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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베테랑, 고교 야구부터 다시 시작합니다9화

40세 베테랑, 고교 야구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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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미국에서 온 제안

운동장 철망 밖으로 사라졌던 외국인 스카우트는 다음 날 오후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난번 통역 직원과 함께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운동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강두식 감독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마이클 리드라고 합니다. 미국 구단의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입니다. 백승진 선수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강두식은 명함을 받았지만 곧장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선수와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겁니까?"

통역 박정민이 말을 옮기자 마이클은 손바닥을 펼쳤다.

"계약 제안입니다. 아직 최종 계약서는 아니지만 구단 본부의 승인을 받은 조건입니다."

운동장에 있던 선수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감독실 쪽으로 몰렸다. 최현우는 튜빙을 내려놓았고 김태섭은 메디신볼을 든 채 꼼짝하지 않았다.

승진은 글러브를 벗어 허리춤에 끼웠다.

'생각보다 빠르군.'

전생의 기억 속에서 미국 스카우트는 고교 졸업 뒤에야 이름을 올렸다. 그때도 스카우트 리포트는 있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성적이 부족했고 몸값을 흥정할 사람도 없었다.

이번에는 우승 직후였다. 상대 에이스의 공을 읽은 타격과 투수 셋을 관리한 포수 리드가 한꺼번에 기록되어 있었다.

강두식이 감독실 문을 열었다.

"들어오시죠. 단 선수 혼자 듣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감독님도 함께 들으셔도 좋습니다."

마이클은 준비해 온 서류 봉투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박정민이 봉투를 열어 영어 문장을 한 줄씩 옮겼다.

미국 루키리그 참가. 봄 캠프 초청. 포수와 내야 수비를 함께 시험할 수 있는 육성 계약. 계약금은 당시 고교 선수에게는 꽤 큰 액수였다. 항공료와 숙소는 구단이 부담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강두식의 눈이 잠깐 커졌다.

"이 정도면 바로 프로 계약 아닙니까?"

"메이저리그 계약은 아닙니다. 마이너리그 진입을 위한 계약입니다."

승진은 서류의 아래쪽을 훑었다. 말은 화려했지만 권리는 짧았다. 구단이 지정한 포지션 훈련을 따라야 했고 출전 여부는 코치진이 결정했다. 부상 시 보장되는 치료 범위도 구단 판단에 달려 있었다.

"계약 기간은요?"

박정민이 통역했다.

"2년입니다. 첫해는 루키리그와 교육리그에서 평가합니다. 성적이 좋으면 다음 단계로 올라갑니다."

"포수로 계속 뛸 수 있습니까?"

마이클은 아주 잠깐 말을 멈췄다.

"포수는 어깨 부담이 큽니다. 타격 재능이 뛰어나니 외야 전향도 선택지입니다."

승진은 서류에서 시선을 들었다.

그 말 하나로 제안의 본질이 드러났다. 미국 구단은 그의 포수 리드를 흥미롭게 봤지만 가장 먼저 계산한 건 열일곱 살의 팔과 타격이었다. 포수로서의 권한은 아직 가격표에 들어 있지 않았다.

"에이전트는 있습니까?"

"아직 없습니다."

"부모님과 상의했습니까?"

"아직입니다."

"그럼 오늘 서명할 수 있겠군요."

승진은 서류를 덮었다.

"오늘은 서명하지 않습니다."

강두식이 승진을 돌아봤다.

마이클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건이 부족합니까?"

"조건을 판단할 자료가 부족합니다. 계약금만 보고 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승진은 손가락으로 서류의 항목을 짚었다.

"출전이 보장되지 않고 포지션도 구단이 바꿀 수 있습니다. 부상 치료의 범위도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국에서 어떤 언어로 누구에게 보고해야 하는지도 없습니다."

박정민의 통역이 끝나자 마이클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린 선수의 욕심을 달래려던 눈빛이 상대를 다시 평가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고교생이 이런 조항을 확인합니까?"

"포수는 사인을 받기 전에 상황부터 확인합니다."

강두식이 헛기침했다.

"승진아. 미국이 싫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바로 가는 게 제게 좋은 제안인지는 별개입니다."


감독실을 나온 뒤 최현우가 승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진짜 미국에서 오라고 한 거야?"

"정확히는 미국에 와서 다시 평가받으라는 거지."

"그래도 계약금이 그만큼이면 우리 집 빚을 한 번에 갚을 수도 있겠다."

태섭이 뒤에서 끼어들었다.

"너 가면 우리는 누가 사인 내냐?"

"감독님이 내겠죠."

"그 양반이 네가 하던 사인을 내면 현우 팔부터 빠질걸."

현우가 태섭의 어깨를 밀쳤지만 표정은 웃고 있지 않았다. 승진은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현우는 진심으로 기회를 부러워했다. 태섭은 농담으로 감췄지만 승진이 떠날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직 안 갑니다."

승진이 말했다.

"왜?"

"지금 가면 내가 어떤 선수인지 미국 코치가 정합니다. 여기서 한 시즌 더 증명하면 내가 어떤 포수인지 내가 먼저 보여줄 수 있습니다."

태섭이 미간을 좁혔다.

"돈보다 명예냐?"

"돈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더 서두르면 안 됩니다."

