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는 내 일기를 읽는다

1화: 일기장이 옮겨 간 밤
서린은 자기 일기장을 책상 서랍에서 찾지 못했다. 어젯밤 분명히 잠금쇠를 채우고 열쇠를 베개 밑에 넣었다. 오늘 아침 서랍 안에는 강의 노트와 낡은 장갑만 있었다. 그녀는 기숙사 방을 뒤집어 놓지 않으려고, 먼저 침대 아래와 가방 안을 확인했다.
“뭘 잃어버렸어?” 룸메이트 혜주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면 방을 세 번 뒤지지 않지.”
서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기장은 가족에게 받은 물건이었다. 가죽 표지는 닳았고, 첫 장에는 이름도 날짜도 없었다. 그녀가 글을 쓸 때만 하루에 한 문장이 새로 나타났다. 그 문장은 다음 날 일어날 일의 일부를 암시했다.
처음 그 문장을 발견했을 때는 시험에 관한 것이었다. ‘잉크가 마르기 전에 답안지를 뒤집지 마.’ 다음 날 시험 중 서기가 잉크를 쏟았고, 서린은 답안지를 늦게 제출해 문제를 피했다. 그 뒤 일기는 매일 짧은 문장을 남겼다. 하지만 문장은 언제나 모호했다.
어젯밤 일기에는 ‘왕관은 닫힌 책상 안에서 숨을 쉰다’고 쓰여 있었다. 서린은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 책상 서랍은 비어 있었다.
수업 종이 울리자 서린은 일기장을 찾는 일을 멈췄다. 왕립 학교의 계승 정책 강의는 결석하면 장학금에 불이익이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들고 강의실로 향했다. 복도에는 황태자 이안과 수행 학생들이 있었다. 이안은 강의실 문 앞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서린 학생, 잠시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수업 뒤에요. 지금은 출석부터 해야 합니다.”
“제 서재에서 학생의 일기장을 찾았습니다.”
서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게 왜 황태자 전하의 서재에 있죠?”
“저도 그걸 묻고 싶습니다.”
이안은 일기장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녀는 서재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어젯밤 일기장이 사라진 뒤부터 몇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이 움직였다는 건 분명했다.
“전하께서는 내용을 읽으셨나요?”
“첫 장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장에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문장이었나요?”
“왕관은 닫힌 책상 안에서 숨을 쉰다.”
서린은 얼굴이 굳었다. 일기 문장을 다른 사람이 읽은 적은 없었다. 책은 그녀가 쓰지 않으면 아무 글자도 보여 주지 않았다. 이안은 서재에서 글을 읽었다고 했고, 그 문장은 전날 밤 자기 일기에 나타난 문장과 같았다.
“전하께서는 책을 읽을 수 있군요.”
“당신이 쓰지 않은 문장을 읽었습니다.”
“그럼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어요. 제 물건입니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왕실 서재에 나타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건 저도 몰라요.”
이안은 그녀에게 점심 뒤 서재로 오라고 했다. 서린은 그 요청에 동의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장학 담당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 뒤에는요?”
“시간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안은 그녀의 대답을 압박하지 않았다. 대신 일기장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 말은 적어도 왕실이 책을 압수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강의가 시작되자 교수는 계승 시험의 주제를 설명했다. 황태자는 다음 주 공개 수업에서 겨울 곡물 배급 계획을 발표해야 했다. 학생들은 각자 배급표를 계산해 토론에 참여했다. 서린은 숫자를 대조하다 강의자료에서 수량 하나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북부의 쌀 배급량이 원본 수치보다 크게 줄어 있었다.
혜주가 책상 아래로 쪽지를 밀었다. ‘이 수치 어제 학생회 게시판과 달라.’
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립 학교의 수업 자료는 궁정 문서를 기반으로 했다. 숫자가 틀렸다면 시험이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정책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수업 뒤 장학 담당자는 서린의 등록금 연장 신청을 반려했다. 필요한 추천서에 귀족 후원자의 도장이 빠졌다는 이유였다. 서린은 제출할 때 도장을 확인했지만, 담당자는 신청서에 없다고 했다. 그녀는 사본을 요청했다. 담당자는 원본만 보관한다며 거절했다.
“제출 확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규정에 없습니다.”
서린은 그 말도 기록했다. 학교에는 서류를 제출한 학생이 증거를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혜주는 학생회에 공식 항의하자고 했지만, 서린은 일기장 문제를 먼저 해결하겠다고 했다.
점심 뒤 이안의 서재를 찾았다. 방에는 황태자의 보좌관과 경비가 한 명씩 있었다. 서린은 문 앞에서 동석자를 확인하고, 일기장을 받을 때까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안은 보좌관을 내보냈다. 경비는 문 밖에 남았다.
책상 위에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표지는 서린이 기억하는 대로 닳아 있었고, 잠금쇠는 열려 있었다. 이안은 손대지 않았다고 했다. 서린은 책을 열어 첫 장을 확인했다. 아무 글자도 없었다. 두 번째 장에는 어젯밤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글을 읽으셨나요?”
