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가 엉망이라 직접 가르칩니다

3화: 천재의 오답 노트
새벽안개가 짙게 깔린 대나무 숲은 서늘한 칼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쐐애애액!
붉은 비단 자락이 허공을 갈랐다. 서슬 퍼런 검날이 대나무 줄기를 스치자마자 붉은빛 검흔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스걱! 콰르르릉!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스듬히 잘려 나간 대나무 여섯 그루가 일제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흙먼지와 푸른 댓잎이 어지럽게 피어오르는 공터 한가운데에 붉은 장포를 걸친 여인이 서 있었다.
붉은 장발을 높게 묶어 올린 연소희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 마교 본단의 명장들이 심혈을 기울여 벼려 낸 보검 화접검이었다. 칼날 위로 피어오르는 붉은 마기는 분명 일류 고수의 경지에 근접한 위력적이고 서늘한 파동이었다.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 정도 무위를 다루는 자는 중원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연소희의 표정은 어두웠다.
"큭……!"
그녀는 검을 내리자마자 왼손으로 명치 아래를 꽉 쥐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길 같은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기운이 혈도를 따라 순조롭게 흐르다 낭맥 부근에서 콱 막혀 역류하는 감각이었다. 목구멍 안쪽까지 비릿한 피 맛이 솟구쳤다.
"왜 안 되는 거지?"
연소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깨물었다.
"본단의 장로님들은 분명 천마검법 제삼초 '도해'를 펼칠 때 마기를 가슴으로 끌어모아 회전시키라고 하셨는데. 왜 회전할 때마다 숨이 막히고 피가 끓어오르는 거야?"
마교 소교주의 친동생이자 백 년 만에 나온 천재라 칭송받는 그녀였다. 교주조차 그녀의 재능을 두고 마교의 미래를 짊어질 보옥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반 년 전부터 천마검법의 심화 초식을 익힐 때마다 원인 모를 흉통과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내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미진함이라 여겨 밤마다 몰래 호위들을 물리고 홀로 수련을 거듭했으나 증상은 갈수록 악화될 뿐이었다.
"조금만 더…… 힘을 주어 억누르면 뚫릴 텐데."
연소희가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검신에 붉은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맹렬한 파공성을 내뿜었다.
그때였다.
"그딴 식으로 기운을 쑤셔 넣으니 단전이 터지기 직전이지."
숲 뒤편의 바위 그늘에서 나직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연소희가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검을 겨누었다.
살기를 담은 눈빛이 향한 곳에는 낡아 빠진 무복을 걸친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어깨에는 손때 묻은 엉성한 목검 한 자루를 걸치고 있었고 얼굴은 퀭하니 비쩍 마른 몰골이었다. 변방 삼류 문파인 철혈문의 외문 제자 복색이었다.
석진호는 바위에 등을 기댄 채 한심하다는 눈으로 연소희를 훑어보았다.
"천마의 무공이라더니."
석진호가 혀를 찼다.
"어디서 돼지 잡는 칼춤을 배워 와서 저승길을 재촉하고 앉았군."
"……뭐?"
연소희의 눈이 커졌다.
자신은 마교의 직계이자 당대 최고의 기재로 꼽히는 몸이다. 그런 자신을 향해 변방의 삼류 잡배가 '돼지 잡는 칼춤' 따위의 폭언을 뱉고 있었다.
"미친놈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입을 놀리는구나."
연소희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삼류 문파의 찌꺼기 주제에 감히 마교의 지존무공을 모욕해?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
"뭘 아냐고?"
석진호가 실소를 흘리며 바위에서 내려섰다.
그의 걸음걸이는 느긋했으나 발바닥이 흙을 짚는 각도는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네가 방금 펼친 검로는 첫 시작부터 틀렸다. 천마검법의 도해는 바다를 가르는 일격이다. 중심을 땅에 깊게 박고 하체의 힘을 허리로 전달해 단전의 기운을 직선으로 뻗어 내야 하지."
"……!"
"그런데 넌 어떻게 했지? 겉멋에 취해 발뒤꿈치를 띄우고 몸을 뱅뱅 돌리며 기운을 명치로 억지로 욱여넣었다. 그러니 낭맥이 꼬여서 피가 역류하지. 멍청하게 힘으로 누르면 주화입마로 단전이 찢어지는 것도 모르고."
연소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내의 입에서 나온 지적은 정확히 자신이 겪고 있던 고통의 원인을 꿰뚫고 있었다. 본단의 어떤 장로도 짚어 내지 못한 낭맥의 문제를 이 정체불명의 사내가 한눈에 보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충격 뒤에 찾아온 것은 걷잡을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였다.
"입만 산 놈이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본단의 비전을 모독한 죄는 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연소희는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찼다.
파아앗!
붉은 잔상이 대나무 숲을 가르며 석진호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마교의 비전 신법 혈영보였다. 순식간에 석진호의 코앞까지 좁혀든 연소희의 화접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찔러 들어갔다.
석진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첫 번째."
석진호의 목검이 사선으로 가볍게 떨어졌다.
