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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골 도련님의 만능 진법학1화

약골 도련님의 만능 진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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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기운의 결을 보는 눈

초봄의 서늘한 바람이 대연무장의 모래바닥을 낮게 훑고 지나갔다.

흙먼지 섞인 냉기가 폐부로 파고들 때마다 가슴 한가운데가 칼로 도려내듯 욱신거렸다. 청이현은 얇은 무복 소매를 꽉 움켜쥔 채 단전에 남은 미약한 기운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청운세가의 기초 심법인 청운기공의 첫 관문. 기운을 모아 등 뒤의 독맥을 타고 머리끝까지 끌어올리는 소주천의 운공이었다.

'조금만 더. 이번에는 끝까지 넘겨야 한다.'

열여덟이 되도록 삼류 무인의 기도 제대로 모으지 못한다는 조롱은 이미 익숙했다. 하지만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려면 이 관문만큼은 제 힘으로 넘어야 했다. 이현은 이를 악물고 기운을 등줄기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우지직!

기운이 명치를 통과하는 찰나, 몸속 깊은 곳에서 단단한 쇠사슬이 조여드는 듯한 격통이 터져 나왔다. 가슴속 어딘가에 거대한 매듭처럼 엉켜 있던 기혈이 들어선 기운을 사납게 튕겨냈다.

"커흑!"

거칠게 꺾인 기운이 역류하며 장부를 짓눌렀다. 이현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터져 나와 모래바닥을 적셨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릎이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거친 기침이 멎지 않고 연거푸 피거품이 튀었다.

연무장 사방에서 나지막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역시나 안 되는군."

"열여덟이 되도록 기혈 하나 뚫지 못하니 원."

"가주님의 셋째 아들이라 해도 저런 몸으로는 세가의 짐만 될 뿐이지."

비웃음과 동정이 뒤섞인 시선들이 이현의 여윈 등을 따갑게 찔렀다. 이현은 떨리는 손으로 피 묻은 턱을 문질러 닦으며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연무대 단상에서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내려오는 중년 사내가 보였다.

단정한 검은 장포에 절제된 걸음걸이. 청운세가의 가주이자 이현의 아버지인 청무겸이었다. 굳게 다문 입술과 서늘한 눈빛에는 조금의 온기도 묻어 있지 않았다.

청무겸은 주저앉은 이현의 앞에 멈춰 섰다. 그가 손을 뻗어 이현의 마른 손목을 잡았다.

순간 날카로운 내력이 이현의 손목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러나 그 내력조차 이현의 가슴 부근에 닿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흩어져 버렸다.

청무겸의 눈매가 미세하게 굳었다.

"기혈이 안쪽에서 뒤틀려 있다. 억지로 기운을 밀어 넣을수록 장부만 찢어질 뿐이다."

"가주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호흡을 가다듬으면..."

"헛된 고집이다."

청무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더는 몸을 상하게 하지 마라. 오늘부로 네 연무장 출입을 금한다."

그 말과 함께 청무겸은 손목을 놓고 뒤돌아섰다. 매정하게 멀어지는 아버지의 등 뒤로 연무장에 모인 무사들의 차가운 시선이 다시 쏟아졌다.

연무장 외곽의 목책 기둥 옆에서 검을 짚고 경계를 서던 한 검수가 눈에 들어왔다. 짧게 묶은 흑발에 간결한 무복을 입은 외문 검수 도연이었다. 그녀는 피를 토하고 주저앉은 이현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제자리를 지켰다.

이현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게 물든 옷소매를 쥐어뜯듯 붙잡고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수치심과 굴욕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는 선고는 처음이 아니었다. 다만 몸속에 얽혀 있는 그 기이한 감각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본가 동북쪽 구석진 곳, 인적이 드문 별채 뒤편에 낡은 2층 목조 전각이 서 있었다.

청운세가의 장서각이었다. 가문의 비전 무공서들은 이미 내원의 비전각으로 옮겨진 지 오래였기에 이곳에는 수십 년 동안 먼지만 쌓인 잡학 서책과 낡은 지리지들만 뒹굴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묵은 종이 냄새와 서늘한 그늘이 이현을 맞이했다.

"또 피를 쏟고 왔구나."

서가 구석에 놓인 낡은 목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사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먼지 묻은 소매를 펄럭이며 일어난 장서각 관리 설무린이었다.

설무린은 이현의 핏자국 묻은 무복을 힐끔 보더니 혀를 찼다.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몸 안의 혈도가 매듭처럼 묶여 있는데 심법을 운용하려 드니 피를 토하지. 검자루 쥘 생각은 버리라고 했을 텐데."

"무공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현은 거친 숨을 고르며 서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른 무인들이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 구석진 서가. 그곳에는 낡은 표지의 <기문둔갑초해>와 청운세가 영지의 산수지형도가 꽂혀 있었다.

이현은 익숙한 손길로 서책과 도면을 꺼내 들었다.

"진법 서책이라. 무림에서 검을 쓰지 못하는 자들이 도망치는 곳이 서책 속이라지만 진법은 머리로만 되는 학문이 아니다."

설무린이 식은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툭 던졌다.

