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칸에서 매주 같은 자리에 앉는 이유

1화: 같은 좌석의 손님
열차가 곡선을 돌자 냄비 속 수프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나예린은 왼손으로 손잡이를 붙들고 오른손으로 불을 줄였다. 단호박 퓌레가 가장자리에서 보글거렸다. 조리실 천장의 작은 시계는 오후 여섯 시 십칠 분. 예약 손님이 식당칸에 들어오기까지 삼 분 남았다.
“오늘은 국물이 덜 움직이는데요.” 주방 보조 최미정이 말했다.
“진동이 덜한 구간이라 그래요. 다음 커브에서 다시 봐야 해요.”
“그러면 지금 그릇에 담아도 되겠네요.”
“아직 안 돼요. 적정 온도 먼저 재요.”
미정은 온도계를 수프에 꽂았다. 숫자가 안전 기준보다 조금 낮았다. 예린은 불을 두 칸 올리며 손목으로 냄비를 고정했다. 식당차가 한 번 흔들렸다. 수프 표면이 출렁였지만 넘치지는 않았다.
“좋아요. 지금 담아요.”
그녀는 작은 냄비 네 개를 차례로 채웠다. 오늘의 한정 메뉴는 단호박 수프와 역 앞 제분소의 호밀빵이었다. 빵에는 참깨가 들어갔다. 알레르기 안내는 메뉴판에 인쇄되어 있었고, 주문표에도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예린은 배식구에서 식당칸을 내다보았다. 예약석은 절반쯤 차 있었다. 창가 6A에는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 수첩을 펼치고, 접힌 승차권을 책갈피처럼 끼워 놓았다.
“저 손님 또 왔네요.” 미정이 말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같은 자리예요.”
“메뉴도 늘 같은가요?”
“보리차와 수프. 빵은 거의 안 드세요.”
예린은 주문표를 확인했다. 정말 그 조합이었다. 그녀가 식당칸으로 나가자 남자는 수첩에서 눈을 떼었다.
“나예린 셰프님 맞으시죠?”
“네. 주문하신 수프에는 참깨가 들어간 빵이 같이 나옵니다. 빵은 따로 담아 드릴게요.”
“그건 먹지 않아도 되나요?”
“물론이죠. 알레르기나 못 드시는 재료가 있으신가요?”
“아뇨. 다만 메뉴판에는 빵이 수프 구성에 포함된 걸로 쓰여 있네요.”
그는 종이를 가리켰다. “세트로 표기하면 빵을 받지 않아도 가격이 같아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빵은 별도 제공이고, 수프 가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표기가 헷갈리면 바꾸겠습니다.”
“안전 문제는 아니군요.”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격도 정보예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책갈피로 쓰던 승차권을 옆으로 옮겼다. “민우석입니다. 안전분석팀에서 나왔어요. 식당차 시범 검토 때문에 탔습니다.”
예린은 그의 명찰을 읽었다. “시범 검토면 미리 알려 주셨어야죠.”
“이용객처럼 타고 보라고 했습니다.”
“이용객인 척하면서 제 메뉴를 조사하고 있었네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매주 같은 좌석에서 주문이 반복되는 건 운행 패턴일 수 있으니까요.”
“손님이 자리를 고르는 이유를 안전 데이터로 쓰려면 동의를 받으세요.”
우석은 곧바로 수첩을 덮었다. “맞습니다. 좌석 선택 기록은 분석에서 빼겠습니다.”
예린은 그의 빠른 인정에 오히려 다음 말을 놓쳤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수프 온도나 조리 시간은 괜찮으신가요?”
“온도는 기준 안에 있습니다. 다만 20분 뒤 진동 구간이 있어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주방에 들어올 수는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식당칸에서 측정하면 안 될까요?”
“승객이 앉아 있는 동안은 장비를 바닥에 놓을 수 없어요. 식사 끝난 뒤 직원 통로에서 하세요.”
그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조건으로 요청하겠습니다.”
예린은 주문을 내려놓았다. 수프의 표면에는 얇은 김이 올랐다. 우석은 숟가락을 들기 전에 그릇을 살짝 흔들어 보았다. 식당차가 또 한 번 굽이치자 수프가 그릇 안에서 작은 원을 그렸다.
“이건 잘 버티네요.”
“아직 맛을 보기 전이잖아요.”
“그럼 먹어 보겠습니다.”
그가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었다. 예린은 괜히 그의 표정을 살폈다. 무표정한 얼굴이 조금 풀렸다.
“호박을 먼저 굽나요?”
“오븐에서 껍질째 구운 다음에요. 삶으면 수분이 많아져서 흔들릴 때 튑니다.”
“진동을 고려한 조리법이군요.”
“맛이 먼저고, 진동은 그 맛을 지키는 조건이에요.”
“좋은 설명이네요.”
우석은 두 숟가락을 더 먹고 수첩에 적으려 했다. 예린이 손을 들었다.
“제 메뉴에 관해 적어도 되지만, 식사하는 손님의 반응은 쓰지 마세요.”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제가 직접 먹어 본 사실만 적겠습니다.”
“그건 괜찮아요.”
예린은 주방으로 돌아왔다. 미정은 배식구에서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셰프님, 안전분석관이면 메뉴 평가하러 온 거 아닐까요?”
“평가든 아니든 손님이에요. 우린 음식 기준대로 내면 돼요.”
“매주 같은 자리에 앉는 이유는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한 것과 물어도 되는 건 달라.”
