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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획으로 끝내는 서예 검결3화

세 획으로 끝내는 서예 검결

세 획으로 끝내는 서예 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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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문파가 금한 네 번째 획

문지안은 대련장에 들어가기 전, 자기 질문이 적힌 종이를 하린에게 맡겼다. ‘문지안의 부모 이름을 누가 지웠는가.’ 종이 아래에는 스승의 이름이 있었다. 백연은 어젯밤 대답하지 않았고, 오늘도 기록실에 나오지 않았다.

“잊으면 네가 먼저 읽어.” 지안이 말했다.

“읽고 나서 뭐라고 해야 하는데?”

“질문을 다시 해.”

하린은 종이를 접어 대련첩 안에 끼웠다. “장로가 허락한 건 시범이지 대련이 아니야. 네가 겨룰 상대가 없으면 획을 보여 주지 않아도 돼.”

“무혁이 돌아왔어.”

대련장 건너편에 진무혁이 서 있었다. 그의 왼발은 여전히 절뚝였지만, 칼을 든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양 장로는 마당 가운데 길게 벼루상을 놓고 붓과 먹물을 올렸다. 평소 수련용 붓보다 세 배는 굵은 붓이었다.

“오늘은 세 획의 마지막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겠다.” 장로가 말했다. “백연의 폐관 수련을 따르던 자들은 네 번째 획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문지안, 네가 그릴 수 있는 만큼 그려라.”

“제게 네 번째 획은 없습니다.”

“그럼 무혁이에게 대련을 청해 보지.”

무혁은 칼을 뽑지 않았다. “나는 대련을 신청하러 온 게 아니오.”

양 장로가 눈썹을 올렸다. “그럼 왜 왔나?”

“어제 제 이름을 썼지만 끝내지 못했소. 그 이름에 결문을 받으러 왔습니다.”

“결문은 승부가 난 뒤에 받는 거다.”

“승부가 나지 않았다고 기록됐습니다.”

하린이 대련첩을 펼쳐 장로에게 보였다. 그의 손이 책을 덮으려 했지만 하린은 종이 모서리를 붙잡았다. 양 장로는 손을 거두고 지안을 봤다.

“좋다. 두 사람이 겨루고, 패자는 결문을 따른다. 문지안이 이기면 네 번째 획을 기록하지 않겠다. 무혁이 이기면 지안은 시범을 마치고 문파의 기술을 공개한다.”

“그런 결문은 동의하지 않아요.” 지안이 말했다.

“왜? 네가 기술을 숨겼다고 의심받고 싶지 않나?”

“겨루기도 전에 결문을 정하셨으니까요. 대련이 아니라 명령이에요.”

“그럼 네가 결문을 정해라.”

“두 사람이 동의하지 않는 문장은 결문으로 적지 않겠습니다.”

양 장로가 무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받아들일 수 있나?”

무혁은 지안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바라봤다. “내가 이기면, 내 스승의 이름을 대련첩에 써 주시오. 그는 청매곡에서 패한 뒤 문파에서 쫓겨났소. 누구도 그의 제자라고 적지 않았소.”

“스승의 이름은?” 지안이 물었다.

“고운재.”

양 장로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린은 그 이름을 기록하려다 손을 멈췄다. 백연이 숨긴 대련첩 조각과 연결된 이름일 수 있었다. 지안은 무혁에게 물었다.

“내가 이기면요?”

“네가 정하시오.”

“네가 결문을 직접 쓰세요. 누가 대신 적지 않게.”

“좋소.”

“그리고 승패가 나더라도 네 번째 획은 강요해서 그리지 않아요.”

무혁은 양 장로를 보았다. “그 조건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소.”

장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련을 시작하라.”

