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아래에서 세 번 두드렸다

2화: 대답한 사람
아침에 태민의 침낭은 비어 있었다.
옥례의 집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도 닫혀 있었다. 태민의 휴대전화는 현관 앞 마루에 떨어져 있었다. 통화 기록은 마지막으로 미소에게 걸려 있었다. 시각은 새벽 2시 13분. 미소는 전화를 받은 기억이 없었다. 그녀의 휴대전화에는 통화 기록이 남지 않았다.
“우물 쪽으로 갔을 거야.” 주원이 말했다.
“왜 혼자 갔겠어요?”
주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민은 집에 돌아와서도 옥례의 규칙을 믿지 않았다. 그는 소리를 확인하려 했고, 그 대가로 사라졌을 수 있었다. 미소는 카메라를 들고 우물로 향하려다 옥례에게 막혔다. 이번에는 옥례가 문을 잠그지 않았다. “네가 가면 너도 부름을 듣게 돼.”
“태민을 두고 기다릴 수 없어요.”
“찾는 것과 대답하는 건 달라.”
주원은 녹음 파일을 분석해 우물의 깊이와 반사음을 계산했다. 세 번 노크 뒤의 숨소리는 바깥에서 들어온 소리가 아니었다. 우물 아래에서 위로 올라왔다. 태민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는 미소의 목소리를 흉내 냈지만, 숨을 들이쉬는 간격은 맞지 않았다. 사람의 말투를 복제했지만, 몸의 호흡은 복제하지 못한 것이다.
미소는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면 버틸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도윤이 사라졌을 때, 그녀는 집에 있었다. 동생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어머니가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그날 뒤로 도윤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소는 어머니의 말을 원망하며 성장했고, 어머니가 죽은 뒤에야 옥례를 찾아왔다.
“그때 엄마가 우물에 답한 적이 있나요?”
옥례는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남편의 목소리에 이름을 불렀고, 남편은 다음 날 돌아왔다. 하지만 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집안에서 딸이 사라졌다는 사실만 남았고, 사진 속 얼굴은 흐릿해졌다. 옥례는 남편을 다시 잃을까 봐 그를 쫓아낼 수도, 붙잡을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산 아래로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물은 목소리를 돌려주지 않아. 우리가 원하는 말을 가져가.”
주원은 그 말이 음향적으로 가능한지 따지지 않았다. 대신 태민의 장비를 확인하자고 했다. 카메라 속 마지막 영상에는 우물이 찍혀 있었다. 영상의 시간은 새벽 2시 13분 이후로 43분 더 이어졌다. 태민은 카메라 앞에서 우물에게 “미소야”라고 불렀다. 이어서 자기 목소리로 “괜찮아, 여기 있어”라고 대답했다. 그 뒤 화면은 어둠으로 덮였다.
미소는 영상을 멈췄다. 자신이 대답한 적은 없었다. 태민이 자기 목소리를 흉내 냈거나, 우물이 그의 기억을 가져갔을 수 있었다. 주원은 영상의 바람소리를 분리했다. 바람이 아니라 사람의 숨이었다. 화면 바깥에서 누군가 태민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옥례는 우물에 내려가는 대신 마을 옛 우물 기록을 찾아보자고 했다. 오래된 집의 벽장에는 마을 공동체 장부가 남아 있었다. 실종 신고, 우물 보수, 장례 기록이 한 권에 섞여 있었다. 태민이 사라진 날짜 옆에, 37년 전에도 같은 이름의 실종 기록이 있었다. 그 이름은 강태민. 지금의 태민과 같은 이름이었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우물이 이름을 기억하는 거야?” 미소가 물었다.
주원은 장부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실종자들의 가족이 남긴 음성 기록이 적혀 있었다. 우물은 이름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 그리워하는 말투를 따라 했다. 누군가 응답하면 목소리가 더 선명해지고, 그 사람의 기억에서 특정 장면이 지워졌다. 장부의 ‘회수’는 실종자가 돌아왔다는 뜻이 아니라, 가족이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미소는 어머니가 동생을 찾기 위해 우물에 답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 뒤 어머니는 도윤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장부에는 그녀의 이름이 없었다. 옥례가 기록을 지웠거나, 어머니가 답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주원은 태민의 휴대전화 음성을 느린 속도로 재생했다. “나 혼자 가는 거 아니야” 다음에는 숨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두 번째 숨은 매우 가늘고, 일정한 간격으로 끊겼다. 사람의 호흡이 아닌 기계음일 수도 있었다. 주원은 그 리듬을 종이 위에 그렸다. 세 번, 한 번, 두 번. 예전 구조대가 쓰던 수로 진입 신호와 같았다.
옥례에게 확인하려고 돌아갔을 때, 그녀는 문턱에 앉아 있었다. 장부를 보자 얼굴이 굳었다. “그 페이지는 네가 들고 있어. 나한테 맡기면 또 숨길 테니까.”