열차가 다음 역에 멈추기 직전, 종업원은 예약석을 다시 확인했다. 객실 사이로 승객이 이동하며 통로가 붐볐다. 우석은 자리를 비우지 않고 유리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직원 통로에 놓인 카트가 흔들리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예린은 주방에서 그걸 보고 문을 열었다. 카트를 멈추려 손을 뻗는 순간 열차가 감속했고, 손잡이가 그녀의 손목을 쳤다.
“괜찮아요?” 우석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앉아 계세요. 통로 확보해야 해요.”
그녀는 카트를 밀어 넣고 바퀴 잠금쇠를 밟았다. 미정이 카트를 잡아 주었다. 손목에는 빨갛게 자국이 남았다. 우석은 의자에 다시 앉았지만, 다급하게 직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도착한 승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직원 통로에서 카트가 움직였습니다. 주방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요.”
“감사합니다. 기록할게요.” 예린이 말했다.
우석은 그때서야 자리에 앉았다. 예린은 냉찜질 팩을 손목에 대고, 그가 호출을 누른 손을 보았다. 분석관은 승객을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본 승객으로 행동했다.
종착역까지 남은 시간은 삼십 분이었다. 예린은 식당차 이용을 마감하고 직원 통로에 진동 측정기를 놓을 자리를 확인했다. 그때 현자 매니저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예린을 불렀다.
“운영본부에서 공지가 왔어. 다음 달부터 이 노선 식당차를 한 칸 줄이는 안을 검토한대.”
“안전 검토 때문인가요?”
“이용률이 낮다는 보고가 먼저 올라왔어. 안전 분석은 명분일 수도 있고, 진짜 이유일 수도 있지.”
예린은 창가 6A를 바라봤다. 우석은 빈 수프 그릇을 치우고 승차권을 접어 수첩에 넣었다. 늘 같은 자리에 앉는 이유를 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는 업무와 사생활의 경계를 먼저 지켰다. 예린도 그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시범 검토에 협조하겠습니다. 다만 조리실 안은 촬영하지 않고, 손님 기록은 빼는 조건으로요.”
현자는 작게 웃었다. “그 조건을 본부가 받아들일까?”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가 안전을 증명하려고 손님을 자료로 쓰는 셈이니까요.”
종착역에 도착하자 우석은 6A 좌석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의 수첩에서 승차권 모서리가 조금 나와 있었다. 예린은 그가 두고 간 게 아닌지 잠시 망설이다 불렀다.
“민우석 씨.”
그는 돌아봤다. “네?”
“승차권 떨어졌어요.”
우석은 수첩을 열었다. 안쪽에 오래된 승차권이 하나 더 끼워져 있었다. 종이는 바랬고 모서리는 닳았다. “이건 제가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책갈피로 쓰는 줄 알았어요.”
“그것도 맞습니다.”
“매주 같은 자리도 안전 검토와 관계가 있나요?”
우석은 대답을 고르듯 잠시 침묵했다. “아직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언젠가 설명할게요.”
“그럼 다음 주에도 6A를 예약하겠네요.”
“아마도요.”
그는 종착역 플랫폼으로 나갔다. 예린은 그의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았다. 열차가 돌아서기 전, 창문에 비친 주방 조명이 길게 흔들렸다. 매주 같은 손님이 같은 자리에 앉는 일은 기록할 만한 패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유를 알고 싶다면, 그 이유를 말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식당차 정리 중 현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역역 제분소의 박 사장이었다. 호밀 수확이 늦어져 다음 주 빵 납품을 하루 미뤄 달라는 부탁이었다. “우린 시범 메뉴에 그 빵을 넣었잖아요.” 예린이 말했다.
“다른 재료로 바꾸면 안 될까? 본부가 재료 변동을 싫어해.”
“대체 빵에는 호두가 들어가요. 알레르기 표시를 다시 해야 합니다. 제분소는 수확 일정을 알려 준 거지 납품을 취소한 게 아니고요.”
그녀는 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안에 가능한 수량만 먼저 확인했다. 평소의 절반도 못 받겠지만, 예린은 메뉴를 줄여 예약 손님에게 먼저 알리기로 했다. 급하게 다른 재료를 넣어 표기를 놓치는 것보다 정직하게 수량을 제한하는 편이 나았다. 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역 납품자에게 연락했다.
“이런 사정도 노선을 줄이면 같이 사라지겠지.” 미정이 말했다.
예린은 대답 대신 주문표에 ‘수량 한정’이라고 덧붙였다. 음식은 기차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식당차 정리 중 현자가 손에 든 공지문을 예린에게 건넸다. 운영본부는 다음 주 시범 운행에서 조리차 진동을 측정하고, 기준을 넘으면 노선의 식당차를 즉시 폐쇄할 수 있다고 했다. 안전 분석 담당은 민우석. 검사 구간은 예린이 메뉴 재료를 공급받는 두 지역역 사이였다.
“셰프, 다음 주엔 수프를 바꿔야겠어.” 현자가 말했다.
예린은 공지문을 반으로 접었다. “아니요. 먼저 어디가 위험한지 확인하죠. 메뉴부터 포기하면 원인을 못 봐요.”
식당차 창밖으로 밤의 선로가 길게 뻗었다. 다음 목요일, 6A에는 다시 보리차가 놓일 예정이었다. 그 자리를 둘러싼 질문은 이제 메뉴가 아니라 노선 전체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