무혁은 이번에도 칼을 뽑지 않고 목검을 들었다. 지안은 부러진 붓을 손에 쥐었다. 칼처럼 쓰기엔 짧고, 붓으로 쓰기엔 털이 반쯤 닳아 있었다. 그는 먼저 들어왔다. 목검이 지안의 어깨를 향해 곧게 뻗었다. 그녀는 가로획을 그어 공격의 길을 막았다.

목검은 멈추지 않았다. 무혁은 가로획이 완성되기 전에 붓의 중심을 겨눴다. 부러진 붓대가 손에서 흔들렸다. 지안은 몸을 비틀어 첫 공격을 피했고, 두 번째 검격은 세로획으로 아래를 쳐냈다. 흙이 둘 사이에서 튀었다.

“끝까지 그리시오!” 양 장로가 외쳤다. “세 획을 완성하면 다음이 보일 거다.”

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첫 번째 대련에서 그녀는 무혁의 이름을 지우지 않기 위해 멈췄다. 오늘은 멈추는 것이 무혁의 스승 이름을 지워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장로의 명령대로 네 번째 획을 그리면, 상대가 동의하지 않은 승부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무혁의 목검이 그녀의 붓대를 쳤다. 손바닥이 저렸고, 부러진 붓이 바닥에 떨어졌다. 무혁은 목검을 목에 대지 않고 두 걸음 물러섰다.

“붓을 주우시오.”

“그걸 주우면 대련을 계속하겠다는 뜻이야?”

“당신이 정한 조건을 지키라는 뜻이오.”

지안은 허리를 굽혀 붓을 주웠다. 그 순간 양 장로가 벼루상에서 굵은 붓을 들었다. “그만하면 됐다. 제자가 못 하면 스승이 보이면 되지.”

그는 먹물을 찍어 목판 위에 네 번째 획을 그으려 했다. 백연이 대련장 입구에 나타났다. 그의 오른손은 소매에 감춰져 있었다. “양경석, 그 붓을 놓으시오.”

“자네가 감춰 온 기술을 문파에 돌려주려는 거요.”

“그건 기술이 아니오.”

“그럼 왜 기록에서 지웠지?”

백연은 대련장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지웠소.”

하린은 대련첩의 페이지를 넘겼다. 고운재의 이름이 적힌 줄 옆에 백연의 서명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제자가 먼저 쓴 이름을 지우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 양 장로가 적은 공식 기록에는 고운재가 패배하고 문파를 떠났다고만 쓰여 있었다.

무혁은 백연을 바라봤다. “그게 당신이 스승님을 기록하지 않은 이유요?”

“내가 기록했네. 하지만 그 기록이 대련첩에서 사라졌어.”

“누가 지웠소?”

백연은 장로를 보지 않았다. “그때 내가 지웠네. 고운재가 패하고도 자기 이름을 적었어. 양 장로는 그 이름이 남으면 문파에 다시 도전할 거라 했지. 난 그를 막으려고 제자의 이름을 지웠네.”

무혁의 손에서 목검이 내려갔다. “그럼 스승님이 청매곡을 떠난 건 패배 때문이 아니었군.”

“그분은 네가 자기 이름을 기억할 거라고 믿었어.”

“그분은 죽었소.”

“알고 있네.”

“그럼 이제 와서 기록한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백연은 답을 찾지 못했다. 무혁은 그에게 다가가 목검을 바닥에 세웠다. “그 이름을 내 결문에 적으시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잘못을 죽은 스승의 이름 뒤에 숨기지는 마시오.”

백연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겠네.”

지안은 붓을 들고 대련의 세 번째 점획을 그리지 않았다. 대신 모래바닥에 작은 점 하나를 찍었다. 붓끝이 지면에 닿는 순간, 무혁의 목검이 손에서 조금 미끄러졌다. 힘의 방향이 바뀌었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점획은 공격을 막는 대신 둘 사이에 멈춤을 만들었다.

“지금 네가 한 건 뭐지?” 양 장로가 물었다.

“결문을 기다리는 획이에요.”

“그건 검결이 아니다.”