"방위와 지형을 맞추고 수많은 진재(陣材)를 쏟아부어야 겨우 작동하는 게 진법이다. 당장 몸 하나 못 가누는 네가 돌멩이 몇 개 굴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현은 지형도를 탁자 위에 펼쳐놓고 조용히 대답했다.

"검은 눈앞의 적 하나를 베지만 기운의 길을 바꾸면 산과 강 전체를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설무린의 흐리멍덩하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현은 탁자에 펼친 지형도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집중이 깊어지자 시야가 미세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상의 결. 어릴 때부터 이현에게만 유독 선명하게 드러나던 기이한 감각이었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연한 쪽빛 선으로 흘렀고 장서각을 받치고 있는 굵은 기둥들 주변에는 은은한 흙빛의 기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장서각 바닥 아래로 흐르는 수맥과 지맥의 줄기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제각기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몸 안에서는 단 한 줌의 기운도 돌리지 못했지만 바깥 세상에 흐르는 거대한 기운의 길들은 마치 손에 잡힐 듯 또렷했다.

서책에 적힌 팔괘의 방위와 오행의 상생상극 원리가 눈앞에 흐르는 기운의 선들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기운은 억지로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길을 터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었다.

이현은 가슴속 답답함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끼며 장서각 2층으로 향했다.


장서각 2층 난간에 올라서자 청운세가 본가의 전경과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싼 청운산맥이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노을이 산등성이를 서서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현은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낡은 구리 진반(陣盤)을 꺼냈다. 언젠가 가문의 잡동사니 창고에서 발견해 손질해 둔 낡은 물건이었다. 방위를 가리키는 자침이 중심에 박혀 있고 테두리에는 십이지와 팔괘가 어설프게 새겨져 있었다.

이현은 진반의 중심을 맞춘 뒤 북쪽 산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청운산맥 북쪽 골짜기. 청운세가의 재정을 지탱하는 핵심 거점이자 가장 거대한 수입원인 청운벽옥 광산이 있는 곳이었다.

광산 주변은 험준한 지형과 거친 암반 때문에 붕괴 사고가 잦았기에 세가의 선조들이 지맥의 진동을 억누르는 대규모 토석보호진을 설치해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산맥을 타고 흐르는 지맥의 기운은 맑은 청록색을 띠며 잔잔하게 흘러가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진반을 든 이현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달칵, 달카락.

진반 한가운데 박힌 붉은 자침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요동쳤다.

'자침이 왜 이러지?'

이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시각의 감각을 광산 방향으로 집중했다.

눈앞의 풍경 너머로 기운의 결들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현의 숨이 턱 막혔다.

청운산맥 북쪽 상공의 기운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맑은 청록빛이어야 할 지맥의 흐름이 광산 입구 부근에서 억지로 꺾여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그 뒤틀린 틈새로 검붉은 탁기가 사납게 솟구쳐 오르며 주변 지맥을 마구 갉아먹고 있었다.

"저건... 단순한 지맥 불안정이 아니야."

이현은 지형도와 서책에서 보았던 진법의 파동을 떠올렸다.

보호진이 오래되어 힘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기운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처럼 안쪽에서 팽창한 기운이 갱도 전체를 짓누르며 붕괴를 유도하고 있었다.

기운의 역류. 인위적으로 파괴의 문을 열어젖힌 흉포한 흐름이었다.

기운을 읽는 감각을 과도하게 끌어올리자 관자놀이가 쪼개질 듯한 두통이 밀려왔다.

"큭..."

코밑으로 뜨거운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현은 비틀거리며 난간을 붙잡았다. 몸속의 막힌 기혈이 경고하듯 날카로운 통증을 내뿜었다.

하지만 눈앞의 광경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뒤틀린 검붉은 기운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먼 북쪽 산등성이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둔탁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붉게 물든 하늘 위로 시커먼 흙먼지가 버섯구름처럼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청운세가 본가 중앙의 종루에서 다급하고 찢어지는 쇠북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댕! 댕! 댕! 댕!

"비상이다!"

"북쪽 광산 상층 갱도가 무너졌다!"

"보호진에 이상 발생! 작업 중이던 광부 수십 명이 지하에 갇혔다!"

본가 곳곳에서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연무장에 머물던 무사들이 병장기를 챙겨 뛰쳐나왔고 순찰을 돌던 외문 검수 도연이 부하들을 인솔해 북쪽 대문을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는 모습이 내려다보였다.

본가 전체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이현은 알고 있었다.

단순히 무사들을 보내 바위를 치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목격한 그 검붉은 역류의 결은 갱도 내부의 공기와 기운을 독기처럼 틀어막고 있었다.

진법의 엉킨 결을 바로잡지 않고 무작정 흙더미를 파헤쳤다가는 갱도 전체가 연쇄 붕괴를 일으켜 갇힌 광부들은 물론 구조하러 들어간 무사들까지 생매장당할 터였다.

이현은 피 묻은 입술을 짓씹었다.

가문에서 버림받은 약골 도련님. 칼 한 자루 쥐지 못하고 피를 토하는 쓸모없는 몸.

하지만 저 뒤틀린 기운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세가 안에서 오직 자신 하나뿐이었다.

'내가 가야 한다.'

이현은 품속에 진반을 깊숙이 갈무리하고 탁자 위의 지형도를 거칠게 걷어 품에 넣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이현은 장서각 난간을 돌아 계단을 향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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