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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영애의 새벽 찻집4화

악역 영애의 새벽 찻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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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지우는 데 필요한 용기

이벨라는 어머니의 찻잔을 뒤집은 채 내려놓았다. 작은 표식 옆에 유리 가루가 붙어 있었다. 엄지로 털어 내자 창문을 막던 미라가 손을 뻗었다.

“다치시면 차도 못 따라요.”

미라는 젖은 천으로 잔을 닦았다. 거리에서는 누군가 마지막으로 악역이라는 말을 외쳤다. 발소리가 멀어져도 깨진 창으로 바람은 계속 들어왔다.

레온이 초대장을 펼쳤다.

“경호원이 먼저 길을 확인하게 하겠습니다.”

“어느 길을요?”

쪽지에는 내일 새벽이라는 시간만 있었다. 이벨라는 뒤집어서도 읽었다. 혼자 오라는 명령은 있었지만 갈 곳은 없었다.

“이걸 쓴 사람은 제가 장소를 안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녀는 찻방 안쪽 문을 보았다. 낮은 탁자 세 개와 차를 우리는 작은 부엌. 모르는 장소가 기억 속에서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표식도 길을 알려 주지 않았다.

“새벽에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누가 오면 조건을 말하겠어요.”

“나는 어디에 있으면 됩니까?”

이벨라는 미라를 보았다. 미라가 빗자루 끝으로 큰 유리 조각을 밀어 냈다.

“저는 안에 남을게요. 아가씨 혼자 두고 싶지 않아요.”

“그럼 전하께서는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손님이 나가도 따라가지 마시고요.”

레온은 경호원들에게 할 말을 종이에 적었다. 문을 지키되 방문자의 이름을 묻거나 뒤쫓지 말 것. 미라는 그가 종이를 접기 전에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이벨라는 얇은 천을 깨진 창틀에 걸었다. 처음에는 천이 자꾸 미끄러졌다. 레온이 한쪽 끝을 잡아 주자 그녀는 반대쪽을 고정할 수 있었다. 둘은 천이 바람을 견디는지 잠깐 기다렸다.

이벨라는 바닥에서 주운 돌을 문 옆에 놓았다. 깨진 찻잔은 천에 싸서 따로 치웠다. 손님이 앉을 탁자만은 비워 두었다.

미라가 남은 잔을 세었다. 이벨라는 신문 기사를 공문 상자에 넣고 보리차 통을 꺼냈다. 새벽에 문을 여는 일부터 다시 해야 했다.


새벽에 세 번의 두드림이 들렸다.

이벨라는 빗장을 풀기 전에 문틈으로 말했다.

“제 조수가 함께 있어요. 전하는 문밖에 계십니다. 들어오실지는 그걸 알고 결정하세요.”

검은 망토를 쓴 여성이 문턱에서 물러났다. 그녀는 길 양쪽을 살핀 뒤 다시 가까이 왔다.

“어젯밤 쪽지는 제가 넣었어요. 혼자 계셔야 한다고 썼는데요.”

“그 조건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만날 장소도 없었어요.”

“이 찻방으로 알아들으실 줄 알았어요.”

여성은 문턱을 넘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이벨라는 비켜 서지 않았다.

“미라가 함께 있어도 괜찮으시면 문을 열겠습니다.”

미라가 이벨라 뒤에서 등불을 들었다. 불빛이 여성의 입가와 장갑을 비췄다. 여성은 미라를 보자 고개를 숙였다.

“네가 여기 있었구나.”

“이름을 부르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 이름도 밖에서는 부르지 마세요.”

여성은 미라를 한 번 더 본 뒤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왔다. 문이 닫힌 뒤에야 망토를 벗었다.

“세리나예요. 왕실 문서고에서 장부를 베끼던 사람이에요.”

미라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벨라는 미라에게서 들은 이름을 그제야 본인의 목소리로 확인했다.

이벨라는 이름을 종이에 적지 않았다. 물을 데우는 동안 세리나는 창을 막은 천을 보았다. 바닥에 남은 작은 유리 조각이 등불을 받아 반짝였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됐나요?”

“누가 돌을 던졌는지는 아직 몰라요.”