“그렇습니다.”
“책을 들고 있었나요?”
“책상 서랍 안에 있었습니다.”
서린은 어젯밤 문장의 뜻을 다시 생각했다. ‘왕관은 닫힌 책상 안에서 숨을 쉰다.’ 책이 황태자의 닫힌 서랍 안에서 발견됐다는 말은 아니었다. 왕관이 서랍 안에 있다는 예언일 수도 있었다.
이안은 책상 아래를 가리켰다. 서랍은 잠겨 있었고, 황태자 전용 문서함으로 쓰고 있었다. 서린은 열쇠를 요청했다. 이안은 열쇠를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열어도 되나요?”
“당신의 책이 여기서 발견됐으니 확인할 권리가 있습니다.”
서랍 안에는 왕관이 없었다. 대신 오래된 시험 답안과 황태자의 어린 시절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서린은 그 문서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작은 금속 상자 하나가 서랍 가장 안쪽에 있었다. 이안은 상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열쇠가 없다고 했다.
서린은 일기장에 손을 얹었다. 페이지가 스스로 넘어가며 새 문장이 나타났다. ‘작은 열쇠는 큰 이름 아래 묻혀 있다.’
이안은 그 문장을 읽고 표정이 굳었다. “이건 내 서재에서 생긴 문장입니다.”
“아니요. 제가 본 문장이에요.”
“누가 쓰고 있습니까?”
“제가 아니에요.”
서린은 손을 떼었다. 일기장이 스스로 문장을 쓰는 것은 처음이었다. ‘큰 이름’은 황태자의 이름인지, 서재 안의 명패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서재의 책장과 책상 밑을 확인했다. 금속 상자를 억지로 열지는 않았다.
이안은 자신의 어린 시절 일기장을 꺼냈다. 첫 페이지에는 이름이 지워진 흔적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작은 열쇠가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서린은 열쇠를 떼기 전에 황태자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속 상자 안에는 왕립 학교 계승 시험의 원본 배급표가 들어 있었다. 강의 자료와 북부 쌀 수치가 달랐다. 문서 아래에는 이안의 아버지인 황제의 서명이 아니라, 황태자 이안의 어린 시절 서명이 있었다.
“이걸 왜 전하의 일기장과 함께 보관했죠?”
“모릅니다.”
“이 서명은 전하가 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당시 저는 글씨를 쓰지 못했습니다.”
서린은 서명을 스케치하고 문서번호를 기록했다. 일기장 문장은 한 번 더 바뀌었다. ‘오늘 밤, 이름 없는 사람이 책을 닫는다.’
이안은 그 문장을 보고 서재 문을 잠갔다. 그는 서린에게 일기장을 두고 가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직접 보관할지, 가져갈지 선택하라고 했다.
서린은 일기장을 품에 넣었다. “제 물건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원본 배급표는 왕실 문서라 가져갈 수 없어요. 그 대신 사본을 만들고, 발견 시각과 동석자를 함께 기록하겠습니다.”
이안은 동의했다. 혜주가 수업 자료의 오류를 확인해 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린은 그녀의 도움을 요청하되, 황태자의 일기장과 계승 문서까지 알릴지는 혜주가 직접 선택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밤 일기장은 서린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잠금쇠는 닫혀 있었고, 열쇠는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책은 다시 사라졌다.
이번에는 황태자 서재가 아니라 학교 도서관의 반납함 안에서 발견됐다. 첫 장에 새로운 문장이 적혀 있었다. ‘황태자는 아직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서린은 일기장을 다시 잠금 서랍에 넣었다. 그날 밤 자기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책상 서랍이 방 한가운데서 낯설게 보였다. 그녀는 열쇠를 목에 걸고, 손바닥을 이불 아래 숨겼다. 일기장이 옮겨 간 순간을 본 사람은 없었다. 이안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고, 책이 정말로 움직였을 수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혜주는 서린의 목에서 열쇠를 발견했다. “네가 뭘 숨기든 말하라고 하진 않을게. 다만 누군가 방에 들어왔다면 경비에 말해야 해.”
“도둑은 아니야.”
“그럼 뭐야?”
서린은 잠시 생각했다. “일기장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갔어.”
혜주는 웃지 않았다. 서린은 일기장을 보여 주지는 않았지만, 하루 한 문장이 다음 날 일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혜주는 일기를 비밀리에 읽으려는 사람보다 더 걱정되는 건, 학교가 그 능력을 알게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황태자에게도 말했어?”
“아직은.”
“그가 이미 읽었다고 했잖아.”
“그 문장이 예언인지, 책이 쓴 건지 확인해야 해.”
혜주는 말없이 서린 옆에 앉았다. 그녀는 비밀을 당장 풀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서린이 원하면 자신이 함께 기록을 지켜 주겠다고 했다. 서린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날부터 일기장 문장과 실제 사건은 서로 다른 장부에 적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