그녀는 우물에 답한 뒤 돌아온 남편이 가족의 얼굴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딸은 우물에 들어간 게 아니라, 아버지의 기억에서 먼저 지워졌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딸을 찾지 못했고 결국 집을 떠났다. 옥례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자신이 부른 대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민이 돌아오면 그도 우리를 기억할까요?” 미소가 물었다.
“그건 태민에게 물어야지. 네가 대신 정하지 마.”
그날 저녁, 회관 문이 안쪽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태민의 목소리는 주원을 불렀고, 미소에게 동생의 별명을 속삭였다. 주원은 마이크를 내렸지만 발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소는 태민의 마지막 영상이 찍힌 우물 근처를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옥례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손때 묻은 작은 종을 건넸다. 우물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내는 소리를 확인할 때 쓰라고 했다. 종을 세 번 울리면 안쪽의 사람이 한 번 울려야 한다. 다만, 부름에 답한 사람은 종을 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주원은 휴대전화와 녹음기를 서로 다른 시계로 맞췄다. 장비가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지 확인한 뒤에야 마을 길을 나섰다. 우물 주변의 풀은 밟힌 자국이 없었다. 태민이 사라진 뒤에도 비가 오지 않았고, 땅은 바싹 말라 있었다. 그런데 우물 테두리 아래에는 물방울이 한 줄로 이어져 있었다. 물방울은 아래가 아니라 위로 올라가듯 돌 위쪽으로 번져 있었다.
“이건 편집할 수 없겠네요.” 주원이 말했다.
“영상에 넣을 생각 없어요.” 미소가 답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처음으로 기록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었다. 태민을 찾는 일이 콘텐츠가 되어서는 안 됐다. 주원은 녹음기만 켜고, 종을 한 번 울렸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두 번째 종소리가 끝나자 우물 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세 번째 종을 울리려는 순간, 미소는 자기 손을 멈췄다. 세 번 노크가 상대를 부르는 신호라면, 답하지 않는 것이 안전했다.
그들은 우물 근처의 옛 공동 창고로 갔다. 입구에는 낡은 돌판이 놓여 있었고, 그 밑에서 종이 장부를 찾았다. 실종자 이름 옆에는 날짜와 함께 ‘목소리 회수’라는 표시가 있었다. 옥례의 딸 이름에도 같은 표시가 있었고, 태민의 이름은 아직 없었다. 장부를 쓴 사람은 37년 전 태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주민이었다.
“이름이 반복되면 우물이 더 잘 찾는 건가?” 미소가 말했다.
공동 창고 천장에서 흙가루가 떨어졌다. 미소가 고개를 들자, 바닥의 오래된 배수 격자가 안쪽으로 휘어 있었다. 주원은 손전등을 비추고 몸을 낮췄다. 격자 너머로 누군가 금속을 긁는 소리가 났다. 태민의 목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주원아, 들어와. 혼자 아니야.”
미소는 손에 든 종을 꼭 쥐었다. 옥례가 준 종은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사람 목소리를 확인하는 종이라면서요.” 주원이 낮게 물었다. 미소는 종의 손잡이를 격자에 대고, 본인도 모르게 세 번 두드렸다. 돌아온 것은 두 번이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태민의 목소리가 웃으며 말했다. “한 번만 더.”
주원은 손전등을 격자 안으로 밀어 넣었다. 빛이 닿은 좁은 공간에 젖은 손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손가락 자국은 안쪽에서 바깥으로 향했지만, 격자는 밖에서 눌린 모양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누군가 나가려 했는지, 들어오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미소가 보고 싶지 않다고 눈을 감자, 카메라를 꺼내려던 손을 멈췄다.
주원은 종을 격자 위에 놓고 짧은 구조 신호를 녹음했다. 세 번, 쉬고 한 번, 다시 두 번. 아래에서 답이 왔다. 이번에는 사람의 숨이 두 개였다. 둘 중 하나는 신호 끝에 기침했고, 다른 하나는 미소의 이름을 불렀다. 미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종을 집어 들고 창고 문을 밖에서 걸어 잠갔다. “오늘은 아무도 내려가지 않아요. 태민이 정말 안에 있다면, 우리가 살아서 길을 찾아야 해요.” 종은 그녀의 손바닥에서 차갑게 식었다. 격자 아래의 숨소리는 문이 잠긴 뒤에도 한동안 따라왔다.
마을 장부에는 실종자의 이름과 함께 남은 가족이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게 됐는지도 적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이의 웃음소리를, 어떤 사람은 함께 먹던 음식의 맛을 잃었다. 우물이 몸을 데려갔는지, 사람이 스스로 들어갔는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다만 모두 누군가의 부름에 답한 뒤에 흔적이 바뀌었다.
미소는 태민이 자기 이름을 불렀다면 왜 사라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옥례는 우물이 목소리를 빌릴 때 듣는 사람의 선택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태민이 미소를 부른 게 아니라, 미소가 태민을 찾고 싶은 마음을 우물에 내주었을 수 있었다.
주원은 장부에서 태민 이름을 찾아 빈칸에 적지 않았다. 아직 그가 실종자로 확정된 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찾고 싶은 동생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 대신 음성 기록을 보관하고, 문을 열기 전에 구조 신호를 반복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