보리차를 내놓자 세리나는 작은 꾸러미를 풀었다. 회색 천 안에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한쪽 가장자리가 불에 그을렸고 안쪽에는 봉제 구멍이 남아 있었다.

“원본이에요.”

“쪽지에서는 장부 원본을 보여 주겠다고 하셨어요. 보여 주실 수 있는 게 이 한 장인가요?”

세리나의 손이 종이 위로 올라갔다.

“한 장을 떼어 냈어요. 책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그걸 그대로 썼으면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벨라는 종이를 잡으려던 손을 거뒀다.

“처음 말한 기록부터 없애 주세요.”

세리나가 찻잔을 밀어 놓았다.

“제가 쓰던 문서는 제출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신문에는 누가 훔쳤다는 말이 나왔어요. 이름이 없는 기록이라도 누가 썼는지 찾아낼 수 있잖아요.”

“그 문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도 기록하길 바라세요?”

“아니요.”

이벨라는 빈 종이를 접어 치웠다. 세리나는 차를 마시지 않고 기록 상자만 보았다.

“그 기록을 없애 주시면 이걸 드릴게요.”


이벨라는 손님 기록 상자를 가져왔다. 공문과 신문 기사가 든 상자는 그대로 두었다. 세리나는 두 상자가 떨어져 있는 것을 오래 바라봤다.

봉인을 떼자 미라가 난로 앞의 재받이를 비웠다. 이벨라는 첫 기록을 펼쳤다. 군량 숫자를 바꾼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말과 회색 표지의 장부가 서쪽 기록실로 옮겨졌다는 진술이 적혀 있었다.

제출을 앞둔 문서 때문에 누군가 반역자로 몰릴 수 있다는 말도 남아 있었다. 그날 손님이 직접 읽고 확인한 문장들이었다.

“이 기록이 맞나요?”

세리나는 종이의 모서리를 잡았다. 글을 읽는 동안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맞아요. 다른 곳에 베껴 두었나요?”

“없어요. 기억하는 내용을 다시 써서 조사에 쓰지도 않겠습니다.”

이벨라는 접힌 자국을 눌렀다. 이 기록이 있으면 적어도 어느 시점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불에 넣으면 손님이 처음 확인한 문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상자에 붙였던 날짜표도 떼어 냈다. 나중에 필요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손가락을 붙들었다. 손님은 그 필요를 위해 종이를 맡긴 게 아니었다.

그녀는 세리나의 꾸러미를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낮췄다.

“이걸 없애는 데 장부는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면 왜……”

“처음부터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지 말라고 하셨어요. 이제 보관도 원치 않으시는 거죠?”

세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벨라는 기록지를 난로에 넣었다. 종이 끝이 갈색으로 말리더니 서쪽 기록실이라는 글자가 검게 변했다. 세리나가 부지깽이를 받아 종이를 안쪽으로 밀었다. 마지막 모서리까지 타는 동안 아무도 찻잔을 들지 않았다.

미라가 부지깽이를 제자리에 세웠다.

“이제 저 상자 안에는 없어요.”

세리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잔이 조금 떨렸다. 이벨라는 난로를 보다가 상자를 닫았다. 가벼워진 상자가 오히려 무겁게 느껴졌다.

세리나가 꾸러미를 다시 풀었다.

“가져가실 필요는 없어요. 여기서 봐 주세요.”

종이에는 짧은 항목들이 줄지어 있었다. 발송 번호, 날짜, 수령 장소. 이벨라는 잉크가 그을린 부분을 피해서 읽다가 자기 이름 앞에서 멈췄다.

‘이벨라. 새벽 찻방 인수.’

옆에는 간판과 같은 표식이 찍혀 있었다. 이벨라는 공문 상자에서 파혼 공문만 꺼내 날짜를 나란히 놓았다. 낱장에 적힌 날짜는 그보다 하루 전이었다.

“저는 이걸 받은 적이 없어요.”

미라가 이벨라 곁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녀도 같은 줄을 읽었다.

“아가씨가 찻집을 열기 전이네요.”

“그때도 어머니의 찻방은 있었어. 날짜만으로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어.”

이벨라는 자기 이름이 적힌 줄을 손끝으로 짚었다.

“하지만 제가 인수했다는 말은 제 기억과 달라요. 어느 쪽 기록이 잘못됐는지 확인해야겠어요.”