“그럼 오늘부터 대련첩에 그렇게 적으세요.”

하린은 붓을 들었다. “결문을 기다리는 획. 문지안이 새로 정한 이름으로 기록하겠습니다.”

양 장로가 그녀를 제지하려 했지만, 무혁이 먼저 바닥에 앉아 자기 이름을 썼다. 이번에는 발로 지우지 않았다. 이름 옆에 ‘고운재의 제자’라고 덧붙였다. 붓이 없어서 손가락으로 그은 글씨는 삐뚤었지만 지울 수 없었다.

“이제 결문을 말하시오.” 지안이 말했다.

무혁은 목검을 내려놓았다. “나는 오늘 네 번째 획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내 스승의 이름을 지우지 말아라.”

“그 결문을 받겠습니다.”

“그럼 네 결문은?”

지안은 잠시 생각했다. “오늘 대련은 무승부로 남기고,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적습니다. 고운재의 이름도요.”

무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린이 그 문장을 대련첩에 옮겼다. 백연은 목판을 내려다보았고, 양 장로는 반대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았다.

대련이 끝난 뒤 지안은 손에 쥔 붓을 바라봤다. 오늘 쓴 문장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련첩에 적힌 결문을 읽자 ‘오늘 대련은 무승부로 남긴다’는 문장이 낯설었다. 자기 말인데도 누군가 남겨 준 문장처럼 보였다.

“잊기 시작했어?” 하린이 물었다.

“아직은 아니야. 다만 내 문장인데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럼 네가 다시 써.”

지안은 손가락으로 대련첩의 여백을 짚었다. 붓을 들지 않고, 아직은 쓰지 않았다.

무혁이 두 사람 곁에 다가왔다. “네 이름을 적어도 되겠소?”

“왜요?”

“오늘 네가 정한 결문을 기억하기 위해.”

“내 문장을 당신이 가져가면, 제가 잊어도 남겠네요.”

“기억을 대신할 생각은 없소. 잊었다고 해서 네 선택까지 사라지면 안 되니까.”

지안은 대련첩 옆의 빈 종이를 꺼냈다. “그럼 내가 쓸게요. 당신은 옆에 이름만 적어요.”

그녀는 천천히 ‘문지안은 대련을 멈추고 결문을 기다렸다’고 썼다. 첫 글자의 획은 반듯했지만, 마지막 글자는 붓끝이 갈라져 흐릿했다. 무혁은 그 옆에 ‘진무혁, 고운재의 제자’라고 적었다. 두 글씨는 나란히 있었고, 어느 쪽도 상대의 자리를 덮지 않았다.

지안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작은 벼루로 모서리를 눌렀다. 오늘 자신이 쓴 문장이 낯설어져도, 이 기록은 누가 누구 대신 쓰지 않았는지 보여 줄 터였다.

양 장로가 기록실로 가는 길을 막았다. “백연, 네가 옛 기록을 조작한 사실을 장로회에 보고하겠다.”

“보고하시오.”

“문지안도 그 기록을 봤어. 네 부모 이름이 지워진 걸 알고 있겠지.”

지안은 장로를 돌아봤다. “제 부모 이름을 지운 사람이 스승님인지 장로님인지 묻겠습니다.”

양 장로는 대답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가 떠난 뒤 백연은 지안에게 말했다. “네가 네 번째 획을 그리지 않은 건 내가 가르친 것보다 옳았을지 모르겠구나.”

“그 말도 기록해 둘까요?”

“그래. 이번에는 네가 잊지 않도록.”

하린이 대련첩을 펼쳤다. 그녀는 스승의 말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기록했다. 종이 아래에는 고운재의 이름과 문지안의 결문이 나란히 남았다. 하지만 대련첩 뒷장에 새로 드러난 흔적은 다른 이름을 가리켰다. 칼로 긁힌 문장 끝에 ‘서약을 받은 자, 양경석’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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