연소희의 발끝이 땅에 닿기 직전이었다. 화려하게 허공을 밟으며 쏟아지던 연소희의 신법은 겉보기엔 빨랐으나 공중에 뜬 순간 체중이 뒤꿈치 쪽으로 쏠려 있었다.
탁!
석진호의 목검 끝이 연소희의 왼쪽 무릎 뒤 오금을 정확히 후려쳤다.
"앗……!"
체중의 균형이 무너지며 연소희의 상체가 앞으로 곤두박질쳤다.
화려하게 뻗어가던 검로는 허공을 갈랐고 붉은 비단옷이 진흙 바닥을 긁었다.
연소희는 이를 악물며 즉시 몸을 굴려 일어났다.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네놈이 우연히……!"
"두 번째."
석진호는 그녀의 말을 자르며 반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연소희가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검풍이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대나무 잎을 잘라냈다. 하지만 회전 반경을 키우느라 오른쪽 어깨가 치켜올라가 있었다.
석진호의 목검이 번개처럼 찔러 들어왔다.
내공도 실리지 않은 순수한 나무 막대기였다. 하지만 그 끝은 연소희가 검을 휘두르며 노출한 오른쪽 겨드랑이 밑 기혈을 군더더기 없이 파고들었다.
퍽!
"컥!"
팔 전체에 찌릿한 마비가 번지며 화접검의 궤도가 허무하게 꺾였다. 검날이 석진호의 뺨을 스치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꽂혔다.
"어깨에 힘만 잔뜩 주니 가슴팍이 훤히 열리지. 이따위로 검을 휘두르면 전쟁터에서 십 초도 못 버티고 꼬치가 된다."
석진호의 서늘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연소희는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변방 삼류 제자의 나뭇가지 같은 목검에 자신의 초식이 두 번이나 어이없이 파훼당했다. 그것도 상대는 내공 한 점 쓰지 않은 순수한 육체와 궤적만으로 자신을 농락하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연소희는 이성을 잃고 단전의 마기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검붉은 기운이 그녀의 전신을 감싸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막혀 있던 낭맥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으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천마검법의 비전 절초를 강행했다.
"천마군림……!"
연소희의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주화입마가 터져 나오기 직전의 징조였다.
그 순간 석진호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세 번째."
석진호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좁혀들었다.
폭주하는 마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석진호의 발걸음은 빗물 한 방울 피하듯 유려했다.
그는 붉은 검광의 틈새로 손을 뻗었다. 연소희가 검을 내지르기도 전에 석진호의 목검 끝이 그녀의 아랫배 왼쪽 낭맥을 날카롭게 찍어 눌렀다.
콰득!
"아아악!"
단전을 쥐어짜던 검붉은 마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역류하던 핏줄기가 강제로 제자리를 찾아가며 연소희의 무릎이 털썩 꺾였다. 손에 쥐고 있던 화접검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흙탕물에 박혔다.
단 3합.
마교 제일의 천재라 불리던 연소희는 진흙투성이가 된 채 석진호의 발치 아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공터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석진호는 무릎 꿇은 연소희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목검을 어깨에 툭툭 얹었다.
"스승이라는 놈들이 밥값도 못 하니 제자 꼴이 이 지경이지."
"너…… 쿨럭! 대체 정체가……."
연소희가 피를 토하며 떨리는 눈으로 석진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내공의 고하를 떠나 이런 경지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상대의 기운 흐름과 혈맥의 뒤틀림을 완벽하게 읽고 단 세 번의 손짓으로 절정 고수의 초식을 무력화하는 무위. 이건 무공의 깊이가 아니라 무학의 근본을 통달한 자만이 가능한 신기였다.
석진호는 대답 대신 목검 끝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천마의 무공은 살인을 위한 춤이 아니다. 기운을 바르게 세우고 천하의 이치를 꿰뚫는 길이지."
그의 눈빛에 서린 위압감은 초라한 백운휘의 겉모습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연소희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네놈은 무공을 배우기 전에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워라. 낭맥은 내가 임시로 눌러 뒀으니 당분간 숨은 쉴 수 있겠지만 사흘 안에 또 그따위로 검을 돌리면 그땐 진짜로 전신 기맥이 터져서 반신불수가 될 거다."
석진호는 목검을 거두고 등을 돌렸다.
"가서 네 잘난 장로놈들에게 전해라. 천마의 이름을 빌려 쥐새끼 짓 하지 말라고."
사내는 미련 없이 대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 나갔다.
연소희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짚었다.
"어……?"
늘 납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하고 욱신거리던 흉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반 년 동안 자신을 괴롭히며 잠조차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던 낭맥의 막힘이 단 한 번의 목검질에 완벽하게 뚫려 있었다. 가슴 깊은 곳으로 맑은 공기가 쏟아져 들어오며 단전이 편안하게 호흡했다.
"말도 안 돼……."
연소희의 붉은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자신을 바닥에 내리꽂은 그 오만하고 무례한 삼류 제자가 실은 자신의 목숨을 건져 준 것이다.
"백운휘라고 했나……?"
연소희는 흙에 꽂힌 화접검을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것은 패배의 굴욕 때문만이 아니었다. 백 년 전의 전설조차 뛰어넘을 것 같은 기이한 존재를 마주했다는 전율 때문이었다.