이벨라는 가장자리의 봉제 구멍을 보았다. 어떤 책에서 떨어진 종이인지는 알 수 없었다. 표식이 같다는 이유로 명령서를 믿지 않았듯 이것도 믿을 수 없었다.

“언제 얻으셨나요?”

“찻집에 다녀간 뒤예요. 어디서 얻었는지는 아직 말할 수 없어요.”

이벨라는 질문을 멈췄다. 세리나가 종이를 잡고 있던 손을 조금 풀었다.


이벨라는 손님 앞에 종이 한 장을 놓았다.

“다른 기록과 맞춰 보면 이 날짜에 무엇을 보냈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허락하시는 항목만 적겠습니다.”

“제 이름을 조사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있어야 해요.”

미라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공개 기록에 적힌 약속은 있어요. 이번에도 지키실지는 제가 직접 여쭤볼게요.”

그녀는 문 쪽을 보았다. 왕실 사람에게 그 말을 들려주는 것은 아직 두려웠다. 그래도 등불을 들고 현관으로 갔다.

이벨라가 발송 번호에 펜 끝을 댔다. 서-17. 세리나는 번호와 날짜를 허락했다. 다음에는 수령 장소인 새벽 찻방을 적게 했다. 이벨라의 이름과 표식은 베끼지 못하게 했다.

“전하와 독립 기록관이 이 세 가지를 발송대장과 맞춰 보는 것까지만이에요. 심리에 내거나 신문에 보이는 건 안 돼요.”

“결과를 받아도 공개 전에 다시 여쭙겠습니다.”

이벨라는 허락받은 내용을 적어 읽어 주었다. 세리나는 한 문장을 고쳤다. 다른 문서와 대조한다는 넓은 표현 대신 발송대장과 대조한다고 쓰게 했다.

미라가 문을 조금 열었다.

“전하. 손님은 들어오시길 원하지 않으세요.”

경호원의 시선이 미라에게 닿았다. 미라는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알겠습니다.”

레온은 물러서서 이벨라가 건네는 세 항목을 받았다. 그는 문틈 안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회계실 발송대장에 이 번호가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독립 기록관이 함께 원본을 보게 하죠.”

“바로 열 수 있나요?”

“봉인된 기록이라 열람 요청이 필요합니다. 결과는 공개하지 않고 당신에게 전하겠습니다.”

“손님에 관한 질문은요?”

문 안에서 미라가 물었다.

“하지 않겠습니다. 이 세 항목의 대조가 허락의 전부군요.”

그는 종이를 접었다. 이벨라는 초대장을 쓴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문이 닫힌 뒤 미라가 손을 폈다. 손바닥에 손잡이 모양이 붉게 남아 있었다.

“싫다고 했는데 멈췄어요.”

미라가 자기 손을 보며 말했다. 세리나는 그 말에 눈을 들었다.

찻잔이 비어 있었다. 이벨라는 물을 더 부어도 되는지 물었다. 세리나가 잔을 내밀었다. 그녀는 장부 낱장을 천 안에 넣고 작은 종이를 하나 더 꺼냈다.

낱장보다 오래된 종이였다. 끝이 손가락에 닳아 둥글었고 접힌 자리에는 색이 빠져 있었다. 같은 표식 아래에 찻방 보관증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제가 왜 여기로 왔는지는 이것 때문이에요.”

이벨라는 어머니의 찻잔을 탁자에 놓았다. 세리나가 보관증을 나란히 댔다. 종이의 표식과 잔의 표식은 같았다.

보관증에는 ‘맡긴 것은 맡긴 이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가 이걸 써 주셨나요?”

세리나는 종이 아래쪽을 손으로 덮었다. 이벨라는 그 손을 치우지 않았다.

“누가 맡긴 물건인지는 말할 수 없어요. 저는 그 물건을 돌려받으러 왔어요.”

이벨라는 기록 상자가 놓인 선반을 보았다. 그 뒤에는 찻방을 정리할 때 손대지 않은 어머니의 찬장이 있었다.

이벨라는 찬장 쪽으로 옮기던 시선을 거뒀다. 보관증이 이곳에서 발급된 것인지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세리나를 보았다.

“무엇을 맡기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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