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경맥의 명의

2화: 진료 지도에 없는 점
배수구 덮개는 세 손가락이 들어온 뒤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안쪽 사람이 기다리는 듯했다. 백겸은 의자를 밀어 덮개를 눌렀고, 담휘는 환자들에게 조용히 방 안쪽으로 물러나 달라고 했다. 누군가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자 윤서가 손을 내밀었다. 환자는 그의 팔을 붙잡고 한 걸음 옮겼다.
하란은 옛 배수로 지도를 바닥에 펼쳤다. 덮개 아래에는 통로가 하나뿐이었고, 그 통로는 문서고로 이어졌다. 공격자가 안으로 들어오면 환자보다 증언 기록을 먼저 찾을 것이었다. 담휘는 환자들이 각자 어디에 머물지 다시 확인했다. 고수는 병상에, 다른 두 명은 치료실 안쪽에 남기로 했다. 대피를 택한 환자는 윤서와 함께 뒷문으로 이동했다.
백겸은 의자를 놓은 뒤 문 앞에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이 미끼가 될 테니 환자를 먼저 옮기라고 했다. 담휘는 그 선택이 환자에게도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겸은 머뭇거리다 자신의 왼쪽 옆구리가 아프다고 털어놨다. 오래된 상처가 다시 벌어지고 있었다. 그가 남으면 버티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럼 밖으로 나가 치료를 받아요.”
“밖에 나가면 그들이 날 알아볼 거요.”
“안에 남으면 당신이 쓰러질 수 있어요.”
백겸은 어느 쪽도 쉽게 고르지 못했다. 그는 문을 지키는 일이 자신의 죄를 갚는다고 여겼다. 담휘는 그에게 죄를 갚는 방식은 자신이 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겸은 결국 치료소 안에 남되, 경비 역할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환자와 같은 자리에 앉아 상처를 드러냈다.
담휘는 그의 옆구리 상처를 살폈다. 흉터 세 점은 다른 환자들의 흔적과 같은 방향이었다. 백겸은 그때 자신의 첫 공격에 가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관문 진법의 첫 움직임을 만들고, 적의 팔을 꺾어 경맥을 끊었다. 하지만 그 다음 공격에서 자신도 같은 부상을 입었다.
“내가 누구를 다치게 했는지 기록에 적어도 되오.”
“당신의 허락은 받았어요. 하지만 다른 환자들의 이름은 당신이 정할 수 없습니다.”
백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담휘는 그의 상처에 침을 놓았다. 그는 통증을 참으려 했으나, 침이 깊어지자 손가락이 굳었다. 담휘는 즉시 손을 멈췄다. 백겸은 계속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호흡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이 윤서는 대피한 환자와 뒷골목에서 기다렸다. 그는 환자의 상처가 어느 위치에서 시작됐는지 다시 그렸다. 점은 기존 진료 지도에 찍힌 위치와 조금 달랐다. 그 차이를 알아챈 뒤 윤서는 담휘에게 전하려 했지만, 손이 떨려 글씨를 잘 쓰지 못했다.
환자가 자신의 상처를 기록해도 좋다고 확인하자, 윤서는 새로운 점을 지도에 표시했다. 점들은 기존 진법의 선을 끊고 산길 주민들이 다니는 우물길로 이어졌다. 진법의 목표는 관문이 아니라, 주민을 특정한 길로 몰아 전투를 일으키는 것일 수 있었다.
“왜 처음에 말하지 않았어?” 담휘가 물었다.
“제가 틀릴까 봐요. 그리고 백겸 선배가 공격에 가담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럼 네가 틀릴 수도 있다고 함께 확인했어야지.”
윤서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알아챈 걸 말하지 않은 동안 공격자들은 다음 단계를 준비했을 수 있었다. 그는 담휘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고 싶었다. 담휘는 그가 관찰한 사실을 적되, 해석과 분리해 두라고 했다.
배수구에서 다시 돌이 울렸다. 이번에는 안쪽 사람보다 바깥의 누군가가 신호를 보냈다. 하란은 손가락을 세며 진동의 간격을 확인했다. 그녀는 신호가 문서고를 향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누구의 신호인지 알아요?” 백겸이 물었다.