승진은 운동장 한쪽의 현우를 바라봤다. 현우는 튜빙을 끝낸 뒤 짧은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공은 낮게 들어왔고 손끝의 회전은 사흘 전보다 단단했다.

"현우 선배가 여기서 건강하게 구속을 올리고 태섭이 형이 투수로 자리를 잡으면 청원고의 이름도 같이 올라갑니다. 내 기록만 들고 가는 것보다 팀이 증명해 주는 게 협상에는 더 세요."

강두식은 감독실 문가에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청원고를 이용하고 버릴 생각은 아니구나."

승진은 돌아섰다.

"감독님. 저는 청원고에서 얻을 게 많습니다. 하지만 학교가 제 몸을 대신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필요한 만큼 정확히 가야 합니다."

강두식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예전 같으면 건방지다고 소리쳤을 말이었다. 그러나 승진의 말에는 황금사자기 우승 뒤에도 훈련을 멈추지 않은 사람의 계산이 있었다.

"그럼 네 계획은 뭐냐?"

"전국체전까지 자율 프로그램으로 결과를 만들고 KBO 드래프트에서 제 가치를 확인합니다. 그다음 미국 구단과 다시 만납니다."

"KBO를 거치면 미국행이 늦어질 수도 있다."

"늦어지는 것과 싸구려로 팔리는 건 다릅니다."

강두식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운동장에서는 현우의 공이 미트에 꽂히는 소리가 들렸다.

팡.

승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마이클은 떠나기 전에 운동장에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승진만 부르지 않았다. 현우와 태섭 그리고 포수조까지 함께 보자고 했다.

"당신은 팀 전체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 구단은 개인의 가능성만 보지 않습니다.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지도 봅니다. 결승전 뒤에도 당신이 두 투수의 회복과 전환을 설계했다는 보고를 확인했습니다."

승진은 그 말에 곧바로 믿음을 주지 않았다.

"그럼 제안서를 수정해 주십시오."

"어떤 부분을 원합니까?"

"첫째, 포수 훈련을 받을 권리. 둘째, 부상 시 치료와 재활의 책임. 셋째, 계약 해지와 귀국 조건. 넷째, 출전이 아니라 평가 기준을 문서로 남기는 것."

박정민이 통역하는 동안 현우와 태섭은 숨소리까지 죽였다.

"고교 선수가 요구하기에는 많은 조건입니다."

"그래서 지금 요구하는 겁니다. 미국에 도착한 뒤에는 제가 약해집니다."

마이클은 승진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서류 봉투에서 얇은 종이를 한 장 더 꺼냈다.

"정식 제안서가 아니라 검토용 각서입니다. 구단은 KBO 진출 뒤에도 당신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계약할 때 포수 포지션을 우선 검토하겠다는 문구를 넣겠습니다."

"현우 선배와 태섭이 형도요?"

마이클이 두 투수를 바라봤다.

"왼손 투수의 회복 과정과 우완 투수의 전환도 흥미롭습니다. 당신의 말이 실제 구속과 제구 변화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다만 아직은 당신의 보고를 믿는 단계입니다."

승진은 그 말에 처음으로 눈빛을 누그러뜨렸다. 누군가가 선수의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몸이 바뀌는 과정을 기록하려 했다.

"그럼 이 각서는 받겠습니다. 대신 계약은 하지 않습니다."

마이클이 웃었다.

"당신은 정말 열일곱 살입니까?"

"마운드 뒤에 앉아 있으면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이클은 각서에 서명하지 않은 채 날짜만 적어 건넸다.

"KBO에서 좋은 기록을 내십시오. 우리가 먼저 연락하겠습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른 구단이 먼저 연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통역이 그 말을 옮기자 마이클은 잠시 멈췄다가 크게 웃었다.

"그때는 우리도 더 좋은 조건을 준비하겠습니다."

스카우트 일행이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강두식은 멀어지는 등을 보다가 승진에게 물었다.

"정말 미국에 갈 생각은 있냐?"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를 수 있을 때 가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우리 팀을 버티게 하겠다는 거고?"

"우리 팀이 강해지면 제 선택지도 늘어납니다."

강두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교무실 쪽에서 학생 한 명이 뛰어왔다. 손에는 체육부 도장이 찍힌 봉투가 들려 있었다.

"감독님! 전국체전 예선 대진표가 나왔습니다!"

강두식이 봉투를 열었다. 첫 경기 상대는 황금사자기에서 만났던 동해고였다.

태섭이 입을 벌렸다.

"또 서진호를 만나네."

승진은 대진표의 이름을 내려다봤다. 빠른 발과 끈질긴 번트. 이번에는 상대도 청원고의 변화를 알고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현우가 공을 들고 다가왔다.

"미국 얘기는 끝났어?"

"끝난 게 아니라 미뤄 둔 겁니다."

승진은 각서를 포수 장비 가방 안쪽에 넣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훈련이 실제 경기에서도 통하는지 확인해야죠."

강두식이 대진표를 접었다.

"전원 집합!"

이번에는 스무 바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승진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야수들을 불러 모았다. 미국에서 온 제안은 가방 안에 잠들어 있었다. 아직 사인하지 않은 종이 한 장이었다.

그러나 운동장에 울린 첫 스타트 신호는 이미 다음 선택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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