두는 게 어때?” 해랑이 물었다.
“저만 빠지면 다른 사람이 들어갑니다. 그 사람은 꽃이 여기 있는지 몰라요.”
다온은 약병을 손에 들었다. 포션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약의 부작용을 이미 자기 눈으로 느꼈다. “이건 작업에 쓰지 말아요. 효과가 끝나면 잔상이 남을 수 있어요. 대신 해랑 조사관이 작업 중지를 요청하고, 제가 꽃을 사진으로 기록할게요.”
“사진만으로 멈출까요?”
“확실하지 않아요.” 해랑은 솔직히 답했다. “그래도 당신이 증언하고, 이 꽃이 씨앗을 맺을 때까지 현장에 남아 있으면 강제로 없애기 어려워져요.”
소년은 작업팀 쪽을 돌아봤다. “내가 팀장에게 말할게요. 아까 꽃을 봤다고.”
그는 겁을 먹고 있었다. 다온은 그에게 포션을 주는 대신 손전등을 건넸다. 빛이 꽃에 직접 닿지 않도록 붉은 천으로 덮은 손전등이었다. 소년은 그 천을 받아 들고 작업자들 곁으로 갔다.
백련은 다온이 포션을 병에 담는 모습을 지켜봤다. “네가 만든 약을 환자에게 주지 않았네.”
“아직 안전한 사용법을 몰라요.”
“사람을 돕는 약을 만들었으면 쓸 기회를 줘야지.”
“기회와 위험을 환자에게 떠넘기는 건 다르잖아요.”
백련은 답하지 않았다. 해랑은 꽃의 위치와 뿌리 범위를 기록했다. 오늘 작업이 중단되더라도 다음 날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다온은 포션 라벨에 사용 제한을 적었다. 야간 시야 4분, 빛을 직접 보지 말 것, 연속 사용 금지.
그때 꽃잎이 닫혔다.
꽃은 백련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린 뒤였다.
백련의 손에서 분무기가 떨어졌다. 꽃의 빛이 완전히 꺼지기 전, 그 안쪽에 오래된 표본 번호가 떠올랐다.
‘원종 07. 채취자 황백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