하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문파 장로들이 쓰는 암호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개하면 자신이 진법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그녀는 지금까지 침묵을 중립이라고 부르며 시간을 벌었다.
“내가 직접 가겠어요.” 하란이 말했다.
담휘는 그녀에게 왜 이제 움직이는지 물었다. 하란은 주민들을 보호하고 싶었지만, 문파가 계획을 실행할 때마다 결과를 모른 척했다고 했다. “내가 말하면 문파가 무너질까 봐 두려웠어요.”
“문파가 무너질지 결정하는 건 당신이 아니에요.”
하란은 담휘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문서고에 가되, 자신의 발언은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했다. 백겸은 그 길에 동행하려 했다. 하지만 담휘는 환자와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백겸은 환자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도망치는 것보다 어려운 선택임을 받아들였다.
문서고까지 가는 길에는 부상자가 누워 있었다. 그는 손바닥에 세 점의 피멍이 있었고, 어느 문파 소속인지 알 수 없었다. 하란이 다가가자 그는 그녀를 알아보고 “장주가 배신자를 숨긴다”고 외쳤다. 그는 하란이 진법을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하란은 부인하지 않았다. “내가 알면서 막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을 치료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부상자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윤서는 치료를 강요하지 않고, 담휘에게 먼저 상태를 알렸다. 담휘는 문서고로 가기 전 부상자를 치료하겠다고 결정했다. 하란은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그녀가 책임을 지는 첫 행동이었다.
환자는 통증이 심해 손을 대지 말라고 했다. 담휘는 그가 원하면 응급 처치만 하고 다른 의원을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하란을 방 밖으로 내보내는 조건으로 치료를 허락했다. 하란은 말없이 문밖에 섰다.
담휘는 환자의 손을 살피며 상처가 자신들이 추적하던 진법의 마지막 점임을 확인했다. 그는 공격자가 아니라 도망치던 주민이었다. 부상은 돌에 부딪힌 흔적과 검에 스친 자국이 함께 있었다. 진법은 사람을 포위해 특정 통로로 밀어넣도록 설계되었다.
“문서고로 가면 다음 공격 지점이 나옵니다.” 윤서가 말했다.
담휘는 환자가 안정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약을 먹인 뒤 손가락이 저리는지 확인하고, 잠시 기다렸다. 환자는 손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무기를 잡지 못했다. 그는 문서고로 갈 사람에게 자신이 본 길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의 증언은 치료 기록에 이름 없이 남았다. 그는 기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가족 이름은 빠졌는지 직접 살폈다. 담휘는 그에게 공개할 범위를 다시 물었다. “진법의 위치는 알려도 좋습니다. 누가 어디로 갔는지는 빼 주세요.”
그들은 문서고로 향했다. 하란은 앞장서지 않았다. 그녀는 길을 안내하되, 자신이 알고 있던 명령을 숨기지 않겠다고 했다. 문 앞에는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 서류를 태우고 있었다.
문서고 안에서 윤서는 산길 지도를 찾았다. 그 지도에는 세 환자의 상처 위치가 붉은 점으로 표시돼 있었다. 마지막 점은 치료소의 위치였다. 그러나 그 위에 누군가 새로운 점을 덧그려 놓았다. 주민들이 피난한 우물길이었다.
진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격자들이 우물에 모이면 주민들은 관문 쪽으로 몰릴 수 있었다. 담휘는 환자와 기록을 들고 밖으로 나갈지, 불을 끄고 지도 원본을 지킬지 선택해야 했다. 하란이 그녀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무엇을 먼저 지키겠습니까?”
담휘는 환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문서고를 나섰다. 그들의 선택을 듣기 전에는 지도도 증언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치료소 밖에는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우물길로 피난한 가족들이 누가 문서고에 있는지 확인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소년은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윤서에게 달려왔다. 윤서는 환자의 이름을 묻고, 들은 정보를 천천히 설명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무기를 들고 갔다는 말을 듣자 도망치는 대신 치료소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하란은 아이를 막으려 했지만, 담휘가 먼저 소년의 선택을 확인했다. 그는 위험을 알고 있었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 했다. 담휘는 그를 문서고까지 데려가지 않고, 안전한 대기실에 머물도록 제안했다. 소년은 처음엔 고집을 부리다가 아버지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다는 말에 동의했다.
그들의 길은 문서고로 이어졌지만, 전쟁의 기록을 구하는 동안 현재의 사람들을 잊을 수 없었다. 담휘는 환자들이 있는 방에 윤서를 남기고, 백겸에게는 문 앞을 지키되 무기를 쓰지 말라고 했다. 백겸은 자신이 공격에 가담한 사람이라 방어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자격을 정하는 건 내가 아닙니다. 다만 환자가 당신을 원치 않으면 밖으로 나가야 해요.”
백겸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는 방 안에 남은 환자들에게 직접 물었다. 한 사람은 그가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고, 백겸은 문밖으로 나갔다. 다른 환자는 그가 문을 지키는 동안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백겸은 그 요청에만 응했다.
윤서는 환자의 상처를 다시 지도에 그렸다. 몸의 위치는 진법 선과 맞지 않았지만, 그가 넘어지기 전 어떤 길로 도망쳤는지 표시하자 지도가 바뀌었다. 진법은 부상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움직임을 이용했다. 공격자는 상처 난 자리를 미리 계산한 게 아니라, 피난민이 선택할 길을 좁히고 있었다.
하란은 관문 문파가 우물길을 폐쇄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실을 털어놨다. 그녀는 그 명령이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산길을 막아 전투를 유도하려는 장로의 계획이었다. 그녀는 명령서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반대도 하지 않았다. 침묵 때문에 피난민들이 위험한 길로 들어갔다.
“그걸 기록에 남기세요.” 하란은 말했다. “내 이름을 빼지 말고요.”
담휘는 그녀에게 명령서 사본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하란은 문파의 인장을 숨기지 않은 채 접힌 종이를 꺼냈다. 윤서는 종이의 날짜와 진료 지도에 적힌 부상 시각을 비교했다. 공격이 시작되기 전부터 주민들의 이동 경로를 강제로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었다.
그 사실을 환자들에게 알리면 하란은 문파의 대리 장주에서 쫓겨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담휘는 혼자 공개하는 것보다 피해자들에게 어떤 자료를 공개할지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란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먼저 사실을 말하면 피해자들이 따라오리라 기대한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환자들의 선택을 기다렸다. 고수는 부상 시각만 공개하겠다고 했고, 다른 환자는 문파 이름까지 알리길 원했다. 한 사람은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담휘는 세 사람의 선택을 각각 적고, 서로의 기록을 보지 않도록 했다.
치료가 마무리될 무렵, 우물길에서 화재가 났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주민들이 피난하던 창고에 불이 붙었다. 백겸은 바로 달려 나가려 했지만, 환자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가면 나도 같이 데려가요. 그 길을 알고 있어요.”
담휘는 상태를 확인하고, 두 사람이 갈 수 있는 길과 위험을 설명했다. 환자는 통증을 견딜 수 있지만 오래 뛰면 경맥이 다시 손상될 수 있었다. 그는 백겸의 도움을 받으며 가겠다고 했다. 백겸은 환자를 등에 업지 않고, 팔을 받쳐 천천히 걸었다.
하란은 문서고 안에서 지도 원본을 찾았다. 그 위에는 아직 표시되지 않은 마지막 점이 있었다. 공격자들은 우물길을 불태우는 동시에 관문 문루를 무너뜨릴 계획이었다. 연하란은 그 명령이 문파 장로의 자필임을 확인했다. 그녀는 종이를 접지 않고, 진료 지도 옆에 펼쳤다.
담휘는 지도를 들고 뛰지 않았다. 먼저 환자들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이동에 동의한 사람과 남길 사람을 분리했다. 그들이 모두 자기 선택을 말하자, 그제야 문서고를 나섰다. 불길의 연기가 산길을 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